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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1일, 호주 멜버른 지역 신문 시드니 모닝 헤럴드(SMH)가 한 거리 이름을 기사 제목으로 올렸다. 세인트킬다(St Kilda)의 애클랜드 스트리트(Acland Street). 이 거리의 점포 네 곳 중 한 곳이 지난 1년 내내 비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시기 멜버른 교외 상업가의 공실률은 2년 연속 내려가고 있었는데, 이 거리만 반대 방향으로 갔다. 부동산 조사업체 플랜1(Plan1)의 집계에서 애클랜드 스트리트는 27.5%까지 벌어지며 “지난 20년 동안 멜버른 모든 상업가 중 가장 높은 공실률”을 기록했다. 다른 거리가 살아나는데 이 거리만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같은 보고서 안에서 멜버른의 다른 거리는 정반대 숫자를 보여줬다. 멜버른 주요 상업가의 평균 공실률은 1년 사이 12.8%에서 11.3%로 내려갔고, 아르마다데일(Armadale)의 하이 스트리트는 10.3%에서 3.6%로 떨어졌다. 브라이턴(Brighton)의 처치 스트리트는 0.6%로 가장 낮았다. 반대로 말번(Malvern)의 글렌페리 로드(Glenferrie Road)는 14.8%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 도시 전체의 평균 하나로는 어느 거리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기사의 출발점이다.

기사는 애클랜드 스트리트의 사정을 보여주는 표지판 하나를 길게 인용한다. 신발 매장 글로브(Globe)가 문을 닫은 자리에 남긴 안내문이었다. 안내문은 매출 하락의 원인으로 정부를 지목하며 이렇게 적었다. “이 자리는 2016년 8월 8일 월요일, 막다른 길이 된 날 죽었다.” 거리 한쪽 끝을 차량 통행에서 끊는 재개발이 있었고, 그날 이후 매장이 더는 장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 지점의 매출은 60% 줄어 회복하지 못했지만, 같은 기간 전국 매출은 250% 늘었다. 회사 전체는 성장했는데 이 자리만 막힌 셈이다. 다만 이 숫자는 매장 측 주장이며 기사가 독립적으로 검증한 값은 아니다.

호주의 상가 임대는 어떻게 돌아가나

이 기사에는 임대 계약의 법적 구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음이라고 밝혀 두고, 독자를 위해 일반적 배경만 정리한다. 호주 상업용 부동산 임대는 대개 건물 소유주와 임차인이 정해진 기간의 리스(lease) 계약을 맺는 구조다. 임차인은 보증금 성격의 보증(bank guarantee, security deposit)과 월세를 내고, 계약 기간은 몇 년 단위로 명시된다. 한국에서 익숙한 전세처럼 목돈을 맡기고 보증금을 돌려받는 구조가 아니라, 계약 기간 동안 정해진 임대료를 내는 ‘기간 계약’이 기본이다.

한국의 권리금, 즉 자리가 가진 장사 권리를 따로 사고파는 관행도 호주에서는 일반적이지 않다. 임차인이 나가면 그 자리의 ‘영업권’을 다음 사람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임대인이 다시 임차인을 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점포가 비면 손실은 임대인에게 직접 돌아가고, 임차인은 계약이 끝나면 자리를 떠나면 그만이다. 애클랜드 스트리트에서 27.5%의 공실이 임대료 조정으로 빠르게 메워지지 않은 이유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이 기사가 그 인과를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

업종 구성이 바뀐 방향

기사가 제시한 업종 구성은 다음과 같다. 모든 상업가를 통틀어 카페와 레스토랑이 가장 흔한 임차인으로, 전체 점포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 뒤를 의류·신발, 미용·헤어, 생활용품이 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서비스 업종의 약진이다. 플랜1의 리처드 젠킨스(Plan1 이사)는 서비스 기반 임차인이 약 21%로 늘어, 15년 전 점포의 33%를 차지했던 의류·신발 소매를 앞질렀다고 말했다. 새 임차인의 4%는 전자담배 매장이었는데, 연방정부의 전자담배 금지 추진이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다고 기사는 덧붙였다.

매장 회전율도 높았다. 멜버른 상업가의 회전율은 15%로, 장기 평균 7.4%의 두 배 수준이었다. 가장 높은 18%를 기록한 곳은 캠버웰의 버크 로드, 채플 스트리트, 그리고 애클랜드 스트리트였다. 채플 스트리트는 오히려 임대 조건이 낮아진 덕에 의류 임차인이 몰리며 근 10년 만에 가장 낮은 공실률을 기록했다. 같은 도시에서 임대 조건을 낮춘 거리는 사람을 불러 모으고, 그렇지 못한 거리는 비었다는 대비가 숫자로 드러난다.

멜버른 세인트킬다 애클랜드 스트리트의 트램 종점 — Philip Mallis,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왜 이 거리만 비었나

기사가 든 원인은 네 가지다. 첫째, 도로 재개발로 거리 한쪽이 막히면서 차량과 보행 동선이 끊겼다. 둘째,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와 통근 패턴이 바뀌면서 소매업체들이 자기 점포망을 다시 짰다. 젠킨스는 이것이 “부동산 전략의 재평가”를 불렀다고 설명한다. 셋째, 온라인 소매 매출이 2년 사이 25% 늘어 오프라인 점포의 역할이 바뀌었다. 넷째, 임대 조건 자체다. 채플 스트리트처럼 조건을 낮춘 곳은 채워졌고, 조건을 그대로 둔 거리는 비었다.

관광과 인구 요인은 기사에서 직접 다루지 않는다. 세인트킬다는 멜버른에서 해변과 유원지로 알려진 관광지구지만, 이 기사는 관광객 수치나 인구 변화를 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관광이 줄어서’라는 설명은 이 사료만으로는 뒷받침되지 않는다.

무너진 게 아니라 역할이 바뀌는 중

이 기사의 통념을 뒤집는 지점은 공실률 27.5%라는 숫자가 ‘상권의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같은 보고서에서 멜버른 상업가의 공실률은 직전 11월 정점 31%에서 내려왔다. 거리는 비었지만 동시에 다시 채워지고 있었고, 채워지는 업종이 의류에서 외식·서비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젠킨스의 표현대로 애클랜드 스트리트는 “미운 오리”가 됐지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여전히 손님이고 그 손님이 원하는 것이 바뀐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이 해석은 조사업체의 시각이며, 매장을 떠난 상인은 같은 숫자를 다르게 읽는다. 글로브의 안내문처럼 ‘거리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27.5%는 기회가 아니라 상실이다.

한국과 견주면

한국에서 비슷한 처지의 거리를 꼽는다면 서울 신촌이나 홍대 앞 상권이 가깝다. 대학가와 유동 인구에 기대던 거리가 임대료와 업종 변화로 비어 가는 모습은 애클랜드 스트리트와 닮았다. 다른 점은 계약 구조다. 한국은 보증금과 권리금이 크게 얽혀 있어 점포가 비어도 임대인이 쉽게 조건을 낮추기 어렵고, 임차인도 권리금을 건져야 하니 쉽게 나가지 못한다. 호주는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고 권리금 관행이 약해, 임대 조건을 낮춰 새 임차인을 들이는 결정이 상대적으로 빠르다. 애클랜드 스트리트가 공실 27.5%에서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 속도는 이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

이 사료의 한계

이 기사의 숫자는 모두 민간 조사업체 플랜1의 집계다. 플랜1은 임대·투자 시장에 서비스를 파는 회사이고, 기사에 인용된 해석도 플랜1 이사의 발언에 집중되어 있다. 임차인 단체나 지방정부, 소상공인의 시각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기사는 2023년 5월 시점의 스냅샷이며, 이후 애클랜드 스트리트가 실제로 어떻게 변했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표지판에 적힌 매출 60% 감소와 250% 증가 역시 매장 측 주장으로, 검증된 수치가 아니다.

독자에게 묻는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도 옷가게 자리에 식당이나 서비스 매장이 들어오고 있나요? 그 변화를 ‘상권의 쇠퇴’로 느끼는지, 아니면 ‘동네의 역할이 바뀌는 것’으로 느끼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임대 조건을 낮춰 새 임차인을 들이는 것과, 권리금을 지키며 기존 상인을 지키는 것 중 어느 쪽이 동네를 오래 살게 한다고 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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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The Melbourne shopping strip where one in four stores is empty — The Sydney Morning Herald, 2023년 5월 31일. 원문 링크

인용 수치 출처: 플랜1(Plan1) 멜버른 상업가 공실률 집계, 2023년 5월 기준. 임대 구조 배경 설명은 기사에 없는 일반적 배경이며 기사 근거가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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