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말, 영국 스코틀랜드 소매업 컨소시엄(Scottish Retail Consortium·약칭 SRC)이 내놓은 분기 보고서 한 장의 첫 문장은 이랬다. "스코틀랜드의 가게 여섯 곳 중 한 곳이 비어 있다." 숫자는 15.7%였다. 같은 수치가 석 달 연속 이어졌고, 1년 전 같은 분기보다는 0.4%포인트 나아진 것이 전부였다. 영국을 11개 지역으로 나눠 비교하면 스코틀랜드는 8위. 보고서를 낸 단체의 책임자 데이비드 론스데일은 "개선의 조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숫자가 흥미로운 이유는 크기 자체가 아니다. 같은 시기 같은 조사에서 쇼핑센터 공실률은 20.5%로 1년 전과 똑같았고,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도시 중심의 간선 상가거리)는 14.7%에서 14.8%로 오히려 나빠졌는데, 리테일 파크(Retail Park·도심 밖에 주차장을 갖춘 대형 소매 단지)만 11.0%에서 9.8%로 좋아졌다. 하나의 "상권 위기"로 묶을 수 없는 세 개의 시장이 한 보고서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빈 칸이 몰려 있는 곳은 거리가 아니라 쇼핑센터였다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론스데일의 두 번째 문장이다. "빈 점포의 양은 특히 쇼핑센터에서 두드러진다." 거리보다 건물 안쪽이 더 비어 있다는 뜻이다. 스코틀랜드의 중소 도시 쇼핑센터는 대개 1970~80년대에 지어졌다. 당시에는 실내 통로를 따라 걷는 것 자체가 쇼핑이고, 날씨가 궂은 나라에서 비를 피해 쇼핑하는 것이 쇼핑센터의 상품이었다. 지금은 그 상품 가치가 가장 먼저 사라진 곳 중 하나다.
반대로 리테일 파크는 좋아졌다. 조사를 수행한 부동산 데이터 회사 로컬 데이터 컴퍼니(Local Data Company)의 루시 스탠턴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리테일 파크가 다른 입지 유형보다 계속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코로나 정점기에 형성된 일부 쇼핑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신호일 것"이라고. 차로 가서 한 번에 사 오는 소비 습관이 자리 잡았다면, 그 습관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곳은 도로변 주차가 어려운 도심 상가다.
스코틀랜드 이스트로디언 해딩턴의 하이스트리트 상가 — 리처드 서트클리프,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2023년)
영국의 상가 임대 제도: leasehold와 freehold, 그리고 한국과의 차이
이 기사는 임대 계약 구조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 다만 영국 상권을 읽으려면 최소한 두 단어는 알아야 하므로, 원문에 없는 배경 설명임을 밝혀 두고 정리한다.
영국 부동산은 크게 freehold(건물과 토지를 함께 영구 소유)와 leasehold(일정 기간의 임차권을 사서 보유)로 나뉜다. 상가 leasehold는 흔히 99년·125년·999년처럼 긴 기간으로 설정되고, 임차권자는 그 권리를 다시 남에게 넘길 수 있다. 즉 한국의 임차인이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내는" 구조와 달리, 영국에서는 건물의 권리를 자본으로 사서 보유하는 층이 임대인과 실제 영업자 사이에 존재할 수 있다.
한국의 상가 임대차는 보증금·월세·권리금이라는 세 축으로 움직인다. 보증금은 계약 종료 시 돌려받는 담보이고, 권리금은 장사가 되는 자리의 영업권·시설·단골에 붙는 값으로 별도로 거래된다. 영국에는 권리금이라는 제도가 일반적이지 않다. 대신 rent review(일정 주기마다 임대료를 다시 정하는 조항)와 upward only(시세가 내려가도 임대료를 깎지 않는 조항) 같은 계약 조건이 장기 임차인의 비용을 결정한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의 상인은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가"를 걱정하고, 영국의 상인은 "계약 갱신 시 임대료가 어디까지 오르는가"를 걱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 기사에는 이 제도 설명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으므로, 스코틀랜드의 15.7%가 이 계약 구조 때문이라고 연결하는 것은 확인되지 않음으로 남겨야 한다.
업종 구성과 변화: 원문이 말해 주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이 기사는 업종별 점포 수나 업종 구성비를 제시하지 않는다. 확인되는 것은 위치 유형별 공실률 세 가지(쇼핑센터 20.5%, 하이스트리트 14.8%, 리테일 파크 9.8%)와 전체 15.7%, 그리고 영국 11개 지역 중 8위라는 순위뿐이다. 특정 업종이 몇 개 늘었다 줄었다는 식의 수치는 이 기사에 없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에서 옷가게가 줄고 카페가 늘었다" 같은 서술은 이 사료로는 쓸 수 없다.
다만 구조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있다. 쇼핑센터의 공실이 도심 거리보다 높다는 것은, 실내에 모여 걷는 소비보다 목적을 정해 차로 가는 소비가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상권의 문제가 "사람이 없다"가 아니라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에 가깝다는 신호다.
왜 비었나: 생활비 위기, 코로나, 그리고 습관
원문이 든 원인은 두 가지다. 생활비 위기(cost of living crisis)와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가 소매업자에게 "무거운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SRC의 진단이다. 여기에 스탠턴의 관찰이 하나 더 붙는다. 크리스마스 판매 기간에 소비자들이 온라인 지출과 함께 "매장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긴장이 생긴다. 소비자는 매장으로 돌아오는데 공실률은 15.7%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수요가 회복되는데 빈 점포가 안 줄어드는 상황은, 비어 있는 점포의 위치나 조건이 소비자가 원하는 것과 어긋나 있음을 시사한다. 사람이 돌아온 곳은 리테일 파크였고, 사람이 돌아오지 않은 곳은 쇼핑센터와 일부 하이스트리트였다.
반전: "상권 몰락"이 아니라 "채널 재편"일 수 있다
제목만 보면 스코틀랜드 상권은 무너지는 중이다. 그러나 본문의 세 숫자는 다른 그림을 그린다. 세 유형의 공실률을 단순 평균하면 대략 15% 안팎이지만, 그 안에서 리테일 파크는 개선되고 쇼핑센터는 정체되어 있다. 소비 총량이 줄어서가 아니라 소비가 이동하는 중이라면, 지금 벌어지는 일은 상권의 소멸이 아니라 상권의 재배치다.
물론 이 해석에는 반론이 있다. SRC는 "하이스트리트가 완전히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론스데일은 개선의 조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업계 단체의 이해관계는 분명하다. 공실률이 높다는 보고서는 정부에 세제 감면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근거가 된다. 반대로 데이터 회사인 로컬 데이터 컴퍼니는 "습관이 남아 있다"는 낙관적 해석을 내놓는다. 같은 숫자를 두 조직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읽고 있는 셈이다.
한국과의 비교: 대구 동성로와 스코틀랜드의 하이스트리트
한국에서 이 구조와 가장 닮은 곳은 도심 간선 상권이다. 대구 동성로나 서울의 오래된 중심 상권은 대형 쇼핑몰과 온라인, 그리고 외곽의 복합쇼핑몰로 소비가 빠져나가면서 공실이 늘었다. 같은 점은 도보 중심의 오래된 상가가 자동차 중심의 새 소비 동선에 밀린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임대차 계약의 무게다. 한국 상인은 권리금과 보증금이 묶여 있어 점포를 비우는 결정 자체가 비싸다. 장사가 안 되어도 "버티는" 선택이 합리적이 되는 구조다. 영국은 임차권이 자본으로 거래되고 계약 기간이 길어, 반대로 "비워 두는" 선택이 임대인의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공실률이라는 같은 숫자가 두 나라에서 다른 이유로 생긴다는 뜻이다.
다만 이 비교 역시 이 기사가 직접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기사에는 임대료 수준, 계약 조건, 한국 상권과의 비교가 전혀 없다. 위 비교는 제도 배경에 근거한 해석이며, 스코틀랜드의 수치가 한국 상권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사료의 한계: 누가 이 숫자를 만들었나
이 보고서는 소매업자 단체(SRC)와 부동산 데이터 회사(로컬 데이터 컴퍼니)가 공동으로 만들었다. 소매업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작성한 공실 보고서는 정책 요구의 성격을 띤다. "회복이 어렵다"는 표현은 위기의 크기를 강조하는 수사이기도 하다. 또한 2022년 4분기와 2023년 1월 발표 시점의 자료로, 이후의 금리 급등과 에너지 비용 상승은 반영되지 않았다. 지금의 스코틀랜드 상권을 이 기사 하나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독자에게: 빈 점포는 무엇의 흔적인가
가게가 비어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원인을 가리키지 않는다. 임대료일 수도, 사람의 이동 방식일 수도, 계약 구조일 수도 있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 오래 비어 있는 점포가 있다면, 그 자리는 "장사가 안 되는 자리"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쓰여야 할 자리"인가. 그리고 그 판단을 바꾸려면 무엇이 먼저 바뀌어야 할까.
참고 자료
· BBC, 「One in six shops in Scotland lying vacant - report」, 2023년 1월 27일 — https://www.bbc.co.uk/news/uk-scotland-scotland-business-64420429
· 이미지: Richard Sutcliffe, "Shops on Haddington High Street",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2023년 9월 28일 촬영)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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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6 09:31
쇼핑센터 공실 20.5%가 1년 내내 그대로라는 대목이 제일 눈에 밟히네. 사람은 매장으로 돌아오는데 그 사람들이 옛 실내 상가로는 안 가는 거잖아. 건물만 새로 짓는다고 채워질 자리는 아닌 것 같고, 그 통로를 뭘로 쓸지부터 다시 정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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