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웨스트요크셔의 도시 웨이크필드(Wakefield, 인구 약 10만 명 남짓의 작은 도시) 중심부. 길 양옆으로 전에 쓰던 간판 자국만 남은 점포가 섞여 있다. 2026년 6월 11일, 소상공인 신용카드 업체 캐피털 온 탭(Capital on Tap)의 조사 결과를 전한 영국 유통 전문지 토킹 리테일은 이 도시를 영국에서 '가장 약한 하이스트리트' 1위로 꼽았다. 근거로 든 숫자가 낯설다. 1제곱킬로미터당 활동 중인 소매 업체 수가 0.9곳. 같은 나라 런던은 같은 지표가 27.5곳이다. 서른 배 차이다.
이 조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영국 상권 담론은 오랫동안 '런던 대 지방'의 이분법으로 돌아갔는데, 이 표는 같은 지방 안에서도 격차가 30배까지 벌어진다는 것을 한 장의 표로 보여준다. 이 글은 그 표에 붙은 다섯 개 숫자의 의미와, 그 숫자가 측정하지 못한 것을 짚어본다.
무엇을 쟀고, 무엇으로 순위를 매겼나
조사는 도시별로 ① 제곱킬로미터당 활동 중인 소매 업체 수(밀도), ② 하이스트리트 서비스 점포의 공실 비율, ③ 기업 생성 대 소멸 비율(창업 대 폐업), ④ 지난 1년간 월간 소매 유동인구 변화율, ⑤ 1인당 가처분 가구소득(GDHI, gross disposable household income —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뺀 뒤 가구가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을 측정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다섯 지표를 하나의 점수로 합산한 방식은 원문에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독자는 '어떤 가중치로 이 순위가 나왔는가'를 알 수 없다. 밀도가 지배적인가, 아니면 공실률이 지배적인가에 따라 순위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보도된 표를 그대로 읽되, 이것이 하나의 '종합 점수'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강한 순위는 이렇다. 1위 런던(밀도 27.5곳, 공실 7.4%, 유동인구 +4.76%), 2위 맨체스터(26.7곳, 10.5%, -6.46%), 3위 글래스고(13.3곳, 11.7%, -3.5%), 4위 리버풀(14.3곳, 9.5%, -6.46%), 5위 브라이턴앤드호브(17.0곳, 9.2%, -10.41%). 약한 순위는 1위 웨이크필드(0.9곳, 14.4%, -8.98%), 2위 선덜랜드(2.9곳, 16.8%, -7.33%), 3위 스토크온트렌트(8.0곳, 16.3%, -9.72%), 4위 카디프(7.2곳, 12.4%, -14.24%), 5위 킹스턴어폰헐(9.1곳, 15.1%, -8.98%).
유동인구는 어디서나 줄었는데, 공실은 갈렸다
선덜랜드 하이스트리트 웨스트(High Street West)의 보행 거리. 왼쪽으로 낡은 상가, 오른쪽으로 대형 체인점 매장이 이어져 있다. 2020년 2월 — Chris Morgan, CC BY-SA 2.0 (위키미디어 공용, geograph 경유)
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유동인구다. 강한 상위 5개 도시 중 유동인구가 늘어난 곳은 런던 하나뿐이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6.46%, 글래스고 -3.5%, 브라이턴 -10.41%다. 런던이 '살아 있는 거리'라는 판정을 받은 이유도 유동인구 증가가 아니라 밀도(27.5곳)와 낮은 공실(7.4%)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거리에서도 점포는 채워지기도 하고 비기도 한다는 것이 이 표의 첫 번째 함의다.
반대로 약한 순위의 공실률은 대체로 높다. 선덜랜드 16.8%, 스토크 16.3%, 헐 15.1%, 웨이크필드 14.4%로 네 곳이 14%를 넘는다. 예외가 카디프다. 공실률은 12.4%로 그리 나쁘지 않은데, 유동인구가 -14.24%로 전체에서 가장 크게 하락했다. 순위가 공실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고, 동시에 지금은 멀쩡해 보이는 거리가 앞으로 가장 빠르게 비어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웨이크필드의 숫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면이다. 밀도 0.9곳, 유동인구 -8.98%, 공실 14.4%. 하지만 이 도시의 기업 생성 대 소멸 비율은 1.03으로 여전히 1을 넘는다. 새 가게가 지는 가게보다 조금 더 많이 열린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밀도가 1제곱킬로미터당 1곳에 못 미치는 것은, 문을 여는 속도보다 문을 닫는 속도가 조금 더 빠르고, 무엇보다 그 '거리' 자리에 이미 남은 점포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영국의 상가 임대·소유 제도: 한국의 보증금·권리금과 다른 지점
이 표를 한국 독자의 언어로 옮기려면 제도 차이를 먼저 짚어야 한다. 영국에는 한국식 전세가 사실상 없다. 대신 두 가지 계약 형태가 상가 시장의 뼈대를 이룬다.
첫째, 임대차(lease) 계약이다. 영국 상가 임대차는 보통 5년에서 15년, 긴 경우 25년까지 길게 맺는다. 여기서 한국과 갈리는 것은 임대차 기간 동안의 채무가 임차인에게 고정된다는 점이다. 계약기간의 임대료는 'upward-only review'(상향 조정만 가능한 재검토) 같은 조항으로 중간에 올라갈 수 있다. 장사가 안 되면 나가면 되는 한국식 단기 임차와 달리, 영국에서는 거리가 비어 가는 와중에도 계약서에 적힌 임대료가 임차인의 손익을 계속 압박한다.
한국식 '권리금'에 해당하는 제도도 없다. 장사가 잘 되는 자리의 영업권을 다음 임차인에게 사고파는 시장이 제도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 차이는 의외로 크다. 한국에서 권리금은 '이 자리의 가치는 내가 만든 것'이라는 상인의 재산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장치다. 반면 영국에서 그 자리의 가치는 임대인이 통제하는 임대료와 지주(landlord)의 자산가치로만 측정된다.
둘째, 소유 구조다. 영국 부동산은 완전소유권(freehold)과 장기임차권(leasehold)으로 나뉜다. 상가는 흔히 투자기관이 freehold를 사들이고, 사업자는 leasehold로 들어간다. 그래서 거리의 점포를 채울지 비울지 결정하는 주체가 그 동네 상인이 아니라, 런던·해외의 부동산 펀드나 지방의회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위 설명은 영국 제도에 관한 일반적 배경이고, 원문 기사에는 임대료 수준이나 계약 조건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즉 이번 조사가 확인한 것은 공실률과 업체 밀도이지, '임대료가 내려가지 않아서 비었다'는 인과가 아니다. 이 글도 그 인과를 주장하지 않는다.
업종 구성: 공실률 16.8%의 도시와 7.4%의 도시 사이
원문에는 업종별 점포 구성비가 실려 있지 않다. 다만 조사가 함께 실은 여론 조사가 업종 변화의 방향을 시사한다. 영국 성인의 34%가 '독립·지역 상점이 더 많아지면 더 자주 방문하겠다'고 답했고, 39%는 자기 동네 하이스트리트가 쇠퇴하고 있다고 봤다. 그리고 38%가 '베이프숍(전자담배 가게)이 너무 많다'고 답했다.
이 마지막 숫자는 조용하지만 중요한 단서다. 공실률이 낮아도 거리가 건강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업종은 남고, 그 업종이 지역 주민이 원하는 업종이 아닐 수 있다. 베이프숍은 초기 투자비가 적고 소규모 점포로도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어 가는 점포를 채우기 쉬운 대표적 업종이다. 점포 '수'와 '쓰임'이 갈라지는 지점이 여기다.
이 대목은 이전에 다룬 영국 상권 사례들과도 이어진다. 점포가 다시 채워져도 그것이 예전과 같은 업종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즉 '공실은 채워졌는데 거리는 달라졌다'는 상황이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나
이 조사는 원인 분석을 본문에 제시하지 않는다. 지표를 나열하고 순위를 매겼을 뿐이다. 다만 표 안의 숫자 조합에서 두 가지 패턴을 읽을 수 있다.
하나는 규모 효과다. 밀도 상위 도시는 모두 인구 규모나 관광 기반이 큰 곳이다. 런던 27.5곳, 맨체스터 26.7곳이 압도적이고, 관광 도시인 브라이턴앤드호브가 17.0곳으로 세 번째다. 소매 밀도는 기본적으로 유동 수요의 함수이므로, 큰 시장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다른 하나는 창업 활동과 밀도의 불일치다. 창업 대 폐업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2위 맨체스터(1.24)와 3위 글래스고(1.21)인데, 이 둘은 1위 런던(1.16)보다 이 지표가 높다. 새 사업이 활발히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맨체스터의 유동인구는 -6.46%다. 창업이 활발한 것과 거리에 사람이 차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커머스, 재택근무, 통근 방식 변화 같은 해석이 붙을 수 있지만, 이번 조사에는 그런 요인에 대한 실증이 없다. 확인되지 않음.
반전: 몰락인가, 재편인가
표에서 가장 통념과 다른 지점은 '가장 약한 하이스트리트'라는 표현의 실체다. 웨이크필드의 밀도 0.9곳은 '가게가 모두 망했다'기보다, 도시 공간이 재편되면서 소매의 무게중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단서는 창업 대 폐업 비율이다. 웨이크필드는 1.03, 선덜랜드는 1.09, 스토크 1.07, 카디프 1.10, 헐 1.13으로, 약한 순위의 다섯 도시 모두 1을 넘는다. 사업이 완전히 꺼진 상태가 아니라, 소규모로 계속 열리고 닫히는 상태다. 다만 조사가 쓰는 '활동 중인 소매 업체 수'의 기준, 예컨대 임대 개시 시점이나 매출 유무가 원문에 명시되지 않아, 이 수치가 얼마나 엄격한 정의인지는 알 수 없다. 밀도 0.9곳이라는 압도적 낮음이 측정 방식에서 비롯된 것인지 실제 공간 변화인지는, 독자도 판단을 유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재편'이라는 해석도 조심해야 한다. 재편이 곧 회복은 아니라서, 소매가 빠진 자리에 물류 창고나 주거가 들어서면 공실률은 낮아지지만 상권은 사라진다. 이 조사는 점포 '수'만 세지 '무엇이 들어왔는지'는 세지 않았다. 그것이 이 표의 가장 큰 빈칸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대구 동성로와 웨이크필드
한국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곳으로 대구 동성로를 들 수 있다. 과거 지역 최대 번화가였고, 최근 몇 년간 공실률 상승과 임대료·권리금 논쟁의 중심에 서 왔다. 이전 글에서도 다룬 적 있는 사례다.
같은 점은 유동인구 감소가 공실보다 먼저 온다는 것이다. 웨이크필드의 유동인구 -8.98%는 카디프의 -14.24%에 이어 낮은 축이지만, 공실 14.4%는 그보다 앞서 표면화된 결과다. 동성로에서도 사람이 줄어드는 신호가 빈 점포보다 먼저 감지됐다. 그리고 두 곳 모두 '창업은 계속되는데 거리는 비어 가는' 상태를 보인다.
다른 점은 계약 구조다. 한국에서는 임대료가 버겁다 싶으면 권리금을 회수해 다른 자리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지만, 영국에서는 장기 lease에 묶여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한 비용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영국에서 점포 공실은 '사업자가 문을 닫는 결정'이기보다 '건물주가 임차인을 다시 찾지 못하는 상태'로 나타나기 쉽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상인이 빠져나가도 건물주가 새 임차인을 구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공실이 짧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두 나라의 공실률을 같은 자로 재면 안 되는 이유다.
이 숫자가 누구의 시선인가
이 조사를 만든 주체는 캐피털 온 탭이다. 런던에 본사를 둔 소상공인 신용카드·지출관리 플랫폼 기업으로, 2012년 설립됐고 유럽과 영국의 소상공인을 주 고객으로 둔다. 즉 순위표의 저자는 지역 상권의 침체가 곧 자기 사업의 잠재 고객층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금융회사다.
'가장 약한 하이스트리트'라는 순위는 지역 정치인에게는 곧바로 정책 압박이 되고, 투자자에게는 부동산 가격의 참고 지표가 된다. 그런 만큼 어느 지표를 넣고 어느 것을 빼느냐에 따라 도시의 평판이 바뀐다. 이번 표에 업종 구성, 임대료 수준, 점포 면적 같은 항목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편집 결정이다. 토킹 리테일의 기사 역시 조사 결과를 거의 그대로 옮긴 보도이므로, 원자료(조사 보고서)를 확인하지 않는 한 세부 방법론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독자에게 묻는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 최근 몇 년 새로 생긴 가게를 하나 떠올려 보시라. 그 가게는 전에 어떤 가게가 있던 자리였는가? 그리고 그 자리의 주인은 그 가게가 들어오기 전에 어떤 선택을 하고 있었을까.
공실률은 '얼마나 비었는가'를 재지만, '무엇이 채웠는가'는 재지 않는다. 빈 점포 수가 줄어드는 회복과, 그 점포들이 다른 업종으로 바뀌는 재편은 같은 숫자로 보인다. 웨이크필드의 숫자 0.9곳은 어느 쪽일까.
참고 자료
- Britain’s strongest and weakest high streets revealed — Talking Retail, 2026년 6월 11일. 원조사: Capital on Tap. https://www.talkingretail.com/news/industry-news/britains-strongest-and-weakest-high-streets-revealed-11-06-2026/
- 선덜랜드 하이스트리트 웨스트 사진 — Chris Morga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geograph.org.uk 경유).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igh_Street_West,_Sunderland_-_geograph.org.uk_-_6395126.jpg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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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4 17:39
0.9곳이라니, 허허. 옛날엔 동네 어귀만 나가도 빵집이니 철물점이니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말이오. 지금은 베이프숍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니 세상 참. 그래도 숫자를 보면 웨이크필드가 완전히 죽은 동네는 아니더구먼. 창업 대 폐업 비율이 1.03이라는 게 그 증거고. 문제는 가게가 문을 여는 자리와 사람이 다니는 자리가 따로 논다는 것. 결국 공실률 하나만 보고 동네를 판단하면 큰코 다친다는 옛말이 딱 맞는 셈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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