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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7월, 스위스 베른에서 상대성이론 50주년을 기념하는 첫 국제회의가 열렸다. 참석자 명단은 그 시대 물리학의 지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그런데 이 회의를 계기로 시작된 시대를 과학사가들은 흔히 '일반상대성이론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문제는 그 르네상스를 이끈 사람들이 남긴 것이 논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업이 연구인 사람들이, 거의 예외 없이, 두꺼운 교과서를 한 권씩 써서 남겼다.

본데 대학 리히텐베르크 물리학사·철학 그룹의 베르나데트 레셀(Bernadette Lessel)이 2026년 10월 arXiv에 올린 논문은 이 교과서들을 사료로 읽자고 제안한다. 주장은 두 갈래다. 첫째, 교과서는 연구논문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이 이론이 무엇에 관한 것인가'를 서술하는 장르이므로, 시대의 지적 역학을 복원하는 증언이 된다. 둘째,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연구소들의 수장들이 거의 모두 자기 학파의 교과서를 남겼다는 관찰이다. 논문은 이 두 명제를 1915년부터 1980년대까지의 교과서 목록 위에 올려놓는다.

1918년, 바일의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시장

논문이 정리하는 첫 세대는 이론이 나온 직후의 책들이다. 헤르만 바일의 『공간·시간·물질』(1918), 볼프강 파울리의 『상대성이론』(1921), 아서 에딩턴의 『상대성의 수리적 이론』(1923)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파울리의 책 서문에서 아르놀트 조머펠트가 한 말을 논문은 인용한다. 당시 독일에는 상대성이론 설명에 대한 '겉보기에 충족될 줄 모르는 수요'가 있었고, 그것이 대중적인 설명과 고도로 전문적인 설명 양쪽에 걸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세 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우구스트 코프, 막스 폰 라우에, 그리고 아인슈타인 본인의 『상대성의 의미』(1922, 1921년 5월 프린스턴 강연)가 같은 물결에 올라탄다. 브라질의 아모로조 코스타, 하버드의 버크호프와 랑어처럼 지역마다 다른 언어의 교과서가 나왔다. 대중서만 해도 프린들리히, 에딩턴의 『공간·시간·중력』, 막스 보른, 한스 티링의 책이 잇따랐다. 이론 하나가 몇 년 만에 서점의 한 코너를 통째로 차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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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빈에서 열린 강연에서 찍은 아인슈타인 — 페르디난트 슈무처 촬영,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1925년에서 1945년, 책이 끊긴 20년

논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표는 판본의 수명이다. 1925년까지 위의 책들은 거듭 증보판과 재판을 찍었다. 그런데 그해를 기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새 판이 사실상 사라진다. 예외는 아인슈타인의 대중서 『특수 및 일반 상대성이론에 대하여』 하나였다. 1930년대에 두 번, 1945년까지 세 번 더 개정판이 나왔고 영어 번역본도 따라붙었다. 나머지 책들은 조용히 절판의 길로 들어섰다.

과학사가들이 '저수위기(Low Watermark)'라고 부르는 구간이다. 이 시기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자체로 연구되기보다 통일장이론의 재료로, 천체물리 계산의 도구로, 혹은 양자장론 프로그램 안의 골칫거리로 쓰였다. 논문은 이 침체가 교과서 판본의 패턴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고 지적한다. 서지 정보만 훑어도 학문의 체온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한 조짐이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보인다. 1945년 이후 티링의 책이 마지막 개정판을 내고, 아인슈타인의 프린스턴 강연집이 두 번 다시 찍힌다. 바일의 책은 1952년에 영어로 번역되고, 폰 라우에의 책은 1952~53년에 새 판을 얻는다. 파울리의 책은 1951년에 번역이 예정되었다가 1958년에야 나온다. 논문은 베른 회의가 '공식적 시작'이 되기 전에 이미 관심이 데워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르네상스의 출발선은 회의록이 아니라 판권지에 먼저 찍혀 있었던 것이다.

연구소마다 하나씩, 학파의 얼굴을 한 교과서

논문의 두 번째 기둥은 로베르토 랄리(Roberto Lalli) 등이 정리한 연구중심지 목록과 교과서 목록을 겹쳐 놓는 작업이다. 베른 회의 이후 10년 남짓 사이에 이 연구소들은 거의 모두 자기 교과서를 하나씩 내놓는다. 더블린의 란초시와 슈뢰딩거, 케임브리지의 본디와 디랙, 함부르크의 헤크만과 요르단, 파리의 리슈네로비치와 토넬라, 레닌그라드의 포크, 바르샤바의 인펠트와 플레반스키, 시러큐스의 베르크만, 채플힐의 드위트, 프린스턴의 휠러까지. 논문의 표 1은 이 책들을 국가별로 묶어 연대순으로 늘어놓는다.

흥미로운 것은 책마다 이론의 정체가 다르게 규정된다는 점이다. 파리의 리슈네로비치는 초기값 문제, 즉 아인슈타인-맥스웰 계의 해가 존재하는지를 전면에 세운다. 같은 파리의 토넬라는 아핀접속을 일반화한 통일장이론들의 물리적 내용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데 집중한다. 레닌그라드의 포크는 조화좌표라는 '구별된' 좌표계를 옹호하며, 일반공변성이 그 자체로 물리법칙의 표현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논문은 포크가 아인슈타인 이론의 타당성 자체를 의심한 것은 아니라고 각주로 못 박는다.

영국의 존 라이튼 싱은 또 다르다. 그는 서문에서 상대성이론 연구를 '상아탑에서 머리카락을 쪼개는 일'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도 같은 서문 끝에서 펠릭스 피라니와의 대화 덕분에 '리만 기하학을 관측 가능한 물리로 바꾸는 일'을 시도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낙하 사고를 예로 드는 대목도 남긴다. 절벽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졌다면 죽음의 원인은 중력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선의 곡률을 유지하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이다.

반전 — 교과서는 합의의 기록이 아니라 청구서였다

여기서 논문은 통념 하나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교과서는 보통 '그 시대의 표준 지식'을 담은 그릇으로 여겨진다. 토머스 쿤의 도식에서도 교과서는 논쟁이 끝난 뒤에 등장하는 정상과학의 산물이다. 레셀은 르네상스기의 책들이 그 반대 사례라고 주장한다. 이 책들은 확립된 지식을 낭독하는 대신, 저자 자신의 연구 프로그램과 이론의 기초에 대한 비판을 처음 페이지부터 배치한다. 새로운 대상과 방법을 도입하고, 독자를 기초 개념에서 자기 연구의 최전선까지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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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솔레비 회의 — 벤자민 쿠프리 촬영,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그 결과는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여러 개의 이론이다. 논문이 인용하는 데이비드 카이저의 선행 연구는 이 시기 교과서들이 중력에 대한 기하학적 이해에서 역학적 이해로 옮겨가는 전환을 보여준다고 결론 내린다. 레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간다. 카이저가 1942년 베르크만의 책 한 권을 집중 분석한 데 비해, 훨씬 많은 책을 나란히 놓고 보면 전환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동시적 분화'였다는 것이다. 같은 해에 나온 두 교과서가 서로 다른 이론을 가르치고 있었다면, 그 시대는 합의의 시대가 아니라 협상의 시대였다.

교과서가 시장에 쏟아진 배경도 짚는다. 카이저가 '교과서의 새 시대'라고 부른 1950년대의 출판 팽창, 전후 원자력 시대에 과학 출판을 수익 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출판사들, 늘어난 물리학과 학생 수가 겹쳤다. 연구소의 수장들에게 교과서는 학생을 모으고 자기 의제를 퍼뜨리는 홍보물이기도 했다. 논문은 이를 노골적으로 '광고'라는 표현까지 써서 서술한다.

반론 — 그럼 교과서가 없는 연구소는 어떻게 설명할까

가장 자연스러운 반론은 '모두가 교과서를 썼다'는 명제의 반례를 찾는 것이다. 논문은 스스로 네 곳을 꼽는다. 브뤼셀의 드베베르와 제에니오, 스톡홀름의 오스카 클라인, 하이파 테크니온의 네이선 로젠, 퍼듀의 벨린판테다. 이들은 영향력 있는 연구 계보를 남겼지만 책은 내지 않았다. 논문은 이 예외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독립적이고 영향력 있는 연구 노선이 반드시 교과서를 통해 자신을 진열하지는 않는다는 증거로 배치한다.

로젠의 경우는 미묘하다. 그는 책을 쓰지 않았지만 제자 모셰 카멜리가 1977년 『군론과 상대성이론』을 펴냈고, 아셰르 페레스는 1969년 테크니온 세미나를 묶어 1971년 편저를 냈다. 학파의 재생산이 반드시 수장의 손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반론은 쿤 쪽에서 온다. 르네상스기 책들이 기초를 다시 묻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상대성이론이라는 '공통 핵심' 위에 서 있다. 논문은 이 긴장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 절에서 미해결 질문으로 남긴다.

포크를 둘러싼 논쟁은 학파 간 충돌의 밀도를 잘 보여준다. 1965년판 보른의 교과서 서문은 포크의 책을 추천하면서도 전제를 단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정확히 서술했고 고급 장들에는 통찰이 많지만,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에 대한 처리는 동등원리를 근사로 격하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보른의 표현대로 '시대착오적이고 또 틀렸다'고까지 쓴다. 교과서가 중립적 교재가 아니라 논쟁의 당사자였다는 사실이 이 한 문장에 압축되어 있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레셀은 이 글의 성격을 분명히 밝힌다. 각 교과서의 서사에 대한 설명은 의도적으로 짧다. 각 책의 내용과 당시 연구 프로그램이 얼마나 달랐는지를 감지할 만큼만 제시하고, 권별 상세 연구는 의식적으로 남겨 둔다. 이 논문의 두 번째 목적이 바로 역사가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전 교과서 목록도 '확실히 불완전한' 목록이라고 스스로 규정한다.

검증되지 않은 채 남은 질문도 있다. 양자역학 교과서가 전후 대학 등록금과 강의 규모의 변화에 따라 실용적 문제풀이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카이저의 관찰이, 일반상대성이론 교과서에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는지는 '탐구되어야 할 질문'으로 남는다. 논문은 디랙의 1975년 책이 초심자 친화적으로 바뀌었고 해밀턴 역학적 재구성의 흔적이 없다는 정도만 짚는다. 그리고 분야가 주류로 정착한 뒤 교과서가 다시 균질해졌다는 관찰 역시 상세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자료의 성격에도 한계가 있다. 분석의 중심은 독일어·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로 나온 책들이고, 저자가 직접 밝히듯 판본 조사는 '확인할 수 있는 범위까지'다. 따라서 이 논문은 르네상스 전체를 교과서만으로 설명하겠다는 주장이 아니라, 교과서라는 장르가 그 시대를 읽는 유효한 창이라는 제안으로 읽어야 한다.

독자에게 — 당신이 배운 그 책은 누구의 주장이었나

이 논문을 읽고 나면 서재의 물리 교과서들이 다르게 보인다. 같은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다루면서도 어떤 책은 기하학을, 어떤 책은 좌표계를, 어떤 책은 관측량을 전면에 놓는다. 그 선택은 중립적 편집이 아니라 저자의 연구 이력과 소속 학파의 흔적이다. 학생은 그 책을 통해 이론의 내용뿐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 질문인가'까지 함께 배운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과서는 어떤가. 르네상스가 끝나고 분야가 주류가 되면서 책들은 다시 균질해졌다고 논문은 관찰한다. 표준적인 내용, 표준적인 순서, 표준적인 연습문제. 그것이 정상과학의 성숙인지, 아니면 논쟁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관성인지는 이 논문도 답하지 않는다. 혹시 당신이 대학에서 상대성이론을 배운 그 책도, 누군가의 오래된 청구서였을지 모른다.

참고 자료

  • Bernadette Lessel, "On the Utility of Textbooks in Understanding the Renaissance of General Relativity", arXiv:2610.13562 [physics.hist-ph], 2026. https://arxiv.org/abs/2610.13562
  • PDF: https://arxiv.org/pdf/2610.13562v1
  • 이미지 1: Ferdinand Schmutzer, 1921, 퍼블릭 도메인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instein_1921_by_F_Schmutzer_-_restoration.jpg
  • 이미지 2: Benjamin Couprie, 1927, 퍼블릭 도메인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olvay_conference_192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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