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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라나가 파인만을 예견했다는 통설, 1938년 노트를 다시 읽으면

빗방울 2026.11.06 15:38 13분 읽기 조회 23 · 추천 2

1938년 1월 말에서 2월 초, 에토레 마요라나는 나폴리 대학에서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강연 원고 첫머리에 양자역학의 ‘상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개념이 고전역학의 어느 부분과 대응하는지를 적어 내려갔다. 몇 달 뒤인 1938년 3월 22일 화요일, 그는 강의실에서 슈뢰딩거 방정식을 설명했다. 이틀 뒤인 3월 24일 목요일, 그는 사라졌다. 그에 대해 마지막으로 확실한 기록은 3월 26일 카렐리에게 보낸 편지다. 이탈리아 물리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실종이다. 문제는 그가 남긴 강연 노트 한 편이 2000년대 들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읽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마요라나는 파인만보다 10년 앞서 파인만의 경로적분을 예견했다”는 주장이었다.

1938년 나폴리 강연 노트라는 유물

마요라나는 1906년 8월 5일 카타니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로마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하다 에밀리오 세그레와의 대화 끝에 물리학으로 옮겼고, 페르미는 새로 들어온 학생의 수학적 능력을 곧바로 알아봤다. 1929년 「방사성 원자핵의 양자역학」으로 최고 성적과 명예를 받고 졸업한 뒤 페르미의 로마 연구소에 합류했다. 1933년에는 라이프치히의 하이젠베르크 밑에서, 이어 코펜하겐의 보어 밑에서 몇 달을 보냈다.

이 시기 그의 습관은 유명하다. 1932년 초, 중성자가 발견되기 전후로 그는 양성자와 중성자만으로 이루어진 가벼운 원자핵 이론을 혼자 만들어냈지만 “아직 불완전하다”며 발표를 거부했다. 페르미가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같은 해 하이젠베르크가 유사한 착상의 논문을 냈고, 마요라나는 1933년에야 교환력에 관한 자신의 결과를 출판하면서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을 스스로 교정하는 내용을 덧붙였다. 1937년 팔레르모 자리 경쟁을 앞두고 실적이 필요해지자, 그는 1932~33년에 이미 완성해 두었던 「전자와 양전자의 대칭 이론」을 뒤늦게 세상에 내놓는다. 자기 자신이 반입자인 입자, 즉 마요라나 페르미온의 개념이 여기서 나왔다.

“초기 조건이 다른 해들의 집합”이라는 문장

사라지기 직전에 쓰인 나폴리 강연 준비 노트의 문제 문장은 이렇다. 하이젠베르크 이론에서 양자 상태는 고전 방정식의 특별히 선택된 해 하나가 아니라, “초기 조건과 심지어 에너지까지 서로 다른 해들의 집합”에 해당한다. 양자 상태에 대해 정확히 정해진 에너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태에 속한 무한히 많은 고전 궤적들에 대한 일종의 평균”이며, 양자 상태는 “관측이 닿을 수 있는, 서로 조금씩 다른 고전 운동들의 최소 통계 집합”이다. 그리고 이 최소 집합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더 쪼갤 수 없다.

이 문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마요라나가 여기서 고전역학을 버리지도, 그대로 쓰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고전역학이 원자 안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 보어-좀머펠트의 옛 양자론을 “임시변통의 혼합물”로 취급한다. 궤도를 양자화 조건에 맞춰 골라내는 대신, 하이젠베르크의 방식은 궤도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개념에 오히려 더 가깝다”고 그는 본다. 여기서 마요라나의 관심은 새 이론의 선구자 노릇이 아니라, 새 이론이 옛 이론과 어디서 끊어지는지를 정확히 표시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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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레 마요라나(1906~1938 추정) — 저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파인만 1948년과 나란히 놓기, 그리고 조화진동자 하나

2006년 이 노트를 편집·번역·해설한 살바토레 에스포지토는 이 대목에서 파인만의 그림자를 읽었다. 서로 다른 초기 조건을 가진 해들이라는 표현은 파인만 언어로는 서로 다른 적분 경로에 해당하고, 따라서 마요라나의 노트에는 경로적분의 물리적 내용이 이미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에스포지토 자신도 “경로적분 접근의 수학적 형식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양자론을 해석하는 새 방식의 핵심 물리적 항목들이 훨씬 앞서 실현되었다”고 썼다. 이 해석은 이후 과학사 연구에서 상당히 널리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그 ‘핵심 항목’이 실제로 같은 것인가다.

경로적분의 정의는 이렇다. 출발점과 도착점, 두 시각을 고정한 뒤, 그 사이를 잇는 모든 가능한 경로를 합산하고 각 경로에 고전 작용량의 위상 인자를 곱한다. 파인만의 적분에서 경로들은 어느 하나의 상태에 배타적으로 속하지 않는다. 하나의 전이 진폭을 계산하려면 모든 경로가 동원된다. 여기서 논문의 반론이 시작된다.

저자인 안드레아 올도프레디가 파고든 것은 마요라나가 그 문장 몇 줄 뒤에 직접 든 예제다. 진동수 ν로 진동하는 조화진동자는 고전적으로는 임의의 진폭과 위상으로 진동할 수 있고 에너지는 진폭의 제곱에 비례한다. 양자역학에서는 에너지가 1/2hν, 3/2hν, 5/2hν처럼 띄엄띄엄 있다. 마요라나는 이렇게 적었다. 바닥 상태는 “대략 0과 hν 사이의 에너지를 가진 모든 고전 진동”에 대응하고, 첫 들뜬 상태는 hν와 2hν 사이, 그다음은 그 위의 구간에 대응한다.

이 문장은 경로적분과 정반대 방향의 작업이다. 마요라나는 고전 진동 전체의 공간을 서로 겹치지 않는 구간으로 잘라 각 양자 상태에 하나씩 배당한다. 고전 진동 하나를 손에 쥐여준다면 우리는 그것이 어느 양자 상태에 속하는지 즉시 알 수 있다. 반면 경로적분에서는 어떤 상태를 계산하든 모든 경로가 등장하며, 경로를 특정 상태에 배타적으로 귀속시키는 분할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마요라나의 문장은 파인만의 원형이 아니라,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에서 상태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압축된 해설이라는 것이다. 논문은 이 지점을 “기술적으로 부적절하다”는 표현으로 정리한다.

행렬 한 줄이 곧 하나의 상태

하이젠베르크의 1925년 논문은 관측 가능한 양만 쓰겠다고 선언하고, 전자의 위치를 전이 성분들의 표로 바꿔 놓았다. 보어의 대응원리를 빌리면 n번째 상태의 α번째 푸리에 성분은 n에서 n-α로 가는 양자 도약에 대응한다. 이 성분들을 모아 만든 무한 행렬에서 행은 도착 상태, 열은 출발 상태를 가리킨다. 비대각 성분은 전이 진폭이고, 대각 성분은 정지 상태다.

그러면 “n번째 상태”란 행렬의 한 행 전체, 즉 그 준위에서 시작하는 모든 가능한 전이의 종합이다. 고전극한에서 높은 차수의 전이는 그 궤도의 높은 조화성분에 대응하므로, 한 행은 한 궤도의 푸리에 성분 전체로 읽힌다. 마요라나가 에너지를 “무한히 많은 고전 궤적에 대한 평균”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 있다. 고전물리에서 에너지는 초기 위치와 운동량으로 정해지지만, 행렬역학에서 상태 n의 에너지는 행렬 성분들의 가중합으로 나오는 하나의 이산값이다. 평균은 계산 편의가 아니라, 궤도라는 개념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형식적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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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저작자 미상, CC BY-SA 3.0 de (Wikimedia Commons)

그래서 이 노트는 ‘예견’이 아니라 ‘번역’에 가깝다. 마요라나는 고전역학의 어느 항목이 양자역학의 어느 항목으로 옮겨가는지를, 불확정성 원리가 그 번역의 한계를 어디에 긋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불확정성 원리가 금지하는 것은 위치와 속도의 동시 정밀 측정이며, 그 결과 양자 상태는 위상공간에서 점이 될 수 없고 최소 부피의 세포가 된다. 마요라나는 자신의 강의록 21강에서 이 한계를 이렇게 못 박는다. 파동함수가 크게 불확정할 때, 즉 ΔxΔp가 h보다 훨씬 클 때만 고전역학과 관성 법칙을 정당하게 쓸 수 있다고.

ψ는 우리가 아는 것, 상태는 실제로 있는 것

논문의 두 번째 논점은 파동함수의 의미다. 에스포지토는 파동함수 역시 파인만적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고 보았지만, 올도프레디는 마요라나의 강의록이 정면으로 반박한다고 주장한다. 1938년 3월의 강의에서 마요라나는 슈뢰딩거의 해석, 즉 전자를 밀도가 -eψ̄ψ인 퍼진 전하로 보는 관점이 물리적으로 틀렸다고 설명한다. 파속은 시간이 지나면 퍼지고 반사면에서 둘로 쪼개질 수도 있지만, 밀리컨의 실험은 전자의 전하가 나눌 수 없는 단위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마요라나는 보른의 통계적 해석을 받아들인다. 전자는 점입자이고, ψ̄ψ는 전자가 어느 점에 있을 확률이다.

여기서 마요라나의 표현이 결정적이다. 파동함수는 “퍼진 진동이라는 객관적 고전적 의미를 갖지 않고, 이전 경험에서 추론할 수 있는 전자의 상태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요약하는 수학적 도구”일 뿐이다. 논문은 이로부터 두 가지를 구분한다. 파동함수는 인식론적이다. 반면 양자 상태 또는 전자의 상태는 존재론적이며,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물리적 사태를 가리킨다. ψ의 제곱이 “어느 점 근처의 부피 안에 실제로 있다”는 확률을 준다는 것이다. 두 개념이 같지 않다는 이 구분이, 파인만 예견설을 지탱하던 해석적 여지를 무너뜨린다.

사라진 사람이 사회과학에 남긴 쪽지

논문에서 가장 낯선 대목은 마요라나가 1942년, 사라진 뒤에야 「물리학과 사회과학에서 통계 법칙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글을 다루는 부분이다. 그는 양자역학이 가져온 두 가지 혁명을 꼽는다. 하나는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결정론의 포기다. 그가 특히 무겁게 본 것은 비결정성이 아니라 객관성의 결여다. 원자계에 행해지는 어떤 실험도 유한한 교란을 남기고, 그 교란은 원리상 제거할 수 없다. 측정 결과는 교란되기 전의 알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실험 과정에서 계가 놓인 상태에 관한 것처럼 보인다. 마요라나는 이 점이 “단순한 비결정성보다 우리의 일상적 직관에서 더 멀다”고 쓴다.

그리고 여기서 사회과학으로 건너간다. 고전 통계역학의 확률은 변수를 다 알지 못해서 생기는 실용적 포기가 낳은 불확실성이다. 반면 양자역학의 통계 법칙은 “실재적인 비결정성”을 가리킨다. 마요라나는 자연에는 사건의 치명적 연쇄를 표현하는 법칙이 없으며, 원자계를 지배하는 최종 법칙조차 통계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 사건의 근원에도 단순하고 보이지 않으며 예측 불가능한 생명적 사실이 있을 수 있다. 사회과학의 통계 법칙은 무지의 보정이 아니라, 현실이 실제로 그렇다는 증거가 된다. 물리학과 사회과학을 하나의 확률적 자연관으로 묶어 보려는 시도였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이 글은 새로운 문서를 발굴한 논문이 아니다. 이미 출판된 강연 준비 노트와 강의록, 유고를 다시 읽고 기존 해석의 논증 구조를 검토하는 텍스트 비평이다. 따라서 반론의 힘은 인용문을 얼마나 정확히, 얼마나 넓은 문맥에서 읽었는지에 달려 있다. 저자 자신도 마요라나의 존재론에 관한 해석, 즉 그가 양자적 대상에 대해 준고전적 개념을 가졌을 가능성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며 완전한 역사적 엄밀성으로 입증되어야 할 과제”라고 남겨 둔다. 양자 상태를 존재론적으로, 파동함수를 인식론적으로 보는 구분도 마요라나의 문장에서 추론한 결론이지 그가 직접 쓴 교리가 아니다.

또 하나의 한계는 ‘예견하지 않았다’는 결론의 성격이다. 이것은 마요라나가 경로적분을 몰랐다는 증명이 아니라, 그가 쓴 문장이 경로적분의 분할 구조와 맞지 않는다는 논증이다. 그리고 저자는 결론에서 균형을 잡는다. 이 글은 마요라나의 천재성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남이 10년 뒤에 도달할 결론을 미리 알아맞힌 사람이 아니라, 당대의 이론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장 짧게 설명한 사람으로 그를 다시 놓는 일이다. 덧붙여 이 노트가 실제로 나폴리에서 강연되었는지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논문은 “아마도 전달되었을” 준비 원고라고 조심스럽게 쓴다.

선구자 서사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방식이 ‘몇 년 앞서 예견했다’는 주장뿐이라면, 그 주장이 틀리는 순간 그 사람의 위대함도 함께 흔들린다. 마요라나의 경우는 반대다. 그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이 고전 궤도를 어떻게 해체하는지를 몇 문단으로 정리했고, 파동함수가 우리 지식의 한계라는 점을 명확히 적었다. 그것이 예견이 아니어도 충분히 어렵다. 1938년 봄, 그는 나폴리에서 슈뢰딩거 방정식을 강의한 뒤 사라졌다. 남은 것은 노트와,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신뢰하는가. 위대한 인물의 문장에서 후대 이론의 그림자를 먼저 찾는 읽기, 아니면 그 문장이 쓰인 당시의 교과서 안에서만 읽는 읽기. 이 논문은 후자를 택했고, 그래서 마요라나를 조금 덜 신비롭게, 조금 더 정확하게 만든다.

참고 자료

  • Andrea Oldofredi, “Between Heisenberg and Feynman: Ettore Majorana’s Reflections on the Meaning of Quantum Theory”, arXiv:2611.07143v1 [physics.hist-ph], 2026-11-04. https://arxiv.org/abs/2611.07143v1
  • 논문이 인용한 원자료: S. Esposito (2006)의 마요라나 나폴리 강연 노트 편집본, G. F. Bassani (ed.), Ettore Majorana Scientific Papers (2006), 마요라나 강의록(Majorana 2006) 20·21강, 유고 「물리학과 사회과학에서 통계 법칙의 가치」(Scientia, 1942).
  • 이미지: 에토레 마요라나 사진 — 저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사진 — 저작자 미상, CC BY-SA 3.0 de. 모두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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