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11월 말, 서울 올림픽공원의 몽촌해자처럼 얕고 잔잔한 연못을 보면 표면부터 하얗게 얼어붙는데, 물속은 여전히 유리처럼 맑고 어른 발목 높이까지 얼음이 내려가 있다. 표면 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져도 1미터 아래 물은 아직 0도 언저리를 맴돈다.
왜 물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계속 무거워져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 방향을 바꾸는가. 그리고 이 순간이 겨울 연못의 물고기와 우리 동네 저수지의 물 공급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라가 본다.
일상에서 겪는 장면: 물 밑은 아직 액체다
겨울에 호수를 보면 이상한 순서로 얼어 있다. 가장 차가운 공기가 닿는 표면이 먼저 얼고, 얼음 두께는 아래로 자란다. 만약 물이 보통 액체처럼 차가울수록 무거워지기만 했다면 순서는 반대가 됐을 것이다. 차가운 물이 바닥으로 내려앉아 바닥부터 얼어붙고, 맨 위는 나중에 얼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것이 '물의 밀도 이상(anomaly)'이다. 액체는 대부분 온도가 내려갈수록 밀도가 커지고 부피가 줄어든다. 물은 0도에서 4도 사이에서만 반대로 움직인다.
통념: 물은 얼면 부피가 늘어난다
흔히 '물은 얼음이 되면 부피가 커진다'고 배운다. 맞는 말이다. 얼음 1그램은 물 1그램보다 부피가 약 9퍼센트 크다. 물 1리터(약 1킬로그램)가 얼면 부피가 약 1.09리터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얼음이 물에 뜨고, 얼음 트레이에 물을 가득 채우면 얼음이 뚜껑을 밀어 올린다.
그러나 이 설명은 액체 상태의 물 안에서 왜 4도라는 특별한 온도가 생기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부피가 커지는 것은 얼음의 성질이고, 4도는 그보다 먼저 액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왜 부족한가: 액체 안에서도 밀도가 꺾인다
숫자로 확인하자. 대기압에서 0도의 물 1세제곱센티미터는 약 0.99984그램이고, 4도에서는 약 0.99997그램으로 최대가 된다. 20도에서는 0.99821그램, 100도에서는 0.9584그램으로 줄어든다. 0도에서 4도로 오르는 동안은 밀도가 오르지만, 4도를 넘으면 다시 줄어든다. 온도와 밀도의 그래프는 4도에서 봉우리를 만드는 산이고, 양쪽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물은 차가울수록 무겁다'는 문장은 절반만 맞다. 4도보다 위에서는 맞고, 0도에서 4도 사이에서는 틀린다. 이 폭이 겨우 4도이지만, 겨울 연못의 물이 바닥까지 얼지 않게 하는 결정적인 구간이다.
단계별 기구: 수소 결합과 육각 격자
물 분자(H₂O)는 산소 한 개에 수소 두 개가 붙은 작은 분자다. 산소 쪽은 전자를 많이 끌어당겨 부분적으로 음전하를 띠고, 수소 쪽은 부분적으로 양전하를 띤다. 그래서 한 분자의 수소가 이웃 분자의 산소에 끌리는 '수소 결합'이 생긴다. 액체 물에서 이 결합은 끊겼다 다시 붙기를 초당 수십억 번 반복한다.
온도가 높을수록 분자는 활발하게 움직여 결합이 자주 끊긴다. 느슨한 상태라 분자 사이 간격이 벌어지고 부피가 커진다. 온도를 낮추면 운동이 줄어 결합이 오래 유지되고 분자들이 서로 붙는다. 이것이 일반적인 냉각의 방향이다. 그런데 4도 아래로 더 내려가면 이야기가 뒤집힌다.
4도 아래에서 다시 부피가 커지는 이유
차가워질수록 물 분자는 육각형 고리 모양의 구조를 흉내 내며 부분적으로 정렬한다. 이 배열은 실제 얼음 결정 격자를 닮았는데, 결정 격자는 분자 사이 간격이 액체보다 넓다. 이 '준-결정' 구조가 점점 많이 생기면 전체 부피는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다. 분자를 끌어당기는 힘은 세지는데, 배열의 틀이 간격이 넓은 쪽으로 바뀌는 것이다.
0도에서 완전히 얼면 이 틀이 완성된다. 물 분자들이 수소 결합으로 육각 고리를 연결해 빈틈이 있는 결정을 만든다. 그래서 얼음은 같은 질량의 물보다 부피가 약 9퍼센트 크고, 밀도는 물의 약 0.917배다.
얼음(ice Ih) 결정의 육각 격자와 물 분자 구조 — Psiĥedelisto, Dbuckingham42,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결합이 만드는 결과: 위부터 언다
겨울 저수지에서 물이 10도쯤에서 식는다고 하자. 밀도가 커진 물은 아래로 내려가고 따뜻한 물이 위로 올라온다. 이 순환이 4도에서 멈춘다. 4도가 가장 무거우므로 바닥이 4도로 채워지고, 이보다 차가운 물은 오히려 바닥 위에 뜬다. 대류가 끝나고 열은 전도와 복사로만 빠져나가면서 표면만 0도로 내려가 얼기 시작한다.
만약 이 성질이 없었다면 결과는 훨씬 나빴을 것이다. 바닥까지 얼어붙은 호수는 물고기와 수생 곤충이 살아남을 공간이 없어진다. 얼음은 열을 잘 통과시키지 않으므로, 일단 표면에 20~30센티미터의 얼음 층이 생기면 아래 물은 4도쯤에서 안정을 유지한다. 얼음 그 자체가 단열 재료가 되고, 무거운 물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설명이 틀리는 경우
첫째, 소금물이나 당분이 든 물은 4도 규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염분이 많을수록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담수에서 본 단순한 그림이 복잡해진다. 둘째, 깊고 바람이 강한 해양에서는 표면 냉각이 밀도 차이를 이겨내며 물이 섞여 내려가는 '대류 혼합'이 실제로 일어난다. 4도는 담수 저수지에서 잘 보이는 규칙이다.
셋째, 압력이 아주 높은 심해에서는 물의 밀도 최대가 사라지거나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니까 '물은 항상 4도에서 가장 무겁다'는 문장은 담수, 상압, 일반적인 온도 범위 안에서 참이다.
얼음 Ih 결정 구조의 대칭면과 육각 채널 — ChristiaanPR, CC0 (Wikimedia Commons)
생활에 적용되는 판단
첫째, 겨울 저수지나 양어장에서는 순환식 급수 설비가 얼지 않게 하려면 표면이 아니라 물속 깊은 물을 쓰는 편이 낫다. 바닥 물은 4도 근처에서 어는 위험이 작다. 둘째, 물을 넣은 페트병을 냉동실에 넣을 때 빈 공간을 남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 때 부피가 9퍼센트 늘어나기 때문이다. 셋째, 겨울철 물고기 어항의 히터를 낮춰도 수온이 급격히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성질 덕분이지만, 표면 결빙은 산소 교환을 막으므로 거품기나 에어레이터를 꺼두면 안 된다.
이 '4도의 무거움'은 지구 물 순환에도 영향을 끼친다. 차갑고 소금기 많은 바닷물이 가라앉아 심해 순환을 만드는 과정에 물의 밀도 변화가 중심 역할을 한다. 수온이 몇 도만 달라져도 대류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독자에게
여러분이 사는 동네 저수지나 집 앞 냇가는 겨울에 어느 깊이부터 얼어붙는가. 만약 물의 4도 성질이 없었다면 우리가 겨울에 먹는 붕어탕이나 민물고기 산업은 어떻게 되었을지, 한번 상상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참고 자료
· IAPWS (국제물성학회 표준): 일반수 물리적 성질 데이터 — 밀도, 포화증기압. https://www.iapws.org
· R. Feistel, 'Liquid Water: The Most Anomalous Liquid', Physics Today / Encyclopaedia of Water. https://doi.org/10.1063/PT.3.2838
· J. D. Bernal & R. H. Fowler, 'A theory of water and ionic solution,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hydrogen and hydroxyl ions', J. Chem. Phys. 1, 515 (1933).
· Wikimedia Commons: Ice Ih Crystal Lattice (CC BY-SA 4.0), Ice Ih Space Group (CC0).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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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6 22:41
글 읽다가 문득 궁금해졌는데요. 그럼 4도 물이 바닥에 가장 먼저 깔리는 셈이니, 한강이나 저수지 바닥이 늘 4도쯤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그런데 겨울철에 잠수하거나 낚시하는 분들이 발밑이 확 차갑다고 하던데, 그럼 바닥 온도는 계절에 따라 얼마나 흔들리는 건가요? 그리고 바람 잦은 곳에서는 이 4도 층이 흐트러져서 더 아래까지 얼기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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