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말, 뉴욕시 소상공인 연합(Small Business United)과 메인스트리트 얼라이언스(Main Street Alliance), 그리고 액션랩(Action Lab)이 한 보고서를 냈다. 내용은 단순하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뉴욕시 전체의 빈 점포 수는 약 30% 늘었는데, 같은 기간 상가 임대료는 고작 6.5% 떨어졌다. 보고서 저자들은 이 숫자를 두고 “적어도 일부 건물주는 가격을 낮추느니 몇 달이고 점포를 비워 두는 쪽을 택할 의사가 있다”고 읽었다. 뉴욕에서 지금 벌어지는 논쟁은 ‘상권이 죽었는가’가 아니라 ‘비어 있는데도 왜 안 내리는가’다.
15,700칸, 11%, 그리고 5%라는 기준선
이 보고서는 뉴욕시 감사관실(Comptroller’s Office)이 6월에 발표한 수치 위에 서 있다. 시 전체에 약 1만 5,700개의 빈 점포가 있고, 상업 공실률은 11%다. 보고서는 “건강한 소매 상권(healthy retail corridors)”이라면 점포의 5%를 넘게 비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기준을 제시한다. 즉 11%는 기준선의 두 배가 넘는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비어 있는 기간이다. 감사관실 조사에 따르면 뉴욕의 여러 동네에서 빈 점포의 최대 90%가 최소 9개월째 그 상태였다. 한두 달 명의 이전을 기다리는 공백이 아니라, 1년 가까이 불이 꺼진 채 방치된 칸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액션랩의 프로그램·정책 선임 디렉터 아이린 퉁(Irene Tung)은 “뉴욕시의 많은 지역에서 높은 임대료와 높은 공실이 나란히 간다”고 말했다.
뉴욕 퀸스 리지우드의 매디슨스트리트와 프레시폰드로드 교차로. 1층 점포가 늘어선 이런 블록이 뉴욕 상업 공실 논쟁의 현장이다 — Dillan Payne,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에서 공실도 가장 많다
보고서가 강조하는 상관관계는 통념과 반대 방향이다. 보통은 임대료가 오르면 공실이 줄고, 임대료가 내리면 공실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비싼 동네가 더 비어 있다.
예로 든 곳이 뉴욕주 상원 28지구다. 어퍼이스트사이드, 미드타운·미드타운이스트, 그레이머시, 머리힐을 아우르는 이 지역의 점포 공실률은 약 18%다. 이곳 상업 임대료는 제곱피트당 평균 약 20달러로, 시 전체 평균 8.55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임대료가 두 배인 곳의 공실률도 두 배 가까이 높다는 뜻이다. 이 법안을 공동 발의한 에밀리 갤러거(Emily Gallagher) 주 하원의원은 “높은 임대료와 높은 공실률 사이의 정(+)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며 “시장이 공실률에 반응한다는 서사가 흔하지만, 실제로는 건물주들이 프리미엄을 낼 임차인을 계속 기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대료를 규제한다는 발상 — 주택 심의위원회의 상업판
보고서가 제안하는 것은 상업 임대료의 규제다. 구체적으로는 주 의회에 발의된 ‘소상공인 임대료 안정화법(Small Business Rent Stabilization Act)’의 통과다. 이 법은 상업 공간의 연간 임대료 조정을 투표로 정하는 ‘상업 임대료 지침 위원회(Commercial Rent Guidelines Board)’를 만든다. 뉴욕시의 주택 임대료 안정 아파트의 인상률을 매년 결정하는 ‘임대료 지침 위원회(Rent Guidelines Board)’의 상업판인 셈이다.
법안에는 임차인의 계약 갱신권도 들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10년 임대차를 기본값으로 한다. 발의자 중 한 명인 줄리아 살라자르(Julia Salazar) 주 상원의원은 “임차인이 계약을 갱신하기 쉬워지면 애초에 빈 점포가 덜 생기고, 소상공인과 건물주 모두에게 예측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갤러거 의원은 “목표는 임대료 동결이 아니라, 사업자와 노동자가 미래를 계산할 수 있는 안정된 상업 경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세입자는 왜 계약서 앞에서 겁을 먹는가 — 보증금·권리금과 다른 미국식 구조
한국 독자에게 이 논쟁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계약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가 임대차는 보증금을 크게 걸고, 점포의 영업 가치를 권리금으로 사고파는 관행이 뿌리 깊다. 반면 미국의 상업 임대차는 보통 임대 기간·보증금·월세·각종 비용 부담을 계약서에 촘촘히 적고, 갱신 여부는 당사자 협상에 맡긴다.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법적 청구권이 있는 구조도 아니다. 계약이 끝나면 매장에 들인 인테리어와 단골, 영업권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임차인의 말이 그래서 무겁다. 소상공인 연합 소속이자 롱아일랜드시티와 첼시에 타투 스튜디오 겸 아트 갤러리 얀 스튜디오(Yant Studios)를 운영하는 킷 키스(Kit Keys)는 “건물주와 문제가 생기는 걸 모두가 두려워한다. 보호 장치가 없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나는 어떤 새 계약서에도 서명하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임대료 인상 자체보다, 인상 이후에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 상업 임대차의 세부 형태(예: 세금·보험·유지비를 임차인이 떠안는 트리플 넷 리스(triple net lease), 소유권과 임차권을 나누는 리스홀드(leasehold)·프리홀드(freehold) 구분 등)가 이 법안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는 이 기사 본문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뉴욕시의 상업 임대차가 임차인 보호 장치가 거의 없는 협상 기반 구조이고, 그 구조가 공실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진단까지다.
건물주 쪽 반론 — “모든 블록이 다르다”
반대편 논리도 만만치 않다.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소규모 복합 건물을 소유하고 뉴욕 소규모 건물주 협회(Small Property Owners of New York, SPONY) 이사를 맡고 있는 잰 리(Jan Lee)는 시티 리밋츠에 “정부가 사적 계약에 이렇게 깊이 개입하고, ‘건물주 탓’이라는 쉬운 길을 택하기 전에 먼저 왜 그런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법안이 “모든 동네, 모든 점포, 모든 임대인-임차인 관계가 똑같은 문제를 겪는 것처럼 다루는” 일괄식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든 예는 구체적이다. 캐널스트리트에서는 정당한 오프라인 매장들이 문 앞에서 팔리는 위조품과 경쟁한다. 다른 곳의 공실은 오래 이어진 노숙자 텐트촌, 치안 문제, 수년간의 공사, 나쁜 대중교통 접근성, 비만 오면 침수되는 거리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SPONY 이사장 앤 코르착(Ann Korchak)은 임대료 인상 폭을 제한하면 운영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건물을 유지 관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하며 “상업 임대료 통제는 소규모 건물주와 그 주거 임차인에게 해가 된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소규모 건물주와 세입 소상공인 모두에 대한 세제 지원을 내놨다.
반전 — 공실은 ‘몰락’이 아니라 ‘가격의 함수’다
이 사안의 핵심은 공실이 상권 쇠퇴의 증거가 아니라 가격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점이다. 임대료가 6.5%밖에 내리지 않았는데 공실이 30% 늘었다면, 시장은 균형을 찾는 대신 멈춰 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빈 칸을 유지하는 비용(세금, 관리비, 대출 이자)이 임대료를 낮춰 장기 계약을 맺는 손실보다 작다고 계산하고 있을 수 있다. 보고서는 이 계산을 ‘정책 선택의 결과’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계산이 모든 건물주에게 같지는 않다. 소규모 건물주는 대출 상환과 재산세 때문에 빈 칸을 오래 버티기 어렵고, 대형 건물주나 부동산 펀드는 버틸 수 있다. 같은 거리에서도 건물 소유 구조에 따라 공실을 견디는 능력이 갈린다. 이 기사가 ‘건물주’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다루는 지점은, 그 내부의 격차를 가릴 수 없다는 한계이기도 하다.
한국과 겹치는 곳 — 서울 강남역, 그리고 ‘안 내리는 임대료’
한국에도 같은 구조가 있다. 서울 강남역 일대는 임대료가 서울 최상위권인데도 공실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대표적 사례다. 허가가 잘 나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일수록 임대인은 값을 내릴 이유가 없고, 임차인은 매출이 나도 고정비를 못 버티는 구조다. 뉴욕의 ‘비싼 동네일수록 더 비어 있다’는 관찰과 닮았다.
다른 점은 제도다. 한국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으로 계약 갱신 요구권과 임대료 인상 상한(현행 5% 수준)을 법으로 정해 두었다. 뉴욕은 주택에는 임대료 규제가 있지만 상업 공간에는 없다. 뉴욕의 논쟁은 한국이 이미 가진 것을 이제 만들려는 과정이고, 한국의 논쟁은 그 상한을 어떻게 조정할지의 문제다. 보증금과 권리금이라는 한국의 장치가 임차인에게 실제로 얼마나 보호를 주는지는 별개 문제지만, 최소한 ‘갱신을 요구할 권리’가 법에 있다는 점에서 출발선이 다르다.
이 기사가 서 있는 자리
이 보도는 소상공인 연합과 액션랩이 함께 낸 보고서를 출발점으로 삼고, 그 보고서를 지지하는 주 의원들의 발언을 중심에 놓았다. 반대편으로는 SPONY 관계자들의 성명이 한 섹션 분량 들어가 있다. 즉 임차인·소상공인 쪽 이해관계가 기사의 골격이고, 건물주 쪽은 반론으로 배치된 구조다. 감사관실의 1만 5,700칸·11% 같은 수치는 공적 통계이지만, ‘5%가 건강한 기준’이라거나 ‘빈 칸 유지가 의도적 선택’이라는 해석은 보고서 저자들의 판단이다. 법안 자체는 아직 통과되지 않은 발의 단계이고, 실제로 규제가 시행되면 임대료와 공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이 기사로 알 수 없다.
독자에게 — 비어 있는 칸의 값을 누가 치르는가
뉴욕의 논쟁은 결국 ‘비어 있는 점포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모인다. 건물주가 버티는 동안 그 비용은 동네가 나눠 진다. 발길이 줄고, 옆 가게 매출이 깎이고, 일자리가 사라진다. 보고서는 소상공인이 시 전체 일자리의 약 4분의 1, 약 100만 개를 차지한다고 적었다. 규제가 답인지, 세제 지원이 답인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다만 ‘시장이 알아서 조정할 것’이라는 기대는 이 숫자 앞에서 설 자리가 좁다. 여러분 동네에 1년째 불 꺼진 가게가 있다면, 그 임대료는 지금 누구의 계산서에 올라 있을까.
참고 자료
- City Limits, “City Storefronts Stay Empty, But Rent Won’t Come Down. Is Commercial Rent Control the Answer?”, 2026년 7월 29일 — citylimits.org
- 뉴욕시 감사관실 상업 공실 조사(2026년 6월, 기사에서 인용)
- Small Business Rent Stabilization Act(뉴욕주 의회 발의 법안, 살라자르·갤러거 발의)
- 이미지: “Madison Street and Fresh Pond Road in Ridgewood, Queens” — Dillan Payne,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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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7 07:33
임대료가 두 배인 동네 공실률도 두 배라니, 시장이 가격에 반응한다는 말이 좀 어색해지네요. 그런데 빈 칸을 몇 달 버티는 비용은 건물주마다 같을까요? 소규모 건물주도 대형 펀드처럼 버틸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계산이 아예 다르게 굴러갈까요? -
빗방울
2026.11.07 07:47
허허, 옛날에 장사하던 어른들이 "빈 가게는 주인이 안 급한 거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임대료를 두 배 받는 동네가 공실률만 18%인 걸 보면, 요즘은 오히려 값이 센 데서 더 많이 비어 있는 셈입니다. 다만 대출 물려서 버티기 힘든 소소한 건물주까지 한 바구니에 담는 건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 같으면 한 달 안에 문 연 가게가 줄줄이었는데, 지금은 일 년째 불이 꺼진 칸이 예사라는 게 세월 참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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