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 위에 상자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투명하고, 안에 1,000달러가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투명합니다.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규칙은 이렇습니다. ① 불투명한 B만 가져간다. ② A와 B 둘 다 가져간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B의 내용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누군가 미리 정해놓았습니다. 그 누군가를 '예측자'라고 부릅시다.
· 예측자가 '당신이 둘 다 가져갈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 B는 비어 있습니다.
· 예측자가 '당신이 B만 가져갈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 B에 100만 달러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측자는 거의 틀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압니다. 이제 선택하십시오.
두 개의 '명백한' 답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문제를 처음 듣는 사람도 십중팔구 답을 냅니다. 그런데 그 답이 둘로 갈립니다. 그리고 각자는 상대가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만든 사람은 캘리포니아 로런스리버모어 연구소의 물리학자 윌리엄 뉴컴입니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이 1969년 논문에서 분석했고, 1974년 3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마틴 가드너 '수학 게임' 코너에 소개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노직이 남긴 문장이 이 문제의 성격을 정확히 요약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완벽하게 명백하고 자명하다. 어려운 점은, 그 사람들이 거의 정확히 반으로 갈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수가 반대편 절반이 그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보수표. 두 원칙이 서로 다른 칸을 가리킵니다. (직접 작성)
1번 답: B만 가져간다
첫 번째 진영의 논리는 기대효용(expected utility)입니다.
예측자는 거의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이미 예측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B만 가져가면 100만 달러. 둘 다 가져가면 1,000달러.
즉 '내가 진짜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아닙니다. 예측자의 정확도가 충분히 높다면, B만 가져가는 세계와 둘 다 가져가는 세계가 이미 갈려 있고, 당신은 그중 하나에 서 있을 뿐입니다.
이 진영의 주장을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선택은 결과를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선택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그 사람됨이 결과를 결정했다.'
2번 답: 둘 다 가져간다
두 번째 진영의 논리는 전략적 지배(strategic dominance)입니다.
핵심은 시간 순서입니다. B의 내용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예측은 과거에 끝났습니다. 당신의 선택은 그 뒤에 일어납니다.
그러면 경우를 나눠 봅시다.
· B에 100만 달러가 들어 있다면 → 둘 다 가져가면 100만 1,000달러. B만 가져가면 100만 달러. 둘 다가 유리.
· B가 비어 있다면 → 둘 다 가져가면 1,000달러. B만 가져가면 0달러. 둘 다가 유리.
어느 경우든 둘 다 가져가는 쪽이 1,000달러 더 많습니다. 즉 지배 전략입니다. 합리적 선택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주는 쪽이어야 합니다.
이 진영의 주장을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이미 정해진 것을 바꿀 수 없다. 상자에 손을 뻗는 것은 인과적으로 아무것도 되돌리지 않는다.'
왜 이게 진짜 문제인가
여기서 멈추면 '재밌는 퀴즈'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50년 넘게 철학과 수학을 갈라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두 논리 모두 형식적으로 정당합니다. 1번은 기대값 최대화라는 원칙을 정확히 적용했고, 2번은 지배 원칙을 정확히 적용했습니다. 두 원칙은 평범한 상황에서는 항상 같은 답을 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만 충돌합니다.
즉 이건 '누가 계산을 틀렸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두 원칙 중 무엇이 근본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결정이론(decision theory)의 시험대로 쓰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갈리나
숫자가 있습니다. 2020년 전문 철학자 설문에서 둘 다 가져간다가 39.0퍼센트, B만 가져간다가 31.2퍼센트였습니다.
주목할 점은 1등이 39퍼센트라는 것입니다. 즉 '전문가 다수가 이렇게 본다'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60퍼센트는 1등 답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로 합의가 없는 문제는 철학에서도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노직 본인은 극단적 사례에서는 B만, 그 외의 경우에는 둘 다를 옹호했습니다. 즉 문제를 만든 분석가조차 조건에 따라 답을 바꿨습니다.
반전: 예측자는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가
이 문제의 진짜 열쇠는 '예측자가 왜 정확한가'에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해석 1 — 숨은 장치. 예측자는 항상 B에 100만 달러를 넣어두고, 당신이 A에 손을 뻗는 순간 숨겨진 문으로 그것을 빼냅니다. 이 경우 인과적 연결이 실제로 있습니다. B만 가져가는 게 명백히 합리적입니다. 논쟁이 없습니다.
해석 2 — 역인과(backward causation). 미래의 사건이 과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것도 논쟁이 사라집니다.
해석 3 — 반복 게임. 같은 문제를 여러 번 하면서 예측자가 당신의 이전 행동을 학습한다면? 이것도 명백히 B만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경우 '둘 다 가져가면 100만 달러를 잃는다'는 인과적 경로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표준 버전의 문제에는 그 경로가 없습니다. 예측자는 과거에 끝났고, 상자에 손을 뻗는 것은 아무것도 되돌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덜 명세되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데이비드 월퍼트와 그레고리 벤퍼드는 바로 이 점을 짚었습니다. 모든 세부가 명시되지 않으면 '직관적으로 명백한' 채우는 방식이 둘 이상 생기고, 그것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게임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걸려 있나
이 문제는 인과적 결정이론(causal decision theory)에 대한 반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인과적 결정이론은 '내 행동이 결과를 인과적으로 바꾸는가'를 기준으로 선택합니다.
그런데 뉴컴의 문제에서 인과적 결정이론은 둘 다 가져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게 손해라고 느낍니다. 카스파어 외스터헬트와 빈센트 코니처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인과적 결정이론이 스스로 돈을 잃게 만드는 사례가 여러 개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대편에는 증거적 결정이론(evidential decision theory)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이 선택을 한다는 사실이 어떤 세계에 속하는지를 알려주는가'를 봅니다. 이 관점에서 B만 가져가는 것은 '나는 100만 달러 세계에 속한다'는 증거입니다.
즉 뉴컴의 문제는 상자 이야기가 아니라, 합리성이 무엇을 근거로 삼아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행동의 결과인가, 행동의 의미인가.
반론: 이건 역설이 아니다
균형이 필요합니다. '역설'이라는 분류 자체가 논쟁적입니다. 월퍼트와 벤퍼드처럼, 이 문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게임을 하나로 뭉뚱그린 것이며, 각 게임에는 최적 전략이 명확히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 관점에서는 '역설'이 아니라 '모호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모호함을 인과·결정론·자유의지 같은 큰 개념으로 메우려 할 때 혼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두 게임의 최적 전략이 예측자의 무오류성, 인과성, 결정론,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도출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지적은 중요합니다. '철학적으로 깊은 문제'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정의가 덜 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시시해지는 건 아닙니다. 정의를 채우는 일 자체가 철학이니까요.
이 문제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1) 합리성은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합리적이다'를 한 가지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는 두 합리적 원칙이 서로를 배신합니다. 그리고 어느 쪽도 계산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2) '선택'의 경계가 흐릿하다. B만 가져가기가 정말 '선택'인가요? 예측자가 이미 정했다면, 당신은 고르는 것인가, 아니면 드러나는 것인가. 이 질문은 자유의지 논쟁의 축소판입니다.
3) 문제를 푸는 것보다 정의하는 것이 어렵다. 이 문제의 50년은 답을 못 찾은 시간이 아니라 질문을 정확히 쓰는 데 걸린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정이론이라는 분야가 자랐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두 상자 앞에 서 있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것 — 왜 그렇게 고르셨나요?
저는 이 문제에서 '내가 왜 그렇게 골랐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쪽이 '무엇을 골랐는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자 하나를 더 가져가는 것보다, 자기 원칙을 알고 있는 것이 오래 남는 자산이니까요.
댓글로 ① 또는 ②와 그 이유 한 줄을 남겨주세요. 답이 갈리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이 문제의 절반입니다.
참고 자료
- William Newcomb(로런스리버모어 연구소) 제안, Robert Nozick(1969) 분석, Martin Gardner 『Scientific American』 1974년 3월 소개
- 표준 설정 — 상자 A는 투명하고 1,000달러, 상자 B는 불투명. 예측자가 '둘 다'로 예측하면 B는 비고, 'B만'으로 예측하면 B에 100만 달러
- 2020년 전문 철학자 설문 — 둘 다 39.0퍼센트, B만 31.2퍼센트
- Nozick — 극단적(무오류) 사례에서는 B만, 그 외에는 둘 다를 옹호
- Wolpert & Benford — 세부 미명시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비협조 게임을 만든다는 분석
- Oesterheld & Conitzer — 인과적 결정이론의 자기 손실 사례와 시간적 더치북(diachronic Dutch book) 논변
- 본 글은 표준적인 문제 설정과 주요 논쟁을 정리한 것이며, 특정 진영의 답을 권하지 않습니다.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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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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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0 22:23
인정함ㅋㅋ
그냥 100만 달러 받고 꿀 빠는 게 정답인 듯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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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0 23:10
맞음ㅋㅋ
리스크 생각하면 그냥 B만 집는 게 제일 속 편할 듯요.
1,000달러 더 받으려다 100만 달러 날리면 진짜 잠 안 올 것 같음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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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00:05
② 둘 다 가져감. 이미 돈이 들어있든 말든 결정된 상태인데 1,000달러라도 더 챙기는 게 수학적으로 맞지 않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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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01:12
ㄹㅇㅋㅋ
이미 결정된 건 바꿀 수 없는데
안 가져가면 그냥 1,000달러 버리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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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01:35
글 읽다 보니까 뇌 정지 오네요ㅋㅋ
이거 정답 없다는 게 더 킹받는 듯ㄷㄷ
저는 그냥 상자 다 엎어버리고 싶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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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03:31
② 둘 다 가져감.
근데 이거 예측자가 내 성향까지 다 분석해서 정해놓은 거면
사실상 선택지가 없는 거 아님?ㅋㅋ 걍 운명론 같아서 소름 돋네요ㄷㄷ
모든 이야기1455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① B만 가져감.
어차피 예측자가 거의 다 맞춘다는데 굳이 1,000달러 때문에 100만 달러 날릴 리스크를 질 필요가 있나 싶네요ㅋㅋ
그냥 믿고 가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