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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31년 10월 1일 저녁, 바빌론의 서기 한 명이 진흙판에 이렇게 적는다. '달이 보였다. 달의 각거리는 …' 그리고 며칠 뒤 같은 판에는 이런 문장이 이어진다. '왕이 죽었다.' 이 판은 지금 대영박물관 유리장 안에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과 그 직전의 하늘을 같은 점토 위에 붙여 놓은, 이른바 '천문일지(Astronomical Diary)'다. 이런 판이 6세기 가까이 이어진다. 기원전 626년부터 서기 75년까지, 밤하늘을 거의 매일 기록한 점토판 문서군이다.

문제는 이 판들의 상당수가 깨졌다는 점이다. 기록은 남았는데 날짜를 적은 부분이 부러져 나갔다. 표준 정본인 『바빌로니아의 천문일지와 관련 문서(ADART)』에서 전문가들은 판 하나하나를 손으로 읽으며 연도를 붙였다. 하늘에 적힌 행성의 위치, 월식, 그리고 연대기적 단서들 — 왕의 이름, 연호 — 을 함께 저울질하는 작업이었다. 그 판단은 사람의 것이었고, 판마다 근거의 무게가 달랐다.

같은 규칙을 701년 전부에 적용한다

루카스 카리트 델가도 피녜이루, 위안-센 팅 등 여섯 명의 연구진이 올린 논문(arXiv:2610.34297)은 이 작업의 '천문학 부분'만 떼어내 자동화한다. 구조는 세 층이다. 먼저 규칙 기반 파서가 점토판의 관측 기록을 '절(clause)'로 바꾼다. 절은 고정된 필드를 가진 짧은 문장이다. 어떤 현상이, 어느 달 며칠에, 어느 방향에서, 얼마만큼 벌어져 보였는가.

다음으로 언어모델이 그 절들을 원문과 대조한다. 파서가 놓친 관측을 찾아내 보태는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천문 계산 도구가 그 절들을 기원전 626년부터 서기 75년까지, 701개 연도 전부에 대입한다. 각 연도마다 그날 밤 하늘이 실제로 어땠는지 계산해보고, 절들과 얼마나 잘 맞는지 점수를 매긴다. 순위가 매겨진 연도 목록이 결과물이다.

정답을 미리 보지 않는다는 규칙

이런 평가에서 가장 흔한 함정은 자기 채점이다. 이미 출판된 연도를 알고 코드를 돌리면, 파라미터를 그쪽으로 슬쩍 기울여도 티가 안 난다. 논문은 이 지점을 의식적으로 막았다고 밝힌다. 시스템은 자기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출판된 연도를 '보지 않는다'. 결과가 나온 뒤에야 대조한다.

그리고 각 후보 연도마다 근거를 함께 내놓는다. 어떤 구절이 그 연도를 지지했는지, 그때 계산된 행성 위치가 어땠는지를 목록으로 붙인다. 판정만 던지고 끝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방법론 논문에서 흔치 않은 종류의 정직함이다. 결론을 검증하려면 저자의 코드를 믿어야 하는 대신, 계산 과정을 따라가며 반박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20장 가운데 119장

성적표는 이렇다. 이미 연도가 알려진 120장의 판으로 시험했다. 시스템이 최상위로 묶은 연도 그룹 안에 실제 출판된 연도가 들어 있는 경우가 96%였다. 그중 86장에서는 최상위 그룹이 단 하나의 연도로 좁혀졌고, 그 단일 연도가 출판된 연도와 일치한 것이 84장이었다.

전체로 보면 120장 중 119장에서, 시스템이 제시한 후보 집합 안에 정답이 있었다. 이 숫자를 다르게 읽는 방법도 있다. 다시 말해 120장 중 1장은 후보 집합조차 정답을 담지 못했다는 뜻이고, 단일 연도로 좁힌 86장 중 2장은 '확신 있게 틀렸다'는 뜻이다. 96%는 훌륭한 성적이지만, 100%가 아닌 이유를 논문은 숨기지 않는다.

반전은 정확도가 아니라 '얼마나 좁혀지는가'에 있다

이 논문의 진짜 산출물은 정답 맞히기가 아니다. ADART IV권에 실린 날짜 없는 항목 56건에 대해, 시스템은 순위가 매겨진 후보 연도들을 내놓는다. 그리고 판마다 '천문학만으로 연도가 어디까지 좁혀지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판은 후보가 서너 개로 줄고, 어떤 판은 수십 년이 팽팽하게 남는다.

이게 왜 반직관적인가. 우리는 자동화가 답을 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여기서 자동화가 가장 잘하는 일은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이 판은 천문학만으로는 원리적으로 답이 안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701년을 전부 계산해봤는데도 후보가 안 줄어드는 판은, 천문 기록이 원래 그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이 오래 붙들고 씨름해도 안 될 문제였음을 기계가 대신 확인해준 셈이다.

그럼 나머지 단서들은 어디로 갔나

여기서 반론이 나온다. 정본의 연대추정은 천문학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왕의 이름, 연호, 인접 사건과의 동시성 같은 역사적 단서가 함께 들어갔다. 이 시스템은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통제된 실험이기 때문이다. 변수를 하나로 고정해야 '천문학이 혼자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잴 수 있다.

그래서 96%라는 숫자를 '전문가를 대체한다'로 읽으면 오독이다. 천문학적 단서가 풍부한 판에서 천문학은 강력하고, 그렇지 않은 판에서는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 논문이 스스로 밝히는 범위도 여기까지다. 이 시스템은 판정자가 아니라 후보 생성기이고, 최종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라는 구조다. 실제로 결과는 확정 전까지 봉인되고, 근거 목록과 함께 공개된다.

언어모델에게 맡긴 부분과 남은 위험

흥미로운 설계는 언어모델의 위치다. 모델은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파서가 뽑아낸 절을 원문과 대조해 빠진 관측을 보태는, 일종의 교정자 역할을 한다. 판정은 결정론적 천문 계산이 한다. 이 분업은 영리하다. 확률적 모델의 오류가 최종 점수에 직접 새지 않도록, 모델을 파이프라인의 입력 정리 단계에 가둔 것이다.

다만 위험은 남는다. 모델이 '없는 관측'을 그럴듯하게 보태면, 그 절이 701년 전체를 훑으며 엉뚱한 연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논문은 절마다 원문 근거를 함께 남기도록 해 이 위험을 추적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검증자가 모델의 추가분을 하나씩 되짚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점토판이 남긴 질문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인식론이다. 2,400년 전 사람이 밤마다 하늘을 적어 남긴 기록이, 지금의 계산 도구와 만나 '이 정보는 여기까지 알려준다'는 경계를 스스로 그려낸다. 확실한 답보다 확실한 불확실성이 값진 경우가 있다. 날짜 없는 56장의 판은 이제 '모른다'는 상태에서 '이만큼은 안다'는 상태로 옮겨갔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남는다. 우리는 지금 하루에 얼마나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는가. 그리고 2,400년 뒤 누군가 그 기록을 가지고 우리 시대의 날짜를 복원하려 할 때, 과연 몇 퍼센트의 정확도로 우리를 맞힐 수 있을까. 그들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은 아마 '이 기록만으로는 후보가 열두 개 남는다'일 것이다.

참고 자료

논문: Lucas Carrit Delgado Pinheiro, Yuan-Sen Ting, Jon Clindaniel, Lu Li, Yingbin Liang, Ness Shroff, 'Automated, auditable dating of the Babylonian Astronomical Diaries with language models and astronomical tools', arXiv:2610.34297v1 (2026-10-25), physics.hist-ph.
https://arxiv.org/abs/2610.34297v1
프로젝트 페이지(판별 추적·코드·프로토콜·결과): https://tingyuansen.github.io/Babylonian_Dating/

이미지 출처
1. 대영박물관 소장 바빌로니아 천문일지(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을 기록한 판) — 촬영 Shaunnol,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2. 대영박물관 바빌론 천문일지, 기원전 331–330년 — 촬영 Brigade Piron,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 본문의 수치와 주장은 위 논문 초록에 근거하며, 논문이 명시하지 않은 해석은 필자의 분석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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