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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왜 조금씩 거짓말을 하는가 — 1722년 바흐가 던진 조율의 문제

빗방울 2026.10.31 20:45 10분 읽기 조회 185 · 추천 1

1722년, 독일 쾨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악보 표지에 손글씨로 제목을 씁니다. 「Das Wohltemperirte Clavier」. 오늘 우리는 이걸 『평균율 클라비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번역에는 작은 거짓말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Wohltemperirt는 '평균(equal)'이 아니라 '잘 조율된'이라는 뜻입니다. 독일어 wohl은 '좋게', temperiert는 '조율된'입니다. 즉 원제는 『잘 조율된 클라비어』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한국어 제목은 100년 넘게 '평균율'로 굳어졌고, 그 오역이 음악사에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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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잘 조율된 클라비어」 제1권 자필 표지(1722). 제목의 Wohltemperirte는 '평균율'이 아니라 '잘 조율된'이라는 뜻입니다.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먼저, 왜 조율이 문제인가

피아노 건반은 12개의 반음입니다. 한 옥타브 안에 12개, 그게 전부입니다. 문제는 자연이 12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음정은 순수 5도입니다. 현 길이비 3:2, 주파수비로 1.5. 바이올린 현 두 개를 이 비율로 맞추면 맥놀이(울렁거림)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게 귀가 '맞다'고 느끼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이 5도를 12번 쌓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론적으로는 7옥타브가 되어야 같은 음으로 돌아옵니다. 실제로 계산하면 어긋납니다.

(3/2)¹² = 531441/524288 ≈ 1.01364

7옥타브(2⁷ = 128)보다 약 1.36퍼센트 높습니다. 센트(cent) 단위로는 약 23.46센트. 반음이 100센트이니 반음의 4분의 1만큼 어긋난 것입니다. 이 차이를 피타고라스 콤마라고 부릅니다.

23센트면 작아 보입니다. 그런데 12번 쌓았을 때 이야기이고, 문제는 매번 쌓을 때마다 이 오차가 누적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한 음이 두 개의 다른 음이 되어버립니다. C로 올라간 것과 B♯으로 올라간 것이 다른 건반이 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해법 1: 아름다움을 골라 쓰기 — 중간음률

16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가장 널리 쓰인 해법은 중간음률(meantone temperament)입니다. 발상은 이렇습니다. '5도를 조금씩 희생해서 3도를 완벽하게 만들자.'

장3도는 5도를 네 번 쌓아 올린 음정입니다. C→G→D→A→E. 그런데 순수한 5도를 네 번 쌓으면 3도가 약 21.5센트 넓어집니다. 이 차이를 신토닉 콤마라고 합니다(주파수비 81/80). 중간음률은 이 콤마를 5도 네 개에 4분의 1씩 나눠 넣습니다. 그래서 '4분의 1 콤마 중간음률'입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5도 하나가 701.955센트에서 696.578센트로 좁아집니다. 약 5.4센트. 귀로는 거의 구별이 안 되는 정도입니다. 대신 장3도가 완전히 순수해집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초기 음악이 3도를 그렇게 사랑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대가가 있습니다. 12개의 5도 중 11개를 좁혀 쓰면, 남은 하나가 그만큼 넓어집니다. 이 음정은 화음으로 쓸 수 없을 만큼 거칠게 울립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이걸 '늑대 5도(wolf fifth)'라고 불렀습니다.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 같다고 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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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중간음률에서는 어떤 조성은 아름답고 어떤 조성은 연주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작곡가들은 '쓸 수 있는 조성' 안에서만 썼고, 그래서 조성마다 색깔이 뚜렷했습니다.

해법 2: 모두 조금씩 거짓말하기 — 평균율

평균율(equal temperament)은 정반대 전략입니다. '모든 음정을 똑같이 조금씩 어긋나게 하자.' 옥타브를 12등분해서 반음을 정확히 100센트로 만듭니다.

그러면 5도는 700센트. 순수 5도(701.955)보다 약 2센트 좁습니다. 3도는 순수 3도(386.3)보다 14센트 넓습니다.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대신 24개 모든 조성이 똑같이 '쓸 만한' 상태가 됩니다.

이게 혁명이었던 이유는 조옮김(transposition)입니다. 중간음률에서는 C장조 곡을 F♯장조로 옮기면 음정이 달라져 곡이 망가집니다. 평균율에서는 그냥 위치만 옮기면 됩니다. 피아노 건반이 균등한 격자가 된 것입니다.

반전: 바흐는 평균율을 쓴 게 아닐 수 있다

여기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바흐의 '잘 조율된 클라비어'는 제목 그대로 평균율이 아닌 '잘 조율된' 조율법을 뜻합니다. 그중 대표가 볼테르페리어(wohltemperiert, well temperament)입니다.

발상은 절충입니다. '모든 조성을 쓸 수 있게 하되, 조성마다 성격은 남기자.' 가장 많이 쓰이는 조성(C, G, F 등)은 거의 순수하게 조율하고, 드물게 쓰는 조성(F♯, C♯ 등)은 점점 더 어긋나게 만듭니다. 늑대 5도는 사라지지만, 조성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남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조성의 성격(key character)'이라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볼테르페리어에서 C장조는 밝고 안정되고, F♯장조는 날카롭고 불안합니다. 평균율에서는 이 차이가 거의 사라집니다.

그래서 1722년 바흐의 악보는 단순한 연습곡집이 아니라 하나의 주장입니다. '24개 조성 전부를, 각각의 성격을 살린 채로 쓸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20년 뒤 1742년, 라이프치히에서 같은 형식의 두 번째 책을 냅니다. 합쳐서 48개의 전주곡과 푸가, 오늘 우리가 '평균율 1·2권'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흐는 어떤 조율을 썼나

여기서 진짜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바흐가 실제로 어떤 조율법을 썼는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1722년 표지의 소용돌이 장식에 조율 정보가 숨겨져 있다는 연구가 2005년에 나왔고, 이를 재현한 음반도 있습니다. 다만 학계의 합의는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평균율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당시 평균율은 논쟁적인 신기술이었고, 순수 음정을 중시한 음악가들은 '모든 화음이 조금씩 틀린 조율'을 못마땅해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 피아노는 평균율로 조율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흐를 들을 때, 바흐가 의도한 조성의 색깔은 이미 사라진 상태입니다. C장조와 F♯장조는 같은 곡을 반음만 옮긴 것처럼 들립니다.

이건 틀린 연주가 아닙니다. 평균율은 그 자체로 위대한 합리화이고, 19세기 이후 서양 음악이 먼 조성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던 토대입니다. 바그너와 말러의 화성은 평균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반론: 그래서 평균율이 '더 낫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여기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평균율은 아름다움을 균등하게 분배했지만, 아름다움의 총량을 늘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화음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현악 4중주는 지금도 평균율로 연주하지 않습니다. 연주자들은 귀에 따라 순수 5도와 순수 3도로 계속 되돌아갑니다. 피아노는 못 하는 일을 활과 손가락이 실시간으로 해내는 것입니다.

합창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합창은 마지막 화음을 순정률로 맞춰 피아노 반주보다 더 맑게 울립니다. 즉 평균율은 필요조건이지 이상은 아닙니다.

그래서 1722년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바흐가 던진 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완벽할 수 없다면, 어디를 얼마나 희생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중간음률은 3도의 아름다움을 위해 조성의 자유를 포기했습니다. 평균율은 자유를 위해 음정의 순수함을 포기했습니다. 볼테르페리어는 둘 다 조금씩 포기했습니다. 어느 쪽도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듣는 피아노는, 모든 음이 조금씩 거짓말하고 있는 악기입니다. 그 거짓말의 크기가 정확히 2센트이고, 그 2센트 덕분에 24개 조성 전부를 쓸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혹시 바흐를 들으면서 '이 곡은 왜 이 조성으로 쓰였을까'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평균율 피아노에서는 그 답이 '별 이유 없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바흐의 시대에는 조성이 곧 분위기였습니다.

볼테르페리어로 조율한 바흐 연주를 한 번 들어보시면, 같은 곡이 다른 색으로 들립니다. 여러분은 완벽한 화음 몇 개와 모든 조성의 자유 중 어느 쪽을 고르시겠습니까.

하프시코드(요한 아담 하스, 1734). 건반악기는 조율을 바꿀 수 없기에 조율법 논쟁의 중심이었습니다. —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참고 자료

  • J. S. Bach, Das Wohltemperirte Clavier 제1권 1722년, 제2권 1742년 — 24개 조성 × 2 = 48곡
  • 피타고라스 콤마 — (3/2)¹² / 2⁷ = 531441/524288 ≈ 1.01364, 약 23.46센트
  • 신토닉 콤마 — 81/80 = 1.0125, 약 21.51센트
  • 4분의 1 콤마 중간음률 — 5도 696.578센트(순수 5도 701.955센트 대비 약 5.4센트 좁힘), 장3도 순수
  • 평균율 — 반음 100센트, 5도 700센트, 장3도 약 400센트
  • 볼테르페리어 — 안드레아스 베르크마이스터의 논저(1681년 『Orgelprobe』 등)에서 'wohl temperirt' 개념 확인
  • 바흐가 사용한 정확한 조율법은 미확정. 1722년 표지 장식에서 조율 정보를 읽어내려는 연구가 있으나 학계 합의는 아님.
  • 본 글은 조율 이론의 확립된 수치를 정리한 것이며, 특정 조율법의 우열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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