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 5월 1일, 빈 부르크테아터. 모차르트가 서른 살이던 해입니다. 무대에 오른 것은 하인과 하녀가 결혼하는 이야기. 주인인 백작이 그 하녀를 탐내고, 하인과 하녀가 머리를 맞대고 백작을 골탕 먹이는 4막짜리 희극입니다.
초연은 대성공도 대실패도 아니었습니다. 빈의 한 신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음악은 첫 공연에서부터 이미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다만 자기 자존심 때문에 남의 작품에서는 가치를 못 찾는 사람들은 예외로 하고.' 그리고 덧붙입니다. '관객은 첫날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 정말 몰랐다. 편견 없는 전문가들에게서는 여러 번 브라보가 나왔지만, 소란스러운 얼간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거리에서 돈을 받고 박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고용한 흔적을 시사한다고 그 신문은 지적했습니다. 즉 초연은 누군가 방해할 만큼 위험한 작품이었습니다.
금지된 희곡
원작은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의 1784년 희극 「미친 하루, 혹은 피가로의 결혼」(La folle journée, ou le Mariage de Figaro)입니다. 이 희곡은 계급 갈등을 노골적으로 다뤘습니다. 하인이 주인을 이기고, 귀족이 자기 특권을 무대 위에서 조롱당합니다.
그래서 빈에서는 처음에 금지됐습니다. 요제프 2세 황제의 말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이의를 제기할 만한 것이 많이 들어 있으므로, 검열관은 이를 전적으로 거부하든가, 아니면 이 희곡의 상연과 그것이 줄 인상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개정하든가 하기를 기대한다.'
피에르오귀스탱 카롱 드 보마르셰. 원작 희곡은 계급 갈등을 노골적으로 다뤄 빈에서 금지됐습니다. — CC0 (Metropolitan Museum of Art)
황제의 문장을 잘 읽어보면 완전히 닫힌 문은 아니었습니다. '책임을 질 수 있게 고쳐라'는 조건부 허가입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검열관은 독일어판 상연을 실제로 금지했습니다. 희곡으로는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차르트가 먼저 손을 댔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나옵니다. 이 희곡을 오페라로 만들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모차르트였습니다. 그가 작품을 골라 대본가 로렌초 다폰테에게 가져갔습니다. 다폰테가 그것을 이탈리아어 오페라 대본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다폰테가 황제에게서 직접 승인을 받아냈습니다. 검열관을 우회한 것이 아니라, 더 위에서 길을 낸 것입니다. 다폰테가 받은 대가는 200플로린이었습니다.
로렌초 다폰테. 보마르셰의 금지된 희곡을 오페라 대본으로 바꾸고 황제의 승인을 받아낸 사람입니다.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이 작품이 모차르트와 다폰테의 세 번의 협업 중 첫 번째가 됩니다. 이어서 「돈 조반니」, 그리고 「여자들은 다 그런 법(Così fan tutte)」. 서양 오페라사에서 가장 유명한 콤비의 시작이, 금지된 희곡 하나에서 출발했습니다.
2막 피날레 — 20분간 음악이 멈추지 않는다
이 오페라의 구조적 혁신은 2막 마지막에 있습니다. 대개 오페라는 아리아(독창)와 레치타티보(대사)로 번갈아 진행됩니다. 그런데 2막 피날레는 약 20분 동안 음악이 끊기지 않습니다.
규모를 보면 이렇습니다. 900마디가 넘는 연속 음악이고, 등장인물 11명 중 8명이 무대에 동시에 올라옵니다. 인물이 둘, 셋, 다섯으로 늘어나면서 2중창에서 7중창까지 확장되고, 그 사이로 정체가 드러나고 오해가 쌓이며 상황이 한 번에 무너집니다.
모차르트가 이 곡을 쓴 것은 희극의 관습을 깬 것이었습니다. 웃음은 아리아 한 곡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서로 다른 것을 말할 때 관객은 무대 위 전체를 한꺼번에 봅니다. 그게 희극의 진짜 엔진이라는 걸 모차르트는 알고 있었습니다.
악기가 인물을 대신 말할 때
편성은 당대 오페라로는 크지 않습니다.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클라리노 2, 팀파니, 현악. 여기에 레치타티보를 위한 쳄발로가 붙습니다. 관현악은 화려함보다 대사와 인물을 받쳐주는 역할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악기가 말을 대신합니다. 4막의 아리아 「그 눈을 뜨시오」(Aprite un po' quegli occhi)에서 피가로가 여자들의 배신을 노래할 때, 호른 두 대가 함께 울립니다. 당대 청중에게 호른 두 개는 '뿔'을 뜻하는 그림이었습니다. 즉 악기 소리만으로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뜻을 전달한 것입니다.
유명한 아리아들, 그리고 그들이 놓인 자리
이 오페라의 아리아는 감정의 정점이 아니라 상황의 정점에 놓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 제목을 몰라도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더는 나가지 못하리」(Non più andrai) — 1막 끝. 피가로가 군인으로 징집된 케루비노를 놀리며 부릅니다. '이제 여자 없는 군대 생활'이라는 가사가 경쾌한 행진곡에 실립니다. 이 곡이 초연 직후 거리에서 흥얼거려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귀부인들이여」(Voi che sapete) — 2막. 여자 옷을 입은 소년 케루비노가 부릅니다. 자기가 사랑에 빠졌는지 물어보는 노래인데, 부르는 사람과 묻는 대상이 모두 어긋나 있습니다.
「어디로 갔나, 아름다운 순간들이여」(Dove sono i bei momenti) — 3막. 백작부인이 남편의 배신을 두고 부릅니다. 이 곡이 특별한 이유는 슬픔으로 시작해서 분노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에 그녀는 '내가 아직 그를 사랑하는 한' 이라고 노래합니다. 즉 이 아리아는 감정의 정리가 아니라 감정의 모순을 남기는 곡입니다.
「산들바람에」(Sull'aria) — 3막. 백작부인과 하녀 수잔나가 백작을 골탕 먹이려고 러브레터를 받아쓰는 장면입니다. 두 여자가 동시에 다른 가사를 부르며 한 편지를 만듭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방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곡이 바로 이것입니다.
반전: 이 오페라는 '혁명'이 아니라 '조율'이다
보마르셰의 희곡은 계급 전복에 가깝습니다. 하인 피가로가 주인 백작을 공개적으로 이깁니다. 그런데 오페라의 결말은 다릅니다. 백작이 용서를 구하고, 아내가 그것을 받아줍니다. 질서가 복원됩니다.
다폰테가 이 부분을 순화했다고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검열을 통과하려면 필요한 조정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단순한 굴복인지, 아니면 더 교묘한 반격인지는 논쟁적입니다.
왜냐하면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백작이 무릎을 꿇습니다. 권력자가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장면은 당시 무대에서 흔치 않았습니다. 즉 질서는 복원되지만, 복원하는 방식이 굴욕적입니다. 누가 이겼는지는 음악이 결정합니다. 그 장면의 화성은 백작에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3년 뒤, 세상이 따라왔다
1786년 빈에서 시작된 이 오페라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세 해 앞두고 있었습니다. 보마르셰의 희곡이 그렸던 계급 갈등이 실제로 폭발한 것입니다.
아이러니는 이렇습니다. 황제가 희곡을 금지했지만 오페라는 허가했습니다. 그리고 그 오페라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무대에서 하인이 주인을 이기는 장면을 보여줬습니다. 검열은 희곡의 대사를 막을 수 있었지만, 음악이 만든 그 장면의 온도는 막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것
현대 공연에서 케루비노와 마르첼리나는 보통 메조소프라노가 맡고, 피가로는 바리톤이 부릅니다. 1789년 빈 재상연에서는 수잔나 역의 가수가 바뀌면서 모차르트가 대체 아리아 두 곡을 새로 썼습니다(Un moto di gioia, Al desio di chi t'adora). 이 곡들은 오늘날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듣는 「피가로의 결혼」은 1786년 초연판에 가깝고, 모차르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손댄 판본과는 조금 다릅니다. 같은 작품인데 어느 판본을 무대에 올리느냐가 공연마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오페라가 지금도 공연되는 이유는 음악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닙니다. 하인이 주인을 이기는데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 그 묘한 결말 때문입니다. 웃으면서 보는데 웃음이 조금 불편하게 남는 작품입니다.
혹시 「피가로의 결혼」을 보신 적 있나요? 있다면 어느 장면이 가장 오래 남았는지, 없다면 2막 피날레 20분부터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아리아 하나 없이 여덟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20분입니다.
참고 자료
- W. A. Mozart, Le nozze di Figaro, K. 492 (1786) — 4막 오페라 부파, 이탈리아어 대본: 로렌초 다폰테
- 초연: 1786년 5월 1일 빈 부르크테아터. 원작: 보마르셰 「미친 하루, 혹은 피가로의 결혼」(1784)
- 요제프 2세의 검열 발언과 오스트리아 검열관의 독일어판 상연 금지 — 다폰테가 황제 승인을 받아냄, 대본료 200플로린
- 2막 피날레 — 약 20분, 900마디 이상 연속 음악, 등장인물 11명 중 8명 동시 등장, 7중창까지 확장
- 편성: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 각 2, 호른 2, 클라리노 2, 팀파니, 현악
- 4막 「Aprite un po' quegli occhi」의 호른 두 대 — 당대 관습에서 '뿔(아내의 부정)'을 뜻함
- 1789년 재상연 시 수잔나 역 교체로 대체 아리아 2곡 작곡(현대 공연에서는 거의 미사용)
- 역할 배정 관행 — 케루비노·마르첼리나 메조소프라노, 피가로 바리톤(신모차르트 전집 기준 음역과 현대 관행이 다름)
- 본 글은 공개된 음악사 기록을 정리한 것이며, 특정 공연이나 해석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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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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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2:44
저도 쇼생크 탈출 보고 처음 알았는데 진짜 명곡임ㅋㅋ 2막 피날레 그거 진짜 빡세 보이는데 들어보면 몰입감 장난 아니더라고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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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00:09
본문과 잘 맞는 글입니다. 다만 1789년 재상연 부분은 보충할 만합니다. 수잔나 역은 아드리아나 페라레세 델 베네가 맡았고, 대체 아리아 두 곡은 「Venite, inginocchiatevi」(2막)와 「Deh vieni non tardar」(4막) 자리를 각각 대신했으며 이때 클라리넷 두 대가 바셋호른으로 바뀝니다. (The Marriage of Figaro 참조) -
빗방울
2026.11.01 01:27
3막 '산들바람에' 대목에서 멈칫했습니다. 편지 한 장을 두 사람이 동시에 받아쓰는데, 그게 서로 다른 노래로 들린다는 게 신기하네요. 백작이 무릎 꿇는 결말도 그렇고, 웃으면서 보는데 마음 한켠이 불편한 게 이 작품의 힘인 것 같습니다.
요한 하인리히 람베르크의 3막 삽화입니다. 퍼블릭 도메인(Wikimedia Commons).
저는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2막 피날레를 처음 들었는데, 그때는 인물이 그렇게 많다는 걸 몰랐습니다. 혹시 지금 공연으로 보신 분은 어느 판본이었나요?
모든 이야기1454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쇼생크 탈출 노래가 여기서 나온 거였네요.
2막 피날레 20분 연속 음악이라니 ㄷㄷ
지금 바로 들어보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