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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다 그런 법 — 1790년 빈에서 150년 동안 지워진 오페라

빗방울 2026.10.31 21:11 10분 읽기 조회 138 · 추천 1

1790년 1월 26일, 빈 부르크테아터. 초연 프로그램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황실·왕립 국립극장에서 오늘 목요일, 1790년 1월 26일 처음으로 상연'. 제목은 COSI FAN TUTTE, 부제는 LA SCUOLA DEGLI AMANTI — 「연인들의 학교」. 독일어 제목도 함께 붙었습니다. '여자들은 다 그런 법, 혹은 연인들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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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1월 26일 초연 프로그램. 「Così fan tutte」와 독일어 제목 「So machen sie's」가 함께 인쇄되어 있습니다.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모차르트가 서른네 살이던 해입니다. 「피가로의 결혼」(1786)과 「돈 조반니」(1787)를 만든 콤비가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손을 잡았습니다. 대본은 다시 로렌초 다폰테. 오페라 부파, 2막.

줄거리: 내기 하나로 시작되는 사흘

무대는 나폴리. 두 장교 페란도와 굴리엘모가 자기 약혼녀의 정절을 확신합니다. 늙은 철학자 돈 알폰소가 비웃습니다. '세상에 정절 있는 여자는 없다'. 그리고 100제키니를 걸고 내기를 제안합니다.

조건은 이렇습니다. 두 장교가 전쟁에 징집된 척 떠납니다. 곧 알바니아인으로 변장해 돌아와서, 서로 상대의 약혼녀를 유혹합니다. 즉 페란도가 도라벨라를, 굴리엘모가 피오르딜리지를. 하녀 데스피나가 공모합니다.

결말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두 여자 모두 마음을 바꿉니다. 그리고 정체가 드러나고, 배신당한 쪽과 배신한 쪽이 한 무대에 뒤섞입니다. 누가 더 나쁜지 결정되지 않은 채로 막이 내립니다.

제목의 문법에 농담이 숨어 있다

이탈리아어 'Così fan tutte'를 직역하면 '그렇게 하는구나, 모든 여자들이'입니다. 핵심은 tutte입니다. 이탈리아어에서 여성 복수형입니다. 남자들이라면 tutti를 씁니다.

즉 이 제목은 '인간은 다 그렇다'가 아니라 '여자라는 부류는 다 그렇다'는 뜻입니다. 문법 자체가 일반화입니다. 그리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 일반화가 옳은지 그른지 판정되지 않습니다.

재밌는 것은 다폰테가 이 표현을 이미 4년 전에 썼다는 점입니다. 「피가로의 결혼」 1막에서 'Così fan tutte le belle' — '모든 미인들이 그렇게 하는구나' — 라고 썼습니다. 그 한 줄을 4년 뒤 오페라 전체의 제목으로 승격시킨 것입니다.

모차르트의 복수: 소프라노의 목을 닭처럼 흔들기

여기서 아주 인간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오르딜리지 역은 아드리아나 페라레세 델 베네를 위해 작곡됐습니다. 그런데 이 소프라노는 다폰테의 정부였고, 모차르트는 그녀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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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나 페라레세 델 베네(1785년 런던 킹스 시어터). 모차르트가 싫어했던 소프라노로, 피오르딜리지 역을 위해 「Come scoglio」가 쓰였습니다.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그녀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낮은 음을 낼 때는 턱을 아래로 떨어뜨렸고, 높은 음을 낼 때는 머리를 뒤로 젖혔습니다. 무대에서 그 동작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모차르트는 그녀의 대표 아리아 「바위처럼」(Come scoglio)에 낮은 음과 높은 음을 계속 오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노래할 때마다 머리가 닭처럼 까딱거릴 수밖에 없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아리아는 극도로 어려운 곡으로 유명합니다. 도약이 많은 것은 기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을 조롱하는 장치였습니다. 음악사에서 가장 정교한 앙갚음 중 하나입니다.

초연은 닷새 만에 멈췄다

공연 기록이 잔인할 만큼 짧습니다. 1790년 1월 26일 초연 이후 다섯 번. 그리고 2월 20일 요제프 2세가 사망했습니다. 궁정 애도 기간에 극장이 닫혔습니다.

재개는 6월이었습니다. 두 번 공연했고, 두 번째는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했습니다. 7월에 두 번, 8월에 한 번. 그리고 그 뒤로 모차르트 생전에 빈에서 다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작곡가가 1791년 12월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가 이 작품을 지휘한 것은 사실상 마지막 몇 달이었습니다.

반전: 19세기가 이 작품을 '외설'로 판정했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입니다. 이 오페라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부도덕하고 저속한 작품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평가입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베토벤입니다. 그가 이 줄거리를 부도덕하다고 여긴 사람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그의 오페라 「피델리오」는 「코지 판 투테」에 대한 응답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즉 '아내의 정절'을 진지하게 다루는 오페라를 쓴 것입니다.

괴테도 대본을 낮게 평가했습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주제의 지나친 단순함, 시인이 인물을 빈약하게 그린 점, 상황의 진실성 결여, 결말의 나약함, 그리고 무엇보다 형편없는 번역이 이 판단에 크게 기여했다.'

주목할 점은 괴테가 번역을 문제로 지적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가 본 것은 원작이 아니라 독일어판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작품의 악명에는 번역 손실이 일부 섞여 있습니다.

150년의 공백, 그리고 부활

19세기 동안 이 오페라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대중 오페라 극장의 레퍼토리에서 빠졌고, 학술적 관심도 낮았습니다. 이유는 줄거리였습니다. 여자들이 유혹에 넘어가는 이야기를 '교훈 없이' 다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부활은 20세기에 왔습니다. 특히 1930~40년대의 재평가와 전후의 새로운 연출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지금은 모차르트 3대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히고, 세계 주요 극장에서 매 시즌 공연됩니다.

재평가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여성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남자를 비웃는다.' 돈 알폰소가 내기를 걸고 모두를 조종하지만, 마지막에 그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이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구조입니다.

또 하나: 살리에리가 먼저 이 대본을 잡았다

이 작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각주가 있습니다.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이 대본에 먼저 음악을 붙이려 했으나 미완성으로 남겼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1994년 존 라이스가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에서 살리에리의 3중창 두 곡을 찾아냈습니다.

즉 우리가 아는 「코지 판 투테」는 살리에리가 손대다 만 대본을 모차르트가 완성한 것입니다. 영화 「아마데우스」가 만든 이미지와는 무관하게, 실제로 두 사람은 같은 대본을 두고 스쳐 지나간 사이였습니다.

덧붙이면, '요제프 2세의 제안으로 작곡됐다'는 오래된 이야기도 최근 연구가 뒷받침하지 않습니다. 황제가 사망한 시점(2월)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음악이 하는 일

이 오페라는 앙상블로 유명합니다. 아리아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노래하는 장면이 핵심입니다.

1막의 「산들바람이 부드럽게」(Soave sia il vento)는 세 사람이 부릅니다. 떠나는 배를 보며 안전한 항해를 비는 노래인데, 부르는 사람 중 두 명이 그 배에 타지 않았고, 한 명은 배를 보내는 척하며 속임수를 꾸미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화음 위에 거짓말이 얹혀 있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대를 사랑하는 숨결」(Un'aura amorosa)에서 페란도는 자기 사랑을 노래합니다. 이 곡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아직 진실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관객만 압니다. 모차르트는 가장 순수한 아리아를 가장 순수하지 않은 상황에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이 오페라는 무엇인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실험이고, 그 실험은 실패한다. 돈 알폰소는 여자의 정절을 실험으로 증명하려 합니다. 그런데 실험이 성공하면 실험자 자신이 가장 초라해집니다.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구조가 이 작품의 설계입니다.

2) 판정을 유보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커플은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관객은 '그래서 이제 행복한가'를 확인하지 못합니다. 모차르트는 화음을 정리해 주지 않습니다. 이 미결이 19세기에는 결함이었고, 20세기에는 미덕이었습니다.

3)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장 못된 이야기를 한다. 이게 이 작품이 지금도 불편한 이유입니다. 음악은 모든 인물을 사랑스럽게 그립니다. 그런데 줄거리는 그 인물들을 얕잡아 봅니다. 듣는 사람은 아름다움에 감동하면서 동시에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낍니다.

여러분에게

「코지 판 투테」는 좋은 오페라인가, 나쁜 오페라인가라는 질문을 150년 넘게 받아온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이 작품을 보신 적 있나요? 보셨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웃으면서 나왔는지, 아니면 뭔가 찜찜한 채로 나왔는지. 그 찜찜함이 이 오페라가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자료

  • W. A. Mozart, Così fan tutte, ossia La scuola degli amanti, K. 588 (1790) — 2막 오페라 부파, 대본: 로렌초 다폰테
  • 초연: 1790년 1월 26일 빈 부르크테아터. 요제프 2세 사망(2월 20일)으로 중단, 6월 재개(2회 중 2번째는 모차르트 지휘), 7월 2회, 8월 1회. 이후 모차르트 생전 빈 공연 없음
  • 제목의 tutti/tutte — 이탈리아어 여성 복수형. 다폰테는 이미 「피가로의 결혼」 1막에서 'Così fan tutte le belle'를 씀
  • 피오르딜리지 역은 아드리아나 페라레세 델 베네를 위해 작곡. 낮은 음에서 턱을, 높은 음에서 머리를 젖히는 버릇 때문에 「Come scoglio」에 저음·고음 도약이 반복됨
  • 19세기 평가 — 베토벤이 줄거리를 부도덕하다 여겼고 「피델리오」가 응답으로 해석됨. 괴테는 대본의 단순함·인물 묘사·결말·번역을 비판
  • 살리에리가 같은 대본에 먼저 작곡을 시도했으나 미완. 1994년 존 라이스가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에서 살리에리의 3중창 2곡 발견
  • '요제프 2세의 제안으로 작곡됐다'는 통설은 최근 연구가 뒷받침하지 않음
  • 본 글은 공개된 음악사 기록을 정리한 것이며, 작품의 도덕적 평가를 단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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