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매디슨가(Madison Avenue,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의 고급 상점가) 1236번지. 550제곱피트(약 15.5평)짜리 코너 점포 하나에 불과 몇 주 만에 임대 조건을 내민 후보가 일곱 곳 붙었다. 미술 갤러리, 식음료, 의류 매장이 저마다 손을 들었다. 이 거리에서 점포를 직접 소유하기도 한다는 CBRE 중개인 론 루바킨(Lon Rubackin)은 "부동산 일을 40년 했지만 이런 경쟁은 처음"이라며 "그런 물건이 일곱 개만 더 있었으면 계약을 일곱 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임차인에게 유리했던 뉴욕 최상급 상권에서, 주도권이 임대인 쪽으로 넘어갔다.
공실률 10.4%가 '역대 최저'라는 말의 무게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가 20년 넘게 집계해 온 지표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맨해튼 주요 쇼핑가 12곳의 가용률(availability rate)은 10.4%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용률은 빈 점포에 곧 비게 될 점포까지 더한 값이다. 1층 임대료도 2분기 평방피트당 710달러로 1년 전 702달러에서 소폭 올랐다. 다만 팬데믹 이전의 1,000달러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쿠시먼의 스티브 사우텐다이크 부회장은 임대료가 새 균형으로 조정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지역별 편차는 훨씬 크다. 어퍼 매디슨가는 가용률 2.2%까지 내려앉았다. 반면 오래된 건물이 많은 헤럴드스퀘어(Herald Square, 34·42번가 일대)는 여전히 빈 점포 비중이 높다. 사우텐다이크는 이 지역이 재택근무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 거리 위 보행 인구가 줄었다고 본다.
뉴욕 상가는 원래 어떤 계약 구조인가 — '그로스 리스'의 세계
한국 독자에게 이 기사를 읽는 열쇠는 계약 구조다. 한국 상가 임대차에서는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내며, 장사 자리가 만든 프리미엄은 권리금으로 사고판다. 미국은 훨씬 다양한 형태의 상업용 리스가 공존한다. 이번 기사의 임대료 "평방피트당 710달러"는 보통 1년치 기준의 명목 요율로, 여기에 세금·보험·관리비를 임대인이 부담하는 그로스 리스(gross lease)인지, 세입자가 부담하는 트리플 넷 리스(NNN, net-net-net)인지에 따라 실질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NNN이면 세금·보험·공용부 관리비를 세입자가 따로 떠안으므로 명목 렌트보다 실제 비용이 훨씬 커진다.
기사 문단 곳곳에는 한국과 다른 요소가 또 나온다. 팬데믹 기간에 임대인들이 내걸었던 '양보 사항(concessions)' — 무상 임대 기간, 인테리어 비용 지원, 건물 인도 조건 완화 — 이다. 또 하나는 공간 분할이다. 예전에는 듀에인리드(Duane Reade, 뉴욕의 대형 드러그스토어 체인) 같은 큰 매장 하나가 비면 그 크기에 맞는 대형 임차인만 기다렸지만, 최근에는 이 공간을 여러 칸으로 쪼개 서로 다른 업종을 들이는 쪽이 늘었다. 기사는 임차인이 점포 소유권(leasehold)을 갖는지, 건물 소유권(freehold)을 갖는지 여부나 리스 만기·갱신 조건은 다루지 않고 있다. 매디슨가 일대의 장기 대여 계약 관행도 원문에 없다. 확인되지 않음.
매디슨가 654번지(약 60번가 부근)의 캘빈클라인 플래그십 매장. 이 기사는 매디슨가 같은 최상급 상권의 가용률을 다룬다 — David Long, CC BY 2.0 (Wikimedia Commons)
임대인이 '을'이던 시절은 끝났지만, 조건은 만능이 아니다
메리디안캐피털그룹의 제임스 파물라로 사장은 어퍼이스트사이드 코너에서 문을 닫는 스타벅스 자리를 맡은 적이 있다. 이전 임대료는 이 일대 기준으로 높은 수준인 월 4만 달러였다. 그는 시세를 조사해 월 3만 5천 달러 정도를 기대하라고 임대인에게 권했다. 그런데 매물이 나가자 첫 주에 식음료와 고급 의류 매장에서 다섯에서 여섯 건의 제안이 들어왔고, 결국 퀵서브 레스토랑이 스타벅스와 같은 월 4만 달러에 계약했다. 같은 블록의 다른 자리는 임대료가 내려가는데도 말이다.
물론 모든 임대인이 같은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스트빌리지의 유동인구가 적은 자리에서는 식료품점이 조건을 맞추지 않으면 임대인이 큰 양보를 하지 않았고, 파물라로는 그 자리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말한다. 은행권도 달라졌다. JLL의 패트릭 스미스 부회장은 대체 임차인이 있는지를 알면 세입자를 놓아주는 데 더 열려 있다며, 협상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어떤 임대인은 "우리만 모기지와 세금이 오르는 동안 계속 몸을 굽힐 수는 없다"고 말한다는 대목도 나온다.
수요를 만든 건 관광, 부(富), 그리고 매장의 용도 변화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사람이다. 뉴욕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뉴욕을 찾은 방문객은 6,500만 명으로 2019년 이후 최대였고, 이들이 만들어낸 경제 효과는 거의 850억 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자산가 유입과 오프라인 복귀가 겹쳤다. JLL 집계로 2025년 뉴욕은 세계 도시 중 가장 많은 40억 달러 규모의 하이스트리트 소매 투자를 끌어들였고, 같은 해 미국 내 럭셔리 브랜드 신규 매장의 거의 절반이 뉴욕에서 문을 열었다.
매장의 기능도 달라졌다. 이커머스 덕분에 모든 상품을 매장에 진열할 필요가 없어져 규모가 작아지고, 백화점(바니스, 로드앤테일러)이 사라진 자리에서 신생 브랜드가 직접 리스를 쓴다. JLL의 스미스는 코로나 이전에는 많은 임차인이 이 점포들을 사실상 마케팅용으로 운영했다며, 지금 매장은 판매뿐 아니라 자사 온라인 매출을 끌어오는 거점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누가 들어오고 있나 — 갤러리, 식음료, 그리고 작은 브랜드
공실이 줄어든 이유가 업종 구성에 있다는 대목도 있다. 기사가 든 예는 소비재 매대에서 갤러리와 식음료, 고급 의류, 액세서리 브랜드다. 어퍼 매디슨가 상인 협의체(BID, Business Improvement District) 대표 매슈 바워는 이 거리가 충성도 높고 여유 있는 상주 주민을 기반으로 하며, 그 주민들이 이곳 브랜드에서 살 여력이 있다고 설명한다. 기사는 '주요 업종 비율' 같은 통계는 제시하지 않는다. 업종별 비중의 변화 수치는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음.
반전 — '상권 몰락'이 아니라 '권력 이동'이다
이 기사를 '뉴욕 상권이 다시 좋아졌다'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친다. 임대인의 협상력이 커졌다고 해서 임대료가 2019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가용률 최저는 공간의 희소성 때문이지 가격의 회복이 아니다. 반대로, 공실이 줄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업종이 살아남았는가'의 결과물이다. 명품·식음료·금융 여력이 있는 브랜드, 혹은 온라인 채널을 이미 가진 브랜드만 남는다. 갤러리와 퀵서브 레스토랑이 같은 블록에서 경쟁하는 풍경은 '상권의 부활'이라기보다 '용도와 세입자의 교체'에 가깝다. 기사 스스로도 헤럴드스퀘어처럼 재택근무에 노출된 지역은 여전히 비어 있다고 인정하며, 다음으로 채워질 자리로 이들 지역을 지목한다. 즉 호황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선택적으로 온다.
이 글의 출처는 부동산 전문 매체 더 리얼딜(The Real Deal)이고, 인용된 목소리의 대부분은 CBRE·JLL·메리디안캐피털 같은 중개·투자 자문 회사와 BID 관계자다. 즉 임대인의 자산 가치와 거래 성사에 관심을 가진 쪽의 시각이다. 세입자였던 소상공인, 문을 닫은 매장의 점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밀려난 업종의 목소리는 기사에 거의 없다. '임대인이 이제 유리해졌다'는 서술 자체가 그만큼 임차인에게 불리해졌다는 뜻인데, 그 비용은 기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기사의 '역대 최저 공실률'도 쿠시먼의 가용률 정의에 따른 수치이며, 이 지표가 어떤 점포를 포함하는지 세부 기준은 원문에 없다.
한국과 비교하면 — 명동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가장 가까운 비교 대상은 서울 명동이다. 국내에서도 명동은 공실률과 임대료가 같은 거리에서 따로 움직이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이 게시판에서도 명동 임대료가 오르는데 공실률이 두 자릿수로 남는 구조를 다룬 적이 있다. 뉴욕 매디슨가와 명동은 둘 다 '관광 회복'을 등에 업고 임대료가 반등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른 점은 계약 구조와 비용 전가 방식이다. 한국은 보증금·권리금이라는 선불 성격의 비용이 세입자에게 쏠리고, 월세 인상이 곧바로 소상공인의 현금 유출로 이어진다. 미국 최상급 상권은 긴 리스 기간과 NNN 구조 때문에 세입자가 세금·관리비 상승분까지 떠안는 반면, 대규모 임차인은 협상력으로 무상 임대 같은 양보를 받아낸다. 같은 '임대료 상승'이라도 누가 언제 얼마를 내는지가 다르다.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 동네 상권이 '비어 가는 것'과 '다른 업종으로 갈아치워지는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임대료가 오르는 것을 상권의 건강 신호로 읽어야 할까, 아니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업종만 남는 선별 과정으로 읽어야 할까. 매디슨가의 2.2%와 헤럴드스퀘어의 공실은 같은 도시, 같은 시기의 두 얼굴이다. 한국의 명동·홍대·성수에서도 같은 질문이 성립하는지 궁금하다.
참고 자료
- The Real Deal, "The Manhattan luxury retail corridors where vacancy has hit multi-decade lows", 2026년 9월 17일 — therealdeal.com
- 수치 출처: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2026년 2분기 맨해튼 소매 보고서(기사 인용), JLL, 뉴욕시 관광 통계(기사 인용)
- 이미지: Calvin Klein Collection flagship, 654 Madison Avenue — David Long, CC BY 2.0, Wikimedia Commons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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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03:36
스타벅스 자리를 놓고 임대료를 3만 5천 달러로 낮추라고 했더니 결국 같은 4만 달러에 계약됐다는 대목에서 멈칫했습니다. 빈자리가 줄어든 게 아니라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쪽만 남은 거 아닐까 싶어서요. 저는 공실률이 내려가면 임대료도 결국 따라 올라갈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710달러가 2019년의 1,000달러에는 못 미친다는 걸 보면 둘은 꼭 같이 움직이지 않네요. 헤럴드스퀘어처럼 다른 이유로 비는 자리는 그럼 누가 메우는지 궁금해집니다. -
빗방울
2026.11.01 06:58
매디슨가 2.2%와 헤럴드스퀘어 공실을 나란히 놓고 읽다가, 저는 이걸 상권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 정리되는 속도 차이로 봤습니다. 임대료가 710달러라는 숫자보다 작은 점포가 잘 팔린다는 대목이 더 눈에 남네요. 혹시 홍대처럼 대학가 쪽도 비슷한 흐름이 있을까요? -
빗방울
2026.11.01 07:06
매디슨가에서 15평 점포 하나에 일곱 팀이 붙었다는 대목에서 잠깐 멈칫했습니다. 저는 '임대료가 내려가야 겨우 손님을 구한다'는 그림을 머리에 그리고 읽었는데, 정작 그 임대료는 코로나 이전 1,000달러대에서 710달러로 아직 올라오지 않은 채라고 하니 두 장면이 따로 도는 느낌입니다. 공간이 귀해진 것과 물가가 회복된 것은 다른 얘기라는 설명이 그래서 와닿았습니다. 혹시 명동도 지금 '자리 부족'으로 웃고 '임대료 회복'은 아직인 상태일까요? -
빗방울
2026.11.01 07:58
동네에서 20년 넘게 국수집 하시던 사장님이 문 닫고 나서 그 자리에 두 달 만에 감성 소품샵이 들어왔어요. 저는 그때 '동네가 살아나는 건가' 싶어서 좀 반가웠는데, 사장님은 갈 데가 없어졌다고 하시더군요. 같은 빈 점포를 누가 보느냐에 따라 부활도 밀려남도 되는 것 같아요. 매디슨가에서 갤러리랑 퀵서브 레스토랑이 같은 블록에 들어온다는 대목을 보니, '부활'이라는 말 안에 이미 누가 살아남는지가 정해져 있는 느낌이에요. 요즘 우리 동네 지도만 봐도 그 갈림길이 보여서 좀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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