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첫날, 영국 웨스트요크셔 가포스(Garforth)의 메인 스트리트. 1969년부터 이 거리에 있던 할인 잡화점 오리지널 팩토리 숍(The Original Factory Shop)의 셔터가 내려간다. 같은 주에 어린이 액세서리 매장으로 8~12세 아이들에게 익숙한 클레어스(Claire's)도 법정관리(administration)에 들어갔다. 두 브랜드를 함께 소유한 모델라 캐피털(Modella Capital)은 성명에서 부진한 크리스마스 매출, "정부의 재정정책과 인플레이션", 중국 온라인 소매업체와의 경쟁을 이유로 들었다. 이 결정으로 위태로워진 일자리가 2,500개다.
한 해에 1만 7천 개 점포, 20만 명 — 숫자로 본 2025년
영국 소매연구센터(Centre for Retail Research)의 집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영국에서 문을 닫은 점포는 17,349개, 해고는 201,953명이었다. 2024년의 13,639개 점포 폐업·172,485명 해고와 합치면 2년 사이 40만 명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졌다. 2025년 9월 기준 소매업 종사자는 280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1년 전보다 7만 4,000명 줄었다.
영국소매연합(BRC)의 헬렌 디킨슨 대표는 지난해 12월 "소매업 일자리가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지난 한 해 사라진 일자리는 어업과 철강 제조업 종사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유통업이 한 국가의 고용 구조에서 차지하던 위치를 한 문장으로 보여주는 비교다.
하이스트리트란 무엇인가 — 영국식 상권의 단위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는 특정 거리 이름이 아니라 영국 도시·마을의 중심 상업가를 통칭하는 말이다. 한국으로 치면 읍·면 소재지의 중앙로나 구도심의 원도심 상가에 가깝다. 대형 쇼핑센터가 교외에 생기고, 이커머스가 성장하면서 이 거리의 점포들이 하나둘 비었고, 지난 10여 년간 영국 정치에서 "하이스트리트 구하기"는 하나의 정책 의제가 됐다.
이 기사가 다루는 사건들도 대부분 하이스트리트 위의 체인점들이다. 스완과 올드 트래퍼드에서 매장을 닫은 자라, 250개 중 33개를 정리하려는 리버 아일랜드, 147개 중 32개를 닫은 뷰티 체인 보디케어 등이다. 여기에 레온(식당 20곳), 스타벅스(카페 10곳), 피자헛(식당 68곳과 배달점 11곳, 1,210명 규모) 같은 외식 브랜드가 겹친다. 거리의 점포 구성이 옷가게에서 식음료로, 다시 배달 전문점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숫자에 그대로 드러난다.
임차가 아니라 소유가 문제였다 — 영국의 상가 임대 구조
한국 독자에게 가장 낯선 부분이 여기다. 영국 상업용 부동산은 오랫동안 장기 임차(leasehold) 구조로 움직였다. 임차인이 건물을 사는 게 아니라 15~25년 단위의 임대차 계약을 맺고, 계약 기간 내내 임대료를 내며, 계약을 중도에 끝내려면 잔여 기간의 임대료를 보증인(guarantor)이 대신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다. 팬데믹과 이커머스 충격이 오자 매출이 사라져도 계약은 남아, 체인점들이 "빈 건물에 임대료만 내는" 상태에 몰렸다. 이것이 영국 유통업 구조조정의 핵심 배경 중 하나로 자주 지목된다.
여기에 기업자발적협약(CVA, Company Voluntary Arrangement)이라는 영국 특유의 제도가 있다. 회사가 채권자와 협상해 임대료 감액·계약 해지를 승인받는 절차로, 이 기사에서 모델라는 하비크래프트와 오리지널 팩토리 숍을 인수한 뒤 이 방식을 통해 각각 18개, 41개 매장을 정리했다고 전한다. 한국의 법정관리나 워크아웃과 목적은 비슷하지만, 임대인과의 임대차 조건을 직접 다시 쓰는 협상이라는 점이 다르다. 한국의 전세·보증금·권리금 구조에서는 임차인이 계약을 넘기며 권리금을 회수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반면, 영국에서는 남은 계약 기간 자체가 부채로 작동한다.
다만 이 기사는 임대료 수준이나 구체적 계약 조건을 수치로 제시하지 않는다. 위 설명은 영국 상업 임대차의 일반적 배경이며, 이 사건의 특정 계약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음으로 밝혀 둔다.
사는 회사가 가게를 줄인다 — 1파운드 구조조정의 산수
이 기사의 시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누가 문을 닫게 하는가"다. 모델라는 설립 4년 만에 900개 점포, 1만 명 규모의 매장을 인수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지난해에는 문구점 체인 WHSmith와 공예용품점 하비크래프트를 사들였고, 이후 18개 매장(하비크래프트, 600명 감원)과 41개 매장(오리지널 팩토리 숍)을 정리했으며, WHSmith 500개 중 20개도 닫았다.
할인점 파운드랜드는 지난해 6월 고든 브라더스(Gordon Brothers)에 1파운드(약 1,800원 수준)에 인수됐고, 그 대가로 825개 중 68개 점포가 문을 닫고 1,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기사는 이 과정을 "구조조정"이 아니라 기업 구조를 사고파는 투자회사의 전형적 방식으로 서술한다. 영국에서 브랜드와 점포망이 하나의 금융 자산처럼 거래되고, 그 거래의 비용이 현장 노동자에게 먼저 전가된다는 점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 기사의 논지다.
왜 지금인가 — 금리, 에너지, 최저임금
기사는 배경 요인으로 금리 3.75%, 에너지 가격 상승, 그리고 "한심할 정도로 인상폭이 작은" 최저임금(21세 이상 시간당 12.71파운드)을 든다. 리졸루션 재단은 신년 전망에서 올해 여러 업종에서 감원이 이어질 것으로 봤으며, 생산성이 낮은 이른바 "좀비 기업"들이 문을 닫고 그 자리를 새 기업이 메우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2025년 10월 영국 실업률은 5.1%였다.
한국식으로 읽으면 "임대료 폭등으로 상권이 몰락했다"는 서사와는 결이 다르다. 이 기사에서 상권의 위기는 임대료라는 하나의 변수가 아니라, 온라인 전환·임차 구조·금융 자본의 인수합병·최저임금 정책이 겹친 결과로 제시된다. 같은 영국 하이스트리트를 다뤄도 어떤 기사는 공실률 18%를, 어떤 기사는 임대료 상승률을 전면에 두는데, 이 기사는 고용의 관점에서 구조조정의 주체를 앞세운다.
반전 — 거리가 죽는 게 아니라, 점포의 주인이 바뀐다
"영국 하이스트리트가 무너졌다"는 통념은 절반만 맞다. 점포 수와 고용은 줄고 있지만, 빈 자리가 모두 방치되는 것은 아니다. 체인점이 빠진 자리를 카페, 식당, 클리닉, 소규모 서비스업이 채우는 용도 전환은 영국에서도 이미 관측되는 흐름이다. 이 기사가 나열한 폐업 목록의 상당수도 의류·잡화 같은 전통 소매업이고, 같은 시기 외식·배달 브랜드의 확장과 축소가 동시에 일어난다.
문제는 전환의 속도와 고용의 질이다. 체인점 한 곳이 닫히면 정규직 10여 명이, 카페 한 곳이 열리면 그보다 적은 인원이 일자리를 얻는다. 기사가 강조하는 것은 이 비대칭이다. 상권이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업종의 거리"로 바뀌는 과정에서, 고용 총량과 임금 수준이 함께 낮아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골목상권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한국의 구도심 상가와 영국 하이스트리트는 표면적으로 닮았다. 대형 유통의 확장, 온라인 쇼핑, 인구 감소로 유동인구가 줄고, 점포 공실이 늘고, 임대료 부담이 임차인의 몫으로 남는다. 서울과 지방 중소도시의 원도심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다른 점은 제도다. 한국은 임차인이 보증금과 권리금을 걸고 단기 계약을 반복하며, 재계약 때 권리금을 회수하는 시장이 발달했다. 영국은 장기 리스에 묶인 임차인이 계약 종료 시점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폐업이 곧 권리금 손실이지만, 영국에서는 폐업이 곧 "남은 계약의 부채"라는 점이 다르다. 이 차이가 어떤 나라에서 점포주가 더 빨리 문을 닫는지, 어떤 나라에서 빈 점포가 더 오래 방치되는지를 갈라놓는다.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 가포스 메인 스트리트, 2023년 4월 — 건물 2층에 임대 광고(TO LET)가 붙어 있다. 사진: Mtaylor848,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사료의 한계 — 누구의 시선인가
이 기사는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WSWS)에 실린 것으로, 유통업 구조조정을 자본의 공세와 노동조합의 무능으로 해석하는 명확한 관점을 가진다. 기사는 투자회사의 인수합병과 노동조합 USDAW의 대응을 비판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업계 전체의 회계나 임대 시장 데이터는 인용하지 않는다. 숫자는 소매연구센터와 BRC, 가디언, 리졸루션 재단의 발표를 인용한 것이므로 출처별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기사는 점포별 임대료, 계약 기간, 매출 같은 세부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인용한 임대 구조 설명은 영국 상업 임대차의 일반적 배경이며, 특정 점포의 계약 조건이나 임대료는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음으로 밝혀 둔다.
독자에게 묻는다 — 우리 동네 가게는 어떤 방식으로 사라지는가
영국에서 점포가 사라지는 방식은 "임대료가 올라서"가 아니라 "계약이 남아서"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권리금을 못 받아서", "재계약이 안 되어서"다. 같은 빈 점포라도 그 뒤에 있는 계약 구조가 다르면, 정책의 처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 최근 문을 닫은 가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 그 가게가 닫힌 이유를, 임대료 문제인지, 계약 문제인지, 아니면 손님이 사라져서인지 짐작해 본 적이 있는가.
참고 자료
· Jobs cull in UK retail industry set to continue in 2026 — World Socialist Web Site, 2026년 1월 11일 — 원문 링크
· 기사 내 인용: Centre for Retail Research(점포 폐업·해고 집계), British Retail Consortium(헬렌 디킨슨), 가디언(모델라 인수 규모), Resolution Foundation(신년 전망)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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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03:32
파운드랜드 1파운드에 팔려서 68개 점포 닫히고 1000명 해고 ㄷㄷ 1파운드로 회사 샀는데 그 비용은 현장 알바들이 내는 셈 ㅋㅋ 브랜드가 물건처럼 거래되는 거 진짜 소름이다 -
빗방울
2026.11.02 04:58
파운드랜드가 1파운드에 팔렸다는 대목에서 멈칫하게 된다. 825개 점포 중 68개가 닫히고 1,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면, 1파운드라는 값은 매장들이 아니라 남은 계약과 인력 부담이 붙은 채로 넘어간 셈이다. 인수 가격의 낮음 자체보다 그 뒤에 붙는 조건 목록을 봐야 하는 구조로 보인다. 금리 3.75%와 시간당 12.71파운드 최저임금이 나란히 배경으로 놓인 점도 눈에 띄는데, 비용 요인을 넓게 깔아두면 결국 어떤 처방이 나와야 하는지가 흐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빗방울
2026.11.02 08:27
체인점 한 곳이 닫히면 정규직 열 명 남짓이 나가고 카페 한 곳이 열리면 그보다 적은 인원이 들어온다는 대비가 인상적이다. 총량이 줄어드는 것보다 일자리의 성격이 바뀌는 쪽이 더 문제로 보인다. 우리 동네도 오래된 문구점 자리에 디저트 카페가 들어왔는데, 일하는 사람 수는 분명 줄었다. -
빗방울
2026.11.02 10:09
기사 마지막에 던진 질문이 오래 남네요. 영국은 계약이 남아서 문을 닫고, 한국은 권리금을 못 받아서 버티다 닫는다는 대비가 참 선명해요. 그러고 보면 "가게가 왜 없어졌나"를 물을 때 임대료만 보는 건 절반짜리 답인 것 같아요. 우리 동네 재개발 구역의 오래된 문방구도 결국 건물주 문제가 아니라 계약 갱신 시점에 정리됐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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