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30일, arXiv에 33쪽짜리 논문 한 편이 올라왔다. 저자는 빈 대학 철학과의 세바스티안 호르바트(Sebastian Horvat), 분류는 양자물리(quant-ph)와 물리학사·철학(physics.hist-ph) 양쪽에 걸쳐 있고, 그림은 딱 두 장이다. 제목은 「국소성, 확률, 그리고 역사의 관련성」. 논문은 첫 문장에서 독자를 자기 책상 앞으로 끌어당긴다. “내가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이 사건의 원인은 내 바로 옆의 과거에 있지, 저 멀리 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언가에 있지 않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이 이 글의 전부다. 양자역학의 벨 부등식 위반은, 정말로 상대성이론과 충돌하는가. 교과서는 대체로 그렇다고 말한다. 빛보다 빠른 영향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상관관계가 실험에서 확인됐고, 그러니 우리는 국소성(locality)이나 실재성(realism)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르바트는 이 이분법이 잘못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포기해야 하는 것은 국소성도 실재성도 아니라,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던 세 번째 가정이다. 논문은 그 가정에 ‘역사의 무관성(irrelevance of history)’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벨의 기준, 그리고 그 안의 두 개의 균열
벨이 1964년에 세운 국소 인과율(local causality)의 기준은 단순하다. 시공간의 한 점 y에서 사건 a가 일어날 확률은, y의 빛원뿔 과거 안에서 조건화하고 나면 더 이상 멀리 떨어진 점 z의 사건 b에 의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식으로 쓰면 P(a|λb) = P(a|λ)다. 여기서 λ는 y의 즉각적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의 배열이다. “멀리서 벌어진 일은, 가까운 과거를 다 알면 더 이상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호르바트가 먼저 지적하는 것은 이 기준이 애초에 무엇을 일반화한 것인지에 대한 불일치다. 결정론적 이론에서 국소성이란 ‘기능적 결정(functional determination)’이다. 맥스웰 방정식이 그렇다. 어떤 영역의 전기장·자기장 값은, 그 즉각적 과거의 장 값들로부터 함수적으로 정해진다. 즉 같은 과거 값을 가진 두 세계는 현재 값도 반드시 같아야 한다. 문제는 이 형태의 제약을 비결정론적 이론에 그대로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양자현상은 결정론적으로 기술되지 않는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벨은 ‘무엇이 일어나는가’ 대신 ‘확률이 어떻게 되는가’만 결정되도록 기준을 풀었다.
호르바트는 이 타협이 두 군데에서 어긋난다고 본다. 첫째, 결정론적 기준은 가능한 세계들의 공간, 즉 이론이 상정하는 여러 가능한 세계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데, 벨의 확률적 기준은 확률분포 하나만을 놓고 이야기한다. 둘째,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 결정론적 기준에서는 결정하는 것과 결정되는 것이 같은 종류였다. 사건이 사건을 결정했다. 그런데 벨의 확률적 기준에서는 사건이 확률분포를 결정한다. 관계의 두 항이 서로 다른 종류가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의 질문은 자연스럽다. 확률이 확률을 결정한다고 하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새 원리: 확률이 확률을 결정한다
논문이 제안하는 원리는 ‘확률적 국소성(Probabilistic Locality)’이다. 형식은 결정론적 국소성과 똑같고, 대상만 바뀐다. 점 y에서의 확률분포는, y의 즉각적 과거 빛원뿔 조각 위에서의 확률분포에 의해 전부 결정된다. 두 세계가 그 얇은 과거 조각에서 확률적으로 똑같이 말한다면, y에서도 확률적으로 똑같이 말해야 한다. 여기서 결정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었던 일들의 분포다.
민코프스키 도해의 빛원뿔. A에서 출발한 신호는 위쪽 원뿔 안으로만 진행할 수 있고, 원뿔 밖에 있는 C는 A와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논문이 말하는 ‘즉각적 과거’는 이 원뿔과, A에 임의로 가까운 과거의 시공간 단면이 만나는 얇은 조각이다 — 저작자 Sakurambo,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이 정의는 결정론적 국소성과 놀랄 만큼 닮았지만, 함의는 정반대다. 논문은 결정론적 국소성이 사실상 결정론을 함의한다는 것을 보인다. 어떤 시점의 사건이 그 직전 시점의 사건들로부터 완전히 결정된다면, 두 세계가 어느 한 순간에라도 갈라지려면 그 이전 어딘가에서 이미 갈라져 있어야 한다. 즉 이론이 국소적이려면 결정론적이어야 한다. 반면 확률적 국소성은 비결정론적 이론과 아무 충돌 없이 공존한다. 확률분포는 과거 조각에서 정해지지만, 어떤 사건이 실제로 터질지는 정해지지 않는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 원리가 ‘확률이 확률을 결정한다’는, 물리학 교과서에서는 낯선 문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조건화는 보통 사건에 대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분포 자체가 입력값이 된다. 저자는 이것이 무의미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인과율과 결정 개념을 정확히 쓰기 위해 필요한 형식적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선택이 없으면, 벨의 기준과 새 기준은 서로 다른 것을 재는 자가 되어버린다.
반전: 두 원리는 서로를 함의하지 않는다
논문의 두 번째 장면은 논리적 반전이다. 새 원리와 벨의 국소 인과율은 이름만 비슷할 뿐, 어느 쪽도 다른 쪽을 함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명제 2로 이것을 못 박고, 두 개의 반례를 직접 구성한다. 확률분포를 하나만 상정하는 이론은 새 원리를 자명하게 만족하지만, 그 하나의 분포가 벨의 조건을 어기면 벨의 기준은 위반한다. 반대로, 과거 조각에서는 확률적으로 완전히 같으면서 y에서만 확률이 달라지는 두 분포를 가진 이론은 새 원리를 위반하지만, 각 분포가 개별적으로는 벨의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벨의 기준은 분포 하나하나에 걸리는 ‘단항적(monadic)’ 제약이고, 새 원리는 분포들 사이의 관계에 걸리는 ‘이항적(dyadic)’ 제약이기 때문이다. 한 분포가 내부적으로 얼마나 잘 정돈되어 있는지는, 그 분포가 다른 분포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와 논리적으로 무관하다. 저자는 이 독립성이 “당연히” 나오는 결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벨 부등식 위반은 새 원리와도 충돌하지 않는가. 논문은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선다. 논리적 독립만으로는 부족하다. 벨의 기준 역시 그 자체로는 부등식 위반과 모순되지 않으며, ‘통계적 독립’ 같은, 논리만큼이나 의심하기 어려운 추가 가정이 붙어야 모순이 된다. 그러니 새 원리와 벨의 기준 사이에도 그런 다리 가정이 있을 수 있다. 논문의 진짜 작업은 그 다리를 찾아, 다리의 첫 번째 받침돌이 흔들린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1981년 알랭 아스페의 얽힌 광자 실험 개념도. 광원 S에서 나온 두 광자가 편광판 a·b를 지나 검출기 D+, D-로 들어가고, 두 검출 결과가 우연계수기 R에서 대조된다. 논문이 말하는 ‘벨 부등식을 위반하는 EPR형 실험’의 전형적 배치다 — 저작자 Neolexx, CC BY 3.0 (Wikimedia Commons)
숨은 가정: 역사는 무관하다
그 받침돌이 ‘역사의 무관성’이다. 논문은 외계 생물 하나를 등장시켜 설명한다. 진공에 떠 있는 빨간 피라미드는 시간 τ가 지나면 50%씩의 확률로 빨간 정육면체 또는 빨간 구가 된다. 그다음 τ가 더 지나면, 정육면체였던 것은 반드시 파란 정육면체로, 구였던 것은 반드시 초록 구로 바뀐다. 그래서 빨간 피라미드는 결국 파란 정육면체이거나 초록 구다.
이제 물리학의 오랜 관습을 적용해 보자. 기본 동역학은 마르코프적이다. 지금 상태가 충분히 세밀하게 기술되면, 미래는 과거와 무관하게 정해진다. 라플라스의 악마는 현재만 알면 과거를 배울 필요가 없다. 이 관습을 외계 생물에 적용하면, 빨간 정육면체는 그것이 피라미드에서 왔든 아니든 파란 정육면체로 가야 한다. 저자는 이 관습을 정리 4, ‘역사의 무관성’으로 형식화한다. 어떤 시점의 사건 배열이 주어졌을 때 그 이후의 확률분포는, 그 배열에 이르는 과거가 어떠했는지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반전이 온다. 새 원리(확률적 국소성)에 이 가정을 더하면, 새 원리가 벨의 국소 인과율을 함의한다. 반대로 말하면, 벨 부등식의 실험적 위반은 새 원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무관성’을 죽인다. 논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얽힌 광자 실험에서 국소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상관관계는, 같은 현재 상태에 이르는 여러 가능한 과거들을 평균해 버리면 씻겨 사라진다. 우리가 특정한 과거, 즉 EPR형 초기조건을 가진 과거만 골라 놓고 보았기 때문에 비국소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논문은 이것이 “벨 부등식을 위반하는 현상이 상대성이론, 국소성, 통계적 독립, 그리고 이른바 실재성과 긴장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시간 대칭, 그리고 경쟁 가설들
논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간다. 기초 물리 현상이 시간 대칭적이라면, 새 원리도 시간 반전된 형태를 얻는다. 어떤 점 y에서의 확률적 차이는 그 즉각적 미래에도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저자는 이를 후향인과(retrocausality)와 혼동하지 말라고 못 박는다. 지금 내가 방에 있다는 사실은 몇 밀리초 전에도 이 방에 있었다는 것을 함의하지만, 그것이 내가 과거를 ‘원인으로서’ 바꿨다는 뜻은 아니다. 표현을 바꾸면, 흔적 없는 확률적 차이는 존재할 수 없다. 역사가 관련 있다면, 시간 대칭 아래에서는 미래도 관련 있다.
경쟁 가설은 여럿이다. 초결정론(superdeterminism)은 측정 장치의 설정과 입자의 상태가 애초에 상관되어 있다고 본다. 논문은 이 가설을 직접 반박하지 않지만, 자신의 설명은 그것 없이도 성립한다고 본다. 통계적 독립을 포기하는 노선도 같은 자리를 노린다. 후향인과 역시 과거와 미래의 확률적 의존을 말한다는 점에서 가깝지만, 저자는 인과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결정(determination)이라는 단어를 쓴다. 코펜하겐 해석이나 다세계 해석 쪽에서 나올 반론은 더 근본적이다. 애초에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들의 분포’를 실재하는 것으로 다루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예리한 반론은 새 원리의 형식 자체를 겨눈다. 확률분포를 조건화의 대상이 아니라 입력값으로 쓰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조작인가. 저자도 이 점을 의식해 “확률분포가 인과적 관계를 맺을 수는 없어도 결정 관계를 맺을 수는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이 되물음은 논증이 아니라 제안이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하듯, 이 형식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이론은 아직 없다.
저자가 인정한 한계, 그리고 남는 질문
논문의 결론부는 놀랄 만큼 조심스럽다. 저자는 “EPR형 실험을 실제로 모형화하는 구체적 이론의 구성은 이 논문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고 쓴다. 새 원리를 만족하면서 벨의 기준을 위반하는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은 논리적 가능성으로만 제시된다. 각주에서는 보흐미안 이론이 새 원리를 만족하기 어렵다고 본다. 입자 위치만을 사건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위상차처럼 분포에 반영되지 않는 정보가 미래 확률을 바꾸기 때문이다. GHZ 실험은 검토 대상에서 빠져 있고, 새 원리를 다시 벨의 기준으로 붕괴시킬 다른 그럴듯한 가정이 있는지도 미해결로 남는다. 고정된 시공간 배경을 가정한 것도 단순화다. 저자 자신이 결론의 ‘might’에 각주를 달아, 더 강한 주장에는 더 체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그래서 이 논문이 실제로 남기는 것은 정리 하나가 아니라 질문 하나다. 벨 부등식 위반을 두고 우리가 60년 동안 “국소성을 포기하라”고 말해 왔는데, 혹시 우리가 포기한 것은 국소성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다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름조차 없던 가정이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얽힘은 세계가 비국소적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세계가 역사를 기억한다는 증거가 된다. 당신은 어느 쪽이 더 견디기 쉬운가. 과거가 현재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 아니면 먼 은하의 사건이 지금 이 방의 확률을 흔든다는 것.
참고 자료
Sebastian Horvat, “Locality, Probability and the Relevance of History”, arXiv:2610.41944v1 [quant-ph / physics.hist-ph], 2026년 10월 30일 제출, 33쪽 + 참고문헌, 그림 2장, CC BY 4.0. University of Vienna, Department of Philosophy. 오스트리아 과학기금(FWF) 프로젝트 DOC162 지원.
논문 원문: https://arxiv.org/abs/2610.41944v1
함께 읽을 만한 문헌: J. S. Bell, Speakable and Unspeakable in Quantum Mechanics (Cambridge, 2004); T. Norsen, “John S. Bell’s concept of local causality”, American Journal of Physics 79 (2011) 1261; W. Myrwold·M. Genovese·A. Shimony, “Bell’s Theore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24); A. Baas·B. Le Bihan, “What does the world look like according to superdeterminism?”, BJPS 74 (2023) 555.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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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15:26
빨간 피라미드가 정육면체와 구로 갈라진 뒤 다시 색으로 갈라지는 예시가 참 좋았어요. 현재 상태만 알면 과거는 필요 없다는 관습이 사실은 그렇게 당연한 게 아니었구나 싶었네요. 다만 확률분포 자체를 입력값으로 둔다는 발상이 아직 구체적 이론 없이 형식만 있다는 점은 아쉽고, 그래서 결론이 논문 제목만큼 강하게 와닿지는 않았어요.
모든 이야기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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