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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는 하늘에 그려진 것이 아니다 — 42도 원뿔 끝에서만 보이는 이유

빗방울 2026.11.02 22:30 5분 읽기 조회 27 · 추천 2

비가 그친 오후, 6시 40분쯤 창밖을 보면 산등성이 끝에서 무지개가 사선으로 툭 솟아 있다. 오른쪽 다리만 보이고 왼쪽은 구름에 먹혀 있고, 빗방울 냄새가 남은 공기 속에 색 띠는 10초쯤 선명했다가 사라진다.

그 장면을 보고 나면 거의 모두가 같은 설명을 꺼낸다. '하늘에 물방울이 많으면 빛이 꺾여서 저다가 만드는 그림자 같은 것'이라거나, '무지개는 반원 모양이라서 저렇게 뜬다'는 말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거꾸로다.

무지개는 하늘에 매달린 물체도, 구름에 투영된 그림자도 아니다. 특정한 광선이 특정한 각도로 눈에 들어오는 방향들의 집합이다. 그 집합이 하늘에서 그리는 도형은 원이고, 우리는 그 원의 아래쪽 절반을 땅에 가려서 못 볼 뿐이다.

반원은 하늘의 모양이 아니라 땅의 모양이다

무지개를 본다는 것은 '물체를 본다'는 것과 다르다. 물체는 한 방향에 고정되어 있지만, 무지개는 물방울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내 눈에서 42도 떨어진 방향에 있는 모든 점에서 빛이 온다. 그래서 내가 한 걸음 옆으로 가면 무지개도 같이 따라온다. 무지개를 쫓아가서 '끝'에 닿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 눈을 꼭짓점으로, 태양 반대쪽 방향을 축으로 하는 원뿔을 상상해 보자. 원뿔의 옆면이 지평선과 만나는 곳마다 무지개 띠가 생긴다. 땅은 그 원뿔의 아래쪽을 가리므로, 서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 솟은 호만 남는다. 지평선 위로 원뿔이 얼마나 보이느냐는 오직 내가 얼마나 높이 있느냐로 정해진다. 지면에 서 있으면 반원, 30도쯤 높은 산에 서면 거의 온전한 원, 비행기 창밖에서는 닫힌 고리가 된다.

빛은 왜 딱 42도에서 나오나

물방울 하나를 들여다보자. 빛줄기가 물방울 앞면에 닿으면 물과 공기의 경계에서 꺾인다(굴절). 파장에 따라 꺾이는 각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분산) 색이 갈라지고, 뒷면에 닿은 빛은 일부가 반사되어 다시 앞면을 지나 나온다. 이 경로가 1차 무지개를 만든다.

핵심은 '들어온 각도에 따라 나가는 각도가 얼마나 다른가'다. 빛이 물방울에 비스듬히 들어오는 각도를 바꿔가며 나가는 각도를 계산하면, 대부분의 각도에서는 빛이 넓게 흩어지지만 특정 한 곳에서는 흩어지지 않고 몰린다. 수학에서는 이 지점을 극값, 한국어로는 '쏠림점'이라 부른다. 이때 꺾인 빛은 들어온 방향에서 약 42도 방향으로 가장 촘촘히 모인다. 그래서 42도에서 0.5~1도 폭의 밝은 띠가 생기고, 그 바깥은 급격히 어두워지며 안쪽은 밝다.

관측자 눈을 꼭짓점으로 하는 원뿔의 가장자리 — 땅이 아래쪽을 가려 반원처럼 보인다. 직접 도해.

쌍무지개에서 색 순서가 뒤집히는 까닭

두 번째 무지개는 물방울 안에서 한 번 더 반사될 때 생긴다. 이때 빛의 경로가 하나 더 늘어나므로 쏠림점의 각도가 51도로 커지고, 밝기는 대략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반사가 한 번 더 일어나면서 색이 갈리는 방향이 뒤집힌다. 그래서 2차 무지개는 빨강이 안쪽, 보라가 바깥쪽에 놓인다.

그 두 원 사이의 하늘은 어둡다. 42도 안쪽에서 한 번 반사된 빛이 나오고 51도 바깥에서 두 번 반사된 빛이 나오는데, 그 사이 구간에는 어느 쪽도 빛을 집중시키지 못한다. 이 어두운 띠를 '알렉산더의 어두운 띠'라고 부른다. 쌍무지개를 볼 때 두 호 사이가 유난히 어둡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착시가 아니라 기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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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하나: 태양 고도와 무지개 높이

무지개 꼭대기의 고도는 태양 고도에 따라 정해진다. 태양이 지평선에 가까울 때 꼭대기 고도는 대략 42도, 태양이 30도 높이 있으면 꼭대기는 약 12도, 태양이 42도보다 높이 올라가면 무지개는 아예 땅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여름 한낮처럼 태양이 60도 넘게 솟은 때 무지개를 찾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헛수고인 이유다. 대신 같은 조건에서 분수가 뿜는 물보라나 물뿌리개를 태양 등지고 쏘면 42도 고리에 즉시 무지개를 만들 수 있다.

이 숫자는 계산과 실측이 서로 맞아떨어지는 드문 사례다. 물의 굴절률을 넣어 극값을 풀면 나오는 값이 관측된 띠의 위치와 일치한다. 그래서 무지개의 각도는 '대략 그렇다더라'가 아니라 검산할 수 있는 상수처럼 다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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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에 닿는 무지개의 다리 — 오른쪽 끝만 보이도록 구름이 가린 장면. Basile Morin,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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