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2일, 경기신문 1면에 한 줄짜리 숫자가 실렸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그해 4분기 경기지역 소규모 상가 공실률 가운데 시흥 ‘신천역 상권’이 22.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기도 평균이 6.7%였으니 세 배가 넘는 수치다. 가게 다섯 개 중 하나 남짓이 셔터를 내린 채 남아 있다는 뜻이고, 그 자리에는 임차인 대신 부동산 중개소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을 것이다.
같은 기사에서 더 눈에 걸리는 것은 두 번째 숫자다.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가장 높은 곳은 수원 ‘팔달문로터리’로 20.0%였다. 경기 중대형 상가 평균 10.6%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소규모 상가의 1위와 중대형 상가의 1위가 서로 다른 두 곳이라는 사실은, 이 현상이 단순히 ‘경기가 어렵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신호다.
사거리에 성문이 서 있는 동네
팔달문은 수원화성의 정문(남문)이다. 성문을 중심으로 사거리가 열리고, 그 둘레를 로터리처럼 돌아가는 도로 구조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성곽이 시가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보기 드문 도시 구조라, 팔달문 일대는 관광객과 지역 주민의 동선이 겹치는 지점이자 유동인구가 차량 위주로 흐르는 구간이기도 하다.
‘상권’이라는 말은 막연하게 들리지만 실무에서는 곧 ‘반경 몇 미터 안에서 하루에 몇 명이 지나가고, 그중 몇 명이 들어와 돈을 쓰는가’의 문제다. 공실률은 그 계산이 맞지 않기 시작했다는 결과값이다. 들어오는 사람 수가 같아도 체류 시간이 줄고, 지출 단가가 낮아지면 가게의 임대료 지불 능력이 먼저 무너진다. 폐업은 그다음에 온다.
수원 팔달문(남문)과 성문 앞 로터리 — Mobius6,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임대료가 먼저 오르고, 사람이 그다음에 떠난다
상권 쇠퇴를 볼 때 흔히 ‘사람이 없어서 망했다’고 말하지만 순서는 대개 반대다. 임대 계약은 몇 년 단위로 갱신되고, 갱신 시점의 기대 수익은 그 동네의 과거 성적표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한때 잘 되던 구간은 그 기억 때문에 임대료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그 사이 소비는 줄고 배달·온라인 주문은 늘어 매장의 매출 몫이 작아진다. 그러다 보니 남은 임차인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임대료로 내보내게 되고, 그다음 신규 창업자가 들어올 계산이 맞지 않는다.
기사에 등장하는 지역 목록은 이 구조를 잘 보여준다. 소규모 상가에서는 신천역(22.2%)에 이어 여주시청(21.2%), 팔달문로터리(19.2%), 안양역(17.1%), 안성시장(14.6%), 동두천중앙로(13.8%), 하남원도심(10.3%), 포천시외버스터미널(10.2%), 인덕원(9.4%) 순으로 평균을 웃돌았다. 중대형 상가에서는 팔달문로터리(20.0%) 다음이 아주대삼거리(18.5%), 하남원도심(17.8%), 안성시장(17.4%), 부천역(16.7%), 탄현역(15.8%), 동두천중앙로(15.5%), 안양역(14.1%)이었다.
주목할 점은 역세권이 대거 포함됐다는 것이다. 신천역, 안양역, 부천역, 탄현역, 기흥역, 의정부역, 구리역. 지하철역이 있으면 사람이 모인다는 통념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역은 사람을 ‘지나가게’ 하지만 반드시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 서울로 30분이면 닿는 역 주변에서는 굳이 동네에서 고가의 서비스를 소비할 이유가 줄어든다.
업종은 사라지지 않고 갈아타진다
이 기사가 확인해 주는 것은 공실의 규모와 위치까지다. 어느 업종이 늘고 어느 업종이 빠졌는지는 원문에 업종별 통계가 제시되지 않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전국 상가 임대 시장에서 관찰되는 방향은 비교적 일관된다. 의류·신발·잡화 같은 판매형 소매가 줄고, 카페·간편식·체험·서비스 업종이 그 자리를 메우는 흐름이다. 문제는 후자가 전자보다 매출 변동성이 크고,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수익 배분이 임대료 부담을 더 무겁게 만든다는 점이다.
‘상권이 죽었다’는 진단과 ‘업종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진단 사이에는 실제로 둘 다 참인 구간이 있다.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나가지만, 그 사람들이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 공실률은 그래서 ‘수요 소멸’과 ‘수요의 형태 변화’를 동시에 담는다. 숫자만 보면 둘을 구분할 수 없다.
한국 상가 임대 시장은 어떻게 생겼나
한국 상가 임대차에는 주거 임대에 없는 항목이 하나 더 있다. 권리금이다. 기존 임차인이 확보한 ‘장사 자리’의 가치를 새 임차인에게 유·무형 자산과 함께 넘기고 받는 돈으로, 시설·영업권·단골 등이 그 대상이다. 상권이 좋을 때는 임대인 동의 아래 거래가 이뤄지지만, 시장이 식으면 가장 먼저 협상에서 빠지는 항목이기도 하다. 권리금이 붙지 않는 매물은 곧 ‘이 자리로는 돈을 못 번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다음이 보증금과 월세다. 상가 임차인은 대개 1~2년 단위로 계약하고 갱신 시 임대료 인상을 협상한다. 상업용 건물에는 주택처럼 일률적인 갱신 제한이 적용되지 않아, 계약 만료 시점의 협상력이 임차인 편에 서기 어렵다. 공실률은 이 협상의 결과로 나타난다. 임대인이 월세를 낮춰 새 임차인을 구하지 않으면 빈 가게가 늘고, 그 빈 가게가 늘어나면 상권 전체의 보행 동선이 끊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다.
지자체가 푼 카드와 남은 문제
기사에 따르면 시흥시는 2022년부터 신천역 로데오거리 등 역세권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며 2026년까지 총사업비 1억 1,000만 원을 투입해 특화거리 조성과 상인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다. 수원시는 남수문–팔달문–팔달산 사이 성곽 304m 구간을 복원하는 ‘팔달문 성곽잇기 사업’으로 유입 인구를 늘려 주변 상권을 안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성남시는 서울 성수동·홍대처럼 지역 대표 동네상권을 육성하겠다며 중소형 동네상권 ‘로컬상권 육성사업’을 진행하고, 선정된 상권에 내년까지 2년간 최대 10억 원을 지원한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규모다. 총사업비 1억 1,000만 원은 신천역 상권 전체를 다시 짜는 비용이라기보다 소규모 개선 사업에 가까운 금액이다. 성곽 복원은 관광 유입에 기여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상가 임대료 부담을 낮춰 주지는 않는다. 관광객은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고, 유입 인구가 늘면 임대료가 먼저 반응하는 경향도 있다.
다른 지역의 경험, 비교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기사에는 경기도 밖의 사례나 다른 지역과의 직접적인 비교는 나오지 않는다. 참고할 만한 비교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표기해 둔다. 다만 같은 기사 안에서 소규모 상가와 중대형 상가의 1위가 다르다는 대조가 하나의 비교로 남는다. 소규모 상가는 역세권과 골목의 문제이고, 중대형 상가는 상권 핵심부의 문제라는 구조가 숫자에 드러난다.
이 기사가 보여주지 않는 것
자료의 출처는 한국부동산원 집계이고, 기사는 지자체의 대응을 소개하는 구성으로 쓰였다. 지자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임대인의 입장이나 임차인 부담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진다. 기사 말미에 인용된 전문가의 발언도 활성화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으며, 반대로 사업이 효과를 내지 못한 사례는 나오지 않는다. 이 글 또한 그 원문 수치와 구성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숫자는 유용하다. 22.2%라는 공실률은 실패한 가게의 목록이 아니라, 그 동네에서 어떤 종류의 장사가 아직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다. 빈 점포는 상권의 종말이 아니라 다시 쓰이는 방식을 기다리는 공백일 수 있다. 다만 그 공백을 견디는 사람은 대개 임차인 쪽이다.
독자에게
당신이 사는 동네에서 셔터 내린 가게가 늘었다면, 그 가게가 사라진 뒤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왔는지 떠올려 보시길. 같은 종류의 가게였는가, 전혀 다른 업종이었는가. 그리고 그 자리의 임대료는 과연 내려갔을까. 여러분의 동네는 어떤 방식으로 비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참고 자료
경기신문, 「경기도 상권 공실률 ‘고공행진’…지역 경제 육성 나선 지자체」, 2024년 4월 22일 —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790718
사진: Wikimedia Commons, File:Paldalmun 20240929 001.jpg — Mobius6, CC BY-SA 4.0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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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3 20:32
허허, 옛날엔 역 앞이면 다 장사가 됐지. 내 젊을 적엔 부평역에서 내려 한 정거장만 걸어도 좌판이 빼곡했거든. 그런데 요즘 신천역 얘기 보면 역이 사람을 지나가게만 하고 머물게는 안 하더군. 나는 그 이유를 옛날식으로 한 가지 더 붙이고 싶어. 지방 사람이 서울 가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 30분이면 닿으니 옷 한 벌 사러 여기 안 서고 명동까지 가버리는 거지. 그러니 임대료만 옛 명성 따라 버티면 남는 건 셔터뿐이라네. -
빗방울
2026.11.03 20:45
권리금 얘기 나온 김에 하나. 시장이 식으면 제일 먼저 협상에서 빠지는 게 권리금이라는 대목이 좀 씁쓸함. 자리값이 붙지 않는 가게는 '여기선 돈 못 번다'는 표지판이 되는 셈이라, 임대인이 월세를 안 내리면 그 표지판만 오래 걸려 있게 됨. 동네 상권 살리는 사업이 화려한 특화거리 쪽으로 가는 것도 결국 보이는 게 빠르니까 아닐까 싶기도 하고. -
빗방울
2026.11.03 21:05
권리금 이야기 저도 남 일 같지 않아서 한참 읽었어요.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단골이던 식당이 문을 닫았는데, 그 자리는 몇 달째 비어 있고 바뀐 건 간판뿐이더라고요. 권리금이 붙지 않는 매물이 '여기선 못 번다'는 신호라는 말도, 자리를 떠난 주인 입장에선 참 씁쓸한 대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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