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정부가 AI 시대 개인정보 규칙을 손대겠다고 나섰다. 11월 1일 열린 제3차 「모두의 토론회」에서 나온 숫자가 방향을 정했다. 온라인 사전 토론에 참여한 1,333명 가운데 88%가 '동의 절차가 반복되면 형식적으로 누르고 넘어간다'고 답했고, 94%가 '미리 동의받기보다 알기 쉽게 알려주고 언제든 거부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 의견을 반영해 연내 '개인정보 제도 혁신 방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왜 지금, 동의 제도인가
우리 개인정보 보호 체계의 중심은 '동의'다. 이용자가 체크박스를 누르면 그때부터 처리가 허용되는 구조다. 그런데 AI 서비스는 이 전제를 흔든다. 대화 이력, 위치, 외부 서비스 정보를 결합해 답을 만들기 때문에, 어떤 정보가 언제 어디에 쓰일지 미리 목록으로 제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의 항목을 늘리면 보호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대충 누르게 만든다는 지적이 그동안 꾸준히 나왔다.
토론회 발제에서 김도승 전북대 교수는 동의 외의 적법 처리 근거를, 김병필 KAIST 교수는 AI 에이전트 환경에서 기존 동의 제도의 한계를 각각 짚었다. 제도 개편의 필요성 자체는 이미 전문가·시민 양쪽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는 뜻이다.
토론회 숫자가 말한 것
현장 참가자 195명 대상 설문에서는 89.7%가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세부적으로 29.2%는 '기본 틀부터 새로 짜야 한다', 60.5%는 '틀은 유지하되 AI 시대 규정을 더해야 한다'고 했다. 급진적 전면 개편보다 보완 쪽이 우세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분임토론에서는 25개 분임 중 20개(80%)가 '미리 알리고 언제든 멈추기' 방식을 선호했다. 매번 동의를 구하는 방식은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AI 편의성·긴급 대응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반대로 4개 분임(16%)은 유출·남용 우려와 기업 불신을 들어 '매번 미리 동의'를 택했다. 1개 분임은 의견이 균등하게 갈렸다고 밝혔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행정안전부 보도자료 원문 화면 — 정책브리핑(korea.kr) 화면 캡처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나
이용자가 얻는 것은 거부권의 실질화다. 지금은 동의 화면을 대충 넘기고 나면 이후 통제 수단이 마땅치 않다. '알리고 언제든 멈추기' 방식이 제도화되면 사후 철회가 기본값이 된다. 다만 매번 확인받는 절차가 사라지는 만큼, 스스로 설정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은 남는다.
기업은 처리의 예측 가능성을 얻는다. 매번 동의를 다시 받아야 하는 마찰이 줄고, AI 학습·서비스 개선에 데이터를 쓸 여지가 넓어진다. 반대로 고지 의무와 위험도별 보호조치 설계, 투명성 확보라는 새 부담을 진다. 현장에서 '기업의 위험 점검·보호 책임'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이 75.4%로 1위였던 것도 이 부담을 전제로 한 기대다.
감독기관은 기준 마련과 실태 감독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의 기준 마련·실태 감독'을 꼽은 응답도 74.9%로 사실상 기업 책임과 동률이었다.
통념과 다른 지점
흔한 통념은 '동의를 많이 받을수록 안전하다'이다. 이번 설문은 정면으로 반박한다. 동의 절차가 반복되면 88%가 형식적으로 처리했다고 고백했다. 동의 화면을 읽고 결정한다는 응답은 51%에 그쳤고, 나머지 49%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모순이 있다. 응답자의 81%는 정보 활용을 거부해 AI 답변이 덜 정확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고, 90%는 AI 비서가 정보를 다른 곳에 넘기기 전엔 매번 확인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 응답자 61%는 '일 처리 과정에서 단계마다 확인받기보다 한 번에 처리하는 게 낫다'고도 답했다. 즉 사람들은 '외부 이전'에는 엄격하고 '내부 처리'에는 관대하다. 제도 설계의 쟁점은 동의 횟수가 아니라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라는 뜻이다.
반론과 한계
이번 토론회는 195명 현장 참가와 1,333명 온라인 투표라는 표본에 기반한다. 자기선택 표본이므로 전체 국민의 의견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정확한 표본 설계와 오차범위는 확인되지 않음.
또한 연내 마련하겠다는 '제도 혁신 방안'의 구체적 내용, 법 개정 여부, 시행 시기는 이번 보도자료에 담기지 않았다. 어떤 조항이 어떻게 바뀔지는 확인되지 않음. 매번 동의를 선호한 16%의 우려, 즉 유출 시 책임 소재와 피해 구제 절차는 아직 다뤄지지 않았다. 소규모 사업자의 이행 비용에 대한 논의도 이번 자료에는 없다.
독자가 할 일
당장 신청할 것은 없다. 다만 제도 개편 전에 자기 정보 처리 현황을 점검해 두는 게 좋다. 구글·애플 등 계정 설정의 '앱별 접근 권한'을 한 번 정리하고, AI 서비스의 학습 이용 거부 옵션이 있는지 확인해 두면 개편 이후의 거부권 행사가 수월해진다. 다음 토론회는 11월 26일 '누구도 혼자 고립되지 않는 사회'를 주제로 열리며, 행안부 누리집이나 '모두의 광장'에서 신청할 수 있다.
사료의 한계
이 글은 정부 공동주최 행사의 결과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토론회 설계와 문항, 의견 수렴 방식은 주최 측이 정한 것이므로, 결과가 특정 방향(동의 완화)에 유리하게 구성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대편 입장, 특히 '동의 약화는 곧 보호 약화'라는 시민단체·학계의 비판은 자료에 담겨 있지 않다. 실제 제도 개편안이 나오면 그 내용을 따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 개인정보보호위원회·행정안전부, 「『모두의 토론회』로 모은 국민의 목소리 "AI 시대 개인정보, 유연한 처리·명확한 고지·확실한 거부권 필요"」, 2026. 11. 5. 즉시보도
· 정책브리핑: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788109
여러분은 동의 화면을 실제로 읽고 누르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냥 넘기시나요?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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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5 18:53
동의 화면 88%가 그냥 넘긴다는 숫자가 결국 답이네요. 많이 묻는 게 안전이 아니라 안 읽게 만드는 거니까.
모든 이야기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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