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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 하나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에너지를 계산하면 0이 나온다. 이것은 계산을 대충 해서 나온 0이 아니다. 고전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중력파가 먼 곳까지 에너지를 실어 나른다고 본다. 그런데 그 파동을 양자장론의 언어로 다시 적는 순간, 곡률로 만든 국소 항도 0이 되고 진공 편극도 0이 된다. 에너지를 나른다고 모두가 동의하는 바로 그 대상이, 에너지를 재는 장부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는 것이다.

안토니오 페레이로와 안드레아 카발라로가 2026년 10월 arXiv에 올린 논문 「When quantum field theory kicks in: the relation between matter, gravity and energy」는 이 이상한 칸막이를 정면으로 다룬다. 저자들은 물리학이 아니라 과학철학 쪽 연구자다. 그래서 새 이론을 제안하는 대신, 이미 확립된 계산을 다시 읽어 '무엇이 물질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양자화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추적한다. 결론은 겸손하면서도 꽤 급진적이다. 물질과 시공간을 가르던 고전적 경계는 양자장론을 거치는 순간 어느 쪽으로도 유지되지 않는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 에너지라는 시험대

논문은 먼저 아주 좁은 기준을 세운다. 저자들이 '최소 고전 물질 기준'이라 부르는 것에는 두 가지 요구만 들어 있다. 첫째, 그 장에 운동방정식이 있고 그 장들로 이루어진 스트레스-에너지 텐서가 존재해야 한다. 둘째, 여러 장이 상호작용한다면 그 상호작용이 스트레스-에너지의 교환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논문 2장의 예시는 스칼라장 φ와 외부 원천 J를 결합한 작은 모형이다. 두 장 각각에 운동방정식과 스트레스-에너지가 있고, 둘을 더하면 발산이 0이 된다. 즉 에너지가 오가며 총량이 보존된다.

이 기준을 택한 이유가 흥미롭다. 저자들은 에너지의 존재를, 모든 종류의 고전적 물질에 공통된 핵심을 마련해 주는 동시에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을 물질이 아니라고 배제하는 근거로 쓴다. 같은 잣대가 한쪽은 포함하고 한쪽은 배제한다. 그런데 그 잣대를 양자장론에 그대로 대 보면, 배제했던 쪽이 다시 들어온다. 논문 전체의 서사는 이 한 줄에서 출발한다.

2019년의 정리: 중력 에너지는 있을 수 없다

고전 이론에서 중력장이 물질이 아닌 이유는 두 갈래다. 첫째, 중력은 모든 장과 보편적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중력과 상호작용해서 에너지를 주고받는 상대'를 특정할 수 없다. 모든 장이 중력과만 상호작용한다면 그 장은 저절로 보존되므로, 교환 관계를 세울 대상이 사라진다. 둘째는 더 근본적이다. 중력 스트레스-에너지 텐서라는 물건이 애초에 존재할 수 있는가.

논문은 에리크 쿠리엘(Curiel)이 2019년에 제시한 정리를 재구성한다. 중력 스트레스-에너지 후보가 만족해야 할 조건은 다섯 개다. 리만 텐서의 좌표 무관한 함수일 것, 두 개의 공변 지표를 가진 대칭 텐서일 것, 스트레스-에너지의 물리적 차원을 가질 것, 물질의 스트레스-에너지가 사라지는 곳에서 발산이 0일 것, 곡률이 0이 아닌 곳에서 0이 아닐 것. 증명은 짧고 잔인하다. 차원 조건이 미분 차수를 2차로 고정하고, 그러면 후보는 리만 텐서의 0차 결합인 aRμν+bRgμν뿐이다. 발산이 0이 되도록 하면 아인슈타인 텐서 Gμν의 상수배만 남는다. 그런데 Gμν는 리치 텐서가 0인 곳에서 0이다. 슈바르츠실트 외부나 진공의 중력파처럼 리치 텐서는 0인데 리만 텐서는 0이 아닌 공간이 실제로 존재한다. 다섯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텐서는 없다. 정적 블랙홀도 중력파도 에너지를 갖지 않는다는 결론이 따라온다.

양자장을 켜면 계산이 바뀐다

3장에서 무대가 바뀐다. 장을 연산자로 승격하면 스트레스-에너지 텐서는 한 점에서의 장의 곱이 되어 정의되지 않는다. 논문은 점 분리(point-splitting)와 하다마르 파라메트릭스(Hadamard parametrix)를 이용한 표준적 재규격화를 따라간다. 두 점의 곱에서 기하학만으로 정해지는 특이 부분 H(x,x')를 빼면 유한한 연산자가 남는다. 문제는 그렇게 뺀 것이 자동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존을 되살리려면 곡률만으로 만들어진 국소 항 Cμν(x)를 더해야 한다. 이 항은 어떤 상태를 고르기 전에, 즉 진공을 정하기 전에 이미 연산자에 들어 있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지점이 여기다. 물질 장의 에너지를 정의하는 과정 자체가 시공간 기하학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보존 법칙은 연산자 사이의 항등식이 아니라 기댓값 수준에서만 성립한다. 고전장 J는 양자장의 기댓값에 의해 구동되는 평균장이 되고, 에너지 교환의 균형은 그 수준에서만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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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에너지를 도식화한 그림. 양자장론에서 진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재규격화로 걸러내야 하는 무한한 기여의 바탕이며, 논문이 말하는 기하학적 반대항도 바로 이 진공 구조에서 나온다. — Greg A L,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반전: 규모 불변성이 깨지면 조건도 깨진다

여기서 논문의 핵심 반전이 나온다. 쿠리엘 정리의 세 번째 조건, 즉 '스케일을 바꿔도 변하지 않는 무게 0의 대상일 것'이라는 요구는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gμν→λgμν 변환에 대해 불변하다는 가정에서 유도된다. 우변의 Gμν가 그 변환에 불변이니 우변의 원천도 무게 0이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반고전적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그 가정을 만족하지 않는다. 질량 없는 스칼라장을 등각 결합으로 다루면 고전적으로는 바일 불변이라 흔적이 0이지만, 양자화하면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등각 변칙(conformal anomaly)으로 남는다. 논문이 인용하는 값은 단일 스칼라에 대해 cW=1/1920π², aE=1/5760π²다. 흔적은 상태와 무관한, 곡률 불변량으로만 만들어진 항이 된다. 방정식의 흔적을 취하면 좌변은 λ-1로, 우변의 곡률 제곱 항은 λ-2로 변한다. 한 방정식 안에 서로 다른 무게가 섞이므로 규모 불변성은 성립하지 않고, 무게 0을 요구하던 근거도 함께 무너진다. 조건이 사라진 자리에 국소 후보 TGravμν가 다시 들어온다.

두 개의 해석, 하나의 결론

저자들은 이 결과를 두 갈래로 읽는다. 첫째는 '평등주의(egalitarian)'다. 데니스 렘쿨(Lehmkuhl)이 2008년에 정리한 구도에 따르면 일반상대성이론의 해석은 기하학 우선, 장 우선, 그리고 둘을 환원 없이 나란히 두는 평등주의로 갈린다. 논문은 여기에 세 번째 축을 더하자고 제안한다. 물질적 또는 에너지적 의미다. 즉 어떤 수학적 대상이 보존되는 에너지 장부에 기여하면 물질적 의미를 갖는다. 고전적으로는 미터법에 없던 이 의미가, 재규격화가 강제한 기하학적 항 Cμν를 통해 반고전적 수준에서 생겨난다.

둘째는 '통일주의(unificationist)'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이 중력을 기하학화한다는 말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nichtssagend)'이라고 일축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관성과 중력이 하나의 관성-중력장의 두 측면이 되는 통일이었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관측자의 4속도에 따라 갈리지만 불변량은 패러데이 텐서 하나인 것과 같은 구조다. 중력 에너지와 비중력 에너지의 구분도 같은 모양이다. 다만 전자기학에서는 기준 구조를 언제나 고를 수 있는 반면, 여기서는 선호 진공을 시간꼴 킬링 벡터장처럼 시공간의 대칭성이 공급해 주어야 하고, 일반적인 시공간에는 그런 대칭성이 없다.

딜레마: 양쪽 뿔 모두 고전적 구분을 죽인다

통일을 약하게 읽으면 두 에너지는 각각 의미를 갖는다. 논문은 팽창 우주에서 등각 결합 무질량 스칼라를 KMS 상태로 두고 실제로 분해해 보인다. 진공 편극 부분은 곡률로 만든 두 국소 보존 텐서의 조합으로 남고, 나머지는 ρβ=π²/30·(aβ)⁴, pβ=ρβ/3인 복사 유체가 된다. 이 독법에서는 중력 에너지가 우주의 복사 성분만큼 실재적이며, 미터법은 광자만큼이나 물질이다.

통일을 강하게 읽으면, 즉 분해 자체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면 결과는 정반대다. 전체만이 진짜 양이고, 나뉜 조각은 인위적이다. 그러면 중력 에너지는 무의미하다. 그런데 같은 논리로 비중력 양자장의 에너지도 무의미해진다. 진공을 고르지 않고는 그 에너지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고전장뿐이고, 물질은 고전장으로 축소된다. 논문의 표현대로 어느 뿔에서도 물질과 시공간의 고전적 구분은 살아남지 않는다. 이것이 이 글의 가장 반직관적인 결론이다. 중력을 물질로 만들려는 시도가 실패하면 물질 쪽이 먼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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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주 핸퍼드의 LIGO 간섭계 시설. 논문이 지적한 역설은 이런 검출기가 잡아내는 중력파의 에너지가, 저자들이 구성한 반고전적 장부에서는 0으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 NOIRLab/LIGO/NSF/AURA/T. Matsopoulos, CC BY 4.0 (Wikimedia Commons)

논문이 인정한 구멍, 그리고 남는 질문

저자들은 스스로 가장 아픈 반례를 5장에 적어 둔다. 이상화된 평면 중력파다. 이 파동의 곡률은 N형이라 곡률의 제곱 스칼라가 모두 0이고, 따라서 Cμν=0이다. 여기에 더해 평면파는 진공을 편극시키지 않으며(Deser 1975) 입자를 만들지도 않는다(Gibbons 1975). 결과적으로 재규격화된 진공 기댓값 전체가 0이 된다. 고전 이론에서 중력 에너지의 대표 선수였던 대상이, 미터법에 물질적 의미를 부여한 바로 그 장부에서 정확히 0을 기록한다. 논문은 이것을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 열린 문제로 남긴다.

각주에서 한계를 더 좁힌다. 이 눈멂은 진공과 평면파 이상화에 국한된 것이다. 일반적인 복사 배경은 진공을 편극시키고, 들뜸 자체는 파동을 느낀다. 또한 논문이 쓰는 '최소 양자 물질 기준'은 최소한일 뿐이며, 더 정교한 기준은 후속 연구에 맡긴다. 고전장 J가 미터법과 상호작용하면서도 에너지를 교환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별도로 인정한다. 요약하면 이 논문은 중력이 물질이라는 강한 주장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을 막던 고전적 장애물 하나가 양자화 앞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남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선택이다. 블랙홀이나 중력파가 에너지를 갖는다고 우리가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관측이 총량만 정해 주고 분해는 정해 주지 않는다면, '중력 에너지'라는 말은 물리량의 이름인가 아니면 좌표계의 이름인가. 여러분은 어느 쪽 손을 들겠는가.

참고 자료

Antonio Ferreiro, Andrea Cavallaro, 「When quantum field theory kicks in: the relation between matter, gravity and energy」, arXiv:2610.10588v1 [physics.hist-ph], 2026년 10월 6일 제출. https://arxiv.org/abs/2610.10588

E. Curiel, 「On Geometric Objects, the Non-Existence of a Gravitational Stress-Energy Tensor, and the Uniqueness of the Einstein Field Equation」,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B 66 (2019) 90–102.

D. Lehmkuhl, 「Is spacetime a gravitational field?」, in The Ontology of Spacetime II (2008); 「Why Einstein did not believe that general relativity geometrizes gravity」, SHPS B 46 (2014) 316–326.

S. Deser, 「Plane waves do not polarize the vacuum」, J. Phys. A 8 (1975) 1972; G. W. Gibbons, 「Quantized Fields Propagating in Plane Wave Space-Times」, Commun. Math. Phys. 45 (1975) 191–202.

S. Hollands, R. M. Wald, 「Conservation of the stress tensor in interacting quantum field theory in curved spacetimes」, Rev. Math. Phys. 17 (2005) 22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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