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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가 비어 있는 가로수길 — 상권이 죽은 게 아니라 계약의 크기가 바뀌고 있다

빗방울 2026.11.05 20:26 8분 읽기 조회 27 · 추천 2

가로수길 가게 출입문에 붙은 전단에는 세 글자가 많다. ‘임대’, ‘깔세(선 월세)’, ‘통임대’.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가 집계한 올해 2분기 가로수길 공실률은 43.9%로, 서울 주요 상권 가운데 가장 높았다. 기사는 이 숫자를 ‘죽을 사(死)’ 자에 빗대 흉내 냈지만, 숫자 자체는 비유보다 건조하다. 같은 기간 압구정로데오·성수동 등 서울 7대 길거리 상권의 평균 공실률은 15.2%였다. 열 채 중 네 채 남짓이 비어 있다는 것은, 그 거리에서 장사가 안 된다기보다 그 거리의 가격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는 신호에 가깝다.

비어 있는 거리, 남아 있는 이름

가로수길은 신사동의 은행나무 가로수 아래 골목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서울을 대표하는 ‘힙한’ 길로 떠올랐다. 편집숍, 독립 브랜드, 디자이너 카페가 줄지어 들어서면서 관광객과 외지인이 몰렸고, 그 명성이 곧 임대료가 됐다. 기사는 이 명성이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상권이 뜨거워진 만큼 가격이 먼저 올랐고, 가격을 감당하지 못한 임차인이 떠나면서 빈 점포가 늘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새로울 것이 없다. 한국의 길거리 상권은 대개 같은 순서로 성장하고 같은 순서로 멈춘다. 입소문이 나고 → 임대료가 오르고 → 개성 있는 소규모 점포가 밀려나고 → 대형 브랜드만 남고 → ‘그때 그 거리’의 매력이 사라진다. 가로수길은 그 순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에 가깝다.

임대료 ㎡당 9만 3,620원이라는 숫자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사역(가로수길)의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당 9만 3,620원, 서울시 전체 평균은 ㎡당 5만 5,090원이었다. 약 두 배 차이다. 30㎡(약 9평) 남짓한 점포라면 한 달 임대료만 280만 원 안팎이라는 뜻이고, 여기에 관리비와 부가세가 더 붙는다.

문제는 임대료가 오르는 동안 그 임대료를 낼 만한 매출이 같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사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이 약해진 것을 함께 지목한다. 임대료는 ‘과거의 전성기’를 기준으로 매겨지는데 손님은 ‘현재의 소비 방식’에 따라 움직이니, 두 숫자가 벌어지는 만큼 공실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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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야경 — sellyourseoul, CC BY 2.0 (Wikimedia Commons)

업종이 바뀐 것이 아니라 업종의 ‘크기’가 바뀌었다

가로수길에서 빠져나간 것은 대체로 한 사람이 3∼5평 남짓에서 운영하던 소규모 독립 상점들이다. 기사는 그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나 외국계 브랜드가 들어오면서 상권의 개성이 옅어졌다고 평가한다. 애플스토어의 장기 임대가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애플스토어가 들어선 뒤 주변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고, 가격 부담이 커진 임차인들이 떠났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흔히 ‘상권이 죽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숫자를 보면 결론이 조금 달라진다. 43.9%라는 공실률은 점포 단위의 빈자리가 아니라, 큰 면적을 한꺼번에 임대해야 하는 구조의 결과일 수 있다. ‘통임대’는 건물 전체나 여러 층을 한 임차인에게 묶어 내주는 방식이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관리가 편하지만, 그 규모의 보증금과 월세를 낼 수 있는 업체는 결국 자본력 있는 프랜차이즈뿐이다. 상권은 비어 가는 게 아니라, 채울 수 있는 후보의 목록이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권리금·보증금·공실률 — 한국 상가의 가격 구조

한국 상가 임대 시장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숫자를 구분해야 한다. 첫째, 보증금이다. 계약을 맺을 때 맡기고 나중에 돌려받는 돈으로, 통상 월세의 10∼20배 수준에서 협상된다. 둘째, 월세다. 매달 나가는 고정비이고, 상권이 뜨거울수록 협상력이 건물주 쪽으로 넘어간다. 셋째, 권리금이다. 기존 임차인이 장사하던 자리와 시설, 단골을 물려받는 대가로 새 임차인이 치르는 돈이다.

권리금은 법으로 정해진 가격이 아니라 시장에서 형성되는 ‘영업의 값’이다. 상권이 뜨거우면 권리금이 급등하고, 반대로 상권이 식으면 권리금이 사라지기보다 ‘무권리금’이라는 형태로 먼저 무너진다. 가로수길에서 소규모 점포가 사라진 이유도 이 구조와 맞닿아 있다. 보증금과 권리금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데, 장사가 흔들리면 그 두 덩어리가 가장 먼저 발목을 잡는다.

공실률은 이 가격 구조의 결과를 보여주는 지표다. 단순히 ‘비어 있는 점포의 비율’이 아니라, 건물주가 원하는 가격과 임차인이 낼 수 있는 가격이 만나지 못한 면적의 비율이다. 그래서 공실률이 높다고 임대료가 즉시 내려가지는 않는다. 가격을 낮추면 자산 가치가 함께 내려간다고 보는 건물주가 버티는 동안, 공실은 유지된다.

임대료를 낮춰 살린 동네, 못 살린 거리

기사에는 비교 사례가 하나 있다. 과거 압구정로데오 상권이 침체했을 때 건물주들이 합심해서 임대료를 낮춰 상권을 살렸다는 것이다. 가로수길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평가가 붙는다. 같은 강남권, 같은 고급 상권인데 결과가 갈린 지점은 ‘가격을 낮출 의사가 있는가’였다.

이 기사의 범위 안에서는 다른 지역의 공실률·임대료를 나란히 비교한 통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7대 길거리 상권 평균 15.2%라는 숫자 외에, 개별 상권의 업종 구성 변화를 정량적으로 대조한 자료는 제시되지 않는다. ‘압구정로데오와 성수동에 비해 높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왜’에 대해서는 기사의 해석과 전문가 인용에 기대야 한다.

사료의 한계 — 누구의 목소리인가

이번 기사의 인터뷰는 대부분 부동산 업자와 떠나려는 상인 쪽에 서 있다. “임대료 안정화 구역을 지정하자”, “상권을 부동산 투자처로 보는 결과”라는 진술은 상인·중개업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시각이다. 반대로 건물주들은 이 기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물론 건물주 쪽에도 사정이 있다. 세금, 대출 이자, 노후 건물 보수비는 임대료와 직결된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와 한국부동산원 통계는 공공 데이터로 신뢰도가 높지만, ‘왜 비었는가’에 대한 해석은 통계의 몫이 아니다. 같은 43.9%를 ‘탐욕의 결과’로 읽을 수도 있고, ‘오프라인 소매의 구조 전환’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 글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숫자 두어 개와, 그 숫자가 붙은 자리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이다.

비어 있는 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가로수길의 공실은 ‘죽’은 것이 아니라 ‘멈춤’에 가깝다. 임대료가 제자리를 찾고, 3∼5평 단위의 소규모 점포를 다시 낼 수 있는 계약 구조가 생기고, 외지인과 주민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업종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문제는 그 대기가 몇 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거리의 명성은 빨리 사라지지 않지만, 그 명성을 유지하는 비용은 매달 청구된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이 살던 동네나 자주 가던 거리에도 사라진 가게가 있을 텐데, 그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졌나요? 대형 브랜드, 체인 카페, 아니면 여전히 빈 채인가요? ‘상권이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 여러분이 기억하는 것은 숫자인가요, 아니면 그 거리의 빈 점포 모습인가요?

참고 자료

· 「가로수길 비현실적 임대료, 현실적 상권 쇠퇴…“죽을 심정 빼닮은 공실률, ‘죽을 사(死)’ 자 44%”」, 경향신문(스포츠경향 뉴스 피드로 수집), 강석봉 기자 — https://news.naver.com/mnews/article/144/0001070582

·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 — 2025년 2분기 공실률

· 한국부동산원 임대동향조사 — 2025년 1분기 중대형 상가 임대료

· 이미지: Garosu-gil.jpg — sellyourseoul,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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