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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 9.7%인데 한 동네는 63.5% — 영국 세 리버스 상권에서 배우는 "분모의 함정"

빗방울 2026.11.06 05:26 8분 읽기 조회 19 · 추천 2

2021년 9월, 잉글랜드 허트퍼드셔(런던 북서쪽 교외)에 있는 세 리버스(Three Rivers) 자치구는 관내 주요 상업거리의 점포를 하나씩 세는 조사를 했다. 팬데믹으로 세 차례 영업 제한이 내려온 뒤였고, 남은 과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거리에 문이 닫힌 칸이 몇 개인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조사 결과는 의외였다. 구 전체 상업 점포 중 빈 칸은 31개, 공실률 9.7%였다. 같은 시기 영국 상점협회(British Retail Consortium)가 집계한 영국 본토(GB) 평균이 14.5%였으니, 이 교외 자치구는 전국 평균의 3분의 2 수준에서 버티고 있었다.

숫자는 작지만 거리별로 쪼개면 사정이 달라진다. 가장 큰 상권인 리크먼스워스(Rickmansworth)가 17개, 처리우드(Chorleywood) 8개, 애벗츠랭글리(Abbots Langley) 3개였다. 처칠리 그린(Croxley Green)은 왓퍼드로드에 1개, 뉴로드에 1개, 밀엔드(Mill End)에 1개였고 메이플크로스(Maple Cross)는 0개였다. 그리고 이 목록에서 빠진 동네가 하나 있다. 사우스옥시(South Oxhey)였다.

한 동네만 목록에서 빠진 이유

사우스옥시의 쇼핑센터는 재개발 공사 중이었다. 자치구는 이 지역을 따로 집계했는데, 점포 40개가 공실이거나 아직 공사 중으로 남아 있었고 비율로는 63.5%에 달했다. 같은 자치구 안에서 한쪽 거리는 공실 9.7%, 다른 쪽 거리는 63.5%다. 이 두 숫자를 나란히 놓는 순간 "세 리버스 상권은 건강하다"는 결론은 절반만 참이 된다. 낡은 센터를 허물어 새로 짓는 동안의 공실은 쇠퇴의 지표가 아니라 공사장의 사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상가의 소유 구조 — 내 건물이 아닌 가게

영국 하이스트리트의 빈 점포를 읽으려면 먼저 누가 그 벽을 가졌는지부터 봐야 한다. 영국 상업용 부동산은 대개 임대차(lease)로 거래된다. 임차인은 보통 5년에서 15년 이상의 기간과, 일정 주기(흔히 3년 또는 5년)마다 시세에 맞춰 임대료를 다시 올리는 인상 조항(rent review)을 계약서에 넣고 들어간다. 한국 상가처럼 큰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만 내는 구조와 달리, 영국의 임대료는 1년치를 분기별로 선불로 내는 형태가 흔하고 보증금은 몇 달치 정도다. 한국의 ‘권리금’처럼 장사 자리의 영업권을 사고파는 관행도 영국에는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영국의 상가는 흔히 leasehold(건물은 사되 땅은 장기 임차)와 freehold(땅까지 소유)로 나뉘고, 임차인이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나가려면 남은 기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양도(assignment)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임대인이 새 임차인을 승인하지 않으면 나갈 수도, 남의 자리로 갈 수도 없다. 그래서 경기가 나빠져도 임대인은 임대료를 크게 깎기보다 빈 칸을 몇 달 방치하는 편을 택하기 쉽다. 한국에서 보증금과 권리금이 임차인 사이에서 자리값을 형성하는 것과는 정반대 방향의 힘이 작동하는 셈이다. 다만 이 기사는 임대료 수준이나 계약 조건을 직접 다루지 않았으므로, 위 내용은 영국 상업 임대차의 일반적 배경일 뿐 세 리버스의 실제 계약 조건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업종 구성은 이 기사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번 조사는 "몇 칸이 비었나"를 세는 데 집중했다. 식당·카페·미용실·편의점 같은 업종별 구성이나, 어떤 업종이 빠지고 어떤 업종이 들어왔는지는 기사 본문에 수치로 나오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음으로 남겨 둬야 한다. 다만 기사가 소개한 자치구의 대응책에서 간접적인 방향은 읽힌다. 자치구는 상권 지원 단체 세이브더하이스트리트(SaveTheHighStreet.org)와 손잡고 크리스마스 시즌 매출을 끌어올리는 맞춤형 지원을 제공했고, 코로나 회복을 주제로 한 연속 웨비나도 함께 열었다. 즉 이 시기의 정책 관심은 "빈 칸을 다른 업종으로 바꾸는 것"보다 "기존 점포가 문을 닫지 않게 하는 것"에 있었다.

왜 이 거리는 전국 평균보다 나았나

기사에 제시된 요인은 세 가지다. 팬데믹, 바뀌는 쇼핑 습관, 그리고 그에 맞선 지역 사업자들의 노력이다. 자치구 의회 대표인 세라 넬름스(Cllr Sarah Nelmes)는 여러 차례의 봉쇄 조치가 상권에 큰 타격을 줬다면서도, 지역 사업주와 종업원들의 헌신 덕에 구 전체 공실이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고 말했다. 정량적인 원인 분석, 예를 들어 임대료 수준이나 유동인구, 주차 정책의 영향은 이 기사에 없다. 허트퍼드셔의 이 지역은 런던 통근권에 속한 중산층 교외 지역이라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수 있지만, 그것 역시 기사의 주장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추정이다.

반전 — 상권의 몸값은 공실률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이 기사를 "영국 상권은 생각보다 멀쩡하다"는 근거로 쓰면 곤란하다. 같은 자치구 안에서 사우스옥시는 63.5%였다. 세 리버스의 9.7%는 거리의 상태라기보다 자치구가 어느 지역을 모집단에 넣었는지에 따라 만들어지는 숫자다. 재개발 중인 센터를 따로 뺐기 때문에 전체 수치가 낮아졌고, 반대로 그 센터를 포함했다면 자치구 평균은 몇 배가 됐을 것이다. 상권 통계를 읽을 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공실이 몇 퍼센트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분모로 삼았는가"다. 빈 점포가 곧 몰락은 아니고, 낮은 공실이 곧 번영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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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크먼스워스 하이스트리트 — Oxyma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한국과 견주면 — 재개발과 권리금 사이

비슷한 처지의 국내 상권으로는 서울 동북권의 옛 중심지나 지방 구도심 재개발 구역을 떠올릴 수 있다. 새로 짓는 동안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고, 그 공백을 "공실"로 집계하면 수치가 급등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 한국은 보증금과 권리금이 임차인의 재산처럼 작동해서, 재개발로 자리를 잃은 상인에게는 건물이 아니라 "자리값"을 잃는 문제가 생긴다. 영국에서는 계약의 남은 기간과 양도 조건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즉 두 나라 모두 재개발 앞에서 상인을 흔들지만, 흔들리는 대상이 한국은 권리금, 영국은 리스 계약이라는 점이 다르다.

사료의 한계 — 누가 쓴 숫자인가

이 글의 근거는 자치구가 직접 발표한 보도자료다. 조사는 자치구가 했고, 해석도 자치구가 붙였으며, 인용된 발언도 자치구 대표의 것이다. "전국 평균보다 낫다"는 결론은 자치구 입장에서 유리한 프레이밍이며, 실제 계약 조건이나 임대료 수준을 검증한 자료가 아니다. 전국 평균 비교 대상인 영국 상점협회의 14.5%는 2021년 가을 시점의 수치이므로, 지금의 영국 상권과 곧바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 동네 상권이 "공실률 10%"라고 발표될 때, 우리는 그 숫자가 어떤 거리를 분모에서 뺐는지 알고 있을까. 그리고 재개발로 자리를 잃는 상인에게 남는 것이 권리금이어야 하는지, 계약 기간이어야 하는지 — 당신은 어느 쪽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참고 자료

· "Fewer vacant shops in Three Rivers despite multiple challenges for High Street", Three Rivers District Council, 2021년 11월 11일 (구글뉴스 수집일 기준). 원문: https://www.threerivers.gov.uk/news/fewer-vacant-shops-in-three-rivers-despite-multiple-challenges-for-high-street — 현재 사이트 접근이 차단되어 웨이백 머신 아카이브(2021년 11월 11일 스냅숏)로 본문을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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