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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6일, 영국 정부는 조용한 발표 하나를 내놓았다. 지역성장·건축안전 담당 국무장관(Minister of State for Local Growth and Building Safety) 알렉스 노리스(Alex Norris)는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영국 도심의 주 상업거리)에 가게와 손님을 되돌려 놓겠다”고 말했다. 같은 발표에서 새로 이름을 올린 지방의회는 여덟 곳이었다. 반즐리(Barnsley), 브록스토(Broxtowe), 캠던(Camden), 힐링던(Hillingdon), 리치필드(Lichfield), 노스 노샘프턴셔(North Northamptonshire), 노스 서머싯(North Somerset), 그리고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다. 런던 한복판의 두 자치구가 여기에 들어 있다는 점이 이 제도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 여덟 곳이 받아들인 권한의 이름은 하이스트리트 임대 경매(High Street Rental Auction, 이하 HSRA)다. 직역하면 “빈 점포를 지자체가 경매로 임대하는 권한”이다. 앞서 2024년 11월 배셋로(Bassetlaw), 달링턴(Darlington), 맨스필드(Mansfield)가 선도 시범(Early Adopters)으로 뛰어들었고, 이번 발표로 전체 참여 지방의회는 11곳이 됐다. 영국에서 “하이스트리트가 죽었다”는 말이 십수 년째 반복된 끝에, 정부가 택한 처방은 보조금도 세금 감면도 아닌 임대 계약 자체를 시장 밖에서 성사시키는 방식이었다.

제도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 365일, 24개월, 1~5년

정부 발표문이 밝힌 조건은 세 가지 숫자로 요약된다. 첫째, 지자체는 최근 24개월 안에 365일 넘게 비어 있던 상업용 부동산을 경매에 올릴 수 있다. 둘째, 경매로 성사되는 임대 기간은 1년에서 5년 사이다. 셋째, 이 제도의 확산을 지원하기 위해 100만 파운드가 넘는 재정이 투입됐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빈 기간”을 24개월 창 안에서 센다는 점이다. 건물주가 계약을 잠깐 비우거나 보수 공사를 핑계로 세입자를 들이지 않는 식으로 “영구히 빈 상태”를 유지하는 흐름을 막으려는 설계로 읽힌다. 즉 이 법은 세입자를 직접 구해주는 것이 아니라, 임대인이 임대료를 포기하면 지자체가 대신 임대료를 정산하는 구조다.

영국 소상공인부 장관(Minister for Small Business) 가레스 토머스(Gareth Thomas)의 표현도 같은 방향이다. “우리는 이 나라 하이스트리트의 셔터를 올리겠다고 약속했고, 오늘 그 일이 지방의회들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셔터(shutter)는 영국에서 철제 방범 셔터를 가리키며, “셔터가 내려간 가게”는 곧 폐업의 관용구로 쓰인다.

한국 독자를 위한 배경 — 영국의 상가는 ‘사는 것’과 ‘빌리는 것’이 갈라져 있다

이 제도를 이해하려면 한국과 영국의 상가 임대 구조가 다르다는 점부터 짚어야 한다. 한국의 상가 임대는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권리금이라는 세 축으로 움직인다. 세입자가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내며, 장사가 잘 되는 자리라면 다음 세입자에게서 권리금을 받고 나가는 관행이 있다. 건물의 소유와 임차가 비교적 단순하게 분리돼 있고, 임대차 기간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보호 아래 5년 안팎을 보장받는 경우가 많다.

영국은 다르다. 상업용 부동산은 프리홀드(freehold, 토지와 건물을 영구히 소유하는 권리)와 리스홀드(leasehold, 장기 임차권) 두 층으로 나뉜다. 상업용 건물은 대개 99년·125년·250년 같은 장기 리스홀드로 거래되고, 그 리스홀드를 가진 사람이 다시 소매점포를 단기 서브리스(sublelease)로 세놓는다. 문제는 이 단기 임대가 수년~수십 년짜리 “임대 계약(lease)” 형태로 체결되며, 계약이 끝날 때까지 임대료를 낮추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영국 하이스트리트의 공실은 장사가 안 돼서가 아니라 계약이 비싸서 들어갈 수 없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장기 임대료가 유지되니 굳이 세입자를 급히 구할 이유가 적고, 세입자 입장에서는 지금 시세보다 높은 계약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양쪽이 합의하지 않으면 그 칸은 그대로 남는다. HSRA는 바로 이 비합의 구간에 행정이 들어가는 장치다.

참고로 이 글에서 프리홀드·리스홀드, 서브리스 같은 구조는 영국 상업 부동산의 일반적 배경 설명이다. 해당 기사가 이 구조를 직접 다루지는 않았다. 기사 본문이 명시한 것은 “365일/24개월” 기준과 “1~5년 임대”, “100만 파운드 이상 재정”이라는 세 가지 사실뿐이다.

누가 참여했는가 — 런던 웨스트민스터와 캠던이 들어왔다는 의미

이번 발표의 성격은 참여 지방의회 이름표에 가장 잘 드러난다. 웨스트민스터는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리젠트 스트리트, 소호를 품은 자치구다. 캠던은 캠던 하이스트리트와 캠던 마켓으로 알려진 곳이다. 영국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축에 드는 두 자치구가 “빈 점포 경매 권한”을 굳이 받아갔다는 것은, 공실 문제가 저소득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나머지 여섯 곳은 성격이 다르다. 반즐리와 노스 노샘프턴셔, 노스 서머싯은 제조업과 교외 주거가 섞인 지역이고, 브록스토와 리치필드는 노팅엄·버밍엄 근교의 중소 도시다. 힐링던은 런던 서부 외곽의 교통 허브다. 대도시 중심부와 중소 도시가 같은 제도를 동시에 받아들인 셈이다.

다만 이 기사는 참여 지자체 수와 조건만 알려준다. 어느 거리에서 실제로 몇 건의 경매가 열렸고, 낙찰가는 얼마였고, 어떤 업종이 들어왔는지는 이 발표문에 없다. 11곳이 “제도를 받아들였다”는 것과 “가게가 문을 열었다”는 것 사이에는 아직 큰 거리가 있다.

왜 지금인가 — 정부 문서가 직접 밝히는 동기와 그 바깥의 요인

이 발표문이 내세우는 명분은 명확하다. “성장을 위한 계획(Plan for Change)”의 지역경제 성장 목표, 즉 일자리 창출과 지역 성장이다. 두 장관의 발언도 “작은 사업체가 우리 경제의 엔진”이라는 소상공인 지원 논리로 수렴한다. 소상공인 전략(Small Business Strategy)을 연내 발표하겠다는 예고도 같은 맥락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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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캠던 하이스트리트(2012년) — Ruth Sharville,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 geograph.org.uk)

그러나 기사가 직접 언급하지 않는 배경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영국 하이스트리트 공실의 원인으로는 온라인 쇼핑 확대, 코로나 이후 통행량 감소, 지방정부의 예산 축소 같은 요인이 흔히 거론된다. HSRA는 이 중 규제와 계약 구조 쪽을 건드리는 처방이다. 수요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수요가 있어도 들어갈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을 치우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다른 처방들과 결이 다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영국 상업용 부동산의 평가(rateable value)에 기반한 재산세, 즉 사업비율세(business rates)는 세입자가 아니라 점유자가 부담한다. 빈 점포에는 세입자가 없으니 세금도 걸리지 않는 구조가 오랫동안 “일부러 비워두기”의 유인으로 지적돼 왔다. 이 글에서 이 구조는 기사에 직접 서술되지 않았다. 제도 설계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 배경으로만 읽어야 한다.

반전 — “상권 몰락”이 아니라 “계약의 재조정”일 수 있다

이 제도를 “빈 가게를 채우는 대책”으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친다. HSRA가 실제로 하는 일은 임대료의 가격 발견(price discovery)이다. 지금까지 그 칸의 임대료는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개별 협상으로만 정해졌다. 경매가 들어오면 그 가격이 공개되고, 최소한 “이 자리를 쓰려는 사람이 시장에 얼마나 있는가”가 드러난다.

그리고 임대 기간이 1~5년이라는 점이 결정적이다. 영국 상업 임대의 관행적 계약 기간(수년~수십 년)에 비하면 훨씬 짧다. 짧은 계약은 세입자에게는 진입 문턱을 낮추지만, 건물주에게는 임대료를 다시 협상할 기회를 준다. 즉 이 제도는 “가게를 되살린다”기보다 오래 고정된 계약의 값을 다시 시장에 물어보는 절차에 가깝다.

그래서 이 발표를 “하이스트리트 부활”로 읽는 것은 아직 이르다. 정부 문서가 스스로 밝힌 성과는 “참여 지자체 11곳”과 “100만 파운드 지원”뿐이다. 가게 수, 고용, 매출 같은 결과 지표는 이 기사에 한 줄도 없다. 발표를 성과로 읽는 순간, 이 제도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실험이 아니라 이미 성공한 정책이 되어버린다.

한국과 비교 — 전세·보증금·권리금, 그리고 “빈 점포를 그냥 두는 이유”

한국 독자에게 가장 익숙한 비교 대상은 서울의 신촌이나 대학가, 혹은 지방 도심의 구도심 상가다. 한국에서도 빈 점포는 늘어난다. 그러나 빈 점포를 “그냥 두는” 이유가 영국과 다르다. 한국에서는 보증금과 월세, 권리금이 맞물려 임대인이 임대료를 크게 낮추면 기존 세입자와의 형평 문제가 생기고, 권리금을 회수하려는 세입자와 새 세입자 사이의 협상이 길어지면서 공실이 오래 남는 경우가 있다.

영국의 HSRA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건물 소유와 임차가 단순하고, 임대차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으며, 권리금이라는 별도의 재화가 존재한다. 반면 영국은 장기 리스홀드 구조 위에 단기 서브리스가 얹혀 있어, “계약 자체가 경직된 자산”이 된다. 같은 “빈 점포”라도 어디를 풀어야 하는지가 다르다.

그러나 겹치는 지점도 있다. 두 나라 모두 임대료가 시장 수요보다 높게 고정된 채 방치되는 구간이 존재하고, 그 구간을 시장이 스스로 해소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권리금과 보증금이 그 구간을 만들고, 영국에서 장기 임대 계약이 그 구간을 만든다. HSRA는 후자를 행정으로 찢어보는 실험이고, 한국은 아직 전자에 대한 대응을 시장에 맡기고 있다.

사료의 한계 — 이 기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이 기사의 출처는 GOV.UK, 즉 영국 정부의 공식 보도자료다. 따라서 이 글은 정책의 성과를 소개하는 당사자의 시각이며, 제도의 부작용이나 반대 논리는 담고 있지 않다. 임대인 단체나 세입자 단체, 혹은 지방의회의 실제 집행 경험은 이 문서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참여 지자체 11곳”은 제도의 채택 수이지 결과 수가 아니다. 임대료가 낮아진 사례, 낙찰이 무산된 사례, 건물주가 소송으로 맞선 사례 등은 별도 자료로 확인해야 한다. 이 글의 모든 수치는 이 보도자료에 명시된 값이며, 그 외의 배경 설명은 일반적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원문 근거가 아님을 밝혀둔다.

독자에게 — 당신 동네의 “셔터 내린 가게”는 무엇 때문에 비어 있나

빈 점포를 볼 때 우리는 보통 “장사가 안 되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칸이 비어 있는 이유가 장사가 아니라 계약일 수도 있다. 임대료가 시세보다 높게 고정돼 있어서, 혹은 임대인이 다음 세입자를 기다리는 동안 세금이 걸리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영국은 그 가능성을 제도로 찢어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상가에서는 무엇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 권리금인가, 보증금인가, 아니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임대인의 계산인가.

참고 자료

  • Vacant shops to be filled as high streets revitalised — GOV.UK (Department for Business and Trade 외), 2025년 3월 6일. https://www.gov.uk/government/news/vacant-shops-to-be-filled-as-high-streets-revitali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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