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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는 왜 갑자기 불이 붙는가 —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온도 80도

빗방울 2026.11.07 10:30 8분 읽기 조회 14 · 추천 2

2024년 6월, 한 아파트 거실에서 리튬이온 배터리가 꽂힌 전동킥보드가 스스로 연기를 내기 시작한 뒤 3분도 되지 않아 화염에 휩싸였다는 소방 기록이 흔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전까지 이 배터리에서 확인된 이상은 없었고, 사람이 지켜본 시간은 겨우 몇십 초였습니다.

1. “과충전하면 터진다”는 설명은 어디까지 맞나

흔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충전기가 고장 나 배터리에 전압이 계속 들어가면 결국 터진다. 이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요즘 휴대폰과 전동킥보드의 배터리 관리 칩은 셀 전압이 4.2V를 살짝 넘으면 충전을 끊고, 온도가 45도를 넘으면 전류를 절반 이하로 줄입니다. 즉 “계속 밀어 넣는 것”을 막는 장치가 이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사고가 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충전을 끊을 수 있는 사람(칩)과 열을 만들어내는 사람(셀 내부 반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충전기가 선을 놓아도, 셀 내부에서 시작된 열은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습니다. 이 글의 주제는 이 차이입니다.

2. 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 4.2V와 0.1mm

리튬이온 셀은 리튬 금속 산화물 양극, 흑연 음극, 그리고 그 사이의 얇은 분리막(배리어 필름, 10~25마이크로미터 두께의 폴리올레핀 시트)으로 되어 있습니다. 분리막 두께를 0.1mm(100마이크로미터)가 아니라 대략 종이보다 얇은 20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잡으면 감이 옵니다. 이 얇은 막 하나가 양극과 음극이 직접 닿지 않게 하는 유일한 벽입니다.

충전할 때는 리튬 이온이 양극에서 빠져나와 흑연 음극 판 사이에 끼어듭니다. 급하게 충전하거나 온도가 낮으면 판 끝에 금속 리튬이 바늘처럼 자라는데, 이를 덴드라이트(dendrite, 나뭇가지 모양 결정)라고 부릅니다. 이 바늘이 분리막을 뚫으면 양극과 음극이 직접 연결되고, 순간적으로 큰 전류가 흐르는 내부 단락이 생깁니다.

18650·21700 리튬이온 원통형 셀 — 양극·분리막·음극이 얇은 층으로 감긴 구조가 내부 단락과 열의 경로다. Sevenethics, CC0 (Wikimedia Commons)

3. 열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때: 단락의 열량 계산

단락이 얼마나 뜨거운지 계산해 보겠습니다. 3.7V 셀의 내부 저항이 정상일 때 30밀리옴이라면, 내부 단락 저항이 0.5옴으로 떨어졌을 때 흐르는 전류는 3.7 ÷ 0.5 = 약 7.4A입니다. 이때 저항에서 소비되는 전력은 I²R = 7.4² × 0.5 ≈ 27W입니다.

27W를 50g짜리 18650 셀 전체가 받는다고 단순 계산하면, 열용량을 대략 1 J/(g·K)로 잡을 때 온도 상승 속도는 초당 약 0.5도입니다. 1분이면 30도가 오릅니다. 이 정도로는 셀이 터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락되면 바로 폭발한다”는 설명은 절반만 맞습니다. 단락이 위험한 이유는 순간적인 열이 아니라, 그 열이 화학 반응을 켜는 스위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푼 스마트폰 배터리(삼성 EB-BA136ABY)의 옆면 — 내부 가스가 이미 생성되어 반응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 Saimmx, CC0 (Wikimedia Commons)

4. 열폭주: 열이 반응을 밀고, 반응이 다시 열을 만드는 고리

swollen_s.jpg

셀 온도가 약 80~120도에 이르면 음극 표면의 보호 피막(SEI, 전해질이 음극 위에 만든 얇은 막)이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이 반응은 스스로 열을 냅니다. 열을 내면 온도가 더 오르고, 온도가 오르면 더 많은 피막이 분해됩니다. 피드백(자기 강화) 고리의 시작입니다.

120~150도에는 전해질이 분리막의 폴리올레핀과 반응합니다. 130도 무렵부터 분리막은 구멍이 막히며 저항이 커집니다. 이 차단(shutdown) 기능은 실제로 사고를 막는 마지막 안전장치이지만, 열이 계속 쌓이면 분리막 자체가 160도 부근에서 녹아 찢어집니다. 막이 사라지는 순간 단락 면적이 커지고 열 방출은 다시 빨라집니다.

180~250도에서는 양극 재료가 산소를 내놓으며 분해됩니다. 양극이 내놓은 산소는 전해질과 격렬히 반응하고, 이때 나오는 열은 앞 단계보다 훨씬 큽니다. 이 지점을 넘으면 외부에서 열을 빼앗아도 반응이 스스로 다음 단계를 밟습니다. 이것이 열폭주(thermal runaway)이며, 사전에 정한 온도 임계값을 넘었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응이 다음 반응의 연료가 되었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5. 숫자 하나: 80도와 3분

국제 표준과 제조사 시험에서 자주 쓰는 지표가 있습니다. 셀을 약 80도 이상 가열하면 자기 발열이 시작될 수 있고, 일단 열폭주가 시작되면 셀 온도는 수백 도까지 매우 짧은 시간에 상승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 온도보다 방향입니다. 79도에서 81도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150도에서 200도로 가는 시간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다릅니다. 온도가 높을수록 반응 속도가 지수적으로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고 영상에서 배기가 시작되고 불꽃이 보이기까지의 시간이 짧게 느껴집니다. 연기 단계(전해질 끓음, 가스 분출)는 열폭주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신호이고, 그 시점에 손으로 만지거나 덮으려 하면 화상을 입습니다. 가스가 새어 나오는 셀은 이미 스스로 멈출 단계를 지난 상태로 봐야 합니다.

6. 이 설명이 틀리는 경우

모든 발화가 열폭주는 아닙니다. 외부 화재가 원인이면 배터리는 피해자이지 가해자가 아닙니다. 충격이나 압착으로 케이스가 찢어져 공기 중 산소와 직접 반응하는 경우, 또는 과충전으로 전해질이 분해되어 가스가 부풀며 압력이 열린 경우는 온도 고리보다 물리적 파괴가 먼저입니다.

또 제조 결함(금속 이물질이 내부에 섞여 들어간 경우)은 충격도 과충전도 없이 단락을 만듭니다. 반대로 같은 조건에서도 셀이 100개 있으면 전부 터지지는 않습니다. 셀마다 저항·분리막 두께·주변 냉각 조건이 달라 임계값에 도달하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배터리면 똑같이 죽는다”는 말은 틀립니다.

7. 생활에 적용되는 판단

첫째, 배터리가 부풀었으면 충전을 멈추고 교체하세요. 부풀음은 내부 가스 발생의 결과이고, 가스가 이미 있다는 것은 반응이 진행 중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충전 중에는 열이 갈 곳을 만들어 두세요. 두꺼운 이불이나 소파 위, 밀폐된 서랍 안은 열을 가두는 조건입니다. 셋째, 셀이 젖거나 찌그러진 뒤에는 전원을 켜지 마세요. 내부 단락은 전원을 넣기 전에도 진행될 수 있습니다.

8. 남는 질문

cell_s.jpg

열폭주는 우리에게 익숙한 “불이 나면 물을 뿌린다”는 반사와 어긋납니다. 셀 안에는 산소를 내놓는 화학 반응이 들어 있어서, 주변 산소를 막는 것만으로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터리 사고에 대해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변수는 무엇일까요. 온도일까요, 충전 속도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셀을 몇 개나 한 공간에 두는가일까요?

9. 참고 자료

  • Wang, Q. et al., “Thermal runaway caused fire and explosion of lithium ion battery”, Journal of Power Sources, 208 (2012) — 열폭주 단계와 온도 구간 개관
  • Feng, X. et al., “Thermal runaway mechanism of lithium ion battery for electric vehicles: A review”, Energy Storage Materials, 10 (2018)
  • Finegan, D. P. et al., “In-operando high-speed tomography of lithium-ion batteries during thermal runaway”, Nature Communications, 6 (2015) — 내부 구조의 실시간 변화 관찰
  • 이미지: Wikimedia Commons, Sevenethics(CC0), Saimmx(CC0,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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