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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남부 브릭스턴(Brixton) 하이스트리트, 지하철역을 나와 버스가 엮여 다니는 큰길에 셔터가 내려간 자리가 오래 남아 있는 것을 이제 구청이 직접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2026년 3월 20일 램버스(Lambeth) 구청은 브릭스턴, 웨스트 노우드(West Norwood), 브릭스턴 힐의 "뉴 파크 로드 트라이앵글" 세 곳을, 1년 넘게 비어 있는 가게를 구청이 경매로 임대할 수 있는 시범 대상지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건물주가 아닌 지방정부가, 그것도 소유권이 아니라 "임대할 권리"를 공개 경매에 부친다는 것이 한국 상가 시장에서는 낯선 장면이다.

무엇이 정해졌나 — 세 곳, 그리고 5만 파운드

이번 발표의 성격을 먼저 정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법 개정이 아니라 이미 있는 권한을 쓸 대상지를 정한 것이다. 램버스는 법정 주민 의견수렴(statutory consultation)을 거쳤고, 응답자 과반이 이 계획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기사에는 응답자 수나 참여율이 제시되지 않아 대표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세 곳은 도시계획(Local Plan)상 등급이 각각 다르게 골랐다. 브릭스턴은 "메이저 타운 센터"(대도시 중심 상권), 웨스트 노우드는 "디스트릭트 센터"(지구 중심 상권), 뉴 파크 로드는 "로컬 센터"(동네 상권)다. 구청은 "적격 장기 공실이 가장 많은 세 지역"을 골라, 규모가 다른 상권에서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비교하겠다고 설명했다.

돈도 명시돼 있다. 런던 시장과 영국 정부가 조성한 "UK 공유번영기금(UK Shared Prosperity Fund)"에서 5만 파운드를 받았다. 기사는 런던에서 이 보조금을 받은 자치구가 두 곳뿐이며 램버스가 그중 하나라고 전한다. 구청은 경매 비용을 구청이 부담해 소상공인의 장벽을 낮추고, 경매 절차 안내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임대 권리만 떼어 파는 구조

제도의 근거는 잉글랜드의 「레벨링업 및 재생법(Levelling Up and Regeneration Act 2023)」이 만든 하이스트리트 임대 경매(High Street Rental Auction, HRSA)다. 정확히 이해해야 할 지점은 경매 대상이다. 낙찰되는 것은 건물도, 토지도 아니다. 지방정부가 확보한 일정 기간 점포를 임대할 권한이다. 경매에서 새 임차인을 결정하면, 그 임대는 원래 건물주의 권리 위에 얹히는 형태가 된다.

대상은 기사 표현대로 "1년 넘게 비어 있는 가게"다. 잠깐의 공실이나 공사 기간은 해당되지 않는다. 구청은 곧바로 강제 절차에 들어가지 않고, 우선 임대인과 협의하고 자발적 해결책을 모색한 뒤 공식 통지와 경매로 넘어간다고 밝혔다. 강제보다 압박에 가까운 순서 설계다.

영국 상가의 두 층 — freehold와 leasehold

한국 독자에게 이 제도가 유독 낯선 까닭은 "소유"가 여러 층으로 겹쳐 있기 때문이다. 영국 부동산에서 토지의 최상위 소유는 프리홀드(freehold·영구 소유권)로 잡는다. 그 땅 위에 리스홀드(leasehold·장기 임차권)를 설정해 건물을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단위로 보유·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제도의 대상이 되는 landlord는 대부분 이 리스홀드 보유자이거나, 그 아래에서 소매 점포를 다시 빌려주는 중간 임대인이다.

한국의 보증금·월세·권리금 3축과는 결이 다르다. 한국은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영업권 대가인 권리금이 중심이고 임대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게 갱신된다. 영국의 상업 임대는 계약 기간이 길고, 수리·보험·사업세(business rates) 부담을 임차인이 떠안는 계약이 흔하다. 다만 이 기사에는 임대료 수준, 보증금, 계약 기간, 권리금에 해당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위 비교는 영국 상업 임대의 일반적 배경이며, 램버스 사례의 실제 조건으로 확인된 값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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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턴 하이스트리트. 이번 시범 대상지 중 하나로, 지하철역 앞 큰길을 따라 점포가 늘어서 있다 — Oxyma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업종 구성 — 기사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업종 관련해 이 기사가 주는 정보는 적다. 램버스의 소매 공실률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서술, 그리고 "일부 가게와 상업 공간이 소상공인·사회적 기업·지역 공동체 조직의 강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비어 있다"는 문장 정도다. 업종별 점포 수, 공실률 수치, 임대료 변동률은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채우고 싶은지에 대한 신호는 있다. 주민 응답자들은 경매를 통해 새 독립 사업자, 공동체 공간, 문화적 용도의 공간, 저렴한 작업 공간(affordable workspaces)이 지원되기를 특히 원했다고 한다. 지역사회가 기대하는 것은 대형 체인보다 동네 기반의 작은 사업과 공공적 용도다.

비어 있는 이유 — 원인과 그 원인에 대한 의문

기사가 직접 짚는 원인은 하나다. 코로나19 이후 회복되지 않은 상권 수요다. 여기에 구청의 "경제적 어려움의 최전선에 선 쇼핑 거리"라는 표현이 붙는다. 임대료, 관광, 인구, 규제, 이커머스, 재택근무 같은 요인은 이 기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목할 것은 기사 스스로 남긴 균열이다. "강한 수요가 있는데도 수년째 비어 있다"는 문장은 공실의 원인이 수요 부족이 아님을 시사한다. 수요는 있는데 임대 조건이나 건물 상태, 임대인의 판단 때문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마찰적 공실"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는 기사가 명시한 결론이 아니라 문장에서 읽히는 함의다.

반전 — 상권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

영국 하이스트리트 담론의 통념은 "가게가 하나둘 닫혀 거리가 죽는다"는 서사다. 그러나 제도가 겨냥하는 범위는 그보다 좁고, 주민들이 원한 것도 전통적 소매점이 아니었다. 공동체 공간, 문화 시설, 저렴한 작업 공간이다. 가게가 물건을 파는 자리에서 일하고 모이고 머무는 자리로 성격을 넓히는 흐름으로 읽힌다.

구청 역시 "지역의 필요를 충족하고 포용적 성장을 지원하며 지역·독립 사업자에게 기회를 만드는 용도"를 장려하겠다고 했다. 상권의 기능 자체를 다시 정의하려는 셈이다. 다만 이 해석 역시 기사 본문의 명시적 주장이 아니라, 세 대상지 선택과 주민 선호에서 도출한 재해석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 수단의 차이

비슷한 처지의 국내 상권으로 지방 구도심 쇼핑거리를 떠올릴 수 있다. 온라인 쇼핑 확산과 인구 유출로 공실이 늘고, 건물주가 임대료를 쉽게 내리지 않아 "비어 있는 채로 버티는" 현상이 생긴다는 점이 영국 사례와 겹친다. 한국에서도 장기 공실 상가에 지자체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어져 왔다.

다른 점은 수단이다. 국내에서는 공실 대응이 주로 공공이 직접 임대하거나 매입하는 방식, 또는 세제·보조금 유인에 머문다. 민간 소유 건물의 임대 권한을 지자체가 확보해 경매로 넘기는 제도적 장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영국은 설득과 지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강제와 경쟁을 섞은 실험을 하는 중이다.

사료의 한계 — 이 기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이 글의 원문은 램버스 구청이 운영하는 소식지 Love Lambeth의 보도 하나다. 정책을 추진하는 지방정부가 직접 쓴 글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야 한다. 기사에는 지역 의원(마샤 캐머런)과 런던 부시장(하워드 다우버)의 발언이 실려 있고 둘 모두 계획에 우호적이다. 임대인 단체, 공실을 겪는 소상공인, 제도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연구자의 반대 목소리는 없다.

공실률의 구체적 수치가 빠진 것, 수렴 결과에 응답자 수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책이 시작된다"는 사실 확인용으로는 믿을 만하지만, 제도의 효과나 부작용을 판단하는 근거로 쓰기에는 한쪽 시각에 치우쳐 있다.

독자에게 묻는다

건물주가 빈 가게를 그냥 놔두는 것을 소유권의 자유로 볼 것인가, 거리의 공공성 침해로 볼 것인가. 한국에서도 1년 넘게 빈 상가의 임대 권한을 지자체가 확보해 경매에 붙이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동네 상권은 살아날까, 아니면 임대료만 다시 밀어 올릴까.

참고 자료

· "Lambeth identifies high streets where landlords could be ordered to rent out empty shops", Love Lambeth(램버스 구청), 2026년 3월 20일. https://love.lambeth.gov.uk/lambeth-identifies-high-streets-where-landlords-could-be-ordered-to-rent-out-empty-shops/

· 사진: "Brixton high street", Oxyma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 배경: 「레벨링업 및 재생법(Levelling Up and Regeneration Act 2023)」의 HSRA 조항. 본 게시판의 이전 글 「셔터 내린 지 365일 넘은 가게를 지자체가 경매에 올린다」가 제도 자체를 다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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