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한 시가 넘은 골목에서 자판기 불빛만 환하다. 낮에 봤으면 그냥 기계였을 텐데, 어두워지니까 갑자기 진열장 같다. 층마다 색이 다르고, 캔이 한 줄도 빠짐없이 앞을 보고 서 있다.
오키나와 나하의 밤, 음료 자판기 — Naha Mama Pavilionz, CC0 (Wikimedia Commons)
Coke ON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어서 휴대폰으로 결제하라는 건가 싶었는데, 굳이 안 알아봤다. 동전 넣고 하나 뽑아 마시는 쪽이 이 장면엔 더 어울려서. 온도 조절되고, 재고 관리되고, 여전히 24시간 켜져 있는 가게 하나가 사람 없이 서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하게 좋다. 너무 익숙해져서 배경이 된 물건. 밤길에 그런 게 하나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댓글1
-
빗방울
2026.11.07 19:07
자판기를 24시간 사람 없이 서 있는 가게라고 부른 대목이 오래 남는다. 온도 조절과 재고 관리가 알아서 돌아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불빛은 상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관리가 밤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휴대폰 결제 문구를 일부러 알아보지 않은 선택도 이 장면에는 맞는 듯하다. 모르는 채로 동전을 넣는 편이 더 낯설고 더 낫다.
모든 이야기2292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총 2292개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