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호주의 식민지 신문 독자들은 낯선 이름 하나를 반복해서 만났다. '피커링 교수'라는 이름이 붙은 화성 관측 소식이었다. 리처드 드 그리스(Richard de Grijs)의 새 논문 「불확실성의 시간적 리듬: 호주 식민지 신문에서 화성 주장을 평가하기」는 바로 이 장면에서 출발한다. 1875년부터 1899년까지의 식민지 신문 보도를 따라가며, 1892년과 1894년의 두 번의 큰 충(opposition)을 중심으로 어떤 주장이 언제, 어떤 형태로 도착했고 그 평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추적한다. 흥미로운 것은 결론의 방향이다. 이 논문은 과학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발견이 먼저, 신중한 검토가 나중'이라는 한 줄의 사다리로 정리하지 않는다.
이름 하나가 지면을 채운 방식
논문이 주목하는 첫 장면은 1892년의 보도다. '피커링 교수'에게 귀속된 관측 보고가 실리자 그것은 빠르게 여러 신문으로 퍼져 나갔고, 동시에 즉각적인 검증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확산과 의심이 서로 다른 시기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시기, 같은 지면 안에서 소문은 커지고 그 소문에 대한 반박도 함께 커졌다.
논문은 이 이름을 따옴표로 묶어 표기한다. 그 표기는 사소한 타이포그래피가 아니라 문제의식의 표시다. 누가 관측했는가라는 물음이 '교수'라는 직함과 성(姓) 하나로 압축되어 유통될 때, 독자가 검증할 수 있는 정보는 거의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권위의 냄새와, 그것이 흥미롭다는 사실이다. 19세기 후반의 전신 뉴스와 신문의 상호 전재(轉載) 관행은 이 압축을 매우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충(opposition)은 왜 반복 실험의 기회였나
화성의 충은 지구와 화성이 가장 가까워지는 시기다. 논문은 이 주기적 사건이 19세기 천문학자들에게 화성에 관한 주장을 되풀이해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정리한다. 망원경의 성능이 조금씩 달라지고, 관측자도, 계절도, 대기의 상태도 달라진다. 같은 대상에 대해 매번 새 조건으로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과학에서 대단히 값진 일이다.
그러나 그 기회는 전문 관측소 안에서만 열린 것이 아니었다. 전신 뉴스와 신문의 재전재는 그 기회를 지구 반대편 독자에게까지 배달했다. 문제는 배달되는 정보의 형태였다. 관측의 조건, 기기의 한계, 오차의 크기는 대개 전보의 압축 과정에서 사라지고, 남는 것은 결론 한 줄이다. 논문이 "식민지 신문 네트워크에 도착한 정보의 시점과 형태"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미유 플라마리옹의 《화성과 그 거주 가능성》 제1권(1892)에 실린 화성 지구본 도판 — Camille Flammarion, CC0 (Wikimedia Commons)
1894년, 전보가 먼저 도착하고 설명은 나중에 도착했다
두 번째 장면은 1894년이다. 윌리엄 W. 캠벨의 분광 관측에 관한 케이블이 호주에 도착했고, 그것은 더 자세한 설명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지역 사회에서 이견을 불러일으켰다. 논문이 강조하는 것은 이 '시차'다. 판단의 재료가 되는 상세한 계정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판단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여기서 신문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다. 짧은 전보 하나가 지면에 실리는 순간 그것은 논쟁의 재료가 되고, 논쟁은 다시 새로운 보도의 재료가 된다. 논문은 이 순환을 "평가와 새로운 추측이 동시에 실렸다"고 표현한다. 확정된 지식과 유동하는 추측이 시간 순서로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호의 지면 안에서 나란히 배치된다.
반직관적 결론: 기대 → 발견 → 신중이라는 사다리는 없었다
대중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는 익숙한 도식이 있다. 대중은 먼저 기대하고, 그다음 발견에 열광하며, 마지막에 전문가의 신중한 유보를 듣는다는 도식이다. 논문은 이 도식이 1892년과 1894년의 호주 보도에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충은 주의를 한 점에 모았지만, 그 집중이 획일적인 진행 순서를 강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관찰된 것은 병렬적 배열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 검증과 추측, 냉정한 평가와 갱신된 기대가 동시에 유통된다. 독자는 어느 것이 최종 판정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여러 목소리를 함께 받아 들인다. 저자는 이것을 결함이 아니라 근대 대중과학의 실제 작동 방식으로 제시한다. 과학 뉴스의 역사는 정오표가 붙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점의 정보가 겹쳐 쌓이는 과정이라는 독법이다.
윌리엄 W. 캠벨(1862–1938)의 초상 — Hector Macpherson,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경쟁 가설: 그렇다면 무엇이 평가를 흔들었나
첫 번째 경쟁 가설은 전문가 권위다. 신문이 '교수'라는 직함에 기대어 판단을 대신했다는 설명이다. 이 설명은 1892년의 빠른 확산을 잘 설명한다. 그러나 1894년의 경우에는 설명력이 떨어진다. 권위 있는 이름이 붙은 전보였는데도 지역에서 이견이 터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가설은 통신 기술의 속도다. 전보가 빨라서 확인보다 소문이 먼저 도착했다는 설명이다. 이것은 시차 자체는 잘 설명하지만, 시차가 어떤 방향으로 해소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같은 속도로 도착한 정보가 어떤 때는 의심을 키우고 어떤 때는 추측을 키웠다면, 속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세 번째 가설은 신문의 재전재 관행, 즉 장르의 문제다. 짧은 단신, 지역 논평, 상세한 후속 기사가 서로 다른 형식으로 같은 사안을 다루면서, 형식 자체가 논쟁의 문법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논문은 이 세 번째 방향에 무게를 두면서도, 어느 하나로 모든 장면을 닫아 버리지는 않는다.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확정된 인과가 아니라, 사건의 시간 구조가 평가의 형태를 바꾼다는 주장이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이 연구의 범위는 분명하다. 지리적으로는 호주의 식민지 신문이고, 시간적으로는 1875년에서 1899년까지이며, 분석의 초점은 1892년과 1894년의 두 사례다. 사례 수가 적다는 것은 이 논문이 스스로 감수한 조건이다. 두 장면이 보여 주는 병렬적 배열이 모든 과학 보도에서 나타나는 일반 법칙인지, 아니면 이 시기 이 지역의 특수한 배치인지는 이 연구만으로 판정할 수 없다.
또 하나의 한계는 '평가'의 측정 방식에 관한 것이다. 신문 지면에 실린 텍스트는 당시 독자가 실제로 무엇을 믿었는지를 직접 보여 주지 않는다. 논문이 재구성하는 것은 인쇄된 담론의 시간 구조이지, 독자의 신념 그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대중이 이렇게 판단했다"가 아니라 "지면이 이렇게 배열되었다"는 수준에서 읽어야 한다. 이 구분을 흐리면 논문의 결론은 실제보다 강해 보인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오늘의 우리에게 이 논문이 남기는 질문은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전보 대신 속보 알림과 짧은 영상이, 신문 재전재 대신 재게시와 인용이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세한 계정은 여전히 판단보다 늦게 도착하고, 우리는 여전히 도착하지 않은 설명을 기다리며 이미 판단을 내린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정정일까, 아니면 판단을 잠시 붙잡아 둘 다른 문법일까.
1892년의 독자들은 아마 이 질문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은 확산과 검증이 동시에 일어나는 지면을 매일 읽었고, 어떤 주장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는지를 나중에야 알았다. 그 경험이 남긴 교훈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배열의 문제였다는 것, 그리고 배열은 언제나 누군가의 편집 결정이라는 사실이다. 논문은 그 결정의 역사를 두 사례로 남겨 두었다.
참고 자료
Richard de Grijs, "Temporal rhythms of uncertainty: Evaluating Mars claims in the Australian colonial press", arXiv:2610.34178 (physics.hist-ph), 2026년 10월 25일 제출. 원문: https://arxiv.org/abs/2610.34178v1
이 글의 사실 서술은 위 논문의 초록과 저자가 밝힌 범위에 근거했으며, 논문이 직접 다루지 않은 해석은 본문에서 '논문은 주장한다'로 구분해 표기했다. 화성 충의 주기성에 관한 일반적 배경은 논문 요약에서 언급된 범위를 넘지 않도록 서술했다.
댓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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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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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18:53
마지막 질문 진짜 뼈 때리네요.
정정 보도 백날 올라와봤자 이미 뇌에 박힌 첫인상은 안 바뀌는데.
판단 유보하는 문법이 진짜 필요할 것 같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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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19:42
교수'라는 타이틀 하나로 퉁쳐서 유통됐다는 게 진짜 소름이네요.
권위라는 게 생각보다 가성비 좋은 낚시 도구였던 듯ㅋㅋ
편집자가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여론 바뀌는 건 지금이랑 진짜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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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1:50
진짜 인정함ㅋㅋ 요즘도 '전문가 의견'이라고 붙으면 일단 믿고 보는 거 생각하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심리는 똑같은 듯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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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1:06
근데 저 시대에 호주까지 전보 쏘고 신문 내고 했던 거 생각하면 진짜 광기네요ㅋㅋ
지금 봐도 화성에 집착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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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1:08
논문 내용 보니까 결국 정보의 양보다 '배열'이 문제라는 게 핵심인 것 같은데, 진짜 무서운 건 이걸 결정하는 편집자의 의도네요ㅋㅋ 요즘 알고리즘이 우리 뇌에 정보 배열해 주는 거랑 비슷해서 더 소름돋음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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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2:01
ㄹㅇㅋㅋ 옛날엔 편집자가 수동으로 했으면 지금은 AI가 자동화해서 꽂아주는 셈이라 더 무서운 듯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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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1:24
근데 1890년대에 화성 충 주기 맞춰서
반복 실험했다는 게 진짜 낭만 있네요ㅋㅋ
요즘처럼 데이터 쏟아지는 시대보다 훨씬 쫄깃했을듯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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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2:05
근데 2026년 논문이라는 게 제일 충격이네요ㅋㅋ 미래에서 온 논문인가 아님 오타인듯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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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01:15
1894년 전보 이야기를 읽다가 플라마리옹이 떠올랐습니다. 그도 90년대 내내 화성 운하를 진짜로 믿었던 사람인데, 저는 '믿음'과 '판단'도 서로 다른 도착 시간을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지면에 찍힌 의심의 문장이 독자의 머릿속까지 같은 속도로 내려갔을지는 의문이라, 남아 있는 신문 말고 편지 같은 사료가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모든 이야기1488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숏폼이나 전보나 뇌절 오는 속도는 똑같네요ㅋㅋ 결국 팩트체크보다 자극적인 결론이 먼저 퍼지는 건 인간 본능인듯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