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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멀어서 못 듣기에 지휘한 사람 — 1824년 5월 7일, 베토벤이 뒤돌아선 순간

빗방울 2026.10.31 21:18 9분 읽기 조회 23 · 추천 2

1824년 5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의 초연을 지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지휘는 미하엘 움라우프가 했습니다. 극장 악장이었고, 베토벤은 무대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관례상 그렇게 처리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베토벤은 거의 완전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움라우프는 연주자들에게 베토벤을 무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2년 전, 베토벤이 「피델리오」 리허설을 지휘하다 참사를 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은 그날 무대에서 악보를 넘기며 박자를 짚었습니다. 들을 수 없는 오케스트라를 위해. 그리고 곡이 끝났습니다. 그는 관객이 박수를 보내는 줄 모르고 여전히 지휘봉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걸어나왔습니다. 당시 스무 살이던 콘트랄토 가수 카롤리네 웅거. 그녀가 베토벤의 소매를 잡아 조심스럽게 뒤로 돌려세웠습니다. 그제야 그는 일어나서 있던 관객과 박수를 봤습니다.

1798년, 노래방에서 시작된 소리

베토벤은 1815년 영국 피아니스트 찰스 니트에게 자기 청력 상실이 1798년에 시작됐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계기는 가수와의 격한 말다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서서히 나빠졌고, 심한 이명(tinnitus)이 겹쳤습니다.

원인은 아마도 이경화증(otosclerosis)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청신경 변성이 동반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확정된 진단은 없습니다. 당시에는 원인을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1801년에 이미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은 직업의 소멸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20년 넘게 숨기며 작곡했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 보내지 않은 편지

1802년 4월부터 10월까지, 베토벤은 빈 근교의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 머물렀습니다. 의사의 권고였고, 병을 받아들이려는 시도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날 하일리겐슈타트 유서(Heiligenstadt Testament)라고 부릅니다.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자살 충격과, 그럼에도 예술을 위해 살아남겠다는 결심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이 편지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서류 속에서 발견됐습니다. 즉 아무도 읽지 않은 채 25년을 그의 서랍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문서를 아는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입니다.

세 번째 시기, 가장 실험적인 음악

베토벤의 작품은 보통 세 시기로 나눕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세 번째입니다.

1기 (1790년대~1802) —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고전 양식. 교향곡 1번(1800), 현악 4중주 첫 세트(1801), 「월광 소나타」.

2기 (1802~1812) '영웅적 시기' — 3번 「영웅」(1805), 5번(1808), 오페라 「피델리오」(1805), 바이올린 협주곡(1806). 3번은 규모와 범위에서 전례가 없던 곡이었습니다.

3기 (1812~1827) — 여기가 진짜입니다. 「장엄미사」와 교향곡 9번(1824), 「디아벨리 변주곡」, 후기 피아노 소나타(특히 「함머클라이버」), 그리고 후기 현악 4중주(1825~1826), 그중 「대푸가」.

이 후기 작품들은 당대에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화성이 길을 잃고, 형식이 무너지고, 길이가 터무니없습니다. 「대푸가」는 초연 당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받았고, 출판사가 피아노 4손용으로 편곡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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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805년 요제프 빌리브로르트 멜러의 초상. 「영웅」 교향곡을 쓰던 2기 초입의 얼굴입니다.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9번이 특별한 이유 — 사람 목소리가 교향곡에 들어왔다

교향곡 9번은 1822년에서 1824년 사이 작곡됐습니다. 그리고 음악사에서 주요 작곡가가 교향곡에 성악을 넣은 첫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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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 요제프 카를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손에 든 악보는 「장엄미사」입니다.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4악장에 독창자 네 명과 합창단이 등장합니다. 가사는 실러의 시 「환희에 부쳐」(1785년 발표, 1803년 개정)에서 가져왔고, 베토벤이 일부 가사를 직접 추가했습니다.

초연의 독창자 중 두 명은 베토벤이 직접 섭외했습니다. 소프라노 헨리에테 존타크는 당시 18세, 콘트랄토 카롤리네 웅거는 20세였습니다. 즉 그를 뒤로 돌려세운 사람은 스무 살짜리 가수였습니다.

초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다만 기록이 엇갈립니다. 스케르초가 박수로 한 번 중단됐다는 증언이 있고, 베토벤이 몇 마디 늦게까지 지휘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즉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부터가 미화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반전: 그는 '고통받는 천재'가 아니었다

베토벤 이미지는 대개 고독한 천재입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귀가 안 들리는데도 위대한 곡을 썼다는 서사입니다. 그런데 기록은 더 복잡합니다.

그는 사교적으로 활동했습니다. 후원자를 관리했고, 출판사와 계약을 두고 여러 번 협상했습니다. 그의 작품이 다른 사람에 의해 편곡되는 것을 막으려 애썼고, 결국 자기가 직접 편곡해 내놓는 쪽을 택했습니다. 즉 저작권과 유통을 이해한 작곡가였습니다.

이 지점은 앞서 다룬 리스트와 대비됩니다. 리스트는 다른 사람의 음악을 퍼뜨리는 일을 예술로 만들었고, 베토벤은 자기 음악이 퍼지는 방식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같은 '전달'이라는 문제를 정반대 방향에서 다룬 셈입니다.

그리고 '불멸의 연인' 사건도 있습니다. 1812년 테플리츠에서 그는 열 페이지짜리 연애편지를 썼습니다. 받는 사람의 정체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음악학자 메이나드 솔로몬은 안토니에 브렌타노로 추정했지만 합의는 아닙니다.

1827년 3월 26일

베토벤은 1827년 3월 26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이 56세. 장례식에는 약 2만 명이 모였다고 전해집니다(추정에 따라 다릅니다). 학교가 문을 닫았고, 군대가 배치됐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로 전해지는 것 중 하나는 '이제 나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입니다. 다만 이런 종류의 '마지막 말'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 많습니다. 실제로 확인된 것은 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남긴 것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1) 형식의 확장. 교향곡을 4악장의 틀에서 풀어냈고, 현악 4중주를 30분이 넘는 단일 악장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낭만주의 음악은 다른 형태였을 것입니다.

2) 성악의 편입. 교향곡에 합창을 넣은 것은 당시로선 규칙 위반이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때는 장르를 넘는 일이었습니다.

3) 기록의 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보내지 않은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 하나가 200년 동안 이 사람을 이해하는 열쇠가 됐습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9번을 들으실 때 4악장만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합창이 처음 들어오는 지점 — 관현악이 오래 쌓아 올린 것을 사람 목소리가 뚫고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을 듣지 못한 사람이 그 곡을 썼습니다.

혹시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무엇을 들었을까'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저는 그가 머릿속에서만 듣던 소리가 오히려 더 정확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824년 5월 7일, 그는 박자를 짚고 있었지만 소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200년 동안, 그 소리는 전 세계에서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루트비히 판 베토벤 (1770.12.17 세례 ~ 1827.3.26 빈) — 독일 작곡가·피아니스트
  • 청력 상실: 1798년 시작(본인 진술, 1815년 찰스 니트에게), 1801년 친구들에게 고백. 원인은 이경화증 추정, 확정 진단 없음
  •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 1802년 4~10월 하일리겐슈타트 체류 중 작성,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 발송되지 않고 사후 발견
  • 3기 구분 — 1기(~1802), 2기 영웅적 시기(1802~1812), 3기(1812~1827)
  • 교향곡 9번 — 1822~1824년 작곡, 1824년 5월 7일 빈 케른트너토어 극장 초연. 주요 작곡가가 교향곡에 성악을 넣은 첫 사례
  • 초연 지휘는 미하엘 움라우프, 베토벤은 무대 옆에서 박자를 짚음. 독창자 헨리에테 존타크(18세)·카롤리네 웅거(20세)
  • 웅거가 베토벤을 뒤로 돌려세웠다는 일화 — 증언에 기반하며 세부는 이견이 있음
  • '불멸의 연인' — 1812년 테플리츠에서 작성한 10페이지 편지, 수신인 미확정(솔로몬은 안토니에 브렌타노로 추정)
  • 후기 작품: 장엄미사, 디아벨리 변주곡, 함머클라이버 소나타, 후기 현악 4중주·대푸가(1825~1826)
  • 본 글은 공개된 전기·음악사 기록을 정리한 것이며, 일화의 진위와 사인·원인 진단은 확정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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