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 시카고의 상업용 부동산 매체 The Real Deal은 짧은 기사 하나를 냈다. 표제는 "루프 상가 공실률이 다시 떨어졌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에 살아 있는 기미가 보인다". 숫자는 28.5퍼센트. 시카고 다운타운의 심장부인 루프(Loop, 고가철도가 둘러싼 도심 업무지구)의 상가 공실률이 2024년 29.8퍼센트에서 1.3퍼센트포인트 내려간 것이다. 28.5퍼센트면 다섯 칸 중 한 칸이 조금 넘게 비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 기사는 "바닥을 쳤다"는 표현을 쓴다.
같은 기간, 한때 다운타운 상가 침체의 대표 사례로 불리던 스테이트 스트리트에는 새 가게 두 곳이 들어왔다. 노스 스테이트 17번지에 갭 팩토리(Gap Factory, 갭의 아울렛형 매장), 노스 스테이트 150번지에 반스앤노블(Barnes & Noble, 미국 대형 서점 체인)이 계약했다. 반스앤노블의 계약은 "스테이트 스트리트가 수년 만에 따낸 가장 큰 규모의 계약 중 하나"로 소개된다. 공실률 28.5퍼센트짜리 거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8.5퍼센트라는 숫자의 실체
이 기사의 출발점은 시카고 소재 중개회사 스톤 리얼 에스테이트(Stone Real Estate)의 보고서다. 이 숫자만 보면 "반은 죽은 거리"로 읽히지만, 기사는 같은 보고서 안의 구역별 수치를 나란히 놓는다. 루프 안에서도 가장 핵심 상권인 센트럴 루프는 26퍼센트에서 24.7퍼센트로, 라살·와커(LaSalle/Wacker) 회랑은 28.6퍼센트에서 26.8퍼센트로 내려갔다.
반대로 미시간 애비뉴(Michigan Avenue) 남쪽 구간은 27.8퍼센트로 오히려 올랐다. 사우스 미시간 300번지에서 CVS 약국이 문을 닫은 영향이다. 같은 "다운타운", 같은 도시 안에서 세 구역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실제 내용이다. 하나의 공실률로 도시를 요약하면 이 차이가 사라진다.
미국의 상가 임대는 한국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 독자에게 가장 낯선 부분일 텐데, 이 기사에는 임대 계약 구조에 대한 설명이 사실상 없다. 확인되는 범위에서 배경만 짚으면 이렇다.
한국 상가 시장은 보증금·월세·권리금이라는 세 축으로 움직인다. 세입자는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내고, 장사가 잘되는 자리라면 전 임차인에게 권리금(시설·영업권·단골에 대한 대가)을 따로 지불한다. 미국은 그 구조가 다르다. 보증금은 통상 몇 달치 임대료 수준이고, 권리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대신 다년 계약에 임대료 인상 조항(escalation)이 붙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서 널리 쓰이는 것이 트리플 넷 리스(triple net lease, NNN)다. 세입자가 월 임대료 외에 건물세(property tax), 보험료(insurance), 공용부 유지비(maintenance)를 따로 부담하는 구조다. 표면 임대료가 낮아 보여도 실제 부담은 훨씬 크다. 이 기사의 공실률 수치가 어떤 계약 형태를 전제로 집계된 것인지는 원문에 나오지 않아 확인되지 않는다.
갭이 8년 만에 돌아온 이유
시카고 루프 워싱턴가에서 스테이트 스트리트를 바라본 모습(2026년 7월). 고가철도 선로가 거리를 가로지른다 — RailTypes,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기사에서 가장 설명이 필요한 대목은 갭의 귀환이다. 갭은 8년 전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대형 매장(flagship store)을 닫았다. 그 회사가 같은 거리로 돌아온다. 스톤의 대표 존 밴스(John Vance)는 그 배경으로 하나를 든다. 블록 37 안에 있는 바나나 리퍼블릭 팩토리(Banana Republic Factory, 갭 계열 브랜드의 아울렛 매장)가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 거리의 임대료가 떨어져서 다시 왔다"가 아니라 "이 거리에서 이미 가게를 하고 있는 회사가 잘 되고 있어서 하나 더 넣기로 했다"는 논리다. 밴스의 표현은 이렇다. "좋은 흐름이든 나쁜 흐름이든, 흐름이라는 건 그런 거다. 지금 우리는 좋은 흐름을 가지고 있다." 같은 기사 안에서 그가 회사 대표의 발언이라는 점은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업종은 어디에 붙었나 — 사무실을 따라가는 가게들
두 번째 구역인 라살·와커 회랑은 다른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이 회랑에서는 사무실 공실 개선이 식음료 임차인을 끌어들였다. 자본이 탄탄한 타워들의 저층부에 고기가게(정육점)가 라살 노스 222번지에, 패스트캐주얼 체인 카바(Cava)와 멘도시노 팜스(Mendocino Farms)가 윌리스 타워(Willis Tower)에 들어왔다.
이 구조는 상당히 직설적이다. 가게는 유동인구를 따라가고, 그 유동인구의 핵심은 이 도시에서 아직 사무실 근무자다. 재택근무가 도심 상권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흔하지만, 적어도 시카고의 라살·와커에서는 사무실이 조금씩 채워지자 저층 상가가 따라 움직였다는 상관관계가 관찰된다.
관광이 만든 것과 관광이 만든 부작용
미시간 애비뉴 남쪽은 세 번째 패턴이다. 이 구간의 활동은 "관광객을 겨냥한 콘셉트"가 주도했다. 포르티요스(Portillo's, 시카고 출신 핫도그·이탈리안 비프 체인)와 노스 미시간 360번지의 헬로키티 테마 카페가 그 예로 든다. 관광객의 지갑을 노린 브랜드가 고층 건물 저층부를 채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같은 구간의 공실률은 27.8퍼센트로 올랐다. CVS가 문을 닫은 탓이다. 관광 특수가 새 가게를 부르는 동안, 생활 필수재를 파는 약국 하나가 빠지면서 전체 숫자는 나빠진다. 공실률은 "얼마나 활기찬가"가 아니라 "몇 개의 칸이 비었는가"를 세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반전 —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일 수 있다
여기서 통념을 한 번 뒤집어 볼 만하다. "다운타운 상권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보통 두 가지를 섞는다. 하나는 실제 공실이고, 다른 하나는 "예전처럼 백화점과 대형 브랜드가 늘어서지 않는다"는 향수다. 스테이트 스트리트가 잃은 것은 색스 오프 파이스(Saks Off 5th)와 앤스로폴로지(Anthropologie) — 둘 다 2024년에 떠난 대형 브랜드다.
그 자리에 들어오는 것은 아울렛형 매장, 서점, 체험형 카페, 패스트캐주얼 식당이다. 평균 단가가 낮고, 회전이 빠르고, 방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업종이다. 대형 백화점이 빠진 자리를 아울렛과 식음료와 체험 매장이 나눠 메우는 이 흐름은 공실률이라는 하나의 숫자로는 잡히지 않는다. 28.5퍼센트 안에는 "아직 못 채운 칸"과 "다른 종류로 채워지는 중인 칸"이 함께 들어 있다.
한국의 명동과 겹치는 것, 다른 것
한국에서 비슷한 처지의 상권을 꼽자면 서울 명동이다. 명동도 한때 대형 브랜드가 빠지고 공실이 늘며 "몰락"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관광객과 체험형 매장, 저단가 브랜드, 식음료가 그 자리를 다시 채웠다. 시카고 루프와 명동이 공유하는 것은 이 대체 경로다. 대형 앵커의 공백을 소형·체험·식음료가 메우는 방식.
다른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시카고 루프의 유동인구는 관광객만이 아니라 여전히 사무실 근무자에 크게 의존한다. 명동의 유동인구는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훨씬 높다. 둘째, 한국 상가에서는 권리금과 보증금이 세입자의 진입·철수 비용을 크게 만든다. 빈 칸이 생겨도 새 세입자가 들어오는 속도 자체가 다르다. 다만 시카고의 계약 구조가 실제로 어떤 조건이었는지는 원문에 없으므로, 이 비교는 구조적 배경 수준에 머문다.
사료의 한계 — 누구의 시각인가
이 기사의 1차 출처는 중개회사 스톤 리얼 에스테이트의 보고서이고, 이를 시카고 경제 매체 크레인스(Crain's)가 먼저 보도했으며, The Real Deal이 다시 요약했다. 중개회사의 보고서는 계약이 성사되는 쪽에서 나온다. "바닥을 쳤다", "모멘텀이 있다"는 판단은 계약을 중개하는 회사의 대표 발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 하나, 이 기사에는 임대료 수준, 계약 기간, 임차인의 매출 같은 핵심 변수가 거의 없다. 공실률이라는 단일 지표와 몇 개의 계약 사례로 "회복"을 판정하는 구조다. 28.5퍼센트라는 숫자가 개선인지 아닌지는 결국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의 문제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동네의 상권은 지금 어느 쪽인가요. 비어 있는 칸이 많은데, 그 칸을 채우는 업종이 예전과 다른 종류로 바뀌고 있는지. 아니면 애초에 채울 사람이 오지 않는지. 공실률 숫자 하나로 판단하기 어렵다면, 여러분이 사는 곳에서 "용도가 바뀌고 있다"고 느끼는 거리는 어디인가요.
참고 자료
· "Loop retail vacancy rate falls again, as State Street shows signs of life" — The Real Deal(TRD Staff), 2026년 1월 30일. therealdeal.com
· 원 보고서: Stone Real Estate(시카고)
· 선행 보도: Crain's Chicago Business, 루프 상가 공실 2년 연속 하락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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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09:25
28.5퍼센트가 개선으로 읽히는 이유는 분모가 줄어서가 아니라, 채워지는 칸의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울렛과 서점, 체험형 카페는 예전 백화점 앵커와 같은 방문 목적을 만들지 못하지만, 한 칸을 비워두는 것보다는 낫다. 다만 NNN 구조에서 표면 임대료가 낮아 보이는 것과 실제 임차인 부담이 낮은 것은 다른 문제라, 계약 조건 없이 회복을 판정하기는 이르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대형 매장이 빠진 자리는 편의점과 체험 카페가 차례로 들어오는 식이었다. 원 기사(The Real Deal) -
빗방울
2026.11.02 09:53
NNN 얘기 ㅋㅋ 표면 임대료 낮아 보여도 건물세 보험 유지비까지 세입자가 무는 구조면 싼 자리도 아님 ㄷㄷ 결국 밴스 말처럼 이미 장사 되는 놈이 한 칸 더 먹는 게 제일 현실적인 신호인 듯 -
빗방울
2026.11.02 10:59
공실을 "칠 사람이 없는 칸"과 "다른 용도로 채워지는 칸"으로 나눠 본 대목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구역별로 방향이 갈린다는 점도 그렇다. 센트럴 루프와 라살·와커는 내려가고 미시간 남쪽은 약국 하나가 빠지면서 올라갔다는 건, 도시 하나를 숫자 하나로 요약하는 습관이 얼마나 거친지 보여준다. 사무실 근무자가 여전히 유동인구의 중심이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재택근무로 도심이 끝났다는 말이 도는 동안에도, 사무실이 조금 채워지자 저층 상가가 따라 움직였다는 관찰은 순서가 분명하다. 원 기사(The Real Deal) -
빗방울
2026.11.02 12:30
권리금이 없는 나라는 빈 칸을 메우는 게 아니라 버리는 쪽이 기본값이더라.
모든 이야기1447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