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라고 하면 스마트폰과 반도체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출발점은 전자공장이 아니라 대구의 상점이다.
1938년 이병철이 세운 삼성상회. 오늘날의 삼성은 여기에서 시작했다. 처음부터 반도체를 만들 계획을 세워놓고 한길로 달려온 회사라고 생각하면, 중간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놓치게 된다.
처음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었다
삼성상회는 무역과 상업을 하던 회사였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개인용 컴퓨터도 없었다. 우리가 아는 삼성의 모습은 훨씬 나중에 만들어졌다.
전쟁을 거친 뒤 삼성은 제조업으로 사업을 넓힌다. 1953년에는 제일제당을, 1954년에는 제일모직을 세웠다. 이름 그대로 설탕과 섬유를 만드는 사업이다.
물건을 가져다 파는 데서, 직접 공장을 돌려 만드는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반도체보다 설탕과 옷감이 먼저였다는 사실은 지금의 삼성 이미지를 생각하면 꽤 낯설다.
삼성의 주요 사업 전환점. 삼성그룹 전체의 모든 사건을 담은 연표는 아니며, 연도별 핵심 흐름을 골랐다. 직접 제작한 한글 그림.
보험도 하고, 백화점도 하던 회사
삼성은 한 업종에만 머물지 않았다. 1958년 안국화재를 인수했고, 1963년에는 동방생명과 동화백화점을 인수했다. 안국화재와 동방생명은 훗날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동화백화점은 신세계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꿨다.
여기서 익숙한 이름들이 튀어나온다. CJ의 뿌리인 제일제당과 신세계도 과거에는 삼성과 한 울타리에 있었다. 두 계열은 1997년 공식적으로 분리됐다. 지금 별도 그룹으로 활동하는 회사의 옛 역사를 읽다가 삼성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삼성 역사를 읽을 때는 ‘처음 세워진 회사’와 ‘지금 그 이름을 쓰는 회사’를 단순히 일대일로 연결하면 헷갈릴 수 있다. 중간에 이름도 바뀌고, 합병도 하고, 계열 분리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전자회사는 1969년에 등장한다
1969년 삼성전자공업이 설립됐다. 지금의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회사다. 삼성상회가 문을 연 지 30년이 넘게 지난 뒤의 일이다.
초기에는 TV와 생활가전 같은 제품을 만들며 전자산업의 경험을 쌓았다. 우리가 오늘날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삼성의 역사’ 안에도, 상업에서 제조업으로 넘어간 시기와 전자산업에 들어간 시기가 따로 있다.
그 무렵 그룹은 중공업과 서비스 등으로도 몸집을 넓혔다. 삼성중공업은 1974년 설립됐다. 이후 삼성은 전자제품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여러 업종을 가진 기업집단으로 커졌다.
반도체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성공이 아니었다
삼성의 반도체 진출에서 중요한 해는 1974년과 1983년이다.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발을 들였고, 1983년에는 64K D램을 개발했다.
D램은 정보를 잠시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다. 컴퓨터가 일을 할 때 펼쳐놓는 작업대에 비유하면 쉽다. 작업대가 필요해진다고 누구나 바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계와 제조 기술, 장비, 공장과 생산 경험이 함께 필요하다.
삼성은 이 분야에 투자를 이어갔고, 1990년대 초에는 세계 D램 시장의 선두권에 올라섰다. 여기서 ‘반도체 1위’라는 표현은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D램인지 전체 메모리인지, 매출인지 기술 개발인지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스마트폰 같은 완제품을 만드는 사업과 그 안에 들어갈 부품을 만드는 사업이 함께 커졌다는 점이 이후 삼성전자의 모습을 이해하는 열쇠다.
1993년, 많이 만드는 것에서 잘 만드는 것으로
이병철이 1987년 세상을 떠난 뒤 이건희가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1993년, 이건희는 이른바 신경영을 선언한다.
쉽게 풀면 ‘생산량만 늘리는 데 머물지 말고 품질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자’는 방향이었다. 제품의 성능뿐 아니라 디자인과 브랜드도 중요해졌다. 해외 소비자에게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는가가 기업의 경쟁력이 된 것이다.
물론 선언 한 번으로 회사가 바뀐 것은 아니다. 공장의 개선, 연구개발, 판매와 서비스, 현장에서 일한 사람들의 노력이 이어져야 실제 제품이 달라진다. 유명한 경영 일화만으로 성장을 전부 설명하기는 어렵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그룹의 모양도 바뀌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삼성도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겪었다. 앞서 진출했던 사업을 모두 그대로 안고 커진 것은 아니다. 사업을 줄이거나 정리하고, 집중할 분야를 다시 고르는 과정이 있었다.
회사가 성장한다는 말을 ‘매년 새 사업을 하나씩 추가한다’고만 생각하기 쉽다. 삼성의 역사에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장면만큼, 기존 사업에서 물러나는 장면도 있다.
갤럭시를 들고 세계 소비자와 직접 만나다
2010년에는 갤럭시 S가 등장했다. 삼성에 휴대전화 사업이 그때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경쟁에서 갤럭시가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아가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2010년형 갤럭시 S의 국제판 모델 i9000. 국내 판매 모델과 세부 사양·외형은 다를 수 있다. 사진: Grobert,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원본 내용 변경 없음.
설탕과 섬유를 만들던 기업이, 세계 소비자들이 매일 손에 들고 쓰는 제품을 놓고 경쟁하게 된 셈이다. 이 변화는 사업 분야만 바뀐 것이 아니다. 부품을 잘 만들고 물건을 많이 파는 일에 더해, 소프트웨어와 사용 경험까지 함께 다뤄야 하는 경쟁으로 넘어갔다.
삼성그룹과 삼성전자는 같은 말이 아니다
삼성그룹 안의 일부 계열사를 예로 든 그림. 회사들을 소유 지분 순서로 연결한 지배구조도가 아니다. 직접 제작한 한글 그림.
삼성전자는 하나의 회사이고, 삼성그룹은 여러 계열사를 묶어 부르는 기업집단이다. 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중공업처럼 하는 일이 다른 회사들이 있다. ‘삼성 주식을 산다’고 해도 어느 회사의 주식인지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경영 세대도 바뀌었다. 이재용은 2022년 삼성전자 회장에 취임했다. 정확한 직함은 삼성전자 회장으로, 계열사들을 전부 하나의 법인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
큰 성공의 역사에는 그늘도 있다
삼성의 역사를 성공담으로만 채우면 빠지는 장면이 있다.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은 그룹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병철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됐다.
기업이 커지는 과정은 기술과 제품의 역사인 동시에, 경영의 책임을 묻는 역사이기도 하다. 사업 성과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봐야 기업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삼성의 긴 역사를 꿰는 흐름은 이렇다. 물건을 사고팔던 상점이 직접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됐고, 이후 전자제품과 핵심 부품을 만드는 기업집단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함께 출발했다가 다른 길로 간 회사도 있었다.
지금 손에 든 스마트폰만 보면 대구의 상점과 연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업의 옛날 이야기는 의외로 재밌다. 여러분은 삼성이 설탕·섬유 사업을 먼저 했다는 것과 CJ·신세계가 한 울타리에 있었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낯설었나요?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삼성그룹
- Samsung Global Strategy Group — 삼성 연혁
- 삼성물산 — 연혁 · 삼성전자 — 기업 정보·연혁
- 삼성반도체 — 역사 · 국가기록원 — 반도체 기술
- 서울신문, 1997년 4월 18일 — 제일제당·신세계 계열 분리
- 삼성전자 뉴스룸 — 갤럭시 10년
- 연합뉴스, 2022년 10월 27일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취임
그룹 전체의 주요 전환점을 쉽게 소개한 글로, 모든 계열사의 합병·분리와 사건을 망라한 기업사는 아니다. 기업 공식 자료는 연혁 확인에 활용했으며, 현재 시장점유율이나 주가 전망을 다룬 글은 아니다.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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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15:06
설탕과 옷감이 먼저였다는 대목에서 저도 좀 멈칫했어요. 제일제당·신세계가 원래 한 울타리였다는 건 들어도 볼 때마다 신기하고요. 스마트폰만 보면 상상이 잘 안 되는데, 그 사이에 보험과 백화점이 있었다는 게 기업사 읽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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