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 5일 오후 2시 10분,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해군항공기지(NAS Fort Lauderdale) 활주로에서 그루먼 TBM 어벤저 뇌격기 5대가 차례로 떠올랐다. 원래 출발 예정은 13시 45분이었지만 편대장 찰스 캐럴 테일러 중위가 늦게 도착해 25분이 밀렸다. 출격 전 점검에서 이상한 점이 하나 확인됐다. 다섯 대 전부 기내 시계가 없었다. 이날 훈련은 '항법 문제 1호'로 불린 추측항법(dead reckoning) 실습이었고, 추측항법은 경과 시간을 계산해 현재 위치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항공기 시계가 없다는 점은 문제로 취급되지 않았다. 조종사 각자 손목시계가 있을 것이라 가정했기 때문이다.
훈련은 세 개의 구간으로 짜여 있었다. 091도(거의 정동)로 56해리를 날아 '헨스 앤드 치킨스' 암초에서 폭격 훈련을 하고, 같은 방향으로 67해리를 더 간 뒤 346도로 좌회전해 73해리, 그랜드 바하마 상공을 지나 다시 241도로 120해리를 비행해 기지 북쪽에서 훈련을 마치는 코스였다. 다섯 대 중 한 대인 FT-81은 승무원이 한 명 모자랐다. 앨런 코스나 상병이 이 훈련에서 빠져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가 탑승하지 않은 채 남긴 자리가 이날 전체 사상자 수를 15명에서 14명으로 만들었다. 뒤에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잔인한 우연이다.
실종의 타임라인
15시 무렵 마지막 폭탄을 투하했다는 교신이 기지에 잡혔다. 15시 40분, 같은 훈련을 준비하던 교관 로버트 코크스 중위가 알 수 없는 송신을 받았다. 승무원 한 명이 동료 파워스에게 나침반 방위를 물었고, 파워스는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선회 후 길을 잃은 것 같다'고 답했다. 테일러가 교신에 나서자 코크스는 태양을 왼쪽 날개에 두고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라고 조언했다. 테일러의 답은 '나침반 두 개가 모두 죽었다. 여기는 육지인데 지형이 깨져 있다. 분명 키스(플로리다키스 제도)인데 얼마나 남쪽인지 모르겠다'였다.
기지는 야간 식별용 IFF 송신기(YG)를 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테일러는 주파수 변경 요구에도 '주파수를 바꿀 수 없다. 내 비행편대를 온전히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17시 24분 날씨 확인을 요청했고, 17시 50분 여러 지상국이 전파를 삼각측량해 위치를 북위 29도·서경 79도 반경 50~100해리로 좁혔다. 바하마 북쪽, 플로리다 중부 해안에서 한참 떨어진 대서양이었다. 테일러의 마지막 교신은 '모든 기체는 밀착하라. 착수가 아니면 불시착해야 한다. 첫 기체가 연료 10갤런 이하로 떨어지면 우리는 함께 내려간다'는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수색기가 사라진 자리
18시 이후 카탈리나 수색기가 출발했고, 밤이 되자 기지에서 훈련 예정이던 PBM 마리너 비행정 2대가 수색에 투입됐다. 그중 59225호가 19시 27분 바나나리버 기지에서 이륙해 19시 30분 정례 교신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21시 15분, 유조선 SS 게인스밀스는 28도 35분·서경 80도 15분 해상에서 약 30미터 높이의 화염이 10분간 타오르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선장은 기름과 항공유가 흩어진 해면을 수색했지만 생존자를 찾지 못했다. 호위항모 USS 솔로몬스도 같은 위치·같은 시각에 항공기와의 레이더 접촉을 잃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확인된 수치는 이렇다. 어벤저 5대, 승무원 14명. 마리너 1대, 승무원 13명. 합계 27명. PBM은 항공유를 9.83톤까지 실을 수 있었고, 연성 연료 배관은 거친 파도에서 느슨해져 새는 경향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해군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마리너의 손실을 공중 폭발로 결론지었다.
왜 설명이 어렵다고 말하는가
공중 폭발 가설의 물리적 근거는 단단하다. 해군 조사 보고서는 테일러가 나침반 고장을 이유로 책임을 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목격한 섬들이 키스가 아니라 바하마였고, 그 때문에 조종 방향을 정반대로 잡았다고 판단했다. 기지에서는 '이 지역에서 조난당하면 270도로 서쪽으로 가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테일러가 실제로 서쪽으로 돌았을 때는 이미 연료 항속 거리를 넘긴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훈련을 다른 편대는 이날 무사히 마쳤다. 즉 사고는 '이 해역의 이상 현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위치 판단 오류와 그 오류를 교정하지 못한 절차'라는 설명이 사료로 뒷받침된다.
그런데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어벤저 5대와 마리너 1대, 27명의 유해와 기체 잔해는 2020년대 현재까지 확인된 바가 없다. 1986년 챌린저호 수색 중 플로리다 연안에서 어벤저 한 대가 발견됐지만 플라이트 19의 기체가 아니었고, 1991년 그레이엄 호크스의 탐사팀이 발견한 어벤저 5대도 꼬리번호를 확인하니 다른 편대의 것이었다. 2004년 BBC 다큐멘터리는 그중 한 대의 기체번호를 읽어 1943년 10월 9일 실종된 기체임을 확인했다. 승무원은 전원 구조됐다. 대서양은 기체를 감춰 두기에 충분히 넓고, 수색 반경 100해리를 넘는 심해에서 80년 전 알루미늄 동체를 찾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가설과 각각의 약점
가설 1: 나침반 고장과 위치 착각
해군 조사위원회의 결론이자 지금도 가장 널리 지지받는 설명이다. 테일러는 나침반 이상으로 방위를 잃었고, 지나온 섬을 키스로 오인해 북동쪽으로 날아 대서양으로 나갔다. 약점은 두 가지다. 첫째, 나침반 '두 개'가 동시에 고장 났다는 진술은 다른 훈련기에서 같은 고장이 보고되지 않아 검증이 어렵다. 둘째, 부하 조종사 일부는 위치를 대략 알고 있었고 교신에서도 서쪽으로 가면 육지라는 발언이 나왔는데, 그들이 왜 독자적으로 방향을 잡지 않았는지는 '군 기강'이라는 사후 설명 외에 문서로 남은 근거가 없다.
가설 2: 마리너의 공중 폭발
플라이트 19의 훈련 항로 개념도 — NASA Landsat 위성사진 위에 그린 삽화,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파일: Flight 19 raster map 1.png)
PBM 59225의 손실에 대해서는 증거가 비교적 구체적이다. 목격된 30미터 화염, 10분간의 연소, 기름 띠, 항모의 동시 레이더 소실이라는 세 가지 독립 기록이 겹친다. 약점은 원인이 아니라 증거의 성질에 있다. 화염 목격은 '폭발했다'는 사실만 보여줄 뿐 '왜 폭발했는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연료 배관 누유라는 정비상 결함은 다른 기체의 사례를 근거로 한 추정이며, 기체 잔해가 없으니 직접 입증된 것은 아니다.
가설 3: 초자연적 설명
버뮤다 삼각지대 문서들은 아틀란티스의 잔재, 공간 왜곡, UFO를 거론해 왔다. 약점은 반증 가능성의 부재뿐 아니라 지지 증거의 부재다. 미국 해군은 초자연적 설명을 부인하고, 해양대기청(NOAA)은 허리케인과 걸프해류의 급격한 기상 변화, 얕은 수심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다. 영국 로이드 보험시장은 이 해역에 더 높은 보험료를 매기지 않으며, 세계자연기금(WWF)이 2013년 선정한 '가장 위험한 바다' 10곳에도 이곳은 없다. 미국 지명위원회는 버뮤다 삼각지대를 공식 지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반전 — 삼각지대는 그날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흔한 통념은 '플라이트 19가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미스터리의 시작'이라는 서술이다. 그러나 사료를 시간순으로 놓으면 순서가 뒤집힌다. 실종 당일 1945년 12월 5일의 신문 보도에는 '삼각지대'라는 개념이 없다. '버뮤다'라는 지명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50년 9월 17일, 마이애미헤럴드 기자 에드워드 밴윙클 존스의 기사가 AP 통신을 타고 전국지에 실리면서다. 삼각형의 경계를 처음 그려낸 것은 1952년 『페이트』지에 실린 조지 X. 샌드의 글이었고, 마이애미·산후안·버뮤다를 꼭짓점으로 못 박은 것은 1964년 빈센트 개디스가 『아르고시』지에 쓴 '죽음의 버뮤다 삼각지대'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대목이 있다. 개디스의 1964년 기사와 1974년 찰스 벌리츠의 책에 인용된 유명한 마지막 교신, '모든 방향을 확신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잘못됐다. 이상하다. 바다가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니다'라는 대사는 1945년 해군 교신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1962년 4월 『아메리칸 리전』지에 실린 앨런 W. 에커트의 글에서 처음 등장한 문장이다. 즉 '플라이트 19의 마지막 절규'로 알려진 대사는 사건 17년 뒤 잡지 기사에서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1975년 라이브러리언 래리 쿠셔는 『버뮤다 삼각지대 미스터리: 해결됐다』에서 이 같은 사례들을 조목조목 대조했다. 그의 결론은 '이 지역의 실종 비율은 다른 바다와 다르지 않다'였다. 미스터리는 바다가 아니라 1950~70년대의 출판 시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료의 한계
1차 자료의 상태도 단순하지 않다. 1945년 12월 7일 소집된 해군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500쪽에 달하며, 테일러가 나침반 고장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이후 '원인 불명'으로 수정됐다. 테일러의 어머니가 '아들과 동료 14명의 실종 책임을 아들 한 사람에게 씌운다'며 이의를 제기한 뒤였다. 해군이 사망자 시신도 기체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책임 판단을 내렸다는 점은 그 자체로 조사 기록의 한계다. 조사위원회는 '무사했을 수도 있다'는 반대 시나리오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후대의 서술은 더 어렵다. 1977년 영화 『미지와의 조우』는 플라이트 19를 소노라 사막에 완전한 상태로 착륙시켜 외계인의 존재를 암시하는 장치로 썼고, 등장인물의 이름도 실제 승무원과 다르다. 2004년 BBC 다큐멘터리와 1991년 탐사 보도는 실제 수중 탐사를 담았지만, 탐사 책임자 호크스 본인은 2012년에 '투자자와 국방부 모두 사건을 덮는 데 이해관계가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같은 사람이 1991년에는 '플라이트 19 발견'이라고 발표하고 2004년에는 '우연히 같은 자리에 모인 사고 잔해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사료를 읽는다는 것은 누가 어떤 시점에 무엇을 말했는지까지 함께 읽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
플라이트 19는 '사라진 비행기'가 아니라 '이야기가 기사를 앞지른 사례'로 남았다. 1940년대의 군 기록, 1950년대의 신문, 1960년대의 잡지, 1970년대의 베스트셀러, 1977년의 영화가 한 사건 위에 층층이 쌓였고,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대사는 해군 문서가 아니라 잡지 기사에서 나왔다. 사료 비평의 관점에서 이 사건은 미스터리라기보다 미디어사다. 같은 방식의 재구성이 오늘날에도 매일 일어나며, 최근의 사건일수록 원자료와 2차 서술의 거리를 확인하기가 더 어렵다.
군 기록 보관소의 500쪽 보고서는 미국 의회도서관 계열 자료와 하이퍼워 아카이브를 통해 원문을 볼 수 있다. 27명의 이름과 계급은 포트로더데일 해군항공기지 박물관이 관리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미 하원이 이들을 추모하는 결의를 채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는 미스터리가 풀려서가 아니라, 풀리지 않은 채로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1942년 노퍽 상공을 편대 비행하는 TBF 어벤저 — 미 해군 사진 80-G-427475,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독자에게
여기서 질문 하나를 남긴다. 만약 1945년 12월 6일 아침의 신문이 '훈련 중 27명 실종'이라는 짧은 기사만 냈고 이후 아무도 그 사건을 다시 쓰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 버뮤다 삼각지대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가 '미스터리'라고 부르는 사건 중 몇 개가, 60년 뒤 누군가의 원문 대조로 같은 방식의 반박을 기다리고 있을까. 사료를 믿을 것인가, 그 사료를 인용한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영문판 「Flight 19」: https://en.wikipedia.org/wiki/Flight_19
· 위키백과 영문판 「Bermuda Triangle」: https://en.wikipedia.org/wiki/Bermuda_Triangle
· 미 해군 조사위원회 보고서 전문(1945년 12월 7일, 하이퍼워 아카이브): http://www.ibiblio.org/hyperwar/USN/rep/Flight19/index.html
· 래리 쿠셔, 『The Bermuda Triangle Mystery: Solved』(1975)
· 마이클 맥도넬, 「Lost Patrol」, 『Naval Aviation News』 1973년 6월호
· 포트로더데일 해군항공기지 박물관 「The Mystery of Flight 19」: http://www.nasflmuseum.com/flight-19.html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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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4 01:59
1962년 잡지에서 만들어진 대사가 60년 넘게 '마지막 교신'으로 통하는 게 제일 무서운 부분이지 😅 원문 대조 한 번이면 무너질 이야기가 책이랑 영화 타고 굳어버렸다는 것도 -
빗방울
2026.11.04 03:07
전에 쓴 데사 얘기 말고, 코스나 상병이 빠지면서 15명이 14명이 된 대목. 훈련 빼 달라는 요청 하나가 사상자 숫자를 바꿨다는 게 참 이상하게 오래 남네. 그리고 같은 사람이 1991년엔 발견했다 하고 2012년엔 이해관계 얘길 꺼내는 것도. 사료를 읽는 건 결국 말한 사람의 시간표를 같이 읽는 일이라는 말, 그대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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