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1일, 영국 도시정책 싱크탱크 센터 포 시티즈(Centre for Cities)의 연구원 발렌타인 퀴니오는 한 장의 산점도에서 출발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 해 초 덴햄스(Debenhams)가 문을 닫았고, 온라인 패션몰 부후(Boohoo)가 상표는 사들이되 1만 2천 개의 일자리가 걸린 실제 매장은 사지 않겠다고 밝힌 직후였다. 영국 전역에 남은 질문은 하나로 모였다. "온라인 쇼핑이 하이스트리트를 죽이고 있는가?" 그가 펼쳐 든 그래프의 횡축은 도시별 온라인 지출 비중, 종축은 빈 점포 비율이었다. 두 축 사이에 뚜렷한 선이 그려지지 않았다.
선이 그려지지 않은 산점도
2018년 밸류에이션 오피스(VOA)와 보클레어(Beauclair) 데이터를 겹친 결과, 온라인에서 쓰는 돈의 비율이 비슷한 도시들의 공실률은 서로 전혀 다른 높이에 흩어져 있었다. 브래드퍼드, 입스위치, 버밍엄은 온라인 지출 비중이 비슷한데 공실률은 큰 차이를 보였다. 옷처럼 꼭 필요한 것만 파는 게 아니라 일부러 오프라인에서 사는 품목, 즉 '비필수재(non-essential)' 지출의 온라인 비중만 따로 떼어내도 결과는 같았다. 워딩, 플리머스, 레스터, 셰필드, 버컨헤드는 온라인 비중이 비슷했지만 빈 점포 비율은 각자 달랐다.
오히려 온라인 구매 비중과 1회 결제 금액은 더 부유하고 번영한 도시에서 조금 더 높게 나타났다. 캠브리지, 런던, 옥스퍼드, 브라이턴처럼 관광지라는 이유로 예외라고 흘려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 네 도시만 빼고 나면 나머지 도시들 사이에도 여전히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 연구자가 강조한 것은 "적어도 어디서나 그렇지는 않다(at least not everywhere)"는 단서였다.
버밍엄 어딩턴 하이스트리트의 상점가. 2020년 12월 촬영 — 사진: geograph.org.uk,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파이의 크기와 조각의 크기
그가 대신 세운 가설은 단순하다. 중요한 것은 파이를 어떻게 나누는가가 아니라 파이 자체의 크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도시 거주자의 임금 수준과 공실률 사이에서는 훨씬 명확한 관계가 관찰됐다. 월급이 좋은 일자리가 얼마나 많은지가 상권의 활력을 가르는 가장 큰 변수라는 뜻이다. 돈이 오갈 곳이 줄어들면, 그 돈이 온라인으로 나가든 오프라인으로 나가든 상점가는 타격을 입는다.
도심 경제의 성과도 같은 논리로 연결된다. 고숙련 서비스 기업이 도심에 자리 잡으면 직장인이 따라오고, 그 직장인이 점심과 커피와 장보기에 돈을 쓴다. 기사는 1차 봉쇄 해제 직후 런던과 대도시 도심이 겪은 고생을 이 구조의 증거로 든다. 일자리는 도시 안에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도심으로 출근하지 않으면, 주방 식탁과 뒷방 침실에서 이어지는 일이 도심의 가게와 술집과 카페의 매출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끝나 있던 용도 전환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실패가 아니라 적응에 대한 기록이다. 기사에 따르면 이미 더 강한 도심들은 온라인과의 경쟁에 적응하는 길을 상당 부분 걸아가고 있었다. 매주 며칠씩 도심으로 통근하는 수천 명의 직장인이 주머니에 돈을 넣고 다닌다는 사실이 곧 시장이 된다. 달라진 것은 무엇을 파느냐다.
센터 포 시티즈의 이전 연구는 강한 도심일수록 하이스트리트 단위 중 음식·음료·여가 용도로 지정된 비중이 더 높다는 점을 보여줬다. 기사는 이것이 인터넷 소매의 부상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한다. 옷가게가 들어오던 자리에 식당과 술집이 들어오는 변화는 상권의 몰락이 아니라 용도의 재편인 셈이다.
영국의 상가 임대 제도 — 리스홀드와 프리홀드
이런 변화를 이해하려면 영국 상가의 소유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영국에서는 건물을 사는 것을 '프리홀드(freehold)'라고 부르는데, 땅과 건물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을 뜻한다. 반면 상가 대부분은 '리스홀드(leasehold)'라는 방식으로 거래된다. 건물을 소유하되 그 건물이 딛고 있는 땅은 다른 사람 소유이고, 정해진 기간 동안만 땅을 빌려 쓰는 권리다. 기간이 길면 99년, 125년, 999년짜리도 흔하다. 기간이 짧아질수록 가치는 급격히 떨어지고, 연장에는 별도의 협상이 필요하다.
한국 식으로 대응시키면 '보증금을 크게 걸고 장기 임차한 뒤 권리금을 얹어 되파는' 구조에 가깝지만, 결정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전세는 2년 안팎의 단기 계약이고 보증금은 돌려받는 돈이지만, 영국의 리스홀드는 수십 년짜리 자산이라 점포 자체를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된다. 상가의 임대 계약도 임차인이 나갈 때 다음 임차인에게 권리를 넘기는 '할당(assignment)'이 일반적이다. 다만 기사는 영국 상가 임대료나 리스홀드 조건이 이번 변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직접 다루지 않는다. 임대료의 구체적 수준과 계약 구조는 확인되지 않음으로 남겨 둔다.
팬데믹이 앞당긴 것과 앞당기지 못한 것
팬데믹의 효과에 대해서도 기사는 단호하다. 2020년 2월부터 10월 사이 온라인 쇼핑 비중은 평균 19.5%에서 23.7%로 올랐다. 숫자만 보면 극적인 도약 같지만, 기사는 분모인 전체 지출이 줄었고 오프라인 매장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는 점을 함께 보라고 요구한다. 실질적인 상승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계산이다.
더 흥미로운 반전은 "팬데믹이 기존 추세를 가속했다"는 통설이 세밀한 수준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팬데믹 이전에 온라인 비중이 가장 높았던 도시들이 온라인 쇼핑의 가장 큰 증가를 겪은 곳이 아니었다. 증가 폭을 결정한 것은 봉쇄 조치의 강도에 가까웠다. 2020년 8월 제한이 잠시 풀렸을 때, 오프라인 지출은 63개 도시 전부에서 봉쇄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하이스트리트 회복 트래커(High Street Recovery Tracker)의 보행자 데이터도 사람들이 돌아왔음을 보여줬다.
한국의 상권과 겹치는 지점
이 분석은 한국 독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서울의 을지로, 대구의 동성로, 부산의 서면 같은 오래된 도심 상권이 온라인 쇼핑과 재택근무, 그리고 임대료 부담 속에서 겪는 고민은 영국 하이스트리트와 닮았다. 공통점은 '돈이 오갈 사람이 그 거리에 서 있는가'가 빈 점포 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반면 차이도 크다. 한국은 재개발·재건축이라는 강력한 용도 전환의 도구와, 권리금·보증금이라는 독특한 임차 구조가 있다. 빈 점포가 늘어도 건물주가 임대료를 쉽게 낮추지 못하는 이유도 이 구조와 맞물린다. 영국식 리스홀드 시장처럼 점포 임차권 자체가 거래되는 구조가 한국에는 없기 때문에, 공실이 발생했을 때 조정되는 속도와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사료의 한계
이 글은 언론 보도가 아니라 정책 싱크탱크의 블로그 기고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센터 포 시티즈는 도시 경제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이 분석은 "정책은 도심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머니에 돈을 넣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향한다. 데이터는 2020년 이전 것과 팬데믹 초기 수치에 머물러 있고, 이후 몇 년간의 임대료 급등이나 금리 인상, 에너지 비용 상승은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공실률과 온라인 지출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인과관계의 부재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기사는 상인 개개인의 경험을 담지 않는다. 통계로 말하는 연구자의 시각이며, 가게를 접은 사람의 시각은 이 데이터 안에 없다.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 동네의 상권에서 지난 몇 년 사이 옷가게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왔는가? 식당인가, 편의점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빈 칸인가? 그 자리가 비었다면 그 이유는 온라인 쇼핑 때문인가, 아니면 그 거리에 돈을 쓸 사람이 더 이상 서 있지 않기 때문인가?
참고 자료
- Valentine Quinio, "Is online shopping threatening the future of our high streets?", Centre for Cities 블로그, 2021년 2월 11일. https://www.centreforcities.org/blog/is-online-shopping-threatening-the-future-of-our-high-streets/
- 이미지: "Shops on Erdington High Street — geograph.org.uk — 6698128",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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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5 05:36
팬데믹 가속론이 세밀한 수준에서 깨진다는 지적이 눈에 걸린다. 2020년 8월 봉쇄가 풀리자 63개 도시 전부에서 오프라인 지출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대목. 온라인 비중은 분모가 줄어서 오른 것이라는 계산도 그렇고.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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