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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끊긴 도시의 투표 — 남아공 지방선거, ANC의 몰락이 아니라 연립의 함정

빗방울 2026.11.05 12:31 10분 읽기 조회 15 · 추천 2

2026년 11월 4일 수요일, 요하네스버그 켄싱턴의 투표소. 물과 전기가 몇 주째 끊긴 동네에서 26세 콜센터 상담원 체피소 마코체는 두 표를 갈라 던졌다. 시의원 표는 중도우파 민주동맹(DA) 후보에게, 정당 비례표는 전 대통령 제이컵 주마의 좌파 성향 움콘토 웨시즈웨(MK)당에. “그냥 변화를 원해요”라는 말이 그가 남긴 전부다. 72세 은퇴 보일러공 테런스 피터스는 더 직설적이었다. “요하네스버그 인프라는 끝났어. 어떤 정당도 여기선 다 못 가져. 서커스가 될 거고, 연립정부가 될 거야.”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전역의 25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의원과 정당을 뽑는 지방선거가 치러졌고, 개표가 진행 중이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등록 유권자는 사상 최대인 2,920만 명이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과 함께 집권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이번에도 제1당이 될 가능성은 높지만, 가디언이 인용한 여론조사에서는 득표율이 3분의 1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나왔다. 2021년 지방선거 45.6%, 2024년 총선 40.2%에서 또 한 번 미끄러지는 셈이다.

개표가 시작됐을 때, 표심은 이미 서비스 붕괴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번 선거의 쟁점은 이념이 아니라 수도관과 변압기다. 요하네스버그는 인구 480만 도시로, 가디언 보도 시점에 이미 물 부족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켄싱턴은 그 상징 같은 동네다. 유권자들은 “물, 전기, 그냥 전부”가 나쁘다고 말한다. ANC는 1994년 이후 남아공을 이끌어온 해방운동 조직이고 여전히 최대 정당이지만, 이번 선거는 그 조직이 지방 정부를 운영하는 능력에 대한 신임 투표 성격을 띠었다.

왜 지금인가 — 만성화된 연립정부 교체가 서비스 붕괴의 구조가 됐다

가디언은 분석가들의 진단을 이렇게 전한다. 남아공 257개 지자체에서 연립정부는 이미 일상이고, 그 높은 교체율이 열악한 공공서비스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숫자가 이를 뒷받침한다. 요하네스버그는 10년 동안 시장이 10명이었다. 옆 자치구 에쿠룰레니는 2021년 이후 시장이 3명, 수도 프리토리아를 품은 츠와네는 2020년 이후 여당이 네 번 바뀌었다. 지난 10월에는 츠와네 동부 브롱크호르스트스프라위트에서 오염된 물로 800명 넘게 위장관 질환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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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버그 도심(CBD) 전경 — Blastworlddbn, CC0 (Wikimedia Commons)

현재 요하네스버그는 ANC 시장 다다 모레로가 좌파 성향 경제자유전사(EFF), 우파 포퓰리즘 애국동맹(PA)과 연립해 이끌고 있다. 표가 분산되면 ANC는 일부 도시를 잃으면서도 다른 도시에서는 연립정부 수반으로 남을 수 있다. 문제는 선거가 끝난 뒤다. 시장은 유권자가 직접 뽑지 않는다.

각 세력의 셈법 — 같은 ‘변화’를 말하지만 서로 다른 변화다

ANC 전국 지도부는 가우텡주에서 DA와 손잡을 용의가 있다고 남아공 언론이 전했다. 전국 단위 통합정부에서 두 당이 최대 연립 파트너인 것과 같은 구도다. 반면 지역 ANC 지도부는 DA와의 연대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가우텡 3개 대도시에서 ANC는 이미 각기 다른 연립 구성으로 집권 중이며, 츠와네에서는 ActionSA 소속 시장 아래에 있다.

DA는 요하네스버그 시장 후보로 75세 헬렌 질러를 내세웠다. 구멍 난 도로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침수된 거리에서 카약을 타는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과거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 때문에 특히 흑인 유권자 다수에게 여전히 의심의 대상이다. 케이프타운의 치솟은 주거비도 DA 장기 집권의 부작용으로 지목된다. 전 요하네스버그 DA 시장으로 지지율 10% 안팎인 허먼 마샤바(ActionSA)는 질러와 함께하기를 거부했고,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불렀다. 질러는 이를 강하게 부인해왔다. ANC는 파벌 다툼 속에 요하네스버그 시장 후보만 세 명을 저울질하고 있다.

더반을 품은 에테크위니에서는 MK당이 40%를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84세 주마가 이끄는 이 당이 2021년 42%를 얻었던 지역에서 ANC는 10% 안팎으로 주저앉을 전망이다. 케이프타운은 DA가 과반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2021년의 58%에는 못 미칠 전망이다.

통념과 다른 지점 — ‘해방운동의 몰락’이 아니라 ‘연립의 함정’

이 결과를 ANC의 이념적 패배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친다. 유권자들은 ANC를 버리는 동시에, ANC를 대체할 단일 세력도 만들지 않고 있다. 마코체가 시의원 표는 DA에, 정당표는 MK에 준 것이 대표적이다. 피터스가 예견한 ‘서커스’는 냉소가 아니라 구조 분석에 가깝다. 지방정부의 문제는 어느 당이 이기느냐가 아니라, 선거 직후 누가 누구와 손잡느냐에 따라 시장이 또 바뀌고 행정의 연속성이 끊긴다는 데 있다. 즉 이번 선거는 정권 심판이라기보다 연립 구성 방식에 대한 심판에 가깝다.

또 하나의 반전은 질러의 캠페인이다. 가장 눈에 띄는 퍼포먼스를 한 후보가 정작 흑인 유권자층에서 과거 발언의 무게를 못 벗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같은 편에서 조차 연대를 거부당했다는 점은 ‘개혁 이미지’와 ‘연정 파트너로서의 신뢰’가 별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과의 연결 — 직접 영향은 제한적, 다만 두 가지 경로

솔직히 말하면 이번 지방선거가 한국 경제나 외교에 미칠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이다. 지방선거는 대외정책 권한이 없고, 남아공의 국가 단위 대외노선은 총선과 대통령 선출로 정해진다. 다만 두 가지 경로는 짚어둘 만하다.

첫째, 남아공은 아프리카 최대 경제권이자 우리 기업의 자동차·전자·에너지 진출 거점이다. 요하네스버그·츠와네·에테크위니 같은 대도시의 물·전력 인프라가 계속 흔들리면 발전·송배전·수처리 설비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동시에, 현지 생산·물류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진다. 투자 결정에서 ‘어느 당이 이겼나’보다 ‘연립이 얼마나 오래 가나’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둘째, 외교·안보 차원에서는 남아공이 브릭스와 아프리카연합에서 갖는 발언권이 우리의 아프리카 정책에 계속 유효하다는 점이다. 다만 이는 연립정부 구성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국가 단위 노선이므로, 이번 선거로 단기 변동을 예상할 근거는 약하다.

반론 — ‘연립정부 탓’이라는 진단은 절반의 설명일 뿐

가디언이 전한 ‘연립 교체율이 서비스 붕괴의 주원인’이라는 분석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연립정부가 불안정한 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닐 수 있다. 득표 분산 자체가 유권자 불만의 산물이고, 그 불만의 뿌리는 수십 년간 누적된 인프라 투자 부족, 전력 공기업의 재무 악화, 지방재정의 세입 기반 취약 같은 구조적 요인에 있다. 연립을 안정화한다고 해서 노후 상수관이 새로 깔리지는 않는다. 가디언도 이 부분을 분석가들의 견해로 소개했을 뿐, 독자적 검증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또한 ‘ANC 3분의 1 붕괴’라는 수치는 여론조사 기준이다. 남아공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과거에도 실제 득표와 상당한 격차를 보인 전례가 있다. 개표가 끝나기 전까지는 잠정 전망으로 다뤄야 한다.

사료의 한계 — 확정된 것과 아직 아닌 것

이 글은 개표 진행 시점의 보도를 정리한 것이다. 확정 사실은 다음이다. 11월 4일 지방선거가 실시됐고, 등록 유권자 2,920만 명은 사상 최대이며(알자지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최종 결과 발표에 일주일, 이후 정당들은 2주 안에 의회를 구성하고 시장을 선출한다(가디언). 개표 결과, 최종 득표율, 연립 구성은 모두 미확정이다. 본문의 득표율 전망은 여론조사에 근거한 것이고, ‘3분의 1’ ‘10% 안팎’ ‘40% 넘김’ 같은 수치는 모두 조사 시점의 추정치다. 또한 요하네스버그 물 부족의 정확한 원인과 범위는 이 글에서 인용한 2차 보도 이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교차 확인에 대해 밝혀둔다. 알자지라 보도는 영상 뉴스피드 형태로 본문이 짧아 등록 유권자 수와 ‘ANC의 시험대’라는 프레임만 확인했다. 프랑스24는 11월 4일 22시 26분(발행 기준) 방송된 ‘Eye on Africa’ 소개문에서 같은 프레임(“집권 ANC에 결정적 시험대”)을 확인했으나, 역시 영상 프로그램 소개 수준이었다. 구체적 수치·인용·현장 장면은 가디언 11월 4일 기사에 근거한다. 즉 이 사안은 다수 매체가 다뤘지만, 상세 내용의 교차 검증은 사실상 단일 심층 보도에 의존하고 있다.

독자에게 — 당신이라면 어느 쪽에 표를 주겠는가

물이 일주일째 나오지 않는 도시에서, ‘지금 있는 정당을 심판하는 표’와 ‘연립을 안정시킬 수 있는 표’가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킨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5년 뒤에도 같은 동네의 수도꼭지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믿겠는가.

참고 자료

· The Guardian, “ANC faces anger over poor services as South Africans vote in local elections”, 2026-11-04 —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6/nov/04/anc-south-africa-local-elections-water-outages-power-cuts

· Al Jazeera, “Vote counting underway in critical South Africa elections”, 2026-11-05 — https://www.aljazeera.com/video/newsfeed/2026/11/5/vote-counting-underway-in-critical-south-africa-elections

· France 24, “Eye on Africa: South Africans vote in key municipal elections”, 2026-11-04 — https://www.france24.com/en/south-africans-vote-in-key-municipal-elections

· 이미지: “Johannesburg cbd”, Blastworlddbn, CC0, Wikimedia Commons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hannesburg_cb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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