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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모든 이야기

환기가 끝난 방 안, 공기청정기 표시등이 초록에서 노랑으로 바뀌는 순간, 필터 한 장이 잡아낸 먼지가 손바닥 위에 회색으로 뭉쳐 있습니다. 그 회색 덩어리에서 가장 작은 입자는 눈에 보이는 티끌보다 300분의 1쯤 작습니다.

통념: 필터는 체처럼 걸러낸다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광고는 거의 언제나 같은 그림을 씁니다. 촘촘한 그물에 먼지가 콕콕 박혀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구멍이 작을수록 좋은 마스크"라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실제로 HEPA 필터의 섬유 사이 간격은 1~5마이크로미터 수준이라,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보다 좁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미세먼지(PM2.5)는 지름 2.5마이크로미터 이하, 초미세먼지 쪽은 0.1마이크로미터 아래까지 내려갑니다. 바이러스는 0.1마이크로미터 안팎이고, 연기 입자는 그보다도 작은 덩어리로 흩어집니다. 체로 설명하자면 섬유 간격보다 작은 물체는 그냥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필터는 통과시켜야 할 0.3마이크로미터쯤에서 가장 높은 제거율을 보입니다. 여기서 통념이 무너집니다.

0.3 마이크로미터에서 제거율이 최저가 되는, 거꾸로 된 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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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진 HEPA 필터 시트의 구조와 세 가지 포집 기구(걸림·관성 충돌·확산) 도해 — LadyofHats,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HEPA 등급 시험 곡선을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입자 크기를 왼쪽(작은 쪽)에서 오른쪽(큰 쪽)으로 늘려 그리면 제거율은 그릴 수도 없을 만큼 높은 봉우리와 골짜기를 그립니다. 가장 까다로운 지점이 대략 0.1~0.4마이크로미터, 시험 기준으로 잡는 대표값이 0.3마이크로미터입니다. 이 지점을 최소 효율점(MPPS)이라고 부릅니다.

의미는 이렇습니다. 이보다 큰 입자는 무거워서 관성으로 섬유에 부딪히기 쉽고, 이보다 작은 입자는 제각각 흔들리며 움직여서 섬유에 닿을 확률이 올라갑니다. 정확히 중간 크기에서 두 효과가 모두 약해지므로 제거율의 골이 생깁니다. 미국 에너지부(DOE) 기준은 이 최악의 지점에서 0.3마이크로미터 입자를 99.97% 걸러낼 것을 HEPA로 요구하고, 유럽 기준 H13은 99.95%, 같은 방식의 ULPA 등급(U15)은 0.12마이크로미터에서 99.9995%를 요구합니다. 즉 숫자는 입자 크기 하나를 전제로 한 약속입니다.

첫 번째 방벽, 걸림 — 섬유에 닿으면 끝

가장 직관적인 기구는 걸림(interception)입니다. 입자가 공기 흐름을 따라 섬유 근처를 지나갈 때, 섬유 표면에서 입자 반지름만큼 떨어진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표면 분자와의 인력에 붙잡힙니다. 입자가 섬유보다 클 필요가 없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흐름선이 섬유를 스쳐 지나가기만 하면 입자는 선에서 벗어나는 순간 붙습니다.

같은 원리의 큰 형제가 스크린(차단)입니다. 입자 지름이 섬유 사이보다 클 때 단순히 지나가지 못하는 경우이고, 큰 먼지와 보풀, 꽃가루가 여기서 먼저 걸립니다. 시험 곡선의 오른쪽 끝은 사실 이 덕분에 올라가 있습니다. 정작 작은 입자는 다른 두 기구에 맡겨야 합니다.

두 번째 방벽, 관성 충돌 — 무거운 입자는 커브를 못 돈다

두 번째는 관성 충돌(inertial impaction)입니다. 필터 섬유 앞뒤의 압력 차 때문에 공기는 섬유를 피해서 휘어집니다. 하지만 질량이 있는 입자는 직진하려는 성질이 있어 곡선을 다 따라가지 못하고, 바깥으로 밀린 채 섬유에 박힙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면 귀에서 뭔가 살짝 늦게 따라오는 느낌, 그게 관성입니다.

유체역학에서는 이 정도를 스토크스 수(Stokes number)라는 무차원 값으로 정리합니다. 관성 효과와 공기 저항의 비율인데, 이 값이 약 1을 넘으면 입자는 흐름을 버리고 섬유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같은 필터라도 공기를 세게 빨수록(유속이 클수록) 관성 충돌은 강해집니다. 대신 필터가 버티는 압력이 커지고 소음이 늘어나는 대가를 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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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청정기용 주름형 HEPA 필터(흰색)와 활성탄 필터(검은색). 주름을 넓게 펴서 좁은 공간에 넓은 여과 면적을 넣는다 — Home Air Quality Guides,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세 번째 방벽, 확산 — 아주 작은 입자는 브라운 운동으로 떠돈다

세 번째는 확산(diffusion)입니다. 0.1마이크로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입자는 공기 분자와 끊임없이 부딪히며 지그재그로 떠돕니다(브라운 운동). 우유 한 잔에 떨어뜨린 잉크 한 방울이 저절로 퍼지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떠돌다 보면 직진 흐름을 벗어나 섬유에 닿고, 닿으면 표면 인력에 붙습니다.

확산은 입자가 작을수록, 필터를 지나는 시간이 길수록 강해집니다. 즉 작은 입자에서 제거율이 다시 올라가는 이유는 체가 아니라 이 무작위 운동입니다. 여기에 정전기 흡착이 얹힙니다. 대부분의 폴리프로필렌 필터는 부직포를 만들면서 섬유에 전하를 입히는데, 이 전하가 섬유 근처 입자를 끌어당겨 세 기구가 놓친 구간을 메웁니다. 단, 이 전하는 시간이 지나거나 물에 젖으면 빠져나가므로 세탁 후 재사용한 마스크의 성능이 떨어지는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숫자 읽기 — KF94와 N95는 무엇을 보증하는가

마스크에 붙은 숫자는 필터 등급이 곧 마스크 전체 성능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한국 KF94는 식약처 기준으로 0.04~1.0마이크로미터 입자를 약 94% 이상 걸러야 하고, 같은 시험에서 흡기 저항과 누설률도 함께 재야 합니다. 미국 NIOSH N95도 0.3마이크로미터 시험 에어로졸에서 95% 이상을 요구합니다. 두 나라 시험의 입자 크기와 발생 방식이 달라서 등급 숫자를 1대1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착용에서 더 큰 변수는 틈입니다. 필터가 99%를 걸러도 얼굴과의 틈으로 공기가 새면 실제로 들이마시는 양의 상당분은 여과되지 않은 공기입니다. 그래서 KF94 같은 등급은 필터 성능뿐 아니라 안면부 누설률 시험을 함께 통과해야 하고, 수염이나 머리카락이 틈을 벌리면 같은 마스크도 등급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설명이 틀리는 경우

여기까지가 정상 작동 상태의 이야기입니다. 필터가 포화되면 판단이 달라집니다. HEPA 필터는 잡은 입자가 표면에 쌓이면서 구멍을 막고, 압력 손실이 커집니다. 공기청정기가 같은 풍량을 유지하려고 팬을 세게 돌리면 전력과 소음이 늘고, 일부 기기는 풍량이 줄면서 정격 성능 아래로 내려갑니다. 필터가 막힌 것인지 센서가 이상한 것인지 헷갈린다면, 표시등보다 흡입구에서 나오는 바람의 세기를 손등으로 한번 확인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

또 하나의 예외는 기름 성분입니다. 요리 연기나 기름 방울은 정전기 전하를 빠르게 중화시켜 정전기 흡착을 무력화하고, 섬유 표면에 들러붙어 구멍을 닫아버립니다. 주방 가까이에 둔 공기청정기 필터의 수명이 짧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마스크의 경우, 숨을 내쉴 때의 습기가 필터 내부에 응축되면 전하가 줄어듭니다.

생활에 적용되는 판단 세 가지

첫째, 마스크는 등급 숫자보다 틈의 관리가 우선입니다. 콧대 철심을 눌러 밀착시키고, 수염이 있으면 등급이 높아도 누설을 전제로 착용하세요. 둘째, 공기청정기 필터는 표시등과 함께 흡입 바람의 세기를 보세요. 같은 소음에서 바람이 약해졌다면 필터가 막힌 것이지 공기가 깨끗해진 것이 아닙니다. 셋째, 세탁이나 물 청소가 가능하다고 적힌 필터는 대개 정전기 방식을 쓰지 않거나 전하를 잃은 뒤입니다. 세탁 후에는 성능이 등급대로 돌아온다고 가정하지 마세요.

정리하면, 체로 거른다는 하나의 그림은 필터의 첫 단계에만 맞습니다. 크기가 다른 입자를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붙잡고, 그 곡선이 0.3마이크로미터 근처에서 가장 낮아진다는 사실이 필터 설계의 출발점입니다.

독자에게

지금 쓰고 있는 마스크나 공기청정기 필터의 교체 주기를 어떻게 정하고 있나요? 표시등을 그대로 믿는지, 바람 세기나 냄새로 판단하는지 궁금합니다.

참고 자료

- 미국 에너지부(DOE) HEPA 필터 정의: 0.3마이크로미터 입자 99.97% 제거 — https://www.energy.gov/

- NIOSH N95 인증 기준(42 CFR Part 84): 0.3마이크로미터 테스트 에어로졸 95% — https://www.cdc.gov/niosh/

-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용 마스크(KF94) 인증 기준 — https://www.mfd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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