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COMMUNITY모든 이야기

2020년 5월 10일 오후, 런던 본드 스트리트 지하철역 앞. 평일 낮인데 오스퍼드 스트리트(Oxford Street)에는 버스 한 대도 지나지 않고, 보도 위에는 바리케이드와 교통콘만 늘어서 있다. 코로나19 첫 봉쇄가 풀린 지 얼마 안 된 이날, 영국에서 가장 붐비는 쇼핑 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장애물로 채워져 있었다.

한 해를 돌아보니 숫자가 나왔다. BBC가 2021년 1월 1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2020년 영국에서 사라진 소매업 일자리는 거의 18만 개로, 전년보다 약 4분의 1 늘었다. 소매연구센터(Centre for Retail Research, CRR)의 집계이며, CRR은 "25년여 만에 최악의 해"라고 표현했다. 같은 기관은 2021년에도 최대 20만 개의 일자리가 더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숫자의 단위가 점포가 아니라 사람인 이유

주간으로 환산하면 2020년 한 해 매주 약 3,400개의 소매 일자리가 사라졌다. 영국 소매업 종사자는 당시 약 300만 명이었다. 이 기사에서 눈여겨볼 것은 폐업한 가게 수가 아니라 사라진 고용의 규모다. 가게가 비면 사진이 남고, 사람이 빠지면 통계만 남는다.

큰 이름들도 같은 해에 무너졌다. 탑숍(Topshop)을 거느린 아케이디아(Arcadia), 에든버러 울린 밀 그룹(Edinburgh Woollen Mill Group), 던햄스(Debenhams)는 모두 한 해 사이 법정관리(administration, 영국식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며 수백 개의 일자리를 정리했다.

영국의 상가 계약 — 한국의 전세·보증금·권리금과 무엇이 다른가

영국의 상업용 부동산은 건물과 땅을 영구 소유하는 프리홀드(freehold)와, 일정 기간(흔히 99·125·999년)의 사용권을 사는 리스홀드(leasehold)로 나뉜다. 매장을 여는 사업자는 보통 장기 상업 리스(commercial lease)를 맺고 계약 기간 동안 정해진 임대료를 낸다. 상업 리스는 기간을 중도에 깨기 어렵고, 임대료 조정(rent review) 조항이 들어가 물가나 시세에 따라 오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장사 자리 자체를 사고파는 권리금으로 움직이는 것과 결이 다르다. 영국에서는 보증금이 흔히 몇 달치 임대료 수준의 보증금(deposit)으로 제한적이고, 권리금 같은 자리값이 제도적으로 거래되지 않는다. 대신 점포 사용자에게 사업세(business rates)가 매겨진다. 이 기사는 개별 매장의 계약 조건이나 사업세율 수치를 제시하지 않으므로, 위 설명은 일반적 배경이며 이 사안의 실제 계약 구조는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음이다.

img1s.jpg

봉쇄가 끝난 직후인 2020년 5월 10일 오후, 사람이 사라진 런던 오스퍼드 스트리트와 본드 스트리트역 — Kwh1050,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왜 무너졌나 — 봉쇄, 현금, 그리고 남은 임대료

CRR의 조슈아 뱀필드(Joshua Bamfield) 교수는 전망의 근거를 "수개월의 영업 중단이 누적된 효과와, 그것이 현금 흐름과 임대료 체납에 미치는 영향"으로 설명했다. 핵심은 마지막 단어다. 정부가 임차인의 퇴거를 막아 주던 유예(moratorium)가 끝나면, 그동안 쌓인 밀린 임대료가 한꺼번에 청구된다. 그는 "더 많은 소비자가 모든 종류의 온라인 소매를 쓰는 장기적 효과는 오프라인 매장에 크게 해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무 분석가 수재나 스트리터(Susannah Streeter)의 진단은 더 구조적이다. 던햄스는 수십 년간 도심의 핵심 앵커 스토어(anchor store, 사람을 끌어오는 대형 점포)였지만 "패션 흐름에서 뒤처졌고, 오르는 임대료로 장기 리스에 묶여 있으면서 온라인 매출은 부진했다". 탑숍은 10년 전까지 하이스트리트 패션의 선두였으나 전자상거래와 소셜미디어 투자 부족으로 부후(Boohoo), 아스오스(Asos) 같은 온라인 경쟁자에게 자리를 내줬다.

비용은 늘고 손님은 줄어드는 구조

BBC의 소비자 담당 기자 사라 코커(Sarah Corker)는 별도 분석에서 봉쇄가 하이스트리트의 쇠퇴를 "터보 과급"했다고 표현했다. 업계 일각은 온라인 쇼핑으로의 이동이 5년에서 10년가량 앞당겨졌다고 본다. 점포들은 일방통행 동선, 아크릴 가림막, 반품 상품 72시간 격리, 강화된 방역 체계를 갖추는 데 큰돈을 썼다. 비용은 오르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손님은 줄었다.

이 기사는 2020년 시점의 전망 기사이므로, 이후 실제 수치로 검증된 결과가 아니라 당시의 추정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2021년 20만 명이라는 숫자도 CRR의 예측일 뿐 확정된 집계가 아니다.

반전 — 도심이 아니라 동네가 살아남았다

이 기사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폐업 목록 뒤에 놓인 한 문단이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사람들이 동네에서 돈을 더 쓰고, 자기 지역의 하이스트리트와 독립 점포를 다시 발견했다는 것이다. 소비 습관 분석에서는 큰 도시와 대형 쇼핑센터보다 작은 근린 상업지구가 그해 훨씬 나은 성적을 냈다고 전한다.

즉 2020년의 그림은 "상권 몰락"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 대도시 중심가와 대형 백화점은 무너졌고, 주거지 근처의 작은 거리는 오히려 손님을 얻었다. 같은 해, 같은 나라 안에서 상권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이다. 다만 이 부분은 기사에서 "분석에 따르면"으로만 언급될 뿐 구체적 수치가 제시되지 않아, 규모는 확인되지 않음이다.

한국과 겹쳐 보기 — 명동과 을지로, 그리고 골목

한국에도 같은 실험이 있었다. 관광객과 유동인구에 의존하던 서울 명동 같은 도심 상권은 외국인 방문이 끊기면서 공실이 급증했고, 반대로 주거지 인근 골목상권은 배달과 근거리 소비로 버텼다. 구조는 비슷하다. 유동인구가 끊기면 고정비를 견딜 수 없는 장기 계약 점포부터 무너진다.

다른 점은 계약의 무게다. 영국은 장기 리스와 임대료 조정 조항 때문에 매출이 줄어도 임대료가 따라 내려가지 않는 구조가 오히려 문제로 지목됐다. 한국은 보증금과 권리금이 앞에 놓여 있어, 장사가 안 되면 자리값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점주들이 버틴다. 같은 위기라도 어디에서 먼저 무너지는지가 다르다.

사료의 한계 — 누구의 시선인가

이 기사의 1차 출처는 소매연구센터(CRR)라는 민간 연구기관의 집계이고, 인용된 분석가들은 모두 금융·시장 쪽 전문가다. 점주 개인의 목소리나 정부의 반론, 독립 통계기관의 교차 검증은 실려 있지 않다. 일자리 감소의 원인을 온라인 이동과 임대료 구조로 정리하는 서사는 유통업계와 임대차 개혁을 주장하는 쪽에 유리한 해석이다. 반대로 대형 체인의 경영 실패나 투자 부족 같은 개별 요인이 얼마나 섞였는지는 이 기사만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독자에게

당신이 사는 동네에서 코로나 이후 살아남은 가게는 어떤 곳인가. 대로변의 큰 매장이었는지, 주거지 골목의 작은 가게였는지. 그리고 그 가게가 버틴 이유는 장사가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임대료가 낮은 계약을 미리 맺어 두었기 때문이었는지. 상권의 운명은 생각보다 "얼마나 좋은 자리인가"보다 "어떤 계약을 언제 맺었는가"에 크게 좌우된다.

참고 자료

모든 이야기2027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글쓰기
총 2027개의 이야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