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 임금을 대신 지급해 근로자의 생계를 잇게 하는 국가 제도가, 사업주에게는 미지급 공사대금을 청산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인천북부지청은 2026년 11월 6일, 하청업체 대표들과 공모해 총 28명에게 간이대지급금 1억 3천만 원(실제 부정수급 6,957만 원 + 적발된 미수 시도 5,839만 원)을 지급받게 한 원청 인테리어 공사업체 대표 ㄱ씨(48세)를 「임금채권보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건의 무게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근로자 보호 장치가 ‘임금 체불’이라는 서류 한 장으로 무너진다는 사실에 있다.
무엇이 바뀌는가 — 서류로 만든 ‘체불’
이번 사건 자체는 새 제도를 만드는 발표가 아니라, 이미 있는 제도가 악용되는 경로를 수사로 확인한 사례다. 바뀌는 것은 제도의 문턱을 심사하는 방식이다. 지청은 ㄱ씨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하청업체 대표 3명과 내부 직원 ㅂ씨와 공모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를 마치 자사가 고용한 사람처럼 꾸민 허위 노무대장을 직접 작성하고, 노동청에 허위 임금 체불 신고를 하게 해 거짓 진술까지 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즉 ‘체불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만들었다.
수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요구한 통신 내역에는 통신 기지국 조회 내역을 위조해 제출했다. 지급 근거를 만드는 단계, 확인 단계, 사후 검증 단계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조작된 셈이다.
왜 지금 — 제도 설계와 악용의 구조
대지급금은 사업주가 임금을 주지 못할 때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일정 범위의 체불액을 근로자에게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사업주에게 되받는 구조다. 두 갈래로 나뉜다. 도산대지급금은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파산 선고 또는 지방고용노동관서의 도산 등 사실인정 결정이 있어야 하고, 대상은 퇴직 근로자로 한정된다. 간이대지급금은 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거나 지방고용노동관서가 발급한 ‘체불 임금 등·사업주 확인서’로 체불이 확인되면 지급된다. 대상은 퇴직 근로자 또는 최저임금 110% 미만의 저소득 재직 근로자다.
이번 사건이 겨냥한 것은 후자, 즉 간이대지급금이다. 확정 판결 없이 행정청의 확인만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절차가 빠르고, 그래서 서류 조작의 여지도 그만큼 넓다. 재난적 체불에 신속히 대응하려고 만든 속도가 그대로 취약점이 된 셈이다.
핵심 내용 — 지급 범위와 사건의 정황
- 부정수급 규모: 총 28명 대상, 약 1억 3천만 원. 21명에게 6,957만 원을 실제로 지급받게 했고, 9명에게 5,839만 원을 추가로 받으려다 적발됐다.
- 공모 구조: 원청 대표 ㄱ씨가 주도하고, 하청업체 대표 3명과 내부 직원 ㅂ씨가 가담했다.
- 적발 경로: 공범 1명의 제보 → 공범 자백 → 계좌 추적 → 카카오톡 포렌식.
- 자금 용도: 하청업체에 갚지 않은 공사대금을 대지급금으로 떼우고, 일부는 개인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 신병 처리: 2024년 7월 입건 뒤 출석요구에 불응하고 잠적해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2026년 11월 3일 원주경찰서에서 체포, 11월 5일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지급 한도: 간이대지급금은 퇴직자 기준 임금 등 700만 원, 퇴직급여 700만 원(합계 1,000만 원). 도산대지급금은 최대 3,150만 원이다.
지청은 부정수급액 전액 환수에 더해 최대 5배의 추가 징수금,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등 민·형사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재희 지청장은 대지급금 악용이 기금의 건전한 운영을 가로막고, 부담금을 성실히 내는 사업주의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강조했다.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근로자. 정상적으로 체불을 당한 사람은 제도가 있어 지급이 빠르다. 반면 실제로는 고용되지 않았는데 ‘허위 근로자’로 등장한 28명은 부정수급 공범으로 처분받을 위험을 떠안았다. 이들의 인적 사항이 어떻게 동원됐는지는 보도자료에 나오지 않는다.
선의의 사업주. 임금채권보장기금은 사업주가 내는 부담금으로 채워진다. 부정수급이 늘면 기금이 줄고, 결국 부담금 인상이나 지급 요건 강화로 이어진다. 규정을 지키는 사업주가 남의 부정수급 비용을 대신 치르는 구조다.
행정기관. 확인서 발급은 신속성이 무기지만, 이번 사건처럼 서류가 조작되면 심사 강화로 응답할 수밖에 없다. 심사가 느려지면 가장 먼저 손해를 보는 것은 급한 근로자다.
ㄱ씨. 얻은 것은 공사대금 청산과 도박 자금, 잃은 것은 자유와 신용이다. 법원은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 인멸·도주 우려를 구속 사유로 인정했다.
정책브리핑(korea.kr) 화면 캡처 —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간이대지급금 약 1억 3천만원을 부정수급 및 추가 편취 시도한 사업주 구속’(2026. 11. 5. 배포)
통념과 다른 지점 —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든다
보통 부정수급은 ‘없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그림으로 상상된다. 이 사건은 반대다. 실제로 일한 하청 근로자를 원청 직원으로 위장해, 지급 대상 자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체불의 주체(원청)와 지급의 대상(하청 근로자)을 하나로 붙여 놓은 것이다.
진술의 출처도 뒤집혀 있었다. 부정수급 신고는 통상 근로자가 한다. 여기서는 임금을 못 받은 쪽이 아니라 임금을 안 준 쪽이 신고 주체를 설계했다. 제도가 ‘누가 신고했는가’를 최소한의 신뢰 신호로 삼고 있었다면, 그 신호는 애초에 조작 가능한 것이었다.
반론과 한계 — 이 사건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
첫째, 28명이 모두 공범인지 일부는 자신이 대지급금 대상자로 올라간 줄 몰랐는지는 확인되지 않음. 둘째, 같은 수법이 다른 업종·지역에서 얼마나 반복됐는지, 전국 부정수급 통계와의 연관성도 확인되지 않음. 셋째, 이번 구속이 재발 방지로 이어지는지 여부는 심사 기준 개편이 발표되지 않아 확인되지 않음. 넷째, 제보 전까지 내부 심사에서 걸러지지 않은 이유도 확인되지 않음.
이 사건은 한 사람의 구속 사례이지 제도 실패의 통계가 아니다. 부정수급이 전체 지급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보도자료에 제시되지 않았다. 선의의 신고가 이어지도록 보호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이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다.
독자가 실제로 해야 할 일
임금이 체불됐다면 사실관계를 먼저 만드는 것이 순서다. 근로계약서, 급여 명세, 통장 입금 내역, 출퇴근 기록을 모아 관할 고용노동관서에 진정하고, 확인서를 받은 뒤 간이대지급금을 신청한다. 최저임금 110% 미만 재직자는 재직 중에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만하다.
반대로 사업주 입장에서는 하청 근로자를 자사 직원처럼 서류에 올리는 순간이 위법의 시작점이다. 대지급금은 사업주가 갚지 않은 돈을 국가가 대신 내주는 제도이지, 빚을 지우는 제도가 아니다. 부정수급이 확인되면 전액 환수와 최대 5배 징수금이 따라붙는다.
사료의 한계와 참고 자료
이 글의 근거는 고용노동부가 2026년 11월 5일 배포한 보도자료 한 건이다. 수사기관이 확인한 혐의와 판단이 중심이며, 피의자 측 반론이나 변호인 입장, 하청업체 관계자의 진술은 담겨 있지 않다. 구속 단계의 사건은 이후 재판에서 다투어질 수 있고, 유죄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제도의 문제점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문서도 아니다.
-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인천북부지청, 「간이대지급금 약 1억 3천만원을 부정수급 및 추가 편취 시도한 사업주 구속」, 2026. 11. 5.
- 정책브리핑(korea.kr) 원문: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788161
- 붙임 「대지급금 제도 개요」 및 「체불임금등 대지급금 상한액 고시」
- 담당: 인천북부고용노동지청 노동기준조사1과(032-540-7907)
임금 체불을 겪어 본 적이 있다면, 그때 신청할 수 있었던 대지급금 제도를 알고 있었나요?
댓글1
-
빗방울
2026.11.06 00:59
기금이 줄면 결국 부담금 인상이나 지급 요건 강화로 되돌아온다는 대목이 가장 무겁게 남는다. 부정수급 한 건이 정작 제도에 기대야 할 급한 사람의 대기 시간을 늘리는 셈이다. 허위 대상자로 올라간 28명 중 정말 몰랐던 사람이 있다면 그 피해는 어떻게 보상되는지도 궁금하다.
모든 이야기2022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