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COMMUNITY모든 이야기

임차인이 건물을 산다 — 뉴욕 5번가의 입장 장벽, 상권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

빗방울 2026.11.03 03:27 12분 읽기 조회 25 · 추천 2

맨해튼 5번가(Fifth Avenue)의 660번지. 브라이언트 파크와 센트럴 파크 사이, 뉴욕에서 가장 비싼 쇼핑가의 한가운데에 있는 유니클로(Uniqlo) 플래그십 매장 9만1,000제곱피트(약 8,450㎡) 가운데 일부를, 이 회사가 올해 1월 3억5,000만 달러(약 4,600억 원)에 사들였다. 임차인이 된 게 아니라 건물의 일부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JLL(존스랭라살레)이 미국 8개 도시·캐나다 3개 도시의 주요 상권 40여 곳을 돌며 중개인과 소매업자를 인터뷰해 만든 '시티 리테일 리포트'는, 이 한 건을 상권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증거로 내세운다. 임대료가 오르자, 임차인들이 아예 건물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글은 그 '입장 장벽(barriers to entry)'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지금의 뉴욕 최상급 상권이 몰락하는 동네가 아니라 다른 목적의 공간으로 재편되는 동네라는 반대 독법을 함께 정리한다.

숫자가 말하는 것 — '구경하고 사는' 시대가 끝났다

리포트의 핵심 문장은 비교적 단순하다. 주요 상권의 호가 임대료(asking rent)가 지난 1년간 평균 10% 올랐고, 많은 구간의 공실률은 역사적 저점에 가까워졌다는 것. JLL은 이 조건에서 소매업자들이 향후 임대 갱신 때 밀려나거나 더 높은 가격에 재입찰될 위험을 피하려고 '돈을 들여 자리를 사는(buy their way in)' 전략으로 옮겨 간다고 본다.

자금도 몰렸다. 2025년 1월부터 누적된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도심의 대표 상점가) 리테일 부동산 투자액은 전년 동기 대비 82% 늘었고, 유동성은 2015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는 게 JLL의 진단이다. 사진에 찍힌 거래만 봐도 뉴욕 소호(SoHo) 브로드웨이 529번지의 이케아 매입가 2억1,300만 달러, 베벌리힐스 로데오가 338번지의 4억 달러 매각이 함께 언급된다. 한산했던 상가 거래가 다시 활기를 띠면서, 매매와 임대 양쪽에서 가격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구조다.

미국 상가 임대의 기본 문법 — '리스'를 사고 '브랜드'를 산다

한국 독자가 이 기사에서 걸려 넘어지는 지점은 숫자보다 계약 구조다. 국내 상가 임대차는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내며, 자리 자체의 프리미엄은 권리금으로 사고파는 3층 구조가 일반적이다. 미국은 계약 자체가 훨씬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그로스 리스(gross lease, 임대인이 세금·보험·공용부 관리비를 부담하고 받는 단일 임대료)와 트리플 넷 리스(three-net lease, 임차인이 기본 임대료 위에 세금·보험·공용부 관리비를 각각 따로 부담)가 공존한다. 같은 명목 임대료라도 어느 쪽이냐에 따라 임차인의 실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기사가 말하는 호가 임대료의 평균 10% 상승이 어떤 계약 형태를 기준으로 집계된 것인지, 세금·관리비 항목을 포함한 값인지는 원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확인되지 않음). 또 기사는 한국식 권리금에 해당하는 관행(예: 영업권 프리미엄, 시설 이전 비용)을 따로 다루지 않는다. 다만 '기존 임차인이 갱신 때 밀려날 수 있다'는 대목은, 권리금으로 자리를 사는 대신 계약 만료라는 시한부로 자리를 지키는 미국 쪽 구조가 만든 압박을 보여준다. 자리를 못 지키면 그동안 쌓은 입지 프리미엄이 계약서상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은, 권리금을 인정받는 한국 제도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업종 구성 — 4분의 3이 '옷'과 '밥'

JLL이 1년치 신규 개점 발표를 집계한 결과, 패션(의류·잡화)과 외식이 전체 개점의 75% 이상을 차지했다. 두 업종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인데, 세부는 도시별로 갈린다. 워싱턴DC와 필라델피아는 예외적으로 외식이 1위, 패션이 2위였다. 외식 안에서는 캐주얼 다이닝과 파인 다이닝이 전체 식당 개점의 절반을 넘어, 베이커리·카페·바보다 큰 비중을 차지했다. 소형 테이크아웃이 아니라 '목적지형 큰 매장'이 상권을 채운다는 뜻이다.

브랜드별로는 유니클로(일본)와 H&M(스웨덴)이 각각 주요 상권에 연 3건 이상을 열며 확장을 주도했고, 캐나다의 모노스, 중국의 어반 리부(Urban Revivo)가 미국 첫 매장을 소호 브로드웨이 3만 제곱피트 규모로 열었다. 국내 브랜드로는 존 바바토스와 르뱅 베이커리(Levain Bakery)가 지난 1년간 여러 상권에 매장을 냈다.

승자독식 — 세 도시가 60%를 가져갔다

리포트에서 가장 서늘한 대목은 분포다. 뉴욕·로스앤젤레스·마이애미 세 도시가 지난 1년의 주목할 만한 확장 발표의 60% 이상, 명품 및 준명품 브랜드 개점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마이애미는 브리켈(Brickell)과 코코넛그로브가 포함되며 워싱턴DC를 밀어내고 3위로 올라섰다.

이유는 단순한 '유명세'가 아니다. 뉴욕은 소호·매디슨가·5번가가 각각 별도의 명품 생태계로 기능할 만큼 상권의 층이 두껍고, 로스앤젤레스는 베벌리힐스 트라이앵글이, 마이애미는 관광과 신규 주거가 결합한 신흥 상권이 힘을 받는다. 상권 하나가 잘 되면 주변 임차 수요가 몰리고, 그러면 다시 투자자가 몰리는 자기강화 고리가 세 도시에서만 돌아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왜 지금인가 — 관광, 재택근무, 그리고 '체험'

nyc1s.jpg

뉴욕 5번가와 57번가 교차로의 티파니 앤 코 매장(2022년). 리모델링 공사 가림막 너머로 상층부가 드러나 있다 — Tdorante10,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JLL이 제시한 동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관광 회복. 뉴욕은 2025년 방문객이 최대 6,810만 명으로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는 캐나다·중국발 국제 관광객이 예상보다 적은 가운데 미국 국내 관광이 그 빈틈을 메운 결과다. 2024~2025년 브로드웨이 시즌 매출은 18억9,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였다.

둘째, 재택근무의 양극화다. 보스턴은 생명과학·금융·기술 업종의 사무실 복귀가 진행되면서 점심 수요와 '새로운 근무복' 수요가 함께 늘었다. 반대로 JLL은 뉴욕 헤럴드스퀘어 같은 구간은 재택근무로 유동 인구가 줄어 여전히 어렵다고 본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직장인 밀집도가 상권의 운명을 가른다.

셋째, 규제와 도시계획. 5번가 브라이언트 파크~센트럴 파크 구간은 4억 달러를 들여 차로를 줄이고 보행 공간과 녹지를 늘리는 재개발이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보행 인구와 체류 시간을 늘려 상권의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반전 — '상권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

이 리포트를 '뉴욕 상권은 좋다'는 이야기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친다. JLL이 서술한 상권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판매 공간에서 브랜드 체험 공간으로의 용도 전환이다. 루이비통·롤렉스·아르마니가 임대료가 비싼 자리에 들어가는 이유는 매출 때문만이 아니라, 수십 년 갈 건축물급 매장으로 브랜드 자체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임대인도 이를 안다. 전통적인 '앵커 테넌트(대형 점포)'가 약해진 자리에 대형 식음료 업체를 들여 보행 인구를 만드는 역할을 맡기는 식이다.

그래서 지표가 엇갈린다. 투자와 임대료는 사상 최고인데, 그 자리에 들어가는 업종은 좁아지고(패션·외식 75%) 도시는 셋으로 쏠린다. 상권이 '살아났다'기보다 돈이 되는 용도만 남기고 재편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는 이 전환의 실험장이다. 브랜드 철수와 부정적 여론을 겪은 뒤, 2025년 5월 닌텐도 스토어 개점을 신호탄으로 자라·유니클로의 신규 계약이 이어지며 임대 흐름이 반전됐다. 몰락한 동네를 되살린 게 아니라, 체험형 대형 매장 중심으로 다시 짠 것이다. 다만 이 반전이 소규모 자영업자에게도 열린 문인지는 리포트가 답하지 않는다.

한국과 비교 — 서울 명동과 강남대로

가장 가까운 국내 비교 대상은 서울 명동이다. 관광객 의존도가 높고, 임대료가 국내 최고 수준이며, 외국 브랜드의 플래그십이 몰리는 점에서 뉴욕 5번가와 구조가 닮았다. 명동도 코로나 기간 공실이 급증했다가 관광이 돌아오며 회복했고, 최근에는 화장품·식음료 중심으로 업종이 좁아지는 흐름이 관측됐다.

다른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자리를 지키는 방식이다. 한국은 권리금과 보증금으로 입지를 '사두는' 비용이 크지만 계약 갱신 시 권리금 회수 기회가 법으로 일정 부분 보장된다(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 미국 주요 상권의 임차인은 갱신권 없이는 자리를 계속 지킬 보호장치가 약해, 건물을 사들이거나 더 높은 임대료를 쓰는 쪽으로 밀린다. 둘째, 서울 강남대로·청담동 같은 국내 최상급 상권은 임대료와 공실의 압력이 동시에 나타나는 '역설적' 구간이 있다. 뉴욕처럼 임대료와 유동성이 동시에 치솟는 승자독식 구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국내에 트리플 넷 리스 같은 세입자 비용 전가 구조나 대형 리츠의 상권 투자가 아직 얇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사료의 한계 — 누구의 시선인가

이 리포트는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회사 JLL의 자료다. 인터뷰 대상도 중개인과 소매업자, 즉 시장의 공급 측이다. 상권이 '경쟁이 치열하고 입장 장벽이 높다'는 서사는, 임대인과 투자자, 그리고 이들을 중개하는 회사에 유리한 프레임이다. 반대로 그 자리에서 밀려난 소규모 임차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폐업한 자영업자, 주민의 목소리는 인터뷰 대상에 거의 없다. 임대료 상승을 '활황'으로 읽을지 '배제'로 읽을지는 같은 숫자로도 갈린다.

또 지표의 정의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기사에 등장하는 공실률·호가 임대료·투자액이 어떤 표본(층, 도시별 포함 범위)을 기준으로 집계됐는지, '역사적 저점'의 비교 기간이 언제부터인지는 원문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수치를 인용할 때는 'JLL 리포트가 제시한 값'이라는 한정을 붙이는 것이 안전하다.

독자에게 묻는다

상권이 체험 공간으로 바뀌는 흐름은 서울에서도 진행 중이다. 성수동의 편집숍과 팝업, 한남동의 대형 브랜드 쇼룸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변화가 누구를 위해, 누구를 밀어내며 일어나는가다. 명동과 강남의 임대료가 다시 오른다면, 우리는 이를 '상권 활성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골목 자영업자의 퇴출'로 볼 것인가.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의 최상급 상권은 지금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가.

sf1s.jpg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 광장(2025년 5월). 광장 바로 옆 블록이 닌텐도 스토어 등 체험형 대형 매장의 재편 무대가 됐다 — Evan0512,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참고 자료

- JLL, City Retail Report: Rising barriers to entering prime urban corridors (Jones Lang LaSalle, 원문 발행 2025년 12월; 구글뉴스 게재일 2025년 12월 10일) — https://www.jll.com/en-us/insights/market-perspectives/city-retail-report-rising-barriers-to-entering-prime-urban-corridors

- 본문의 임대료 10% 상승, 개점 75%, 세 도시 60%·80%, 투자 82% 증가, 뉴욕 방문객 6,810만 명, 브로드웨이 18억9,000만 달러, 5번가 재개발 4억 달러 등의 수치는 모두 위 원문에서 인용했다. 계약 구조(그로스·트리플 넷 리스)와 한국 상가 임대차 설명은 일반적 배경 설명이며 원문에 없는 내용이다.

모든 이야기1564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글쓰기
총 1564개의 이야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