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1월 3일 밤, 워싱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리처드 닉슨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앉아 베트남전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던 연설을 막 끝내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오늘 밤, 나는 나의 동료 미국인들인 위대한 침묵하는 다수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그날 밤 백악관의 전화 교환대는 몇 시간 만에 마비됐고, 전보와 편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한 연설 안의 한 문장이 미국 정치의 언어를 바꾼 순간이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
배경에는 1969년 10월 15일의 ‘모라토리엄’이 있었다. 베트남전 종전을 요구하는 전국적 동시 시위로, 대학 캠퍼스뿐 아니라 지역 사회와 교회, 노조까지 참여한 대규모 운동이었다. 닉슨 행정부는 이 움직임을 ‘소수의 목소리’로 규정하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11월 3일 연설은 그 반격의 정점이었다.
연설의 실제 내용은 대부분 정책 설명이었다. 남베트남군이 전투의 부담을 지도록 하는 ‘베트남화’를 통해 미군 사상자를 줄이겠다는 계획,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인정한다면 타협할 용의가 있다는 제안, 그리고 전쟁이 계속되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가 담겼다. 마지막 문장에서야 ‘침묵하는 다수’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북베트남은 미국을 패배시키거나 굴욕줄 수 없다는 말로, 결국 미국인들만이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구도가 연설의 핵심이었다.
‘침묵하는 다수’ 연설에 쏟아진 전보 더미. 해럴드 E. 홀더먼(오른쪽)과 대화 중인 닉슨 — Nixon White House / Nixon Presidential Library,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왜 ‘침묵하는 다수’였나
이 표현은 닉슨이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19세기에는 ‘침묵하는 다수’가 죽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완곡어였다.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1919년에는 광고인이자 공화당 지지자였던 브루스 바턴이 캘빈 쿨리지의 대선 경선 캠페인에서 이 표현을 썼고, 1955년에는 존 F. 케네디가 『용기 있는 사람들』에서 이미 유사한 표현을 썼다. 닉슨은 자신의 책 『육중대사』를 펴낼 때 케네디로부터 그 책을 선물받은 적도 있었다.
연설을 실제로 쓰게 된 경위도 흥미롭다. 연설가 패트릭 뷰캐넌은 30여 년 뒤 회고에서 자신이 보낸 메모에 ‘침묵하는 다수’라는 표현을 두 번 썼고, 닉슨이 그것에 밑줄을 그어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1969년의 그 연설은 대부분 닉슨이 직접 썼다는 것이다. 연설 직후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도 “미국의 침묵하는 다수가 권리를 위해 일어설 때가 됐다”고 말하며 같은 언어를 증폭시켰다.
통념과 반전 — 연설 뒤의 숫자
대중의 기억은 “닉슨이 소수 시위대에 맞서 다수를 호출했다”는 쪽이다. 그러나 연설 직후의 반응은 이보다 극적이었다. 닉슨의 지지율은 50% 안팎에서 81%로 뛰었고, 남부에서는 86%까지 올랐다. 백악관 기록에 따르면 5만 통이 넘는 전보와 3만 통의 편지가 도착했으며, 비판적인 메시지의 비율은 낮았다. 닉슨은 회고록에서 우편실이 “어느 대통령 연설에 대해서도 가장 큰 반응”을 보고했다고 적었다.
이것이 곧 ‘침묵하는 다수’가 실체였다는 증명은 아니다. 연설에 반대하는 사람은 애초에 편지를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편지와 전보의 양은 지지의 크기보다 조직화된 지지의 강도를 보여준다. 즉 ‘다수’라는 이름은 여론 조사가 아니라 연설에 반응한 집단의 자기 확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누가 침묵하고 있었나
학자들은 ‘침묵하는 다수’의 실체를 전후 세대,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세대와 중서부·남부의 중산층, 정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교외 거주 백인 노동자 계층으로 설명한다. 칼럼니스트 케네스 크로퍼드는 닉슨의 ‘잊혀진 사람들’은 루스벨트의 그것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만 더 많은 것을 바라며,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협을 느끼는 중간 계층이라는 것이다.
연설은 이 집단에게 이름과 자리를 주었다. 1970년 1월 『타임』은 ‘올해의 인물’ 대신 ‘미국의 중산층’을 상징하는 남녀 그림을 표지로 올리며, 1969년의 가장 두드러진 새로운 요소는 ‘침묵하는 다수가 미국 사회에서 강력한 힘으로 떠오른 것’이라고 썼다. 이들은 침묵했던 것이 아니라, 미디어와 정치가 그들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이다.
경쟁하는 해석과 반론
첫 번째 해석은 이것이 ‘남부 전략’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인종차별과 도시 문제에 불만을 품은 백인 중산층을 공화당으로 끌어들이자는 구도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 해석은 수사적 회피라는 쪽이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명백한 시위를 ‘소수’로 축소하고, 나머지 국민이 시위대의 말을 듣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닉슨은 1971년 부통령에게 ‘긍정적 양극화’에 대해 연설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세 번째 해석은 가장 불편하다. 『타임』의 표현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한다는 믿음 자체가 그 집단을 동원하는 장치였다는 것이다. 여론 조사에서 그 집단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닉슨은 1972년 선거에서 50개 주 중 49개 주를 이겨 이 이름에 대한 자신감을 굳혔지만, 반대표가 조지 맥거번과 조지 월리스 지지층으로 갈라진 점을 고려하면 이 압승이 ‘다수’의 실체를 증명하는 자료는 아니라는 반론이 함께 남는다.
1969년 반전 모라토리엄 시위의 눈밭 위 배지와 피켓 — Dr. Dennis Bogdan,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사료의 한계
이 사건의 1차 사료는 편지, 전보, 전화 기록, 연설 원고와 백악관 사진이다. 문제는 그중 상당 부분이 편향적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편지와 전보는 보내는 사람의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므로, 조직화된 지지층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기 쉽다. “5만 통의 전보, 3만 통의 편지”라는 수치는 닉슨 본인의 회고록에서 비롯한 것이어서, 백악관 파일과 대조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여론 조사 수치도 시대적 한계를 갖는다. 1960년대 후반의 표본 추출과 질문 설계는 오늘날의 기준보다 거칠었고, 지지율이 하루아침에 81%로 뛰었다는 기록은 조사 시점과 대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시위 규모에 대한 추정치도 주최 측과 당국의 숫자가 크게 엇갈렸다. 기록에 따르면 이 같은 숫자들은 당시에도 논쟁의 대상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남긴 것
‘침묵하는 다수’는 이후 반세기 동안 미국 정치의 단골 언어가 되었다. 레이건의 캠페인, 1994년 공화당 혁명, 루디 줄리아니와 마이클 블룸버그의 선거, 2015년 이후 도널드 트럼프의 연설까지 이 표현은 되살아났다. 공화당 여론조사원 프랭크 런츠에 따르면, 미디어는 같은 유권자 집단을 ‘잊혀진 중산층’, ‘분노한 백인 남성’, ‘사커 맘’, ‘낫스카 대디’ 등으로 계속 새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름은 바뀌지만 용도는 같다. 말하지 않는 사람을 대신 말하는 권리를 누가 가지느냐는 문제다.
한국에도 이 언어의 그림자가 있다. 시위가 크게 보이는 것과 여론이 그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은 다르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목소리 큰 소수를 과대 대표하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데이터에도, 화면에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1969년의 연설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의 오래된 문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했기 때문이다. 침묵은 지지의 증거도, 반대의 증거도 아니다. 다만 침묵을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치의 방향이 달라질 뿐이다.
여러분은 생각하시나요 — 이 시대에도 ‘침묵하는 다수’는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침묵은 어떤 정치 진영의 설명에도 쓰여서는 안 되는 상태일까요?
참고 자료
· 위키백과, ‘Silent majority’, https://en.wikipedia.org/wiki/Silent_majority
· 위키백과, ‘Richard Nixon’, https://en.wikipedia.org/wiki/Richard_Nixon
· 위키백과, ‘Moratorium to End the War in Vietnam’, https://en.wikipedia.org/wiki/Moratorium_to_End_the_War_in_Vietnam
· 위키백과, ‘Vietnamization’, https://en.wikipedia.org/wiki/Vietnamization
· 위키백과, ‘Opposition to United States involvement in the Vietnam War’, https://en.wikipedia.org/wiki/Opposition_to_United_States_involvement_in_the_Vietnam_War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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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3 08:18
옛날 19세기에 ‘침묵하는 다수’가 죽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완곡어였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허허,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많으니 그게 다수인 셈이지요. 그런 표현이 백 년 뒤에 텔레비전 연설 한 문장으로 부활해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니, 이름 하나 붙이는 솜씨가 참 무섭습니다. 마지막 문장처럼 침묵은 지지도 반대도 아니라는 말에 저는 손을 들어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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