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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이 혼자 떨리는 이유 — 가동코일 계기의 열잡음과 감도의 벽

빗방울 2026.11.05 23:23 8분 읽기 조회 14 · 추천 2

회로에서 완전히 분리된 아날로그 검류계 하나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전원도, 입력 신호도 없는데 바늘은 0 눈금 근처에서 눈을 크게 뜨고 봐야 겨우 알아볼 만큼 떨린다. 대부분은 이것을 접촉 불량이나 정전기, 혹은 낡은 계기의 버릇으로 넘긴다. 그런데 이 떨림은 계기가 고장 나서가 아니라, 상온에 놓인 이상 어떤 계기도 피할 수 없는 요동일 수 있다.

arXiv:2610.08721v2로 공개된 Angelo Maria Sabatini의 논문은 바로 이 장면을 교재 수준의 문제로 다시 세운다. 가동코일 계기를 선형 전기기계 시스템으로 놓고, 전기 저항과 기계적 감쇠라는 두 개의 소산 경로에 각각 열요동을 붙인 뒤, 정상 상태에서 바늘이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닫힌 형태로 계산한다. 저자가 밝힌 독자는 통계물리와 확률과정을 어느 정도 배운 물리학 석사 과정 학생이다. 즉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따로 배우던 두 가지 잡음을 한 방정식에 앉히는 작업이다.

에너지가 새는 길은 두 갈래다

가동코일 계기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경로는 하나가 아니다. 코일에 흐르는 전류가 저항을 지나며 열로 바뀌는 전기적 경로가 있고, 코일과 바늘이 움직일 때 베어링과 공기, 스프링 내부의 마찰로 운동이 열로 바뀌는 기계적 경로가 있다. 논문은 이 둘을 서로 독립인 소산 채널로 취급한다.

독립이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요동-소산 정리가 채널마다 따로 붙기 때문이다. 저항에는 존슨 잡음 전압이 따라붙고, 기계적 감쇠에는 바늘을 무작위로 밀어대는 브라운 운동력이 따라붙는다. 다시 말해 열잡음은 회로로만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 전선도 연결되지 않은 계기에서도 바늘이 떠는 것은 기계 채널 쪽 요동이 살아 있기 때문이며, 논문은 이 두 잡음을 별개의 항으로 분리해 세운다.

저장 에너지가 그대로 안정성 증명이 된다

계기가 담고 있는 에너지는 세 조각으로 나뉜다. 인덕턴스에 실린 전류의 에너지, 코일과 바늘의 관성에 실린 운동 에너지, 스프링이 감고 있는 변위 에너지다. 논문은 이 저장 에너지 자체를 리아푸노프 함수로 쓴다. 감쇠 계수가 양수인 한 이 함수는 줄어들기만 하므로, 계기가 결국 한 점으로 수렴한다는 안정성 증명이 별도의 도구 없이 얻어진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정상 상태의 흔들림 크기를 닫힌 형태로 구할 수 있다. 선형 시스템에 백색 잡음을 넣으면 정상 상태 공분산이 대수적 리아푸노프 방정식을 만족하는데, 이 방정식을 풀면 각 상태 변수의 분산이 명시적인 식으로 나온다. 그 결과는 에너지 항들 사이의 등분배다. 열평형에서 각 자유도가 같은 몫의 에너지를 갖는다는 통계역학의 규칙이 계기 바늘의 흔들림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반전: 감쇠를 키워도 흔들림은 줄지 않는다

여기서 직관이 한 번 뒤집힌다. 바늘이 심하게 흔들리면 댐핑을 키우고 싶어진다. 유체를 넣거나 전자기 제동을 걸면 바늘이 부드럽게 가라앉으니까. 그런데 논문이 내놓는 답은 절반만 맞다. 감쇠는 흔들림이 얼마나 오래 기억되는지를 바꾸지만, 정상 상태에서의 분산 자체는 바꾸지 않는다.

왜 그런가. 감쇠 채널을 키우면 그 채널에 붙은 요동원도 같은 비율로 커진다. 요동과 소산이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기는 더 빨리 가라앉지만, 가라앉은 자리에서 떠는 폭은 그대로다. 논문은 감쇠가 요동의 시간적 기억을 다시 빚을 뿐 정상 상태 분산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것을 말로만 두지 않고 확률미분방정식의 정확한 수치 적분으로 확인하고, 별도로 스펙트럼 적분을 수행해 같은 공분산이 다시 나오는 것을 보인다. 계산 경로 두 개가 같은 답에 도착하는 것이 이 논문의 검증 방식이다.

몇 피코암페어라는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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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코일 계기 무브먼트의 내부. 코일과 지침 축, 스프링이 보인다 — Pokiiri,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논문은 대표적인 계기 하나를 골라 실제 크기를 계산한다. 그 결과 이 계기의 열잡음 바닥은 몇 피코암페어 수준이다. 피코암페어는 10의 -12승 암페어, 즉 1조분의 1암페어다. 나노암페어보다도 천 배 작은 전류를 다루지 않는다면 이 바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미세 전류를 재겠다고 나서는 순간, 계기 자체가 그 입력과 같은 크기의 요동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 숫자는 감도 설계의 방향을 바꾼다. 더 작은 전류를 읽으려면 스프링을 무르게 하고 코일을 가볍게 만들어 바늘이 조금만 밀려도 크게 움직이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계기는 기계적 감쇠 채널의 비중이 커지고, 같은 등분배 규칙에 따라 열요동도 함께 커진다. 감도를 올린 만큼 바닥도 올라간다. 사양표에 감도와 분해능을 나란히 적어 두고 둘 다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독 회로까지 넣으면 문제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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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류계 무브먼트의 기구부를 확대한 사진. 축과 코일, 복귀 스프링의 결합이 드러난다 — Mister rf,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여기까지는 바늘을 눈으로 읽는 수동 계기의 이야기다. 논문은 여기서 한 겹을 더 쌓는다. 계기를 능동 전류 구동 판독 회로 안에 넣으면, 잡음은 더 이상 계기 하나의 성질이 아니라 판독 경로 전체의 성질이 된다. 구동 회로가 만드는 잡음, 계기의 기계적 요동, 판독단의 전기적 잡음이 한 사슬로 이어진다.

논문이 제시하는 설계 단계 추정에 따르면, 이렇게 완성된 판독 전체의 잡음은 풀스케일의 수 ppm 수준이다. ppm은 백만분의 일이다. 그리고 이 값은 입력 감도를 높일수록 커진다. 더 예민한 계기를 만들면 전체 판독의 상대 잡음도 같이 자란다는 뜻이다. 결국 측정의 감도와 분해능은 따로 최적화할 수 있는 두 개의 숫자가 아니라, 하나를 올리면 다른 하나가 따라 움직이는 한 쌍의 값이라는 것이 이 논문의 결론이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이 결과는 선형 모델 위에 서 있다. 스프링의 비선형성, 코일 위치에 따른 자기장의 불균일, 정지 마찰, 온도 구배는 들어가지 않는다. 등분배와 닫힌 형태의 공분산은 모두 이 선형성 덕분에 얻어진 것이므로, 실제 계기가 크게 벗어나면 보정이 필요하다.

수치에 대해서도 저자는 선을 긋는다. 몇 피코암페어와 수 ppm은 대표적인 계기를 가정한 예시 계산이지, 특정 상용 제품을 측정한 실측값이 아니다. 또 이 글의 목적이 석사 과정 교육이므로 실제 실험으로 검증하는 절차는 제시하지 않는다. 검증은 이론 계산과 확률미분방정식의 정확한 적분, 스펙트럼 적분이 서로 같은 답을 주는지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난다. 실물 계기로 이 바닥을 직접 재 본 사례는 이 논문의 범위 밖이다.

눈금을 더 잘게 그으면 되는가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남는다. 눈금을 열 배 잘게 그리고 증폭을 열 배 세게 하면 분해능이 열 배 좋아지는가. 논문의 틀에서 답은 아니다. 눈금을 잘게 나눠도 바늘이 스스로 떠는 폭은 그대로이고, 증폭을 세우면 그 떨림까지 함께 커진다. 재는 대상과 재는 도구의 요동을 같은 방정식에 넣지 않으면 이 벽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논문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당신이 지금 쓰는 계기의 바닥은 어디에서 오는가. 열인가, 판독 회로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그리고 그 바닥을 낮추려는 시도가 감도를 얼마나 깎아먹고 있는지, 최근에 한 번 계산해 본 적이 있는가.

참고 자료

Sabatini, Angelo Maria, Thermal fluctuations and electronic readout using a moving-coil movement, arXiv:2610.08721v2 [physics.ed-ph], 2026년 10월 6일 제출, 10월 29일 개정. https://arxiv.org/abs/2610.08721v2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에서 가져왔다. 무브먼트 사진은 Pokiiri의 작품(CC BY-SA 4.0), 기구부 확대 사진은 Mister rf의 작품(CC BY-SA 4.0)이며 두 장 모두 원저작자와 라이선스를 표기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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