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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모든 이야기

1971년 11월 24일 오후 2시 50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국제공항의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카운터에 한 남자가 다가섰다. 30분짜리 시애틀행 편도 티켓을 현금으로 샀고, 이름란에는 Dan Cooper라고 적었다. 검은 넥타이에 검은 코트, 갈색 구두의 40대 중반 남성이었다. 비행기 뒷줄 18-E 좌석에 앉아 버번 위스키에 7업을 섞은 음료를 주문한 이 남자는, 이륙 얼마 뒤 승무원에게 쪽지 하나를 건넸다. 이날 오후 8시 13분 무렵, 워싱턴주 남서부 상공에서 그 비행기의 꼬리가 갑자기 들려 올라갔다. 조종실의 경고등은 뒤쪽 계단이 펼쳐졌음을 알리고 있었다. 사흘 전 추수감사절 연휴가 시작되던 날의 이 장면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항공 범죄사에 하나뿐인 미해결 사례로 남아 있다.

사건의 골격: 협박, 몸값, 그리고 점프

연방수사국(FBI)이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남자는 서류가방 안에 폭탄이 있다고 말했고, 승무원은 배터리와 배선으로 연결된 붉은 원통 여러 개를 보았다고 진술했다. 요구는 단순했다. 오후 5시까지 현금 20만 달러(2025년 가치로 약 160만 달러)와 낙하산 네 개 — 앞쪽 두 개, 뒤쪽 두 개. 특히 두 벌을 요구한 것은 인질을 데리고 내리겠다는 암시였고, 당국이 작동하지 않는 장비를 넘길 가능성을 줄이는 계산이었다고 FBI는 분석했다.

비행기는 시애틀 상공을 약 두 시간 선회했고, 지상에서는 은행과 스포츠 낙하산 학교, 스턴트 조종사로부터 돈과 낙하산을 모았다. 20만 달러는 번호가 기록되지 않은 20달러짜리 지폐 1만 장이었고, 무게는 약 8.5kg이었다. 오후 5시 46분 시애틀-터코마 공항에 착륙한 뒤 승객 36명은 내렸다. 남자는 남은 승무원에게 멕시코시티행 경로를 지시했다. 최소한 실속하지 않을 속도로, 고도는 3,000미터 이하, 랜딩기어는 내린 채, 날개 플랩 15도, 객실 가압은 해제한 상태. 이 네 가지는 모두 그가 직접 지정한 조건이었다.

문이 열린 8분, 그리고 사라진 8분

재출발은 오후 7시 40분 무렵이었다. 승객 없이 조종사 세 명, 승무원 티나 머클로, 그리고 그 남자만 남았다. 머클로는 뒷계단을 내리라는 지시를 받고 흡입될까 두렵다고 말했고, 남자는 그녀를 조종실로 보내며 다시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녀가 커튼을 닫으며 뒤돌아보았을 때, 남자는 허리에 돈 가방으로 보이는 것을 묶고 있었다. 이때가 오후 8시 직전, 그를 본 마지막 순간이다.

오후 8시 무렵 조종실 경고등이 뒤쪽 계단이 펼쳐졌음을 알렸고, 조종사들은 인터컴으로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거절당했다. 객실 기압이 떨어지면서 조종사들의 귀가 먹먹해졌다. 8시 13분, 기체 꼬리가 위로 들려 조종사가 트림으로 수평을 되찾아야 했다. FBI는 같은 기종을 같은 조건으로 띄워 200파운드(약 91kg)짜리 썰매를 뒷계단 밖으로 밀어내는 실험을 했고, 그때 나타난 것과 같은 꼬리 들림과 기압 변화를 재현했다. 이것이 그가 실제로 뛰어내렸다는 가장 강한 물리적 근거다. 이후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오후 11시 2분, 계단이 펼쳐진 채 기체는 리노에 착륙했고, 조종사가 객실을 뒤져 남자가 없음을 확인했다.

기내에 남은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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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FBI가 공개한 용의자 몽타주 스케치 B —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FBI가 회수한 직접 증거는 네 가지다. 18-E 좌석의 검은 클립온 넥타이와 진주 모조 장식의 타이클립, 머리받침에서 나온 머리카락 한 올, 그리고 팔걸이 재떨이의 필터 담배꽁초 여덟 개. 넥타이는 J.C. 페니에서만 팔렸고 1968년에 단종된 제품이었다. 2001년 넥타이에서 채취한 시료로 부분 DNA 프로파일이 만들어졌지만, FBI는 그 시료가 실제로 범인의 것이라는 보증이 없다고 밝혔다. 머리카락은 2002년 DNA 분석 시도 중 분실되었고, 담배꽁초는 라스베이거스 지부 보관 중 폐기된 것으로 1998년에야 확인됐다.

범인 특정에 쓸 수 있는 증거가 이렇게 줄줄이 사라졌다는 점은 이 사건을 사료 비평의 대상으로 만든다. 남은 것은 넥타이 하나, 그 위의 미세 입자, 그리고 66권 분량의 수사 기록이다. FBI는 2016년 7월 8일 적극적 수사를 중단했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수사할 재료와 우선순위가 없다는 뜻이다.

돈은 왜 9년 뒤에 나타났나

1980년 2월 10일, 8살 브라이언 잉그램은 가족과 캠핑을 하다가 컬럼비아강변의 모래를 긁어모아 불을 피우려 했다. 그때 나온 것이 몸값의 일부인 6,000달러였다. 20달러권 묶음 두 개, 그리고 100장 중 10장이 빠진 묶음 하나. 지폐는 오랜 세월에 썩어 있었지만 고무줄은 아직 묶여 있었다. FBI는 지폐가 포틀랜드 인근에서 강으로 쓸려 내려온 것으로 보았고, 워슈갈강 근처에 착륙했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해석은 곧 지질학과 충돌했다. 포틀랜드 주립대 지질학자 레너드 팔머는 지폐가 묻힌 모래층과 1974년 준설 작업이 남긴 점토층 사이에 별개의 퇴적층 두 개가 있음을 확인했다. 지폐는 1974년 이후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2020년에는 지폐에 붙은 규조류 분석에서 봄철에만 번식하는 종류만 검출됐다. 사건이 일어난 11월이 아니라 최소 몇 달 뒤에 물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사건 직후 흘러 들어온 돈이라는 설명은 수수께끼를 하나 더 남긴 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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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티나 바에서 발굴된 몸값 지폐 일부 — FBI,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가설 1: 착륙해서 살아남았다

그는 조종사가 실속을 피할 정도의 속도와, 승무원이 객실에 남아도 될 정도의 고도를 직접 지정했다. 낙하산의 종류까지 구분해 요구했고, 뒷계단이 있는 727을 골랐다. FBI 프로파일러는 그를 항공에 정통한, 절차에 익숙한 계획형 인물로 평가했다. 넥타이의 미세 입자 분석에서는 1970년대에 극히 드물었던 순수 티타늄과 티타늄-안티몬 합금이 발견됐는데, 이는 항공기 제작이나 전자 부품 공장에 노출된 사람을 시사한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약점은 분명하다. 이듬해 모방 범죄에서 낙하산으로 뛰어내린 사람들은 대부분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지만, 그중 한 명은 낙하산 없이 밧줄 하나만 두르고 밤에 내렸다. 즉 생존 가능성이 낮다는 통념은 생각보다 약하다. 반대로 생존했다면 왜 남은 19만 4천 달러와 그의 흔적이 55년째 한 점도 나오지 않는가. 살아남았을 가능성과 증거의 부재가 서로 맞서는 것이다.

가설 2: 물에 떨어져 죽었다

1971~72년 지상 수색을 지휘한 FBI 요원 토머스 매닝은 1980년 기자에게, 남자가 하강 중 혹한의 바람에 몸이 굳어 메리윈 호수 근처의 거의 얼어붙은 물에 떨어졌다가 낙하산 무게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낙하산 줄이 호수 바닥의 통나무 더미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가설은 사망 원인을 설명하지만 착륙 지점과 돈이 나타난 장소를 동시에 설명하지 못한다. 메리윈 호수는 컬럼비아강으로 흘러드는 루이스강 상류에 있고, 지폐가 나온 티나 바는 그 하류다. 물길이 반대 방향이라는 점이 지질학적 시간표와 함께 걸림돌로 남는다.

가설 3: 그 리처드 맥코이였다

사건 넉 달 뒤인 1972년 4월 7일, 리처드 맥코이 주니어는 덴버에서 727을 납치해 같은 방식으로 50만 달러를 받고 유타 상공에서 뛰어내렸다. 이틀 뒤 돈과 함께 체포됐고, 2년 뒤 탈옥했다가 버지니아비치에서 FBI와 총격전 끝에 사망했다. 1991년 그의 보호관찰관과 체포 작전을 지휘한 FBI 요원은 그를 쿠퍼로 지목하는 책을 썼고, 그를 사살한 요원은 “내가 리처드 맥코이를 쏘았을 때 D.B. 쿠퍼도 함께 쐈다”고 말했다. 2024년에는 유튜버가 맥코이의 어머니 소유였던 부지에서 낙하산을 찾았다고 주장했고, 맥코이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쿠퍼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약점은 신원 자체다. 쿠퍼는 모든 목격자에게 40대 중반으로 기억됐고 맥코이는 당시 29세였다. 승무원 세 명 모두 쿠퍼의 눈은 짙은 갈색, 맥코이의 눈은 연한 파란색이었다고 구분했다. 쿠퍼는 버번을 마시고 연초를 피웠지만 맥코이는 독실한 몰몬교도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다. 사건 당일 그가 라스베이거스에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낙하산 발견 주장은 FBI가 확인해 주지 않았다.

반전: 넥타이가 가리키는 곳은 산속이 아니라 공장이다

이 사건의 통념은 “숲에 떨어진 남자”다. 그런데 2009년부터 고생물학자 톰 케이를 중심으로 한 민간 연구팀이 넥타이를 전자현미경으로 훑으면서 다른 그림이 나왔다. 리코포디움 포자, 순수 티타늄, 비스무스, 안티몬, 세륨, 스트론튬 설화물, 알루미늄 같은 입자가 다수 검출된 것이다. 세륨과 스트론튬 설화물은 보잉의 초음속 수송기 개발 사업과 음극선관을 만드는 포틀랜드 공장에서 쓰였다. 2024년 케이와 로즈의 재분석은 12mm 시료 하나에서 약 18만 개 입자를 자동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 결과를 확장했다.

이 발견이 밝혀 주는 것은 그가 어디로 갔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환경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가다. 그가 항공기 제작이나 전자 부품 생산에 종사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수사 단서로는 흥미롭지만, 그 추정만으로 수십 년간 수백 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결정적으로, 이 분석은 “넥타이가 그 사람의 것이 맞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검증하지 못한다. 입자가 쿠퍼가 앉기 전 좌석 주인에게서 묻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료의 한계

이 사건에는 생존자 진술과 물리 증거, 두 종류의 사료가 있지만 둘 다 온전하지 않다. 승무원 진술은 사건 당일 밤 각기 다른 도시에서 분리 조사됐고 거의 일치했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지만, 그가 “꽤 친절했다”는 인상은 기억의 재구성일 수 있다. 반면 타이클립과 넥타이는 55년간 여러 손을 거쳤고, 케이 팀의 시료 채취 과정도 공개 자료만으로는 완전히 검증되지 않는다. 유튜버가 발견했다는 낙하산처럼, 최근의 주장일수록 언론 보도와 공식 확인 사이의 시차가 크다.

또 하나의 한계는 유행이다. 1980년 지폐 발견, 1991년 맥코이 책, 2010년 케네스 크리스천슨설, 2024년 유튜브 낙하산까지, 십 년을 주기로 새 주장이 나왔고 그때마다 “드디어 밝혀졌다”는 제목이 붙었다. 검증된 것은 하나도 없다. FBI가 66권 기록을 공개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오히려 더 유혹적인 미스터리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자료가 많을수록 확신은 커지지 않고, 해석의 여지만 커졌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

이 사건이 반세기 넘게 회자되는 이유는 범인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확인된 사실인지를 계속 따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꼬리 들림이라는 물리적 흔적, 1974년 이후에 도착한 지폐, 봄철 규조류, 분실된 머리카락 — 어느 것 하나 단독으로는 아무것도 결론내지 못하지만, 서로 맞지 않는 지점들이 이 사건의 실제 뼈대다. 해결된 것은 그가 뛰어내렸다는 사실 하나이고, 남은 것은 신원, 착륙 지점, 생존 여부, 돈의 나머지 행방이다.

덧붙여, 이 사건은 민간 항공 보안의 역사를 바꾼 계기였다. 사건 직후 금속 탐지기가 공항에 설치되고 수하물 검사가 의무화됐으며, 당일 현금으로 표를 사는 승객은 별도 심사를 받게 됐다. 상업 항공의 공인된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미해결 항공 납치 사건이라는 기록은, 반대로 말하면 이후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먼저 물을까

1971년에는 없던 기술이 지금은 있다. 유전자 계보학, 자동 입자 분석, 규조류 동정, 위성 지형 판독.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결정적인 자료 — 머리카락과 담배꽁초 — 는 이미 폐기됐다. 새 기술은 남아 있는 증거에만 적용된다는 냉정한 사실을 이 사건은 보여 준다. 만약 넥타이의 입자 하나를 다시 채취할 수 있다면, 혹은 1974년 이후 지폐를 강변에 묻은 사람이 누구인지 밝힐 수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먼저 확인하겠는가.

참고 자료

  • Wikipedia, “D. B. Cooper” — https://en.wikipedia.org/wiki/D._B._Cooper
  • FBI, “D.B. Cooper Hijacking” (사건 기록 공개 페이지) — https://www.fbi.gov/history/famous-cases/db-cooper-hijacking
  • FBI Vault, “D.B. Cooper Part 1~” (수사 기록 원문, 66권)
  • Tom Kaye & Rhodes, 넥타이 미세 입자 SEM/EDS 재분석 (2024) 및 케이 팀 초기 보고
  • R. Himmelsbach & B. Worcester, 『NORJAK』(1986) — FBI 담당 요원의 회고
  • 지질학자 Leonard Palmer (Portland State Univ.)의 티나 바 퇴적층 조사, 규조류 분석(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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