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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초,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Rachel Reeves)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서명자는 테스코, 세인즈버리, 킹피셔, 모리슨스, 아스다, 프라이마크, M&S 등 영국에서 가장 큰 소매 체인들을 회원으로 둔 단체 ‘리테일 잡스 얼라이언스(Retail Jobs Alliance)’다. 여기에 노동당 계열 점원 노조 우스다우(Usdaw)와 상권 단체 ‘하이스트리트 UK’도 이름을 올렸다. 편지의 표현은 이렇다. “큰 매장에 세금을 더 매기면 영국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는 ‘고스트 타운(ghost town)’, 즉 유령 도시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독자에게 이 편지는 낯설다. 우리 기준으로는 “가게 세금”이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 상권을 이해하려면 임대료보다 이 세금, 즉 비즈니스 레이츠(business rates)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번 편지는 상권 논의의 절반이 ‘임대인과 임차인의 계약’에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지방정부와 사업자의 계산서’에 있다는 얘기다.

변화가 있었던 곳 — 잉글랜드 북동부 항구도시 레드카

기사가 예로 든 곳은 스코틀랜드와 가까운 잉글랜드 북동부 해안의 소도시 레드카(Redcar)다. 편지에 따르면 이 지역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네 명 중 한 명에 이르고, 고용에서 소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3%다. 다른 지역보다 소매업 일자리 손실에 더 크게 노출된 동네라는 뜻이다. 레드카의 하이스트리트는 영국 전통 상점가의 전형적인 모습, 즉 낮은 건물, 길가의 체인점, 보행로가 늘어선 광장으로 이뤄져 있다.

편지는 이 도시만 언급하지 않는다. 소매업 고용 비중이 높은 지역구의 노동당 의원들에게도 사본을 보냈고, 그중에는 2024년 총선에서 영국개혁당(Reform UK)이 2위를 한 접전 지역도 있다. 블레이던 앤드 콘셋(Blaydon and Consett)은 주민의 18%가 소매업에 종사한다고 기사는 전한다(원문에 ‘18%?? per cent’라는 표기 오류가 그대로 찍혀 있다. 숫자는 원문 그대로 옮겼지만 정확한 수치는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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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 하이스트리트 중심부 — 조지 로빈슨(George Robinso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 geograph.org.uk)

영국의 상가 세금, 비즈니스 레이츠란 무엇인가

비즈니스 레이츠는 사업용 부동산에 지방정부가 매기는 세금으로, 건물의 과세가액(rateable value)에 요율을 곱해 계산한다. 과세가액은 대략 그 부동산의 1년치 시장 임대료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즉 한국으로 치면 건물주에게 매기는 재산세에 가깝지만, 실제로 이 계산서를 받는 쪽은 건물주가 아니라 그 건물에서 장사하는 사업자다. 계약서에 이 비용을 임대인에게 넘기는 조항이 없다면 말이다(이 일반 원칙은 영국 세제의 통상적인 배경 설명이며, 이번 원문 기사가 직접 다룬 내용은 아니다).

정부가 추진한 개편의 골자는 간단하다. 2026년부터 큰 매장의 세율을 올리고, 그 재원으로 작은 매장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소규모 점포를 살린다는 명분이지만, 대형 점포 입장에서는 매출이 아니라 ‘건물 면적과 위치’에 매기는 고정비가 오른다. 원문은 정부 쪽 입장도 담았다. 재무부 대변인은 “사업친화적 정부로서 하이스트리트를 보호하고 투자를 지원하며 경쟁 조건을 평평하게 만드는 더 공정한 제도를 만들고 있다”며 “2026년부터 영구적으로 낮아진 새로운 비즈니스 레이츠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전세·보증금·권리금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 상가의 비용 구조는 ‘목돈’에 집중돼 있다. 임차인은 계약 때 보증금을 맡기고, 보통 월세를 내며, 자리가 좋으면 권리금을 얹는다. 이 돈은 나중에 돌려받는 보증금이거나 다음 임차인에게 넘기는 권리금이다. 반면 영국에서는 장기 임차권(leasehold)으로 건물의 일부를 사들이는 경우가 많고, 그 임차권에는 장기 세입자가 지방정부에 비즈니스 레이츠를 직접 내는 의무가 붙는 게 일반적이다(이 역시 제도 일반론이며, 이번 기사의 명시적 서술은 아니다).

차이는 위험의 시점에 있다. 한국은 들어갈 때 큰돈이 나가고 장사가 안 되면 보증금으로 일부를 회수한다. 영국은 들어간 뒤 매년 건물 과세가액을 기준으로 계산서가 날아오는데, 장사가 안 된다고 이 계산서가 비례해서 줄지는 않는다. 매출이 반으로 줄어도 세금은 ‘건물의 잠재 임대료’를 기준으로 계속 매겨지는 구조다. 원문 기사가 이 제도 설명을 직접 다루지는 않으므로, 이 대비는 한국 독자를 위한 배경 설명으로 읽어 주기 바란다.

업종 구성과 사라지는 일자리의 규모

기사에 나오는 숫자는 세 가지다. 첫째, 소매업에 직간접으로 연결된 일자리가 영국 전체에서 300만 개 이상이다. 둘째, 리테일 잡스 얼라이언스의 분석으로는 2028년까지 30만 명이 이 부문을 떠날 수 있다. 셋째, 레드카의 소매업 고용 비중 13%, 블레이던 앤드 콘셋의 18%다.

편지는 또한 매장이 카페, 미용실, 네일숍 같은 주변 가게들의 닻(anchor)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쇼핑하려 나온 사람이 골목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 매장 하나가 빠지면 그 주변 소상공인도 함께 무너진다는 논리다. 다만 이 문장은 어디까지나 업계 단체의 주장이며, 기사는 이를 검증할 별도의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

왜 지금인가 — 세금, 온라인, 그리고 정치

원문이 지목한 원인은 임대료가 아니라 세금 계산서다. 매출이 아니라 건물의 과세가액을 기준으로 매기다 보니, 온라인과 경쟁하며 마진이 얇아진 오프라인 매장에는 고정비가 상대적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여기에 2026년 개편이 겹치면 대형 점포의 부담이 더 커진다.

정치적 맥락도 분명하다. 이 편지가 소매업 고용 비중이 높은 접전 지역구 의원들에게 사본으로 전달됐다는 점, 그리고 그 지역구 상당수가 영국개혁당이 2위를 한 곳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하이스트리트가 비면 그 불만은 극우 정당의 표로 흘러가고, 집권당의 의원들도 그걸 계산에 넣는다는 뜻이다. 상권 문제가 결국은 선거구 문제로 번역되는 장면이다.

반전 — 상권의 몰락인가, 비용 구조의 재편인가

이 편지의 수사는 강하다. ‘유령 도시’, ‘경제 침체의 악순환’, ‘커뮤니티 결속의 상실’. 그러나 조금만 차분히 읽으면 이 글은 몰락 보도가 아니라 비용 배분을 둘러싼 협상 문서다. 편지에 서명한 주체는 폐업 위기의 소상공인이 아니라 영국 최대 소매 체인들의 연합이다. 이들이 요구한 것도 “세금을 없애달라”가 아니라 “소매점을 높은 세율 구간에서 빼달라”는 특정 조항의 수정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통념과 다른 재해석의 여지가 있다. 거리가 비는 이유가 손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건물의 ‘잠재 가치’(과세가액)와 실제 장사로 벌 수 있는 돈 사이의 간격이 벌어져서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임대료 인하만이 아니라, 세금 기준을 매출이나 실제 사용에 가깝게 옮기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 해석은 원문 기사가 직접 주장한 것이 아니며, 편지의 논리를 따라간 읽기라는 점을 밝혀 둔다.

한국의 비슷한 처지 — 지방 소도시 역전 상가

레드카와 닮은 국내 상권으로는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 소도시의 역전 상가나 옛 시장 거리를 들 수 있다. 공통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소매업이 지역 고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 다른 하나는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에 손님을 빼앗기며 업종이 바뀌어 간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비용의 종류다. 한국 소상공인의 고정비는 임대료와 인건비, 그리고 카드 수수료 쪽에 집중돼 있고, 건물의 ‘잠재 가치’에 매기는 세금은 상대적으로 작다. 반대로 영국은 장사가 안 되어도 건물 과세가액을 기준으로 계산서가 떨어진다. 그래서 같은 ‘상권 침체’를 놓고도 한국에서는 임대료 협상과 보증금 회수가, 영국에서는 세제 개편 로비가 먼저 나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을 때의 한계

이 기사의 1차 사료는 업계 단체가 쓴 편지 자체다. 기사에 실린 30만 명, 300만 개, 13%, 18%는 모두 리테일 잡스 얼라이언스 또는 편지에 인용된 숫자이지, 독립 기관의 검증을 거친 수치가 아니다. 기사는 정부 대변인의 반론을 한 단락 넣었지만, 이 제도가 실제로 소상공인에게 어떤 효과를 냈는지에 대한 분석은 담지 않는다. 업계의 로비 문서를 그대로 옮긴 보도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독자에게 — 상권은 무엇으로 죽는가

거리의 쇠퇴를 봤을 때 우리는 대개 ‘장사가 안 되나 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레드카의 사례를 따라가 보면, 거리를 비우는 것은 손님이 아니라 건물의 잠재 가치와 장사의 현실 사이 간격일 수 있다. 여러분 동네의 빈 점포는 임대료 때문에 비었는가, 세금이나 다른 고정비 때문인가? 어느 쪽이 더 큰 문제라고 느끼시는지 궁금하다.

참고 자료

  • “Business rates to make ‘ghost towns’ of UK high streets” — The Observer, 2025년 6월 9일. 원문 링크
  • 기사 사진: Mike Kemp/In Pictures via Getty Images (언론사 사진이라 본문에는 사용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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