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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Annalen der Physik und Chemie 100권 끝자락에서 편집자 요한 크리스티안 포겐도르프는 두 쪽짜리 짧은 글을 덧붙인다. 그는 빌헬름 베버가 최근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같은 주제의 논문을 이미 완성된 상태로 보여 주었는데, 루돌프 콜라우슈와 함께 진행 중인 실험 결과를 기다리느라 아직 인쇄하지 않았다고 적는다. 그리고 며칠 뒤 베를린을 지나던 키르히호프와 이 우연을 두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두 사람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토대'에서 출발해 '서로 일치하는 결과'에 도달했으므로 유쾌한 일이라고 덧붙인다. 그 짧은 글의 첫 장에는 351쪽이, 둘째 장에는 352쪽이 아니라 252쪽이 찍혀 있다. 인쇄공의 실수다.

이 글은 그 두 쪽에서 시작해, 같은 해 독일어 원본에 실제로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를 따라간다. 마리아 플로렌티나 멘도사 우란이 arXiv에 올린 논문 <The Relation Before Lorenz>는 1857년 키르히호프의 두 편의 논문을 원본 스캔으로 다시 읽고, 오늘 우리가 '퍼텐셜 사이의 관계식'이라 부르는 그 줄이 언제 처음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 줄에 붙은 이름과 어휘가 언제 누가 덧붙인 것인지를 추적한다. 결론은 사소해 보이지만 미묘하다. 관계식은 1867년 로렌츠보다 10년 앞서 있었고, 그 관계식에 붙은 이름은 2006년에야 생겼다.

1857년, 전선을 따라 흐르는 파동의 속도

키르히호프가 그해 Annalen 100권 193~217쪽에 실은 첫 논문은 '전선에서의 전기의 운동'이다. 무한히 얇은 전선 하나를 1차원으로 다루고, 베버의 유도 법칙에서 출발한다. 미분방정식을 세우고, 해를 구하고, 감쇠항이 붙은 2차 방정식의 근이 실수인지 허수인지 판정하기 위해 실제로 측정된 도체를 끌어온다. 베버가 저항을 측정해 둔 야코비의 표준 저항선이다. 키르히호프가 제시한 상수는 c = 4.39 × 10¹¹ 밀리미터/초, 표준선의 반지름은 0.333 밀리미터, 길이는 7.620 미터다.

그 숫자들이 만드는 조합 32γ/(rc√2)는 2070으로, 아주 크다. 그래서 근은 허수가 되고 해는 주기적이 된다. 파동의 전파 속도는 c를 √2로 나눈 값, 약 31만 킬로미터/초로 나온다. 키르히호프는 209~210쪽에서 그 값을 1초에 41,950 독일 마일이라고 적고,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와 매우 거의 같다(sehr nahe gleich)'고 덧붙인다. 그리고는 곧장 다른 비유로 넘어간다. 전선을 따라 전기가 퍼지는 모습이 팽팽히 당긴 현의 파동, 또는 세로로 진동하는 탄성 막대의 파동과 '매우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고. 이 논문 어디에도 '전자기파'라는 표현은 없다. 파동방정식을 하나의 식으로 쓴 곳도 없다.

다섯 개의 글자, 이름이 붙은 것과 붙지 않은 것

로렌츠가 인용하고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같은 해의 두 번째 논문, 102권 529~544쪽의 '도체에서의 전기의 운동'이다. 여기서 키르히호프는 스칼라량 하나와 성분 세 개를 도입한다. 스칼라량에는 이름이 있다. 529쪽에서 그는 Ω를 '자유 전기의 포텐셜함수(Potentialfunction)'라고 부른다. 반면 530쪽에서 도입하는 세 개의 부피적분 U, V, W에는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는다. '적분이 도체 전체 부피에 걸쳐 취해진 것으로 생각하면'이라고만 적고, 그 적분들이 기전력의 두 번째 부분의 성분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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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키르히호프. 1882년 <Gesammelte Abhandlungen> 권두 초상 — 저작자 구스타프 로베르트 키르히호프,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BEIC 디지털 도서관)

그리고 531쪽에서 예고한다. 세워 둔 방정식들로부터 ε와 Ω 사이의 '주목할 만한 관계(merkwürdige Relation)'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계산은 532쪽으로 이어지고, 533쪽 첫 줄에서 다음 식이 나온다. ∂U/∂x + ∂V/∂y + ∂W/∂z = ½ ∂Ω/∂t. 번호도 없고, 이름도 없다. 그저 다음 식 (7)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단계다. 오늘의 어휘로 말하면 스칼라 퍼텐셜과 벡터 퍼텐셜 사이의 관계식, 그것도 특정 게이지를 고정하는 조건에 해당한다.

논문이 강조하는 것은 이 식의 지위다. 키르히호프는 이 관계를 '조건으로 부과'하지 않는다. 이미 가진 방정식에서 유도해 내고, 번호 없이 적고, 계속 계산한다. 미리 미정이라고 선언한 양들에 제약을 걸지도 않고, 같은 결과를 내는 다른 양들이 있다고 언급하지도 않고, 대안 중에서 하나를 고르지도 않는다. 유도의 한 걸음일 뿐이다.

반전: 로렌츠는 글자를 물려받고 이름은 물려주지 않았다

1867년 로렌츠의 논문 246쪽을 펼치면 기호가 그대로 겹친다. 스칼라량은 Ω, 성분 셋은 U, V, W. 같은 글자다. 그런데 논문이 지적하는 반전은 그다음에 온다. 로렌츠가 실제로 쓰는 관계식은 U, V, W가 아니라 α, β, γ로 되어 있다. 그는 249쪽에서 자신의 방정식이 U, V, W 대신 '좀 덜 합성된(something less compound)' α, β, γ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스스로 밝힌다. 그리고 253쪽에서 처음 적는 관계식의 부호는 키르히호프의 것과 반대다.

그래서 '같은 관계식'이라는 말은 느슨하게만 참이다. 형태는 같고, 부호는 반대이며, 등장하는 양 자체가 다르다. 논문은 이 차이를 흐리지 않는다. 대신 무엇이 물려졌는지를 정확히 집어낸다. 이름 없는 성분 셋은 키르히호프에게서 왔고, 로렌츠는 그 무명 상태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반대로 이름이 있던 스칼라량 쪽은 반대다. 키르히호프는 그것을 'Potentialfunction'이라 불렀지만, 로렌츠는 그 단어를 가져가지 않는다.

즉 1867년 논문에서 관찰되는 '퍼텐셜이라는 단어가 없고, 자기장이 이론의 양으로 등장하지 않는' 특징은 로렌츠 개인의 발명이 아니라 그가 출발한 원천의 성질이다. 논문은 이것을 '이름 없는 관계, 이름 없는 성분, 나중에 덧붙여진 어휘'라는 세 겹의 패턴으로 정리한다. 관계 자체는 10년 전에 이미 계산의 결과로 존재했고, 그 위에 이름과 어휘가 나중에 얹혔다.

지운 단어, 늦게 도착한 이름

논문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1857년 같은 해에 나온 영역본을 다루는 6장이다. Philosophical Magazine 4집 13권 393쪽에서 번역자는 키르히호프의 'Potentialfunction'을 그냥 'potential'로 옮긴다. 정의 자체는 온전히 남는다. 사라지는 것은 단어 하나, 'function'이다. 그런데 그 단어는 영어에 없던 것이 아니었다. 조지 그린이 1828년 논문 첫 페이지에서 'potential function'이라는 이름을 직접 만들어 썼다. 번역자에게 그 선택지가 있었는데 쓰지 않은 것이다.

논문은 이 차이가 무엇을 바꾸는지 짚는다. '포텐셜 함수'는 그것이 계산을 위해 구성된 대상, 곧 함수임을 말한다. 명사는 '함수'이고 '포텐셜'은 그것을 수식한다. '포텐셜'은 그 수식어를 명사로 승격시킨다. 이제 그것은 어떤 종류의 함수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하나의 사물이다. 그리고 사물이라면 그것이 물리적인지 물을 수 있게 된다. 같은 번역본 402쪽에서는 야코비 표준선의 길이가 '7·620 inches'로 적혀 있는데, 독일어 원본의 '7ᵐ,620'은 7.620 미터다. 키르히호프 자신의 계산이 어느 쪽이 맞는지 판정한다. γ가 '거의 10'이어야 하는데, 7620밀리미터면 10.04이고 7.620인치면 6.37이다. 1994년 그라노와 아시스의 두 번째 논문 번역은 'potential function'을 그대로 살려 두고 U, V, W도 이름 없이 둔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쓰는 말은 언제 들어왔나. 논문은 잭슨과 오쿤의 2001년 Reviews of Modern Physics 논문을 든다. 그들은 530쪽의 세 적분을 '벡터 퍼텐셜'이라 부르고, 532~533쪽의 관계를 '오늘날 특정 게이지로 알려진 것에서의 최초의 출판된 퍼텐셜 관계'라고 소개한다. 위치와 방정식은 정확하다. 다만 그 페이지들에는 벡터 퍼텐셜도, 게이지도 없다. 이름 없는 적분 셋과, 번호 없는 유도된 관계가 있을 뿐이다. 잭슨과 오쿤 자신이 서문에서 밝힌다. '게이지'라는 단어가 그런 변환에 영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29년 바일 이후인데, 19세기 물리학자를 논할 때 현대 용어를 쓰는 것이 편리하다고.

'키르히호프 게이지'라는 이름은 그보다 더 늦다. 논문에 따르면 2006년 호세 안토니오 에라스가 'The Kirchhoff Gauge'에서 그렇게 부르자고 제안했고, 이후 논문에서 자신이 명명했다고 확인한다. 1857년의 한 줄이 이름을 얻기까지 149년이 걸린 셈이다. 저자는 이 어휘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의 언어로 옛 텍스트를 읽는 것은 나름의 목적을 수행한다. 다만 그 텍스트 자체는 그 언어를 쓰지 않았고, 그 서술을 통해 원문에 다가간 독자는 저자가 넣지 않은 용어를 원문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반론: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가장 자연스러운 반론은 '용어가 늦게 붙은들 물리학이 달라지나'이다. 논문은 이 반론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대신 세 사람의 서로 다른 독법을 나란히 놓는다. 맥도널드는 키르히호프의 논증을 전하와 전류의 표면파 속도가 도체 밖 매질의 파동 속도와 일치한다는 최초의 시연으로 읽고, 그가 쓴 조건을 '게이지 조건의 첫 사용'이라 부른다. 아시스는 키르히호프와 베버가 자기유도까지 고려한 전신방정식을 처음 유도했고 저항이 무시할 만할 때 전기 파동이 빛의 속도로 간다고 보였다고 쓰면서, 각주에서는 '매우 거의 같다'로 한 발 물러선다. 톰베는 더 나아가 키르히호프가 전기장 항들을 뒤섞는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이 세 독법은 같은 페이지에서 출발하지만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533쪽에 적힌 것을 바꾸지 않는다. 이름 붙은 포텐셜 함수와, 이름 없는 전류의 적분 셋 사이의, 번호 없는 유도된 관계. 논문은 세 독법을 '논의하지 않고 나란히 둔다'고 밝히는데, 그 태도 자체가 하나의 주장이다. 물리적 해석의 차이는 원문의 상태와 별개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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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 로렌츠. 1885년경 사진 — 촬영 Hansen, Schou & Weller,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Das Fotoalbum für Weierstraß> 수록)

또 하나의 반론은 '그 c는 빛의 속도가 아니다'이다. 키르히호프가 정의하는 c는 두 전하가 서로 힘을 주지 않도록 움직여야 하는 상수, 곧 베버 유도 법칙의 상수다. 그 값이 우연히 빛의 속도와 가까울 뿐, 장 이론에서 속도를 끌어낸 것이 아니다. 논문도 이 점을 놓치지 않고, c/√2가 빛의 속도와 '거의 같다'는 서술과 '빛이 가진 속도'라는 후대의 서술 사이의 온도차를 기록한다. 맥도널드가 지적하듯 베버의 전기역학은 작용거리 이론이었고, 베버도 키르히호프도 빛이 전자기 현상이어야 한다고 결론내리지 않았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저자는 결론에서 자신이 주장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적는다. 우선 '벡터 퍼텐셜'이라는 용어가 어떤 경로로, 어느 시점에 이 페이지들에 들어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이 논문이 주장하는 바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두 번째로, 다루는 범위는 1857년의 두 논문과 1867년 로렌츠 논문, 그리고 그 사이의 번역본들이다. 키르히호프의 우선권을 일반적으로 주장하지도, 로렌츠가 표절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로렌츠는 첫 페이지에서 키르히호프를 인용하고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밝히며, 자기 나름의 지연된 포텐셜 Ωi를 '새로운 함수'라고 소개한다.

세 번째 한계는 방법론에 있다. 논문의 논증은 원본 스캔의 쪽수와 활자, 인쇄 오류, 단어 세기 같은 것에 기댄다. 25쪽짜리 논문 전체에서 'magnet'이라는 어근이 204쪽의 '전자기적 척도' 한 번만 나오고, 'Potential'이 세 번 나오는데 셋 다 스칼라량 V를 가리킨다는 식의 계수는 강력하지만, 동시에 텍스트 세밀함에 대한 의존이 크다. 그리고 '같은 관계식'이라는 표현은 부호가 반대이고 양이 다르다는 점에서 엄밀히는 '같은 형태의 식'이다. 저자도 그 차이를 본문에서 여러 번 명시한다.

독자에게: 이름은 발견보다 늦게 온다

정리하면 이렇다. 1857년 102권 533쪽 첫 줄에, 번호도 이름도 없는 한 줄이 있다. 10년 뒤 로렌츠가 같은 글자로 시작해 다른 양과 반대 부호로 그 관계를 다시 쓴다. 1857년의 영역본은 '함수'라는 단어를 지우고, 1929년에 게이지라는 단어가 영어에 들어오고, 2001년에 그 페이지들이 게이지의 언어로 다시 서술되고, 2006년에 그 조건에 키르히호프의 이름이 붙는다. 발견은 한 번 일어났지만, 그 발견을 가리키는 말은 여러 번 새로 만들어졌다.

이 글을 읽고 나면 '누가 먼저 발견했나'라는 질문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먼저 쓴 사람과 먼저 이름을 얻은 사람은 다를 수 있고,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개념의 이름은 그 개념이 태어난 순간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설명해야 했던 나중의 필요에 의해 붙기도 한다. 여러분이 물리 교과서에서 당연하게 외운 개념 중에, 그 이름이 정의보다 늦게 도착한 사례를 하나 떠올릴 수 있겠는가.

참고 자료

Mendoza Urán, María Florentina. 'The Relation Before Lorenz: Kirchhoff, 1857, and the Symbols Lorenz Inherited'. arXiv:2610.14122 [physics.hist-ph], 2026. https://arxiv.org/abs/2610.14122

Kirchhoff, Gustav. 'Ueber die Bewegung der Elektricität in Drähten'. Annalen der Physik und Chemie 100, 193–217 (1857). DOI 10.1002/andp.18571760203.

Kirchhoff, Gustav. 'Ueber die Bewegung der Elektricität in Leitern'. Annalen der Physik und Chemie 102, 529–544 (1857). DOI 10.1002/andp.18571781203.

Lorenz, Ludvig. 'Ueber die Identität der Schwingungen des Lichts mit den elektrischen Strömen'. Annalen der Physik und Chemie 131, 243–263 (1867).

Jackson, J. D., and L. B. Okun. 'Historical roots of gauge invariance'. Reviews of Modern Physics 73, 663–680 (2001). arXiv:hep-ph/001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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