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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근교의 도시 엘크그로브(Elk Grove). 2004년 9월, 원예·재봉 재료 체인 조앤 스토어스(Jo-Ann Stores)는 이 도시 한 상업부지의 쇼핑센터에 약 3만5,000스퀘어피트(약 3,250㎡) 규모의 점포를 임차했다. 계약서에는 두 개의 임대료가 적혀 있었다. 하나는 5년마다 인상되는 '고정 최저임대료'로, 처음에는 월 3만6,458달러였고 소송이 시작될 무렵에는 월 4만2,292달러까지 올라 있었다. 다른 하나는 특정 조건이 무너졌을 때만 작동하는 '대체 임대료(Substitute Rent)'로, 총매출의 3.5%에서 패턴 매출을 뺀 금액과 월 1만2,000달러 중 큰 쪽이었다.

2018년 7월, 센터의 앵커 테넌트(대형 점포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중심 임차인)였던 스포츠 셰일럿(Sports Chalet)과 토이저러스(Toys “R” Us)가 문을 닫았다. 센터의 임대 가능 면적 대비 입주율이 계약서에 정한 60% 아래로 떨어지자 조앤은 대체 임대료를 선택했고, 2020년 5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스가 옛 장난감 매장 자리에 들어올 때까지 약 20개월간 그 금액을 냈다. 임대인 JJD-HOV 엘크그로브는 이 차액 63만8,293달러와 이자를 요구하며 소송을 냈고, "이 조항은 위약금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2024년 12월 19일, 조항을 살렸다.

한국 독자에게 낯선 '코테넌시' — 임대료가 두 개인 계약서

이 사건의 핵심은 '코테넌시 조항(cotenancy provision)'이다. 미국 대형 유통 체인이 쇼핑센터와 계약할 때 흔히 넣는 문구로, 센터 안의 앵커 테넌트 수나 전체 입주율이 일정 기준 밑으로 떨어지면 세입자가 임대료를 낮춰 내거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한다. 조앤의 계약서 문구는 이랬다. "세입자를 이 임대차계약에 들이기 위해, 임대인은 (x) 세 곳의 앵커 테넌트 또는 이에 준하는 대체 임차인과 구속력 있는 계약을 맺거나, (y) 쇼핑센터 임대 가능 면적의 60% 이상에 대한 계약을 맺는다는 것을 진술한다." 문구에는 그 이유도 대놓고 적혀 있었다. 이 조항은 세입자를 계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상가 임대차와 비교하면 구조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영업권을 사고파는 권리금이 계약의 중심이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계약갱신요구권과 임대료 증액 상한(5%)을 규율한다. 반면 미국의 이 계약은 세입자가 "매장이 몇 개 열려 있느냐"에 따라 임대료를 골라 내는 이중 구조다. 다만 이는 캘리포니아 대법원 판결문에서 확인되는 이 사건 계약의 구조이며, 미국 상가 임대 전반이 모두 이렇게 작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법원이 물은 것은 하나 — '선택'인가, '벌칙'인가

임대인 JJD의 논리는 단순했다. 앵커 테넌트가 닫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데, 그 결과 임대료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은 손해배상이 아니라 '위약금'이라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법은 계약 위반에 대한 위약금이 실제 손해와 무관하게 과도하면 집행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1974년 Blank v. Borden 판결 이래 쓰인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 기준을 적용했다. 임대인에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실제로 고를 수 있는 대안이 주어졌다면 그것은 위약금이 아니라 '이행의 다른 방식'이라는 기준이다.

대법원은 JJD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었다고 봤다. 판결문은 "JJD는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앵커 테넌트가 있거나 정해진 입주율을 채운 몰)를 제공하고 더 많은 임대료를 받거나, 아니면 더 낮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적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고 적었다. 여기에 계약 전 협상 과정도 근거로 삼았다. 양측 모두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오랜 협상을 거쳤고, 테이블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조앤은 처음에 대체 임대료를 매출의 3% 또는 월 2,000달러로 제안했다가 3.5%와 월 1만2,000달러로 확정했고, 입주율 기준도 60·70·80%를 두고 논의 끝에 60%로 정했다.

같은 법원이 반대로 판단한 사건 — 통제 가능성

흥미로운 것은 이 법원이 몇 년 전에는 정반대 결론을 낸 적이 있다는 점이다. 2015년 Grand Prospect Partners v. Ross Dress for Less에서 항소법원은 코테넌시 조항을 집행 불가능한 위약금으로 봤다. 앵커 테넌트였던 머빈스(Mervyn’s)가 자기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대인은 그 테넌트가 떠나는 것을 막을 방법도, 그 자리에 새 임차인을 들일 방법도 없었다. 진짜 선택지가 없는 조항은 선택이 아니라 벌칙이라는 논리다. 대법원은 두 사건을 '통제 가능성'으로 갈랐다. 조앤의 센터는 JJD가 임대 가능 면적 전체를 통제하고 있었고, 실제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스가 옛 토이저러스 자리에 들어와 조항이 다시 충족됐다.

역설 — 조항이 살아남은 해에 세입자는 사라졌다

이 판결이 흥미로운 이유는 결과가 아니라 시점에 있다. 판결이 나온 뒤 조앤은 2025년 1월, 1년도 안 되어 두 번째 파산(챕터 11)을 신청했고 그해 2월 500개 매장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그중 61곳이 캘리포니아였다. 상업부동산 매체 글로브스트(GlobeSt)는 이 소송을 보도하며, 미국에서 2025년 한 해 최대 1만5,000개 매장이 닫힐 것이라는 코어사이트 리서치(Coresight Research)의 전망을 함께 인용했다. 즉 코테넌시 조항을 지켜준 대법원의 판결은, 그 조항의 수혜자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점포를 닫는 와중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이 판결을 '세입자 승리'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캘리포니아 변호사협회(California Lawyers Association) 블로그의 필자 체이스 스톤은 판결이 "형식보다 실질을 따지겠다면서도 결국 조항을 문언 그대로 살리는 형식적 결론"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실질적으로 본다면 이 조항은 임차인 보호 장치라기보다, 임대인과 세입자가 '몰이 쇠퇴할 위험'을 어떻게 나눌지를 미리 정해 둔 위험 분담 장치다. 앵커가 하나, 둘 닫히면 남은 세입자들이 임대료를 덜 내고 버티고, 임대인은 그만큼 적은 수입으로 새 임차인을 찾아 나선다. 상권의 쇠퇴가 계약 조항 하나로 분산되는 구조다.

상가 임대료는 '가게가 얼마나 열려 있느냐'와 연결되어 있다

한국 상가의 임대료는 대개 계약 시점에 정해지고 그 뒤로는 갱신 때 5% 상한 안에서 조정된다. 반면 미국의 이 계약에서 임대료는 센터의 상태를 따라 움직인다. 앵커 테넌트가 닫으면 세입자는 이웃 가게의 빈자리를 근거로 자기 임대료를 낮춘다. 임대료가 세입자의 영업 성과나 유동인구에 직접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이 계약 구조는 '상권이 죽어도 임대료는 버티는' 한국의 구도와 대비된다.

반대로 공통점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앵커 테넌트가 사라지면 손실은 고스란히 남은 세입자와 임대인에게 돌아간다. 이 판결이 확인해 준 것은 그 손실을 누가 얼마나 질 것인가를 미리 계약서에 적어둘 수 있다는 사실이지, 손실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코테넌시 조항은 쇠퇴를 막는 장치가 아니라 쇠퇴 비용을 정산하는 회계 장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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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라하브라의 '라하브라 서클(La Habra Circle)' 쇼핑센터 — 1959년에 지어져 미드센추리 모던(고기 스타일) 간판이 남은 로드사이드 상가. 이번 사건의 엘크그로브 상업부동산과는 무관한 예시 사진 — Amin Eshaiker,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한국과의 비교 — 을지로, 대학가, 그리고 재개발 상가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을 떠올린다면 서울 을지로의 인쇄골목이나 대학가 상가를 들 수 있다. 을지로 일대는 인쇄소와 공구상이 밀집해 있다가 업종이 줄고 임차인이 바뀌면서 공실이 생겼고, 대학가 상가는 학생 수 감소와 배달앱 확산으로 점포 구성이 바뀌었다. 이들 상권에서 세입자가 느끼는 문제도 "큰 손님이 사라졌다"이다. 그러나 그 손실을 임대료로 보상받는 장치가 계약서에 들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세입자는 보증금으로 버티거나, 임대인과 재협상을 하거나,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간다.

이 판결은 그 '재협상을 계약으로 미리 정해 둔' 사례다. 대형 유통 체인 같은 협상력이 있어야 임대인에게 이런 조항을 받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소상공인 보호 장치가 아니라 대형 체인의 위험 관리 수단이기도 하다.

이 기사가 누구의 시각인가

이번 글의 주 사료는 캘리포니아 대법원 공식 판결문(S275843, 2024년 12월 19일 선고)이고, 사실관계와 수치는 그 판결문에서 옮겼다. 판결문은 법원의 서술이므로 양측 주장을 중립적으로 담았지만, 어디까지나 임대인의 위약금 주장을 기각한 쪽의 논리 구조를 따른다. 보도 자체는 로이터가 최초로 전했고, 미국 상업부동산 전문지 글로브스트와 캘리포니아 변호사협회 블로그가 사후 해설을 붙였다. 임대인의 입장은 소송 기록으로만 남아 있고 별도의 인터뷰는 확인하지 못했다. 조앤의 2025년 파산과 500개 매장 폐쇄는 그 뒤의 사건이며, 이 판결이 파산에 영향을 줬다는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남는 질문

만약 한국에도 "옆 가게의 개업·폐업이 내 월세에 반영되는" 조항이 보편화된다면, 임대인은 공실을 줄이려 더 노력할까, 아니면 임대료 인하를 받아들일까. 대형 앵커가 도시의 랜드마크처럼 자리 잡은 상권에서, 그 앵커의 리스크를 가장 많이 지는 쪽은 과연 누구일까.

참고 자료

· 《California Supreme Court upholds cotenancy clause in retail lease as providing alternative rent structure》 — Reuters, 2025년 3월 6일
· JJD-HOV Elk Grove, LLC v. Jo-Ann Stores, LLC (S275843), 캘리포니아 대법원 판결문 — 2024년 12월 19일, https://www.courts.ca.gov/opinions/archive/S275843.PDF
· 《California's Top Court Upholds Validity of Retail Cotenancy Clauses》 — GlobeSt, 2025년 3월 10일
· 《JJD-HOV Elk Grove, LLC v. Jo-Ann Stores, LLC》 사건 해설 — California Lawyers Association 비즈니스법 블로그, 2025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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