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양재터널을 시속 80km로 통과하던 중, 화면의 파란 화살표가 뚝 멈추고 "GPS 신호 약함"이라는 회색 문구가 뜬다. 1분 뒤 터널을 빠져나오면 화살표가 옆 골목에 꽂혀 있다가 2~3초 만에 다시 본선으로 튀어 오른다.
멈춘 화면은 사실 멈춘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이 내비게이션이 터널 안에서 "작동을 멈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멈춘 것은 위성 신호를 받는 부분이고, 앱은 그동안 다른 센서로 위치를 계속 쌓고 있다. 문제는 그 쌓는 방법이 시간이 흐를수록 반드시 틀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차량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온다. 이유는 앱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터널이 대개 짧고 출구 근처에 신호가 다시 잡히기 때문이다. 조건이 조금만 달라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성 신호는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GPS 위성은 지상 약 2만 킬로미터 상공에서 1.5GHz 대역(L1, 1575.42MHz) 전파를 쏜다. 이 주파수는 금속과 콘크리트, 흙을 거의 통과하지 못한다. 산속 굴착 터널이면 수십 미터의 암반 위에 다시 흙이 얹혀 있으니, 달에서 오는 전파를 받겠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
실내에서 GPS가 잡히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창가에서는 간혹 잡히지만, 콘크리트 벽 두 장을 통과하면 신호 세기가 100배 이상 줄어 수신 임계값 아래로 떨어진다. 그래서 터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내비게이션은 "위성 0개"가 된다.
GPS·글로나스·갈릴레오·베이더우 위성 항법 체계의 궤도 고도와 주기 비교 — cmglee,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남은 것은 관성센서와 바퀴 회전수뿐
신호가 끊기면 내비게이션은 추측 항법(dead reckoning, 앞선 위치에서 이동량을 더해 다음 위치를 짐작하는 방법)으로 넘어간다. 이동량은 두 가지로 구한다. 하나는 차량의 가속도와 회전을 재는 관성센서(가속도계와 자이로스코프), 다른 하나는 휠 펄스다. 휠 펄스는 바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나오는 전기 신호라서, 초당 펄스 수에 타이어 지름을 곱하면 속도가, 속도에 시간을 곱하면 이동 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단서가 있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은 차량 관성센서에 직접 접근하지 못한다. 휠 펄스는 더더욱 없다. 폰에 들어 있는 소형 가속도계와 자이로, 그리고 위성 위치의 시간 변화로 계산한 속도를 조합할 뿐이다. 센서 등급이 낮을수록 오차는 빨리 쌓인다.
오차는 거리에 비례해 쌓인다
추측 항법의 핵심은 "틀린 각도에 이동 거리를 곱하면 위치 오차가 된다"는 것이다. 시속 80km는 초속 약 22.2m다. 자이로스코프가 1도만 틀어져도 1초에 22.2m × sin(1°) ≈ 0.39m 옆으로 어긋난다. 3km 짜리 터널을 2분 15초에 통과하면 옆으로 밀리는 거리는 누적 50m를 넘을 수 있다.
차량용 고성능 관성센서(자이로 편향 1도/시간 수준)라면 같은 2분 15초 동안 약 0.06도 틀어져 오차는 4m 안쪽으로 유지된다. 반면 스마트폰의 소비자용 자이로(편향 10~100도/시간)는 2분 만에 0.4~4도 틀어진다. 같은 터널, 같은 속도인데 기기 등급에 따라 출구에서 4m 차이가 날 수도, 50m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게다가 각도 오차는 오래 갈수록 커진다. 오차가 처음 몇 초는 무시할 수준이지만, 10km, 20km로 길어지면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 그래서 추측 항법은 짧은 터널용이지, 20km 짜리 알프스 터널용이 아니다.
속도조차 틀린다 — 타이어 지름이 바뀐다
휠 펄스 기반 거리 계산에는 숨은 변수가 있다. 타이어 지름이다. 속도를 재는 기준은 "바퀴 둘레"이므로, 타이어가 마모되어 지름이 5% 줄면 실제 속도보다 5% 적게 계산된다. 3km 터널에서 5%는 150m 오차다.
적재량, 타이어 공기압, 마모도에 따라 지름은 수 %씩 변한다. 새 타이어를 끼운 차와 오래 탄 차가 같은 터널을 통과해도 내비게이션 내부 계산은 다르게 나온다. 앱이 터널에서 위치를 조정하거나 보정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 오차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고트하르트 도로 터널 내부 — Eric T Gunther,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앱이 출구에서 위치를 잡아내는 방법
터널을 빠져나오면 수신기는 곧바로 위성 신호를 잡는다. 문제는 그 순간의 위치가 아니라, 그 순간부터 3~4초 동안 위성 신호는 잡히는데 위치가 튀는 현상이다. 이 튐은 위성과 신호를 받는 첫 시간에 위성 궤도 오차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앱은 "아직 터널 안"이라는 가정을 버리고, 새 위치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판단이 늦을수록 튐이 길어진다.
보정 방법은 세 가지가 쓰인다. 첫째, 터널 내부 도로 형태를 지도 데이터로 미리 알고 있으면 차가 갈 수 있는 경로로만 위치를 강제한다. 둘째, 터널 출구에 붙인 비콘이나 기지국 신호를 보조로 쓴다. 셋째, 차량이 터널을 통과할 때 걸린 시간과 출구에서 잡은 위치를 비교해 내부 경로를 역산한다.
실제로 네비게이션 앱은 터널 안에서 화면을 흐리게 만들거나 "터널 구간" 안내를 띄운다. 이는 오류를 숨기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위치 튐에 놀라거나 잘못된 길로 유도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이 설명이 틀리는 경우
모든 차량이 이렇게 오차를 쌓는 것은 아니다. 고급 차량에 장착된 관성항법장치(INS)나 휠 센서를 직접 쓰는 내비게이션이면 터널 내 오차가 수 m 이내로 유지된다. 또 지하 터널이라도 짧다면 위성이 잡히기 전에 이미 출구에 도달해 오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터널 길이가 길고 차가 여러 번 차선을 바꾸거나 정체로 멈췄다면, 관성센서만으로는 방향 전환을 정확히 재지 못해 오차가 급격히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앱이 위치를 지도 위 도로에 "붙이는" 보정이 오히려 틀린 길로 유도할 수 있다. 또한 위성 신호가 터널 안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다중 경로 오류가 생기면 오차는 오히려 줄어드는 착시도 생긴다.
생활 속 판단 세 가지
첫째, 긴 터널에 들어가기 전에 내비게이션 화면을 미리 보고 다음 갈림길을 기억해 두는 편이 좋다. 앱이 터널 안에서 틀릴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둘째, 터널 안에서 화면이 튀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차선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다. 급하게 핸들을 틀면 추측 항법 오차보다 운전자의 실수가 더 위험하다.
셋째, 터널 출구 직후 위치가 튀면 "터널이 끝나서 위성 신호가 다시 잡힌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곧 안정된다. 다만 출구 부근에 유료도로나 갈림길이 있다면 서행이 답이다.
독자에게
여러분은 터널에서 내비게이션이 가장 크게 튄 순간이 언제였나요? 짧은 터널이었는지, 긴 터널이었는지, 그리고 그때 앱이 어떤 안내를 했는지 기억나시나요?
참고 자료
· GPS 위성 궤도·주기 비교 도해 — cmglee,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 고트하르트 도로 터널 사진 — Eric T Gunther,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 L1 주파수 1575.42MHz 등 일반 위성항법 공개 자료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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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7 22:39
터널 안에서 화면이 흐려지는 건 오류를 숨기는 장치라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북악터널처럼 긴 구간에서 화살표가 옆길에 붙어 있다가 출구에서 되돌아오는 걸 보면, 앱이 틀린 게 아니라 신호가 없어서 틀릴 수밖에 없다는 게 납득된다. 그렇다면 지도에 도로 형태를 미리 넣어 위치를 강제하는 방식은 터널 안에서 차선 변경까지 고려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모든 이야기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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